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꿈 장자 지금 당신은 무엇을 낚고 있나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 중국 전국시대의 어느 후미진 고을에서 한 남자가 죽은 아내의 관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조문을 온 친구 혜시(惠施, 기원 전 약 370~310)가 기겁을 하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평생을 함께 산 사람이 죽었는데 노래라니!
그러자 그 남자가 대답했다.
처음엔 나도 슬펐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아내는 본래 형체도 없었고, 형체가 생기기 전엔 기(氣)도 없었고, 기가 생기기 전엔 아무것도 없었지. 그 없음 속에서 무언가가 생겨나 기가 되고, 기가 형체가 되고, 형체가 사람이 됐다가 이제 다시 죽음으로 돌아간 것이야. 봄여름가을겨울이 바뀌듯. 아내는 지금 천지라는 큰 방에서 편히 누워 있는데, 내가 엉엉 울어대면 그게 오히려 자연의 이치를 모르는 짓 아니겠나.
이 남자의 이름이 장주(莊周), 흔히 장자(莊子, 기원 전 약 369~286)라 불린다.
요즘 말로 하면 고독한 인플루언서 랄까. 팔로워 수는 적었지만 콘텐트의 질만큼은 2천년이 지나도 바래지 않았다.
장자.(위키피디아)
허름한 관복, 꿰맨 짚신, 그리고 거절의 미학
장자는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일대, 송나라의 몽(蒙) 땅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칠원리(漆園吏), 즉 옻나무 밭 관리인이라는 하급 관직을 잠시 맡은 것 말고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그의 바지는 헤어 있었고 짚신은 꿰매져 있었으며 집에는 먹을 것이 늘 부족했다. 그래서 이웃 감하후(監河侯)에게 쌀을 꿔달라고 한 적도 있다. 감하후가 곧 세금을 걷으면 삼백 금을 빌려 주겠다 고 하자, 장자는 이렇게 대꾸했다.
내가 어제 길을 오는데 수레바퀴 자국 웅덩이에서 붕어 한 마리가 살려달라고 했네. 내가 강물을 끌어다 줄게 라고 했더니 붕어가 그럼 나는 이미 죽어, 건어물 가게에서 나를 찾으시오 라고 하더군.
당장의 작은 도움 대신 거창한 약속을 늘어놓는 자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였다. 오늘 대한민국 정치인들의 공약집을 펼쳐보면 이 붕어 이야기가 절로 떠오를 거란 거는 나만의 착각일까.
초나라 위왕(威王, 재위 기원 전 약 339~329)이 사신을 보내 재상 자리를 제안했을 때, 장자의 대답은 간결했다.
가서 제사 지낼 때 쓰는 소를 보시오. 비단옷을 입혀 제단에 올려지기 전까지는 잘 먹고 잘 살지. 하지만 제물로 바쳐질 때가 되면 그냥 평범한 돼지가 되고 싶어도 이미 늦었소.
권력의 화려함이 결국 제물의 운명임을 꿰뚫어 본 것이다.
장자.(The Philosophy of Zhuangzi – Literary Theory and Criticism)
나비 꿈, 경계를 지우는 자의 세계관
장자 철학의 정수는 흔히 호접지몽(胡蝶之夢) 으로 알려진 나비꿈 이야기에 담겨 있다.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분명 나비였다. 그런데 깨고 나니 내가 사람이었다. 그럼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장자가 던지는 질문은 무섭도록 근원적이다. 나 라는 고정된 정체성이 과연 실재하는가? 나와 나비, 나와 타인, 나와 세계 사이의 경계는 우리가 임의로 그어놓은 선일 뿐 아닌가?
이것을 장자는 만물제동(萬物齊同) , 즉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표현했다. 크고 작음, 높고 낮음, 옳고 그름의 구분은 인간이 관점에 따라 붙인 딱지일 뿐이라는 것이다. 버섯은 아침나절이 하루인 줄 알고, 쓰르라미는 봄가을이 있는 줄 모른다. 하지만 그 버섯과 쓰르라미가 수명이 짧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전부다.
요즘 말로 하면 각자의 맥락을 존중하라 는 뜻이기도 하고, 네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정말 옳은지 한 번만 더 생각해보라 는 뜻이기도 하다.
장자의 나비 꿈을 형상화하면 이렇게도 된다.(위키피디아)
쓸모없음의 쓸모, 큰 나무 이야기
장자가 가장 즐겨 쓴 이야기 구조 중 하나는 쓸모없는 것이 가장 유용하다 는 역설이다.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있었다. 목수가 지나치며 저 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재목도 못 되고 가구도 못 만들고 땔감도 안 돼 라고 했다. 그날 밤 목수 꿈에 나무가 나타나 말했다.
나는 쓸모없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살았소. 복숭아나 배나무를 보시오. 열매가 있어서 사람들이 와서 꺾고 찢고 다 망가뜨리지 않소. 나는 쓸모가 없어서 이렇게 천 년을 살 수 있었다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역설이 아니다. 당대의 유가(儒家)와 법가(法家)가 쓸모 있는 인재를 골라 나라를 다스려라 고 목소리를 높일 때, 장자는 조용히 말했다.
쓸모 있다는 기준 자체를 한번 의심해 보시오.
생산성, 효율, 성과주의로 점철된 요즘 한국사회에서 이 나무 이야기는 가슴 어딘가를 쿡 찌른다.
18세기 일본 화가 이케노 타이가의 작품, 장자의 나비꿈.(위키피디아)
역사에 끼친 영향, 2천년을 흐른 생각
장자의 사상은 그가 죽은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노자(기원 전 약 571~471)의 가르침과 결합해 노장사상 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되었고, 이것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명 전반에 흡수되었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220~589)에는 청담(淸談) 이라는 지식인 문화를 꽃피웠다. 가치가 혼란한 시대에 지식인들이 장자의 언어로 현실을 해석하고 위안을 얻었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혜강(嵇康, 223~262), 완적(阮籍, 210~263) 등이 그 대표다. 이들은 지배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장자의 무위 를 선택했다. 달리 말하면, 저항의 언어로 장자를 쓴 것이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을 때도 장자의 언어가 번역의 다리가 되었다. 불교의 공(空) 개념이 장자의 무(無) 와 연결되며, 선종(禪宗)이라는 독특한 불교 전통이 자라났다. 본래 아무것도 없다(本來無一物) 는 선종의 핵심 정신은 장자의 나비 꿈과 멀지 않다.
조선에서도 장자는 비주류의 텍스트로 흘렀다. 성리학 중심 사회에서 장자를 공개적으로 탐독하기는 어려웠지만, 박지원(1737~1805)의 문체와 사유에는 장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연암이 「허생전」과 「양반전」에서 구사한 풍자와 반전의 구조는 장자적 역설의 조선판이라 해도 무리가 없다.
일본 화가 시바타 제신이 그린 장자의 나비꿈 (1888).(위키피디아)
오늘의 한국, 장자를 펼쳐야 할 이유
지금 한국은 묘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정치는 매일 옳음 과 그름 의 전쟁이다. 내 편이 옳고 네 편이 틀렸다는 확신이 넘쳐난다. 방송, 인터넷, 소셜미디어(SNS)는 각자 진영의 논리를 24시간 재생산한다. 모두가 진실 을 외치고, 진실은 점점 더 많아진다. 장자는 이것을 시비(是非)의 무한 순환 이라 불렀다. 이쪽에서 옳은 것이 저쪽에서는 그르고, 저쪽에서 옳은 것이 이쪽에서는 그르다. 그 순환을 끊어야만 진짜 앎에 가까워진다고 했다.
경제는 쓸모 있음 의 경쟁이다. 어릴 때부터 쓸모 있는 인재가 되라 훈육 받는다. 쓸모의 기준은 취업, 수입, 자산이다.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삶은 낙오 로 불린다. 장자의 쓸모없는 상수리나무가 그 어느 시대보다 절실하게 읽히는 이유다.
사법과 정치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법이 권력을 심판하는가, 권력이 법을 부리는가? 이 질문이 뜨겁다. 장자는 일찍이 말했다.
도둑을 막으려면 자물쇠를 채워라. 그런데 정말 큰 도둑은 나라째 들고 간다. 그리고 그 나라의 법까지 들고 가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
『장자』 「거협(胠篋)」 편에 나오는 이 말은 오늘의 뉴스를 읽다 보면 묘하게 겹쳐 보인다.
장자(Zhuangzi, Wikiquote)
장자가 웃는 방식, 풍자가 철학이 되다
장자의 또 다른 힘은 웃음이다. 그는 무겁고 지루한 언어로 철학을 하지 않았다. 엉뚱한 이야기, 말도 안 되는 상상, 우스꽝스러운 인물들로 철학을 했다. 붕(鵬)이라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새가 구만 리 상공으로 날아오를 때, 작은 메추라기가 킬킬대며 나는 저 나무에서 저 나무로만 날아도 충분한데 쟤는 왜 저렇게 높이 나는 거야? 라고 한다. 장자는 메추라기를 비웃지 않는다. 다만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붕인가, 메추라기인가? 그리고 그게 정말 중요한가?
유머는 장자 철학의 장식이 아니라 본체다. 웃음은 고정된 시각을 흔들고, 자기 확신에 균열을 낸다. 그 균열 사이로 다른 가능성이 스며든다. 장자의 웃음은 결코 냉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보려는 안간힘이었다.
장자.(Zhuangzi | Books, Daoism, & Chinese Philosophy | Britannica)
지금 이 순간, 나는 나비인가 사람인가?
장자는 어떤 제도도 세우지 않았고, 어떤 국가도 다스리지 않았고, 어떤 군주에게도 충성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말은 2300년이 지나도 살아있다. 국가와 제도를 세운 수많은 권력자들이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사이.
오늘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감히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내가 나비인지 사람인지 잠깐 헷갈려 볼 용기. 내가 옳다는 확신을 한 박자 늦추는 여유.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의 깊은 쓸모를 다시 보는 눈.
장자가 오늘 한국에 왔다면 아마 칠원리 자리를 거절하고, 재상 자리도 거절하고, 어느 강변에 앉아 낚시를 드리우며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지금 무엇을 낚고 있습니까?
장자.(The portrait of Zhuangzi. | Download Scientific Di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