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통사고 1년…카카오의 쇄신은 미완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카카오 데이터센터 안산. /사진=카카오
[데일리임팩트 황재희 기자] "마음이 무겁고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에 크고 오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카카오의 시스템을 전면 점검하고 카카오 이용자의 신뢰 회복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1년 전 남궁훈 각자대표는 이 같이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10월 15일 판교 데이터 센터 화재로 대규모 디지털 정전이 발생한 직후다.
당시 카카오의 서비스 장애는 최장 127시간 동안 지속됐다. '국민메신저'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간편결제, 송금, 자산관리, 콘텐츠 감상, 택시 호출, 쇼핑 등의 주요 서비스를 연결시켰지만, '셧다운' 시 안전장치가 없었던 까닭이다. 피해는 예상보다 컸다. 일상의 모든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것이다.
화재 발생 닷새 만에 카카오는 절치부심을 약속하고, 쇄신에 나섰다. 투톱체제였던 리더십을 원톱으로 재편했고, 사태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절차에도 돌입했다. 특히 안정적 서비스 운영을 위해 자체 데이터센터 구축, 정보보호 투자 강화 등을 단행했다.
이후 1년, 카카오의 쇄신은 의도한 만큼 이뤄지지 못한 듯 보인다. 안정성 측면에서는 이전보다 진일보했지만 조직 운영과 관리에서 문제가 불거져서다.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시세 조종 의혹은 물론, 경영진의 스톡옵션 행사로 인한 먹튀 논란, 법인카드의 개인적 유용 등이 연달아 발생했다. 경영진의 도덕적 일탈과 성과제일주의는 리더십 훼손을 넘어 조직 전체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카카오는 수익성 악화로 인해 구조조정을 단행 중이다. 일부 계열사의 경우, 대규모 희망퇴직이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과 제대로 된 소통은 없었다. 기업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카카오 경영진이 조직 문제에 대해 얼마나 안일하게 접근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카카오 노조의 단체행동은 시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곯을 대로 곯은 카카오의 문제가 터지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정전 2번은 안 된다" 인프라 강화
18일 카카오에 따르면 첫 자체 데이터센터는 내년 1월 정상 가동을 목표로 운영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다. 경기 안산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내 위치한 카카오 데이터센터는 현재 운영 시스템 설치와 안정화 테스트를 거치고 있다. 총 12만대 서버, 6엑사바이트(6EB)에 달하는 데이터량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다.
특히 재난에 대비한 안정성 강화에 집중했다. 카카오는 지난해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를 교훈삼아 화재에도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4단계 대응 시스템을 비롯 지진, 홍수 등 자연재해에 대비한 재난 설계를 적용했다. 이와 함께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운영도구를 모두 다중화해 장애 발생시 즉각 복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일년 전인 지난해 10월 발생한 데이터센터 화재사고로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포함한 서비스 일부가 정상 작동돼지 않아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이에 카카오는 사과와 함께 서비스 장애로 인한 피해보상과 대책 마련을 위해 사고날짜를 딴 '1015 피해지원 협의체'를 구성, 피해 사례를 접수막고 올해 보상을 완료했다. 소상공인들을 포함한 이용자 피해보상액만 257여억원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후 열린 카카오 기자간담회. 남궁훈 카카오 전 카카오대표(왼쪽)는 책임경영을 약속했지만 스톡옵션 행사 후 거액의 차익을 챙겨 이달 말 회사를 떠난다. / 사진=황재희 기자
기술 안정성은 개선…'조직문화'는 후퇴
기술 안정성을 높여 서비스 기반을 강화한 점은 카카오의 의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다만 이 같은 노력에도 카카오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서비스 피해 보상액을 두고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기업간거래(B2B)향 서비스를 이용하던 영세소상공인 중에서는 '보상 기준이 모호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에 대해 카카오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피해금액 산정을 위해 당시 소상공인과 소비자를 대표할 수 있는 외부 전문가를 영입했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보상 금액이 몇백억원에 달해 적지 않은 규모지만 개별적으로 쪼개다 보니 받는 분의 입장에선 적게 느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피해 보상액 자체는 문제되지 않는다. IT업계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금액보다 카카오의 '성의'가 문제"라며 "이용자들에 공감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회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는지가 피해 보상에서 드러났다고 생각된다. 카카오는 그런 측면에서 아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카카오페이, 카카오맵 등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무료 서비스를 통해 다수의 이용자를 확보했지만 역으로 서비스 장애 사고 시, 국민 생활에 미치는 여파도 크다. 기술 인프라와 서비스 투자 외에도 기업 윤리 준수와 같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는 것도 카카오 서비스의 파급력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진의 도덕적 일탈은 계속되고 있다.
이달 말 회사를 떠나는 남궁 전 카카오 대표는 스톡옵션 행사로 비난을 받고 있다. 남궁 대표는 지난 10월 데이터센터 화재 사고후 ''대표이사에게 스톡옵션 부여 시 그 행사가를 15만원 아래로 설정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과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심지어 94억원의 차익까지 챙겼다. 카카오그룹 재무를 책임지는 한 임원은 법인카드로 1억원의 게임아이템을 산 사실이 뒤늦게 적발돼 노조가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임원진에게 구속영장도 청구됐다. 카카오 공동체의 투자를 책임지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을 비롯 3인의 현직 카카오 임원은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인수를 위해 시세 조종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 크루유니언이 19일 오전 서울경찰청앞에서 카카오 전 재무그룹장을 배임과 횡령 혐의로 고발하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황재희 기자
"부끄럽다" 잇따른 잡음에 내부 분위기 '뒤숭숭'
이와 관련, 카카오 노조인 크루유니언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지난주 노조 지회장이 경찰서에 고발인 조사를 받고 온 걸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사태 재발을 막고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노조 차원에서도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를 비롯 경영진들에게 여러 차례 소통 제안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에도 별도의 입장 표명은 없었다. 계열사별 독립경영 체제를 유지하는데다, 사업쪽은 각자 대표가 총괄해 온 만큼, 김 센터장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기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국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에도 김 센터장은 '깊은 책임감을 통감한다'는 원론적 입장만을 밝혔다.
창업주이나 카카오의 실질적 오너인 김 센터장의 이 같은 거리두기가 지금의 카카오를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IT업계의 또다른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화재사고로 카카오 내부의 문제들이 표면화 됐다"며 "몇 번이나 혁신, 쇄신을 약속했지만 비슷한 문제가 반복됐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었다는 의미"라고 꼬집었다.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를 요구하는 안팎의 목소리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책임경영에 대한 요구는 커져만 가고 있다. 특히 구성원들의 불만은 누적되는 모습이다. 판교에서 진행된 구성원들의 집단행동은 이를 방증한다.
크루유니언은 지난 8월 판교 일대를 단체행진하며 카카오 경영진에 대한 책임 경영을 촉구했다. 거듭되는 경영진의 일탈행위는 카카오의 위기를 드러내는 것이라며 고강도의 쇄신을 요구했다.
직원들의 집단행동에도 핵심 경영진은 묵묵부답이다. 크루유니언 관계자는 데일리임팩트에 "경영진들과 소통이 막혀 있어 임원들이 현재의 카카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며 "부끄러움은 직원의 몫"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보니 노조에 힘을 실어주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카카오 노조 가입자는 현재 약 4000여명, 공동체 전체 직원의 약 40% 가량이다. 경영진의 부정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노조 가입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