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길 만들어 걷기 열풍 이끈 서명숙씨 타계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제주올레길을 만든 고 서명숙씨.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올레길을 만들어 2010년대 전국에 걷기 열풍 을 불러일으킨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 7일 6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암 투병한다는 얘기가 전해졌는데 따로 사망 원인을 밝히지 않았다.
고인은 1957년 10월 23일 서귀포시에서 태어나 신성여자고등학교와 고려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월간지 마당 과 한국인 등에서 기자로 활약했다. 1989년 시사저널 창간 멤버로 입사해 정치부 기자와 정치팀장, 취재1부장을 거쳐 시사지 최초 여성 편집장을 지냈다. 시사저널 후배이기도 하고 KBS에도 몸담았다가 쫓겨난 주기자 라이브 의 주진우 전 기자가 늘 사수 로 꼽던 것이 고인이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0년대 후반 정계은퇴한 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여기자들을 불러 저녁과 술을 대접하며 얘기하곤 했는데 그는 다 들어 아는 얘기이고, 새벽까지 마감하느라 힘겨웠다며 꾸벅꾸벅 졸았다. 김 전 대통령이 서 기자 피곤한가봐 라고 주의를 줬지만 그는 아랑곳 않고 제대로 잠을 청했다. 밤 10시쯤 동료 기자가 깨워 귀가했다는 일화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2005∼2006년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끝으로 언론계를 떠났다.
고향 제주로 돌아온 그는 2007년 9월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발족하고 제주올레 1코스를 개장했다. 그 전 해 9월 스페인 산티아고의 800km 순례길을 36일간 걸으며 고향 섬에 같은 길을 내보자 생각했다. 2022년 27번째 코스인 18-2코스를 개장하며 제주를 오롯이 걸어서 여행할 수 있는 제주올레 길 437㎞를 완성했다. 마을과 마을 사이 흐릿해진 길을 잇기 위해 주민들을 설득하고 이장, 동장 등을 설득하느라 힘들었지만 보람이 대단한 일이었다.
두 남동생이 올레길 개척에 함께 했는데 큰동생 서동성 씨도 지난달 14일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둘째 동생 서동철 씨는 폭력조직 땅벌파 두목으로 제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주먹 이었는데 누나의 올레길 개척에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했다. 2020년 1월 61세를 일기로 먼저 세상을 등졌다.
순전히 꼬붕 들한테 아는 것 많다는 얘기가 듣고 싶어 서동철 씨는국립대학(교도소)에서 많은 책을 읽어 제주 목사가 섬을 한 바퀴 도는 순력을 할 때 시흥(始興)에서 시작해 종달(終達)에서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서 올레의 시작점 1코스로 누나에게 추천했다. 두 마을이 해녀들의 바다 구역과 농지를 두고 오랜 세월 반목해온 사이였으니, 평화를 지향하는 ‘올레 정신’과도 맞아떨어졌다. 드세게 반발하는 마을 청년들 술 먹여가며 설득한 이가 그였다.
서동철 씨는 2012년 경향신문 김석종 당시 선임기자와 만나 뜻이 좋아서 한 일이니, 내 공이랄 건 하나도 없습니다. 올레는 전적으로 서명숙 이사장 작품이라마심. 많은 사람들이 꼬닥꼬닥(천천히) 걸으면서 제 안의 아픈 상처를 낫게 한 것처럼, 나도 올레길에서 행복해졌으니 된 거우다 라고 털어놓았다.
서 전 이사장은 생전에 올레길은 나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 행복한 종합병원 이라며 걷기를 통해 심신을 회복하고 건강한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강조해 왔다. 제주올레 열기는 해외로 수출돼 일본 규슈올레와 몽골올레가 개설되기도 했다.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가 제주에 내려가 고인을 인터뷰한 뒤 2010년 7월 4일 지면에 게재했다. 그 중 한 대목이다.
-운동권 출신에다 감옥도 갔다 온 것으로 안다. 현재 본인의 정치성향은 어떤 편인가?
그런 것도 말해야 하나?
-요즘은 그걸 아는 게 그 사람의 정치·사회적 견해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글쎄, 분명 민정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정치노선을 좋아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민주당이나 민노당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막연하게 한나라당 반대진영이 잘해줬으면 하는 기대 정도. 정치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좌파?
그런 건 아니고. 내가 길을 냈다니까 처음에 올레가 좌파의 길 이라고 소문이 났다. 잠깐이지만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을 한 것도 작용했겠지. 그러나 길에는 좌우가 없다. 우파건 좌파건 우환과 시름은 결국 다 똑같다. 그런 우환과 시름을 덜어보고자 길을 만들었는데 더 큰 우환을 만들어내는 좌우를 이 길에 연결하고 싶지 않다. 올레가 좌파의 길이라면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그렇게 열광하겠는가?
고인은 대통령 표창(2009·2017), 재암문화상(2010), 일가재단 일가상 사회공익부문(2013), 국민훈장 동백장(2017), 한국YWCA연합회 한국여성지도자상 대상(2021), 제주 그린어워드 헤리티지 공로상(2025) 등으로 고생했던 보람을 찾았다.
빈소는 제주 서귀포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영결식은 오는 10일 오전 9시 제주올레 6코스 서복공원 잔디광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