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신경 끄고 살자”…북한 두 국가 신헌법의 메시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얼마 전 통일부는 지난 3월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한 신헌법을 공개했다. 영토 조항을 신설하고 조국통일 관련 조항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신헌법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과정의 중대한 전환점이다. 지난 80여 년간 남북관계를 지탱해 온 ‘민족’과 ‘특수관계’라는 실질적·상징적 토대가 북한의 최상위 규범인 헌법 개정으로 재정의됨에 따라, 우리 역시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고도의 평화 설계 능력을 요구받고 있다.
이번 개헌을 통해 북한이 발신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사회주의 기치 하에 한반도를 무력으로 적화통일할 의도가 없음을 시사하며, 남반부를 대한민국으로 인정할 테니 핵을 보유한 자신들을 자극하지 말고 각자의 체제 안에서 따로 살자는 ‘선언적 분리’다. 이러한 ‘두 국가론’을 정상국가 지향, 남북 평화공존의 인프라라는 낙관적 평가도 있으나. 그 이면에는 훨씬 복잡한 법적,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휴전선을 국경선 삼고 정서적 민족주의 완전 탈피
북한의 개정 헌법은 대외적으로 주권국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고도의 제도적 장치들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영토 조항의 신설(제2조)을 통한 국가 관할권의 명문화다. 북한은 국가 관할권을 헌법적으로 확정하고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선언함으로써, 남북관계를 민족 내부 문제에서 국제법적 국가 관계로 전환시켰다. 이는 남한을 ‘타국’으로 규정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땅에서 살 테니, 서로 신경 끄고 살자”는 물리적·법적 경계선을 그은 것이다. 이는 남한의 간섭을 차단하고 유사시 대남 무력 사용의 국제법적 근거를 확보하려는 전략적 의도가 깔려 있다.
둘째, 통일 조항의 삭제(제9조)를 통한 민족적 특수관계의 폐기다. 7·4 공동성명 이래 남북 관계를 규정해 온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을 헌법에서 제거한 것은 기존의 정서적 민족주의를 완전히 탈피하고 철저히 자국 우선주의 관점에서 남북관계를 다루겠다는 선언이다. 이제 ‘우리민족끼리’와 같은 동족 관계는 철저하게 부정된다.
셋째, 핵무력 지휘권 명시와 국무위원장 권한 강화(제86·89·96조)를 통한 1인 지배 체제의 완성이다. 국가수반 격상과 함께 주목할 점은 핵무력 지휘권 의 국무위원장 귀속을 헌법에 명문화한 것이다. 이는 핵무기를 단순히 전쟁 억제용이 아닌 국무위원장의 절대적 결단에 의한 실전적 운용 수단으로 격상시켰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최고인민회의의 국무위원장 소환권을 삭제한 것은 권력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 장치마저 제거하고 권위주의적 독재를 완성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지난 25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노동당 제9차대회 기념 열병식에 이어 축포야회 번영하라 조국이여 가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2026.2.26 연합뉴스
우리 헌법 제4조 평화통일의 국가적 책무와의 충돌
금년 2월에 통일부가 발간한 『이재명 정부의 평화공존 정책』 책자의 어디에도 평화적 두 국가 를 인정하는 표현은 없다. 일각에서 북한의 이번 개헌을 국제사회의 보편적 규범에 부합하는 ‘정상국가화’로 잘못 해석해 북한의 ‘두 국가론’을 수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는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정책과 상반될 뿐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에 회복 불가능한 구조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단순히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고 평화롭게 살자는 낙관적 해석 뒤에는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법적·정치적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첫째, 한반도 접경 지역의 ‘국제 분쟁지역화’와 군사적 충돌 명분의 정당화다. 북한은 개정 헌법 제2조를 통해 영토 범위를 북반부로 한정하며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규정했다. 우리가 이를 국가 간 경계로 인정하게 되면, 향후 서해 NLL 등 접경 지역에서의 갈등은 ‘민족 내부의 특수 관계’를 규율하는 남북기본합의서가 아닌 국제법적 영토 분쟁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이는 북한이 자의적으로 설정한 국경선과 다른 우리 측 경계선에 우리 군이 진입할 경우 무력충돌 가능성이 있다.( 단절의 남북관계. 내년 봄 이후가 진짜 위험하다 , 조성렬, 시민언론 민들레, 2025.12.16.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6976) 북측은 이를 ‘주권국가에 대한 외국의 침략’으로 간주해 무력 대응을 정당화할 수 있는 법적 명분을 갖게 된다.
둘째, 북한지역에서 정권 붕괴나 대규모 소요사태 등 급변사태가 발생할 때 우리가 ‘주권적 연고권’과 개입 근거를 잃어버릴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북한을 완전한 별개 국가로 인정하게 되면, 북한 지역에서의 긴급 상황에서 우리의 개입은 ‘타국에 대한 주권 침해’ 이슈가 되어 국제법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권을 약화시키고, 주변 강대국들이 인도주의나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북한 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만 키워주는 전략적 실책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북향민) 보호권 상실과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근간 훼손이다. 우리 법체계상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며, 탈북민 수용은 헌법적 의무다. 그러나 두 국가론을 수용하는 순간 북한 주민은 외국인이 되고, 탈북민은 우리 국민이 아닌 외국 국적의 ‘난민’ 지위로 전락한다. 그렇게 되면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일명 하나원)도 난민캠프로 바뀌게 된다. 이는 북한 주민들이 품어온 ‘통일을 통한 변화’의 희망을 외면할 뿐만 아니라, 헌법에 근거한 국가의 당연한 보호 의무를 우리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다. 결국 헌법 제4조가 명시한 평화통일의 국가적 책무를 스스로 부정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두 국가론’ 수용하면 통일부 해체는 불가피
북한의 ‘두 국가론’ 공세와 ‘신고립주의’ 전략에 대응하여 남북이 합의했던 ‘특수관계’와 평화통일의 헌법적 가치를 성급히 내려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통일부는 단순한 행정 부처를 넘어 우리 헌법 제4조를 집행하는 핵심 기구다. 과거 이명박 정부 초기, 실용주의를 내세워 통일부를 외교부에 편입하여 외교통일부 로 개편하려는 구상이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평화통일이라는 사명을 간과했다는 비판 속에 좌초된 사례를 기억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일반 외교관계로 전환하는 것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독점적 당사자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북한은 이제 체제 생존과 현상 유지에만 집중하며 우리와의 민족적 연대에는 관심을 끊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조급하게 이벤트성 대북 사업에 매달리기보다 우리의 법적 토대를 먼저 공고히 하는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
북한 체제의 근본적 변화 없는 ‘두 국가론’ 수용은 북한 주민의 고통을 영구화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북한을 외교 후순위로 관리하더라도, 우리는 한반도 내부의 특수관계자로서 북한 주민과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인도적·법적 보호 의무를 지속해야 한다. 이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일인 동시에 민족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가교를 지키는 일이다.
평양국제관광기념품 및 건강제품전시회가 지난 10일 과학기술전당에서 개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2026.4.11. 연합뉴스
‘미합의의 합의’를 통한 단계적 평화공존 전략
위기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북한의 개헌을 단순히 위협으로만 인식할 것이 아니라, 평화공존을 제도화할 기회로 활용하는 다층적이고 단계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영토 조항 충돌로 인한 긴장 완화를 위해 군사적 차원의 위기관리 핫라인과 경계선 협의체를 구축하여 우발적 충돌을 예방해야 한다. 동시에 외교적으로는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북한의 두 국가 전략을 평화적으로 관리하고 우리 주도의 평화공존 담론을 확보해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우리 헌법 제3조 영토조항(한반도)과 북한 헌법 제2조 영토조항(북반부) 간의 충돌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면서도 우리 헌법 제4조의 평화적 통일 정책을 지속 추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독일 통일 사례처럼 교류를 점진적으로 확대하여 장기적인 제도적 통합 기반을 마련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비핵화와 평화통일을 연계한 ‘핵 없는 한반도 평화통일’ 담론을 확산하고 국제사회와 공유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북한식 핵 강압적 통일 전략을 견제하고 한반도 평화통일의 기반을 만들어 간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평화공존의 지혜는 북한의 ‘2국가관계’ 주장과 우리의 ‘특수관계’ 견해 사이의 근본적인 불일치를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미합의의 합의(Agree to Disagree)’ 전략이다. 서로의 주장이 다름을 인정하되 이를 상수로 두고, 체제 침해 없이 평화적 공존의 실무적 규칙들을 하나씩 쌓아 올려야 한다. 상대가 민족을 부정하더라도 우리는 특수관계 의 끈을 단단히 붙잡고 평화의 인프라를 유지해야 한다.
조성렬 경남대학교 초빙교수
북한의 개헌은 단기적으로 체제 보존을 꾀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그들 중심의 통일을 준비하는 전략적 성격을 띠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를 위협으로만 인식하기보다 평화공존을 제도화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담장을 낮추고 소통의 문턱을 유지할 때, 비로소 성벽 너머의 북한 주민들과 함께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통일의 가치 수호와 상호 존중의 평화공존을 향한 멈추지 않는 노력이 결국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