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공식품, 드디어 첫 소송…코카콜라·펩시코를 향한 ‘담배소송 모델’이 열린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시가 초가공식품(UPF) 제조사 10곳을 상대로 공중보건 피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식품업계가 1990년대 담배소송과 유사한 법적 리스크에 직면했다.
2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송 소식이 전해지면서 관련 식품기업 주가가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제품의 중독성과 건강 위해성을 정조준한 이번 소송이 담배업계 판례처럼 장기적 재무 부담과 포트폴리오 전환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초가공식품은 설탕·지방·나트륨과 각종 첨가물 비중이 높고, 아스파탐·합성 착색료·유화제 등 산업적 공정에서 사용하는 성분이 다수 포함된 식품을 말한다. 비만·당뇨·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가 꾸준히 축적돼 온 영역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시가 대형 식품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 픽사베이
담배업계 전철 밟나… 내부문건→합의금 구조 주목
샌프란시스코시 법무관 데이비드 츄는 캘리포니아 불공정경쟁법·공중누해법 위반을 근거로 크래프트 하인즈(Kraft Heinz), 몬델리즈 인터내셔널(Mondelez International), 제너럴 밀스(General Mills), 켈로그(Kellogg), 포스트 홀딩스(Post Holdings), 코카콜라(The Coca-Cola Company), 펩시코(PepsiCo), 네슬레 USA(Nestle USA), 마스(Mars), 콘아그라 브랜즈(ConAgra Brands) 등 10개사를 샌프란시스코 카운티 상급법원에 제소했다.
소송장은 초가공식품을 값싸고, 화려하고, 풍미가 강하며, 중독성을 유발하도록 설계된 제품 으로 규정했다. 특히 1960년대 RJ레이놀즈 등 담배회사가 나비스코·오레오·리츠 등 식품 브랜드를 인수한 뒤 담배 판매에 썼던 중독성 유발 마케팅 기법 을 식품업계에 이식했다고 주장한다. NBC뉴스 등에 따르면 츄 법무관은 담배업계가 수십 년간 식품 시스템을 장악했다 고 밝혔다.
법조계는 이번 소송이 1990년대 담배소송과 같은 궤도에 오를 가능성을 주목한다. 담배소송은 내부문건 공개로 기업이 위해성을 알고도 숨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판이 뒤집혔다. 1998년 미국 46개 주와 주요 담배회사 4곳은 마스터 합의(MSA) 를 체결해 매년 약 100억달러(약 14조7000억원) 규모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소송장은 크래프트 하인즈의 전신 기업 부사장 마이클 머드가 1999년 업계 임원들에게 초가공식품 소비로 미국에서 매년 30만 명이 조기 사망하고 의료비 등 사회적 비용이 연간 최대 1000억달러(약 147조원)에 달한다 고 경고했지만 경영진이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담배소송의 핵심 쟁점인 유해성 인지 여부 와 동일한 프레임이다.
다만 펜실베이니아에서 올해 제기된 개인 소송이 제품과 질병 간 직접적 인과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는 이유로 기각된 사례가 있어, 향후 역학 자료 축적 여부가 소송의 향방을 가를 전망이다.
과학적 정의 없어 …업계 반발 vs 규제 가속
소비자브랜드협회(Consumer Brands Association)는 초가공식품에 합의된 과학적 정의가 없다 며 소송의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반박했다. 세라 갈로 협회 부회장은 식품이 가공됐다는 이유만으로 해롭다고 단정하거나 영양 성분을 무시하면 소비자 혼란을 야기한다 며 업체들은 FDA의 증거 기반 안전 기준을 준수하고 있다 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학계는 초가공식품의 건강 위험에 대한 증거를 축적하고 있다. 예일대 보건대학원은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초가공식품 섭취가 비만·당뇨·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가 반복 확인됐다 고 밝혔다. 의학저널 란셋(The Lancet)은 지난달 전 세계 연구를 종합한 리뷰에서 초가공식품이 과식을 유도하고 독성 노출을 증가시켜 만성질환 확산에 영향을 준다고 결론지었다. FDA는 7월부터 초가공식품의 공식 정의 마련을 위한 자료 수집에 착수했다.
캘리포니아주는 올해 AB1264를 통과시켜 2029년부터 학교 급식에서 특히 유해한 초가공식품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고, 2035년부터는 전면 금지하도록 법제화했다. 규제 흐름이 법률 영역에서 이미 시작됐다는 의미다.
식품업계, 포트폴리오·규제·소송 3중 압박
이번 소송은 단순 공중보건 논쟁을 넘어 식품 대기업의 중장기 전략 재편 압력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탄산음료·에너지드링크 비중이 높은 코카콜라·펩시코는 첨가물·당류 규제에 가장 취약하다. 시리얼·스낵 중심의 켈로그, 제너럴 밀스, 몬델리즈는 어린이 타깃 광고 규제가 직접 타격이 된다. 혼합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네슬레·크래프트 하인즈·콘아그라는 레시피 변경과 첨가물 감축에 따른 비용 증가가 예상된다.
규제 리스크는 FDA의 초가공식품 정의 확정 이후 영양표시, 첨가물 규제, 어린이 광고 제한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정치적으로도 트럼프 행정부의 Make America Healthy Again 구상과 캘리포니아의 학교 급식 규제가 맞물리며 양당 공통 이슈로 부상했다.
소송 리스크는 담배소송처럼 내부문건 공개→기업 책임 인정→대규모 합의 구조가 형성될 경우 장기적 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브랜드 평판 악화와 밸류에이션 할인이 동반되고, 포트폴리오 전환 비용까지 감안하면 재무 압박이 가중될 전망이다.
샌프란시스코 현지 매체 크로니클은 정부 기관이 식품업계의 고의적인 초가공식품 마케팅을 문제 삼아 제기한 첫 소송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