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성패, 정규·비정규직 노조 연대에 달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26년 3월 10일부터 노란봉투법(노조법 2, 3조 개정)이 시행되었다.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 강화(사용자 범위 확대), 노동쟁의 범위 확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핵심은 원청의 책임 강화, 즉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자본의 사용자성 인정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 노동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였고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비정규직 문제의 근간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던 원청 사용자성 인정 요구가 무려 20년이 지나서야 부분적으로 법제화된 셈이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숙원이었던 실질적인 사용자와의 교섭이 이제는 가능해졌다.
아직도 무수한 장애 넘어야할 노란봉투법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연구해 온 필자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감개무량한 기쁨보다는 회한이 드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다. 지난 20년 넘게 노조 결성, 단식, 고공농성, 파업, 구속, 집단해고, 손배·가압류, 심지어는 분신 등 수많은 사내하청 노동자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왜 이제야 법으로 만들어졌을까’ 하는 한탄이 아니다. 노동법 제·개정 이전에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손쉽게 매듭지을 수 있는 방안이 있었지만,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이 이를 외면하면서 너무나도 멀리 돌아서 왔다는 회한이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20년간 노-자가 지난한 공방을 거치면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풀 수 있는 법적 단초를 마련한 것에 불과하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원청 자본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자격이 부여되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섭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가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는 원청 자본의 구조적 통제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구조적 통제 요건을 만족하더라도 복수노조가 있는 경우에는 교섭 대표노조 선정 절차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또한 사내하청 노동자 간 직무·업무 내용이 현저하게 달라서 도저히 같은 교섭단위에서 교섭을 할 수 없다면 노동위원회에 교섭단위 분리 신청 절차도 거쳐야 한다. 모두가 법에서 규정한 의무상 절차이기에 이를 생략하고 무작정 교섭을 요구할 수는 없다. 결국 원청 자본과 사내하청 노동조합 간 임단협 교섭 절차와 관행이 자리 잡기까지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될 것이다.
목전에 앞둔 이 모든 곤란에 앞서 더 확실하게 사내하청 노동문제를 풀 수 있는 방안이 있었다. 바로 대공장 내 정규직 노동조합이 사내하청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었다. 정규직 노조가 사내하청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포괄했다면 이들의 노동 조건을 임단협 교섭 의제로 다루는 것이 가능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청 자본은 당연히 직접적인 고용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해 왔지만 정규직 노조가 사내하청 문제를 지속적으로 이슈화하며 강력히 요구했다면 자본도 이를 무작정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 바라보기만 했던 정규직 노동조합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조 조직화 투쟁은 1997년 IMF 경제위기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아시아자동차(현 기아차 광주공장) 용역노동자의 집단 투쟁, 1999년 한라중공업(현 현대삼호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 2000년 울산 INP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 2001년 광주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 등이 있었다. 그리고 2003년 현대차를 필두로 주요 제조업 대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조가 봇물처럼 결성되었다. 언제든 원청 자본에 의해 쓰고 버려지는 고용불안 속에서 정규직 노동자와 차별받는 노동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조 조직화였다.
26일 오후 울산시 북구 성내삼거리 고가차도에서 고공 농성을 하던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소속 전영수(왼쪽), 이성호씨가 농성을 끝내고 지상으로 내려와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월 11일 노조 간부 고용 승계 보장과 조선업 구조조정 반대 등을 외치며 농성을 시작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사측과 협의를 통해 이들이 다시 사내하청업체에 고용 승계되는 조건으로 농성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2017.7.26 연합뉴스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요구에 원청 자본은 노동법상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섭은 물론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노조 결성에 대응해 사내하청 업체를 폐업시켜 졸지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었으며 작업장에서 집단 점거 농성이라도 하면 곧바로 용역과 구사대를 투입해 진압했다. 이후에는 체포·구속과 손배·가압류가 사내하청 노동자·노동조합을 옥죄었다.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제3자였다.
2000년 민주노총은 대의원 대회에서 ‘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차별 철폐’ 방침을 결의하고 산하 노조에게 정규직 노동자만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노조 규약을 개정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도록 하는 지침을 마련했다.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해서 비정규직 문제를 단체교섭 의제로 삼아 개선시켜 나가겠다는 의지였다. 민주노총이 제시한 방침의 방향은 맞았다. 법 이전에 단체교섭이 자본에게 더 큰 강제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노동조합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대중공업과 현대정공 노동조합은 1990년대 초까지 당시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단체교섭 의제로 삼아 정규직화를 이루어 내기도 했다. 하지만 10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민주노총의 지침은 문서상의 지침으로만 존재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노동조합 규약을 개정해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에 나선 정규직 노동조합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외주·하청화 조장하기도 했던 ‘솥단지 안의 개구리’
노동문제를 연구해 왔던 연구자로서 정규직 노동조합의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가 구호와 당위로 가능하다고 순진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규직’ 노동조합과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조합 간에는 노동조합 명칭에서 드러나는 것 이상으로 커다란 구조적 차이와 조직 경계가 놓여 있다. 비단 한국의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조합은 구조적인 조직 경계와 차이를 갖는다. 이는 산별노조, 지역노조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전체 노동자 중에서 누구의 이해를 최우선적으로 대변할 것인가의 문제는 노동조합에게 항상 최종심급의 문제이자 사활적인 이해가 걸린 문제였다.
노동조합의 역사를 보면 고숙련 노동자 중심의 조직화에서 반숙련 노동자의 조직화로, 20세기 초에는 미숙련 노동자 조직화로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조직 경계는 확대되어 왔다. 폐쇄적인 장인 노조에서 반숙련 일반노조, 미숙련 노동자까지 조직하는 산별노조로 나아간 것이다. 영국의 노동조합 연구자인 하이만(Hyman, R.)은 주요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조합 역사를 살펴보면서 노동조합을 ‘솥단지 안의 개구리’로 비유하기도 하였다. 대체로 노동조합은 외부의 변화·충격에 수동적인 태세를 견지하다 결국 어느 임계점에 이르러서야 반응하면서 조직 경계를 확대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조직화에 소극적이었던 배경에도 정규직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해 온 노동조합의 조직적 경계와 관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지난 20년간 노동조합 활동의 핵심인 임단협 교섭 과정에서 분배 투쟁에만 집중해 온 구조적 역사에 있다. 임금 교섭은 기업의 부가가치를 얼마만큼 이윤과 임금으로 나눌 것인지를 결정하고 단체교섭은 누구의 고용을 보장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 정규직 노동조합은 항상 비정규직을 배제해 왔다는 점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IMF 경제위기 직후 대규모 정리해고라는 미증유의 상황을 정규직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목도했다. 임금 극대화와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완충(buffer)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노동조합이 사측과 암묵적으로 인정하면서 비정규 노동이 작업장 내에 스며들 듯 확대되고 구조화된 것이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의 본질이다. 2001년 ‘밥·꽃·양’ 다큐가 폭로했고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오히려 외주·하청화를 노동조합이 조장하기도 해 왔다. 노란봉투법 시행을 맞아 한국사회 노동조합의 냉철하면서도 치열한 자기반성과 변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거대한 파도 이겨낼 정규-비정규 노동조합의 연대
많은 노동연구자가 노동조합을 언급할 때 쓰는 직관적인 표현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은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좁게는 조합원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이기적 행태를 보이기도 하지만 넓게는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 노동조합이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받아 왔지만, 분명한 것은 민주노총과 산하 산별노조가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투쟁하지 않았다면 노란봉투법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 중요한 지점이 있다.
파업을 하면 뭐 합니까 우리는 파업하는데 여전히 도크는 돌아가서 저 앞바다에 배가 둥둥 떠 다니는데, 협력(사내하청 노동자) 조직 못하면 앞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2007년, 현대삼호중공업 노동조합 간부가 필자에게 한 얘기였다. 한국 노동조합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열쇠가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조합 간 ‘연대’에 있다는 사실을 이미 19년 전 노동조합 간부는 알고 있었다. 동일한 맥락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조합 간 연대가 없다면 노란봉투법은 사문화된 법 조항으로만 남을 것이라는 점을 필자는 확언한다.
비단 노란봉투법 문제를 넘어 베이비 부머 세대 퇴직에 따른 정규직 조합원의 대규모 감소에서부터 AI, 기후위기 대응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솥단지 안의 개구리로 남을 것인지 연대를 통해 솥 밖으로 뛰쳐나가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 낼지는 대공장 노동조합이 지금 결정해야 한다. 대공장-정규직 노동조합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