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 카테터 고안해 많은 목숨 구한 토머스 포가티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포가티 이노베이션 제공
1959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자비에 의대 학생 토머스 포가티는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의료기구 ‘풍선 카테터’(balloon catheter)를 다락방에서 만들고 있었다. 설계를 마쳤지만 큰 난관이 있었다. 당시는 라텍스와 비닐을 붙일 수 있는 접착제가 없었다. 고민하던 포가티는 학교를 빼먹으며 배울 정도로 좋아했던 낚시를 떠올려 돌파구를 찾았다.
낚시할 때처럼 두 기구로 매듭을 지었다. 풍선 카테터 의 등장은 심혈관 수술의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고, 해마다 30만명의 목숨을 구하는 의료기구가 됐다. 이 혈전 제거 장치는 1969년 특허 출원 이후 2000만 명 이상의 환자와 수많은 팔다리를 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과 여가를 나누지 않은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예술대, 뉴욕시각예술대 등에서 경영학과 예술학을 가르치는 에이미 휘태커가 책 아트 씽킹 에서 대표적인 예를 든 것이 포가티였다.
인류에 엄청난 기여를 했는데도 지난해 12월 28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 알토스에서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것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1일에야 보도했다.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도 지난달 말에야 전했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복부 대동맥류 치료에 사용되는 AneuRx 스텐트 이식편을 포함해 165건 이상의 수술 기구 특허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했다. 하지만 그가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캘리포니아에서는 와인 양조업자로 더 유명하다. 산타크루즈 산맥에 위치한 그의 와이너리는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영감을 얻은 고급 와인 피노 누아르와 샤르도네로 찬사를 이끌어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포가티는 굿 사마리탄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과부가 돼 생계를 책임진 어머니를 도왔다. 열다섯 살에 그는 이미 수술실 장비를 멸균 상태로 유지하는 임무를 맡은 스크럽 기술자 로 승진했다.
그는 혈전이나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는데, 이 수술은 동맥을 절개하고 겸자로 혈전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환자의 거의 절반이 사망하거나 팔다리를 잃었다. 당시 포가티의 멘토였던 잭 크랜리는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고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포가티가 특허 출원 낼 때 그렸던 그림
다락방에서 작업하던 포가티는 라텍스 장갑의 작은 손가락 끝을 잘라내고, 플라이 낚시꾼의 매듭을 이용해 요도 카테터에 부착했다. 이 아이디어는 혈전을 통과하는 동맥의 작은 절개를 통해 카테터를 주먹으로 뚫고, 라텍스에 생리식염수 용액을 부풀린 뒤 막힌 부분과 함께 풍선 을 빼내는 것이었다.
외과의사는 포가티의 오랜 멘토 잭 크랜리였고, 그의 반응은 세상에! 와우, 이거 정말 효과 있네! 였다.
그러나 포가티가 지적했듯, 당시에는 비침습 수술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환자들의 상태가 호전됐다는 결과를 처음 보고한 기사는 모든 주요 외과 저널에서 외면당했다. 미국의 한 혈관외과 의사는 이런 생각을 할 사람은 오직 의대생처럼 경험도 부족하고 교육도 부족한 사람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문이 퍼지면서 미국 전역의 외과의사들이 이 시술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포가티 카테터 는 혈전 수술에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산맥에 위치한 자신의 와이너리에서 포도를 살피는 토머스 포가티
토머스 제임스 포가티는 1934년 2월 25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노동자 아버지를 열 살 때 여의었고, 어머니는 사무실 보조원이었다. 10대 시절 복서가 되고 싶어 세미 프로 선수로도 활동했다. 7라운드 경기 후 코가 부러지고 여러 부상을 입은 후 다른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잭 크랜리의 재정 지원을 받아 신시내티 자비에 대학에서 생물학 학위를 취득한 뒤, 1960년 의학 학위를 취득했다. 1960년대 후반, 오리건 대학에서 레지던트를 마친 후 스탠퍼드 대학 의료센터에 연구원으로 합류했으며, 그 뒤 14년 동안 심혈관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7년에 교육 비영리 기관인 포가티 이노베이션을 설립했습니다.
그는 2001년 미국 발명가 명예의전당에 헌액됐고,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기술 혁신 메달을 수여받았다.
포가티는 1981년에 와이너리를 시작했으며, 와인을 건강식품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제안하며 매일 포가티 피노 누아르 두세 잔 을 마실 것을 권장해 왔다.
그는 부인 로잘리와 세 아들, 딸 한 명을 유족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