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 학살 책임자가 알프스 스키 여행? 규명될까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의사 출신 나치 친위대 대위로 악명을 떨쳤던 요제프 멩겔레. 그가 직접 가스실로 보낸 유대인 등은 무려 40만 명으로 추정된다. 게티 이미지
악명 높은 나치 전쟁범죄자 요제프 멩겔레(1911~1979)가 남미 대륙 어딘가에 몸을 숨은 것으로 모두가 알고 있던 1956년, 아들 롤프와 함께 스위스 알프스에서 스키 여행을 즐겼다는 얘기가 있다고 영국 BBC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물론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1980년대에 벌써 이런 얘기가 나왔다고 방송은 전했다.
멩겔레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절멸수용소에 배치돼 가스실로 보낼 사람들을 선별하는 임무를 맡았던 의사 출신 나치 친위대(SS) 대위였다. 110만 명이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수용소 등에서 목숨을 잃었는데 그 중 100만 명이 유대인이었다. 그는 아이들과 쌍둥이들을 선발해 출산 및 단산 의학 실험, 아리안족의 번성을 위해 생식력을 높인다는 미명 아래 가학적인 생체 실험을 했다. 나중에 쓸모없다 싶으면 가스실로 보내버렸다. 해서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죽음의 천사 였다.
인류를 살린다는 신성한 생각을 갖고 의술을 배워 이렇듯 반인륜 범죄에 써먹은 악한 중의 악한이었다.
그런 인물이 종전 후 10년쯤 지난 시점에 한가롭고 여유있게 알프스 스키 여행을 즐겼다니 그런 소문을 들은 홀로코스트나 2차 대전 피해자들은 피가 거꾸로 솟았을 것이다.
놀랍게도 멩겔레는 한 번도 체포되지 않았다. 당연히 전범으로도 기소되거나 법정에 서지도 않았다. 1979년 브라질에서 수영하다 뇌일혈로 목숨을 잃었는데 친하게 지내던 친위대 동료의 이름으로 묻혔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는 소문이 계속 돌아 1985년 그의 시신이 발굴됐고, 1992년 유전자(DNA) 대조 검사를 거쳐 그의 주검이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치의 패망이 확실해진 시점에 그는 많은 나치 고위직들처럼 군복과 이름을 재빠르게 바꿨다. 가짜 신분증의 도움을 받아 그는 이탈리아 북부 제노바에 있는 스위스 영사관에서 적십자 여행 서류를 발급받아 남미로 도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십자사는 전쟁 때문에 유럽 전역에서 이재민이나 무국적자 신세가 된 수천 명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해 여행 서류를 발급한 것인데 전범으로 기소되는 일을 피하려던 나치들도 이 서류들을 손쉽게 손에 넣었던 것이다. 국제적십자사(ICRC)는 한참 뒤에 이런 과오에 대해 사과했다.
적십자국제위원회(ICRC) 이탈리아 제노바 사무소가 발급한 나치 전범들의 가짜 여권. 왼쪽부터 요제프 멩겔레, 클라우스 바르비, 아돌프 아이히만의 것. AFP 게티 이미지
멩겔레는 바이에른주 로젠하임 근처의 한 농장의 마부로 위장해 4년을 숨어 살다 1949년 제노바를 거쳐 남미로 달아난 것으로 알려져 역사학자들은 이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스위스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문서들에 대한 접근을 요청했으나 스위스 당국은 줄곧 거부해 왔다.
그런데 스위스연방정보국(SFIS)이 오래 봉인된 멩겔레 기밀 문서들을 공개하기로 방침을 세웠다고 영국 BBC가 15일(현지시간) 전했다. 다만 언제 어떤 형식으로 공개할지는 밝히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스위스 역사가 레굴라 보흐슬러는 멩겔레가 1959년 국제 체포영장이 발부된 후 유럽으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항상 궁금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스위스가 나치를 피해 도주하는 경로로 역할했을 가능성을 조사하던 중에 1961년 6월 오스트리아 정보기관이 멩겔레가 이름을 숨긴 채 스위스 영토에 있을 수 있다고 스위스 당국에 알리고 경고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그녀는 그가 또 1959년에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갖고 있으며 멩겔레 부인이 취리히에 아파트를 임대한 뒤 영주권까지 신청했다는 사실도 파악해냈다.
아파트는 소박한 교외에 있었고, 멩겔레 가족은 훨씬 더 호화로운 집을 살 여유가 있었다. 국제공항과도 가까운 집이었다.
보흐슬러는 취리히 경찰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 기록은 1961년에 그 아파트가 감시를 받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경찰은 심지어 멩겔레 부인이 폭스바겐 승용차를 운전하며 신원 미상의 남성과 함께 있는 모습도 확인했다. 그 남자가 남편 멩겔레였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요제프 멩겔레(가운데)가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인 리하르트 바에르(왼쪽), 루돌프 회스 전 소장과 어울려 있다. 유니버설 히스토리 아카이브
당시 멩겔레는 지명수배 중이었으므로 그를 체포하려면 연방 경찰이 개입했을 것이다. 2019년 보흐슬러는 스위스 연방 기록보관소에 파일 열람을 신청했지만 역시 묵살당했다. 이 기록은 국가 안보와 가족들의 권리 보장을 핑계로 2071년까지 봉인되었다.
보흐슬러가 퇴짜를 맞은 첫 번째도 마지막 인물도 아니었다. 지난해 동료 역사학자 제라르 베트스타인이 다시 시도했는데 또 거절당했다. 그는 이날 BBC에 터무니없어 보였다 면서 2071년까지 문을 닫는 한, 음모론을 부추기고, 모두가 뭔가 숨길 게 있을 거야 라고 말하게 된다 고 개탄했다.
멩겔레는 1970년대 브라질에서 신원 미상의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노출됐는데 그곳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 게티 이미지
SFIS는 이달 성명을 통해 완벽하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시사하면서 원하는 이들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조건과 요건에 따라 파일에 접근할 수 있게 될 것 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역사학자들은 멩겔레에 관한 기밀문서가 공개되면 그에 관한 새로운 사실보다 스위스의 추악한 면모가 오히려 부각될 것이라고 본다고 방송은 전했다. 야콥 태너는 국가 안보와 역사적 투명성 사이의 갈등이며, 스위스에서는 전자가 종종 우세하다 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중립국 스위스와 나치 독일의 관계, 특히 스위스 은행의 역할을 조사하는 베르지에 위원회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다.
태너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난민들이 국경에서 제지 당하거나 스위스 은행이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한 유대인 가족들의 돈을 착복한 일이 많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그 역시 멩겔레가 1961년에 스위스에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수배 중이던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0년 아르헨티나에서 이스라엘 첩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되자 남미로 달아난 다른 나치들도 그곳이 위험하며 차라리 친구와 친척들이 남아 있는 유럽이 더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증거도 있다는 것이다. 태너는 칠레로 도피한 또 다른 나치 전범 월터 라우프가 1960년 독일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베르지에 위원회의 한 역사가가 1999년에 잠시 멩겔레 관련 서류를 살펴보았는데그가 스위스 땅에 있었는지를 증명하거나 반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열람한 문서는 전쟁 전체에 관한 24권짜리 보고서 중 몇 줄에 불과했다. 파일들은 다시 봉인됐고, 그 역사학자는 7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베트스타인의 말이다. 아마도 우리는 진실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여기 있었는지 아닌지는 결코 알 수 없겠지만 적어도 좀 더 명확한 단서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