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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건 늘 바람, 노래는 그 뒤를...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건 늘 바람, 노래는 그 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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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름다운 영화를 보았다. 콜롬비아 영화 바람의 여행 (Los viajes del viento, 2009)은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을 재촉하지 않는다. 오히려 멈추게 하고, 기다리게 하며, 말없이 풍경을 바라보게 한다. 치로 게라 감독의 이 작품은 사건보다 시간을, 설명보다 침묵을 선택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해하기보다 함께 걸어야 하는 영화다. 스크린 속 인물들이 걷는 만큼, 관객도 자기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작품은 로드무비로 분류되지만, 그런 분류는 정확하지 않다. 로드무비가 이동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낸다면, 이 영화에서 변화는 이동의 결과가 아니라 이동 그 자체다. 어디에 도착했느냐보다 어떻게 걸어왔느냐가 중요하다. 이 영화는 목적지보다 길을, 성취보다 통과를 이야기한다. 영화는 콜롬비아의 광활한 대지를 배경으로 한다. 카리브해 연안에서 안데스 산맥으로 이어지는 길은 장엄하면서도 잔혹하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 메마른 바람, 사람의 흔적보다 자연의 침묵이 먼저 다가오는 공간. 이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과 대등한 하나의 존재다. 자연은 인간의 감정을 반영하지도, 위로하지도 않는다. 다만 묵묵히 그 자리에 있으며, 인간을 시험한다.   치로 게라(Ciro Guerra, 1981년 2월 6일 출생) 감독 걷는다는 것은 이 자연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한 자세다. 빠른 이동수단을 거부한 채, 발로 땅을 디디며 나아가는 행위는 세계를 정복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세계에 자신을 맡기는 선택이다. 이 영화에서 걷기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의지를 내려놓는 행위에 가깝다. 계획은 자주 어긋나고, 길은 늘 예상과 다르다. 그래서 걷는 동안 인간은 점점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노년의 아코디언 연주자 이그나시오는 이 영화의 중심에 서 있다. 그는 한때 명성을 얻었지만, 이제 음악을 버리려 한다. 아내의 죽음 이후 그는 자신의 아코디언이 악마에게서 온 것이라 믿고, 그것을 돌려보내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이 설정은 현실적이기보다 상징적이다. 악마는 실제 존재라기보다 명성과 경쟁, 소유의 욕망이 낳은 그림자에 가깝다. 이그나시오가 떠나는 이유는 구원을 얻기 위함이 아니다. 그는 더 이상 얻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는 무언가를 끝내고 싶어 한다. 이 영화에서 늙음은 쇠퇴가 아니라 내려놓을 수 있는 능력으로 그려진다. 젊은 시절 쌓아 올린 것들, 집착해온 명예, 음악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했던 욕망을 그는 하나씩 포기한다. 이 포기는 패배가 아니라 선택이다.   그러나 이그나시오의 포기는 고결한 결단으로 미화되지 않는다. 그는 완고하고, 침묵하며, 때로는 잔인하다. 페르민의 요청을 무시하고, 음악을 가르치지 않겠다고 말하며, 자신의 길에 타인을 들이지 않으려 한다. 이 영화는 성인을 그리지 않는다. 대신, 상처 입은 인간을 보여준다. 소년 페르민은 이그나시오와 대조되는 존재다. 그는 아직 음악을 꿈꾸고,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 한다. 페르민에게 아코디언은 저주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그는 명성을 탐하지 않지만, 배움을 갈망한다. 그러나 이 배움은 학교나 제도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페르민은 스승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 그저 곁에 남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페르민의 태도다. 그는 질문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걷는다. 거절당해도 떠나지 않고, 가르침이 없어도 기다린다. 이 영화에서 배움은 설명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배움은 견딤의 시간이다. 페르민은 이그나시오의 침묵을 견디며, 그 침묵 속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스스로 체득한다. 이 사제 관계는 위계적이지 않다. 이그나시오는 가르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그의 모든 선택은 이미 하나의 가르침이다. 어떻게 침묵하는지, 어떻게 음악을 대하는지, 어떻게 길 위에서 타인을 대하는지가 그대로 전수된다. 가르침은 말로 전달되지 않고, 삶의 태도로 전염된다.   바람의 여행 에서 아코디언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며, 전통이며, 공동체의 언어다. 그러나 영화는 이 전통을 낭만적으로 찬양하지 않는다. 아코디언 경연 장면에서 드러나는 경쟁과 폭력성은 전통이 어떻게 권력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음악은 사람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서열을 만들고 배제하기도 한다. 이그나시오가 음악을 버리려는 이유는 음악이 더 이상 사람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통은 계승되지 않으면 사라지지만, 질문되지 않으면 폭력이 된다. 이 영화는 전통을 보전하자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기술인가, 형식인가, 아니면 태도인가. 페르민이 결국 이어받는 것은 완성된 기술이 아니다. 그는 전통을 소유하지 않는다. 대신 전통을 살아갈 책임을 넘겨받는다. 이 영화에서 진짜 계승은 악기를 건네는 장면이 아니라 길 위에서 함께 침묵했던 시간 속에 있다.   바람의 여행 은 대사가 적다. 설명은 최소화되고, 많은 장면이 침묵 속에서 진행된다. 관객에게 불친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침묵은 결핍이 아니라 선택이다. 감독은 언어가 세계를 과잉 설명한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말이 사라질 때, 몸과 풍경이 말을 시작한다. 바람 소리, 발걸음, 악기의 숨결은 인물의 내면을 설명하지 않지만, 느끼게 한다. 관객은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그 시간 속에 머물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 번에 소비되지 않는다. 보고 난 뒤에도 오랫동안 마음 속을 천천히 움직인다. 이 영화는 오늘날의 속도 중심 사회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성과, 효율, 생산성이 미덕이 된 시대에 바람의 여행 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시간을 보여준다. 인물들은 돈을 벌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지 않으며,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다만 걷고, 머물고, 지나간다. 그러나 이 비생산성은 무의미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을 인간으로 되돌리는 시간이다. 걷는 동안 인간은 수단이 되지 않는다. 목적을 위해 소모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빨라졌는가. 그리고 왜 이렇게 빨라져야만 하는가.   영화의 끝에서 모든 것이 명확해지지는 않는다. 악마의 존재도, 음악의 저주도, 완전한 화해도 확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변화다. 이그나시오는 떠나온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페르민 역시 더 이상 출발점의 소년이 아니다. 바람의 여행 은 말한다. 길은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다만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방식을 바꾼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 영화는 모든 관객을 위한 영화는 아니다. 빠른 서사와 분명한 메시지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답답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어느 순간, 속도를 늦추고 싶은 사람에게 이 영화는 깊은 동행이 된다. 길 위에서 길을 묻는 사람, 무언가를 내려놓고 싶은 사람, 혹은 아직 무엇을 이어받아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바람은 지나가고, 사람은 늙고, 길은 사라진다. 그러나 함께 걸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람의 여행 은 바로 그 시간을 기억하게 하는 영화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질문을 지도 없이 건네는 것이 이 영화다.   바람은 늘 떠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의 삶을 스쳐 지나가며 기억을 운반한다. 이 영화에서 바람은 길이자 증인이다. 늙은 아코디언 연주자 이그나시오가 제자와 함께 콜롬비아의 북부를 건너는 동안, 바람은 그들의 발걸음을 밀고 멈추게 하며 과거의 빚과 상처를 불러온다. 말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은 언제나 바람이고, 노래는 그 뒤를 따른다. 아코디언의 숨은 바람으로 시작해 바람으로 끝난다. 들이마신 바람이 소리가 되고, 내쉰 바람이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이 여행은 목적지가 없다.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는 여정이면서도 사실은 소리를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자신이 훔쳐 왔다고 믿는 음악, 타인의 삶에서 빌려 온 명성을 다시 자연에 놓아두는 일. 바람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붙잡으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귀 기울이면 잠시 머문다. 이 영화는 말한다. 인생도 음악도 소유가 아니라 통과라고. 우리는 잠시 통로가 되어 울리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줄 뿐이라고. 그래서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바람을 어떻게 통과시킬 것인가. 노래를 남길 것인가, 침묵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떠날 때,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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