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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길고양이 죽음에 폭발한 러시아 국민들의 울화

길고양이 죽음에 폭발한 러시아 국민들의 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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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일반 러시아 국민들이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 중 하나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독재 체제인 러시아에서는 국민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지도 않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니까. 두 번째는 한국 사회와 가치체계 자체가 달라서 이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과 가치체계 자체가 다른 러시아인들의 속마음 알기 한국인들은 자유, 민주주의 같은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긴다. 정치인들도 그런 단어를 가장 먼저 외친다. 그래서 당연히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다르다. 자유 라는 말은 러시아에서 거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언론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국정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잘 등장하지 않는다. ‘전쟁에 대한 국민의 생각’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대부분 러시아 사람들이 전쟁을 그냥 무시한다고 답하면 한국인들은 의아해 한다. 경제에도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경제가 나빠지는데 국민들이 그걸 그냥 무시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경제 와 러시아인이 생각하는 경제 는 다르다. 초점을 다른 데에 둔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물가 상승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는 물가가 오르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여론이 악화되면서 정부에 책임을 묻는 편이다. 소득과 지출의 비율이 달라지면 경제가 나빠진다고 느끼고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낮아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면 러시아 사람들은 물가 상승 그 자체에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러시아 국민에게 물가 상승보다 더 무서운 것은 식품 공급 부족과 품귀 현상이다. 마트에 가서 물건값이 비싸더라도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다면 괜찮지만 진열대가 텅 비어 있으면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이는 러시아 국민의 집단 의식 속에 소련 붕괴 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기 때문인 듯하다. 돈이 있어도 살 물건이 없었던 1990년대 초반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올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큰 이슈가 생길 때마다 사재기를 한다. 러시아식 조삼모사, 계란꾸러미 계란 수 10개→9개 줄이기 러시아 정부는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물가를 올리더라도 품귀만큼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일상 편의에 대해 신경을 엄청 많이 쓴다. 이 과정에서 황당한 꼼수들이 생겨난다. 같은 가격인데도 10개짜리 계란 한 박스가 슬그머니 9개로 줄어들거나 1리터짜리 우유팩이 950밀리리터로 줄어드는 식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이라고 부른다. 현재 러시아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겉으로는 경제가 큰 타격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냥 참고 넘긴다.   일단의 모스크바 시민들이 4월 22일 레닌 탄생 15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있는 레닌 묘소를 방문하고 있다. 2025. 4. 22 EPA/연합뉴스 러시아 사람들이 자기 위안에 능하다는 예는 또 있다. 해외로 이민 간 러시아인들과 본국에 남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양쪽 논리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러시아가 ‘세계 최고’라고 주장하는 애국자 들은 유럽에 이민을 가서도 유럽인들의 일상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다. 모스크바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고 우길 때 동원되는 논거들은 이미 러시아 인터넷에서 밈으로 떠돌 정도로 유명하다. 모스크바는 새벽 3시에도 스시 배달이 된다 , 일요일 저녁에도 변기 수리를 요청하면 10분 안에 기사가 온다 , 러시아 온라인 뱅킹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쉽고 빠르고 편하다 같은 주장들이 대표적이다. 진위를 떠나서 이런 주장들은 전부 일상의 편의와 관련이 있다. 정치 체제, 표현의 자유 수준, 선거의 공정성, 사회 전반의 치안 같은 것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나라가 잘 산다 는 기준이 새벽 스시 배달과 온라인 뱅킹으로 대표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다 보면 이는 결국 일상의 편의가 곧 국가 발전 수준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일상 편의가 없던 소련 시절, 그리고 극도로 어려웠던 1990년대와 비교해 2000년대는 그 편리함과 생활 서비스의 접근성만으로도 어느새 살기 좋은 나라 가 돼버린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더없이 유리한 국민 의식이다. 새벽에도 되는 음식 배달 서비스와 온라인 뱅킹만 잘 돌아가게 해 주기만 하면 국민들은 조용하다. 여기에 더해 일반인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국제 정세 뉴스나 중앙은행 기준금리, 수출입 통계 같은 것들을 뉴스에서 슬쩍 빼 버리면 된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길고양이를 추위 속에 내던진 열차 승무원의 죄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느새 5년째로 접어든 전쟁은 러시아 사회에서도 더 이상 인기가 없다 (물론 그 전에도 ‘인기’가 정말로 있었는지를 주장하기가 어렵지만). 전선에서 돌아오는 시신의 수는 늘어만 가고 체감 경제는 계속 악화되고 있으며 SNS 차단과 인터넷 접속 제한, 언론 탄압, 출입국 규제 같은 통제들도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의 목소리는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온다. 바로 그런 뜻밖의 사건들을 통해 민심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전쟁에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 라고 직접 물을 수는 없지만 간접적으로 불거지는 사건과 이슈를 통해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음 사례를 살펴보자. 2024년 1월에 러시아에서 외부인의 눈에는 다소 생소한 스캔들이 터졌다. 장거리 열차 안에서 한 객차 담당 승무원이 겨울 추위를 피해 따뜻한 칸으로 몰래 들어온 길고양이를 발견하고 즉석에서 밖으로 내던진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1월에 날씨가 아주 추운 지방이라 고양이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 한 승객이 이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자 러시아 전체가 들끓었다. 수천만 명이 분노했고 댓글 폭풍이 몰아쳤으며 항의가 폭주한 철도공사 웹사이트가 다운됐다. 교통부 장관이 직접 나설 만큼 사태가 커졌고 해당 승무원은 전국 생방송에서 즉각 징계 해고됐으며 사법부도 크게 요동쳤다. 국내 모든 방송이 24시간 내내 이 사건만 내보냈고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도 언급될 정도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 교통법이 개정되고 열차 승무원 채용 과정과 규정이 바뀌었다. 2024년 초의 압도적인 사회 이슈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고양이 죽음에 화 냈다고 감옥 가는 건 아니겠지?’ 왜 그랬을까. 승무원이 길고양이를 한겨울 추위 속에 열차 밖으로 내던진 것은 분명히 잔인하고 잘못된 일이며 비판 받을 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한 국가의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비롯해 나라 전체가 비상이 걸릴 사안은 아니다. 당시 많은 사회학 전문가들은 이 사건을 이렇게 해석했다. 국민이 정치나 정말로 불안한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정치와 전혀 무관해 보이는 안전한 사건에 쌓인 분노가 대신 분출된 거라고. 전쟁에 대한 피로와 울화가 억울하게 죽은 고양이 사건으로 향한 것이다. 고양이 죽음에 대한 분노 댓글 때문에 감옥에 안 가니까. 억지스럽게 들릴 수 있지만 이것이 지금 러시아의 현실이다. 러시아 국민들이 전쟁에 대해 진심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는 알기 어렵다. 다만 위와 같은 간접적인 사건들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 속내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별것 아닌 사건 하나에 온 국민이 강렬하게 분노를 쏟아내는 현상은 지금 러시아 사회가 얼마나 높은 긴장 속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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