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상속···정의로운 미래를 위해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녹색불교연구소 소장
‘자수성가’라는 신화의 함정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일군 성취를 자랑스러워 한다. 밤잠을 설쳐가며 공부하고, 남들이 쉴 때 땀 흘려 일하며, 자나 깨나 심혈을 기울여 온몸이 부서져라 노동하며 얻은 통장의 잔고와 그 과정에서 이룩한 사회적 지위는 분명 개인의 눈물과 인내가 맺은 결실이다. 그래서 자기 혼자 힘으로 가문을 세웠다는 ‘자수성가(自手成家)’라는 말은 성장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을 나타내는 높은 평가로 통용된다. 그러나 냉정하게 질문해 보자. 정말 나 혼자의 힘만으로 그 결실을 맺는 것이 가능했을까?
우리는 흔히 자신의 공로와 노력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누린 환경은 물이나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거둔 모든 성취는 사실 ‘사회’라는 비옥한 토양 위에서만 가능했다. 내가 만든 물건을 사준 이웃이 없었다면, 내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밤거리를 지켜준 경찰이 없었다면, 내가 편히 다닐 수 있는 도로와 자동차가 없었다면, 그리고 집을 짓는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의 성취는 불가능했다. 또한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법과 질서가 없었다면,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인류가 수천 년간 축적해온 학문과 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없었다면 현재의 성공은 존재할 수 없다. 결국 개인의 부와 성취는 고립된 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타인의 노동과 사회적 시스템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 결과이다.
사회적 양육. 고래들은 자신의 새끼가 아닌 경우에도 양육을 도와 준다. Whales Online
이뿐만이 아니다. 내가 마시는 물과 공기가 오염되지 않고 청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 아직 푸르게 남아 있는 나무와 숲, 그 속에서 생태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벌레와 새와 동물들 덕분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 이처럼 살만한 사회적 질서가 움직이고 있기에 현재의 삶이 가능한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것은 ‘청정한 자연 덕분에’, 오랫동안 축적된 ‘사회적 질서 덕분에’,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며 사회를 구성해준 ‘이웃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내가 얻은 부는 오롯이 내 손으로만 이룩한 것이 아니며, ‘사회적 지분’, ‘자연의 지분’, ‘이웃의 지분’이 담겨 있다. 여기에 ‘역사적 축적의 지분’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성공인 것이다.
샤르트르의 베르나르는 우리를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난쟁이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선조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는 것은 더 예리한 시력이나 더 큰 키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거대한 체격 위에 들려 올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존 오브 솔즈베리, 1159년. 위키피디아
‘난소 복권’: ‘운’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손
성공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강조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운’의 요소를 간과하곤 한다. 워런 버핏은 이것을 ‘난소 복권(Ovarian Lottery)’이라고 표현했다. 만약 내가 똑같은 재능을 가지고 100년 전의 척박한 땅이나, 지금 이 순간에도 내전이 벌어지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지금과 같은 부를 쌓을 수 있었을까? 재능조차 온전한 나의 것이 아닐 수 있다. 숫자에 밝은 머리, 지치지 않는 체력, 위기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자산이다. 이것이 가능하도록 어린 시절에 적절한 영양을 공급받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환경 역시 개인이 선택한 결과가 아니다.
1960~70년대 주말, TV에서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미국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가난한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한탄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아프리카나 인도, 동남아시아 등을 여행하다 보면 한국에서 태어난 우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것은 개인의 노력을 폄하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나의 부가 얼마나 많은 행운과 타인의 배려 위에 서 있는지를 깨닫는 겸손의 시작이다.
내가 번 돈이 100% 오직 나의 노력 덕분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그런 생각은 ‘승자독식’을 정당화하고, 낙오된 이들을 향한 경멸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나의 성공에 ‘운’과 ‘환경’의 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갖게 된다.
사회적 상속= 끊어진 사다리를 다시 잇는 작업
이제 우리는 ‘사회적 상속’이라는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의 상속이 내 자녀에게 금수저를 물려주는 ‘폐쇄적 상속’이었다면,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상속은 내가 누린 혜택을 사회 전체로 되돌려주는 ‘개방적 상속’이다. 나의 재산과 부는 오로지 나만의 노력이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 수많은 사회적·역사적 지분 덕분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사다리의 소멸’이다. 앞선 세대가 타고 올라온 사다리를 걷어차 버린 격차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벌이 되고, 다시 그 학벌이 고소득 직종으로 이어지는 부의 대물림과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어느덧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옛말이 되었다. 물려받은 저택과 통장을 갖고 태어나는 아이와 빚과 가난으로 시작하는 아이는 마치 100m 달리기에서 누군가 50m 앞에서 출발하는 것과 같은 불공정한 게임을 하는 셈이다.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는 것은 스스로 기술을 배우거나 열심히 일할 동기를 저하시키고 불로소득에 안주하게 만든다. 또한 돈이 돈을 만드는 구조로 인해 가난한 사람은 더 어려워지고 부유한 사람은 더 부유해지는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현대판 신분제를 만들어 낸다.
사회적 상속은 이 끊어진 사다리를 다시 놓는 작업이다. 내가 얻은 부의 일부를 세금이나 기부, 혹은 지식 공유를 통해 사회로 환원하는 것은 단순히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이룩한 축적이 사회적, 자연적, 역사적 토대 덕분임을 깨닫고, 다음 세대에게도 이 ‘공정한 시스템’이 유효하도록 유지보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내가 누린 평화와 번영의 인프라를 다음 세대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공한 자가 가져야 할 가장 고귀한 의무이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서울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민주화 요구 시위군중. 나무위키
386, 586세대의 과제와 진정한 공정함
특히 한국 사회 민주화운동의 주역인 386세대에게 이 메시지는 더욱 중요하다. 그들은 민주화를 이룩한 세대인 동시에 성장의 과실을 누린 축복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그들이 일군 자산과 권력이 자녀 세대에게만 대물림되어 사회 불평등과 위화감 조성에 기여한 이중적 태도에 비판을 받곤 한다.
386세대가 젊은 시절 외쳤던 ‘정의’와 ‘평등’은 이제 ‘사회적 상속’이라는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한때 우리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를 읽으며 민중을 위해서(For)가 아니라 그들과 함께(With)해야 한다고 믿었다. 대학 졸업장이라는 계층 상승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존재 이전’이라는 표현을 쓰며 노동자가 되기 위해 대학을 중단하거나 제적되어, 노동 현장과 농촌으로 들어갔던 도도한 전통이 있었다. 심지어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희생한 수많은 삶이 있었다. 86세대는 이러한 분위기를 직간접적으로 만들고 스스로 결단했던 세대들이다.
이들은 이제 50대 말 혹은 60대가 되어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퇴임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앞세대는 이제 70세가 되었다. 퇴임 후 시간이 많아진 86세대들은 100세 시대에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건강과 지식, 정보를 갖추고 있다. 또한 여전히 직업 현장에서 활동 중인 후배들과의 영향력 있는 네트워크도 살아 있다. 연줄이 재산인 사회에서 이런 네트워크는 엄청난 권력이다. 여기에 성장 사회의 혜택으로 연금과 복지 서비스를 누리는 경제적 여유까지 겸비했다. 어쩌면 지금의 86세대는 과거 세종대왕보다 더 잘 살고 있으며,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편리한 최고의 삶을 누리는 세대일지 모른다.
그러나 기후 위기와 환경 위기를 앞둔 현재, 이들의 자녀와 손주들이 이러한 삶을 지속할 수 있을지는 보장할 수 없다. 60~70대들은 현재의 풍요를 누리다 20~30년 뒤에 떠나면 그만일지 모르나, 우리가 만들어낸 환경 오염과 기후 위기의 책임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게 떠넘겨져 고통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들은 그저 태어난 죄밖에 없음에도 암울한 미래를 넘겨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자녀에게 더 좋은 학벌과 아파트를 물려주는 데 몰두하기보다, 어떤 부모를 만났든 모든 청년이 공정하게 꿈꿀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영향력을 써야 한다. 또한 미래 세대에게 위기와 오염이 아닌 청정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을 쓰는 것이 진정으로 내 아이들을 위한 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장하 선생. 나무위키
김장하 선생의 말씀 나에게 갚지 말고 사회에 갚아라
돈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많이 베푸는 사람이 부자”라는 말이 있다. 성공은 나눌 때 비로소 완성된다. 나 혼자만 잘사는 성취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뿐이다. 유산이 20억이 넘으면 무조건 자손들끼리 분쟁이 발생한다”는 말도 있다. 사회와 함께 나누는 부는 존경과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내가 얻은 부가 나의 것만이 아님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나 ‘나눔의 기쁨’을 알게 된다. 나의 성공에 도움을 준 수많은 이름 모를 이들에게 감사하며, 이제는 내가 누군가의 성공을 돕는 ‘환경’이 되어주어야 한다.
진주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며 수천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학교 설립과 시민단체 후원에 앞장서신 김장하 선생의 삶과 말씀을 상기해 본다. 가난으로 학비가 없던 시절 도움을 받아 판사가 된 문형배 법관이 감사의 보답을 하려 하자,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 없다.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나에게 갚지 말고 이 사회에 갚아라.
또한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 는 말씀과, 사람은 주는 것으로 어른이 된다 ,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것 이라는 가르침은 이 시대 어른으로서 큰 귀감이 된다. 사회적 상속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내 성공의 지분이 사회의 것이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빚을 갚는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부의 대물림이 아닌, 희망의 대물림이 가능한 곳이 될 것이다.
민주화운동가들의 재심과 배·보상, 미래 세대를 위해
최근 1970년대 긴급조치 9호, 1980년대 5.18, 국가보안법, 강제징집 등 군사독재의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항거하다 부당한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 소송이 진행되어 대부분 무죄 선고를 받고 있다. 무죄가 확정되면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배·보상을 받게 된다. 이미 그렇게 결의하여 실천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배·보상을 받은 86세대에게 다시 한번 제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배·보상은 본인들을 비롯한 당시 수많은 희생자의 고통과 피로 이룩한 결과이다. 그러나 당시 우리가 배·보상을 받기 위해 그 일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재심 소송 자체를 하지 않거나 배·보상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은 기대하지 않았던 기금일 것이다. 그래서 현재 사건별로, 혹은 대학 민주동문회별로 일정 비율을 민주화 기금이나 미래 세대를 위한 기금으로 기부하는 자율적인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자발적 기부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우리 사회에 ‘사회적 상속’ 문화를 정착시키는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만일 이러한 기부 활동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보수 세력과 젊은 세대로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사회적 기득권을 누리며 착취한다 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과거의 희생으로 얻은 보상을 개인의 노후 자금으로만 쓰기보다,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던 젊은 날의 가치를 이어받아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활동하는 미래 세대와 나누는 삶이야말로 우리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완성하는 길이다.
‘60+ 기후행동’의 사회적 상속 운동
필자가 속한 ‘60+ 기후행동’은 60세가 넘은 사람들이 미래 세대에게 위기와 오염의 지구를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2022년 1월 출범했다. 우리는 다양한 기후 환경 운동을 펼치는 가운데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적 상속위원회’를 만들었다. 내 자녀에게 아파트 한 채를 더 주는 것보다 그들이 살아갈 지구가 무너지지 않게 돕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임을 실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회원의 기금과 기부금을 모아 소수의 10~20대 젊은 환경 운동가들에게 1년간 매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상속’ 활동에 86세대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계층 사회를 허물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기후 위기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이러한 아름다운 사회 문화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길 바란다. 그것은 젊은 날 가난하고 차별받는 약자들을 위해 다짐했던 ‘존재 이전’의 초심을 회복하는 일이며, 결국 86세대가 지향했던 삶을 완성하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