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끝나도 고물가…한은 하반기 3% 내외 [뉴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불법침공으로 시작된 중동전쟁의 종결이 목전이다. 전쟁이 끝나면 폭등한 유가가 안정될 것이고 물가도 하향안정화 될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설사 전쟁이 끝나 유가가 안정될지라도 소비개선과 임금상승 등의 요인으로 인해 고물가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어두운 예측을 내놓았다. 주지하다시피 고물가는 서민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이다.
유가 내려도 물가 압력↑…반도체 호황에 소비 개선·임금 상승”
한국은행은 17일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앞으로 물가는 상당 기간 높은 상승률을 이어갈 전망”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향후 물가 여건과 관련, 미국과 이란 간의 종전 협상이 진전됐으나 물가 상방 압력이 높은 상황으로 진단했다.
특히 국제 유가는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정상화되면서 낮아지겠지만, 인프라 복구, 각국 재비축 수요 등으로 하락 속도가 완만할 것이라고 봤다.
수요 측면에선 경기 개선 흐름이 점차 강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정보기술(IT) 기업 실적 호조에 따른 소득·자산 여건 개선의 영향이 커지면서 소비 모멘텀이 강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물가전망 경로 등, 자료 : 한국은행
한은은 정부 정책이 유가 충격의 물가 영향을 상당 수준 완충하고 있지만, 하반기 이후 공공요금 인상 압력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최근 일부 IT 업종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임금 인상 움직임이 향후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물가 압력이 추가 확대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업종의 이례적인 성과급이 다른 부문으로 확산하면서 공급·수요 측 물가 압력이 모두 유의미하게 커질 수 있다는 논리다.
한은은 올해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 내외, 근원물가 상승률을 2% 중후반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고유가와 고환율로 높아진 비용 측 가격 인상 압력이 석유류 이외 품목으로 점차 파급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은은 내년에도 수요 측 압력이 점차 확대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근원물가 상승률이 모두 목표 수준(2.0%)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도 원유 가격이 오르며 석유류 가격이 뛰었으나, 약 6개월 뒤에는 공업제품 등 비(非) 에너지 품목에 간접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 1년 정도 지속됐다고 한은은 덧붙였다.
한국은행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은 고유가 장기화 땐 유가 10% 오르면 근원물가 0.1%↑”
또한 한은은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통해 2000년 이후 유가 충격이 3개월 이상 이어질 때는 유가가 10% 오르면 5개월 뒤 근원물가는 0.1% 이상 상승했다고 밝혔다.
유가 충격 정도가 크지만(상위 20%) 일시적이었을 때 근원물가는 0.06% 올랐다.
또, 고유가가 근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기간은 고유가 장기화시엔 7개월, 일시적 고강도 충격에선 5개월로 나타났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이번 중동전쟁에서도 고유가 충격이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근원물가에 파급효과도 커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주 국내 주유소 휘발유와 경유의 주간 평균 가격이 2주 연속 소폭 하락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5월 넷째 주(24∼28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는 지난주보다 L당 0.2원 내린 2천11.1원이었다. 경유 평균 판매 가격은 전주 대비 0.2원 하락한 2천5.7원을 기록했다. 사진은 31일 서울의 한 주유소 모습. 2026.5.31, 연합뉴스
한은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후 상황을 분석한 결과, 유가가 정점을 찍고 내려온 이후에도 그 충격으로 석유류 외 다른 품목 가격이 상승하는 간접효과는 오히려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유가는 러·우 전쟁 이후인 2022년 6월 배럴당 118달러까지 올랐다가 하반기에 하락했으나, 이 기간에 석유류를 제외한 품목이 물가상승률에 미치는 기여도는 더 커졌다.
러·우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1∼7월 소비자물가상승에 유가 간접효과가 미친 기여도는 0.89%p로 추정됐으나, 유가가 하락세를 보인 2022년 8월 이후 그 기여도는 0.95%p로 커졌다.
원유 가격은 전쟁 발발 이전인 2021년 3월부터 팬데믹 보복 소비 증가와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약 6개월 뒤부터 공업제품 등 비에너지 품목 가격이 오르는 간접효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간접효과는 약 1년 정도 지속됐으며, 2024년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러·우 전쟁 당시 유가가 급등한 이후 하락하던 시기에 직접효과는 줄었으나 간접효과는 더 커졌던 점에 비춰볼 때, 올해 하반기 이후에도 유가 충격이 석유류 이외 근원물가 품목으로 파급되면서 높은 수준의 물가상승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유가 충격 크기·지속기간에 따른 근원물가 누적 반응, 자료 : 한국은행
한은 고액 성과급 주는 기업 늘면 물가상승률 약 0.05%p↑”
한편 한은은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통해 큰 금액의 특별급여(성과급)가 일부 사업체에 집중돼 지급되는 경우 물가 상방압력이 유의하게 커진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업계 상위 10%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사업체의 비중이 늘어나면 소비자물가는 5개월 뒤 0.05%p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기간 상위 40∼60%의 평균적인 성과급을 지급하는 사업체 비중이 늘어나면 소비자물가 누적반응은 거의 없었다.
한은은 전산업 특별급여가 똑같이 10% 상승하더라도 평균적인 수준에서 늘어나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일부 업종에 집중돼 상승하면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유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1분기 명목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3.4% 상승했는데, 이 중 IT부문 성과급의 기여도는 1.3%포인트(p)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12∼2025년의 임금분포 기준 97% 분위에 해당하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특히 내년 초 IT 상여금 기여도는 상위 1%를 상회하는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은은 내다봤다.
특별급여 지급 형태에 따른 소비자물가 누적 반응, 자료 :한국은행
한은은 이처럼 성과급 지급이 큰 폭 늘어날 경우 다른 산업에 임금 상승 압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정 업종의 임금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 근로자들이 이를 준거임금으로 삼아 임금 협상의 기준으로 삼고, 임금체계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물가의 수요압력을 다시 키워 소비자물가를 높일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은 일부 사업체에서 집중적으로 특별급여가 크게 늘어나면 물가 상방압력이 유의하게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최근 IT부문 성과급은 매우 이례적인 규모로 지급되기 때문에 실제 그 영향이 예상보다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향후 IT부문의 특별급여 상승이 여타 부문으로 얼마나 전이되는지,전반적인 정액급여 인상으로 이어지는지에 관해 산업별 임금동향을 면밀히 점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성과급 (PG),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한은총재 물가, 상당 기간 높은 오름세…임금·수요 압력 커져”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와 금리 관련해 중요한 발언을 쏟아냈다.
신 총재는 이날 오후 한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소비자물가는 앞으로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의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라면서 임금·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도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에너지 공급망이 중동 전쟁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하고 국제유가가 안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 총재는 단기적으론 원유 공급이 활발해질 수 있지만, 원유 생산이 전쟁 전으로 복귀할 수 있는지에는 전문가들이 다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 공급 자체가 전쟁 전 수준으로 회복되기까진 상당히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에도 불구하고 경제 상황 자체는 5월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합의 직후 국제 유가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도 그럴 때일수록 시장 가격에 홀리지 말고 중장기적으로 경제 자체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하루 이틀 사이에 유가가 하락하고 주식, 채권 등 다른 자산 가격도 위험 선호(리스크 온) 상태가 온 것 같다”면서 그러나 매일 금융시장에 일희일비 할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펀더멘털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가는 금융 자산과 비슷하게 위험 선호도에 따라 많이 등락하기 때문에, 유가 하락세가 얼마나 지속될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고유가 영향이 에너지 뿐 아니라 여타 다른 품목으로도 파급될 수 있다”면서 중장기적인 2차 파급효과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총재는 최근 반도체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한 임금 상승과 수요 증가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도 커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내 경기 개선세에 따른 수요 압력도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임금 상승 또한 비용과 수요 양 측면에서 물가 상방 압력을 더 높일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수출 증가 (PG) 연합뉴스
신 총재는 지난 달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 당시보다 임금과 수요 쪽 물가 상승 압력이 강해졌다”면서 앞으로 임금 협상 등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진 비용 쪽 압력을 강조했는데 수요 쪽도 물가를 끌어올리는 힘이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재정 확장 정책이 물가 상승 압력을 키워 통화정책과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우려에는 금년 초에 있던 추가경정예산(추경)은 수요 측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서 현재 우리나라 재정이 양호해서 추가로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채권 금리 상방 압력도 별로 없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로 초과 세수 전망이 커진 데는 지금이 한국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은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50bp(1bp=0.01%포인트) 크게 올리는 ‘빅스텝’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빅스텝 얘기가 나올 때는 시장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 채권 금리도 많이 높았고, 그런 면에서 오늘과는 아주 대조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 상황이 너무 어려우면 중앙은행이 좀 예외적인 조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 같은 게 나오기 마련이지만, 통화정책을 펼 때는 시장 상황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밑에 깔린 중요한 흐름을 본다”고 강조했다.
신 총재는 앞으로 물가 상승에 따른 저소득층 등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에도 적극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신 총재는 중동 전쟁 이후 국제 유가 급등으로 석유류 가격이 20% 넘게 상승했고, 근원 물가도 2%대 중반으로 높아졌다”면서 특히 국민들이 체감하는 생활물가가 소비자물가보다 높은 오름세를 보이면서 저소득층 생계비 부담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한은은 물가 상승으로 인해 국민 여러분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면서 앞으로의 물가 흐름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적극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별관에서 2026년 상반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을 발표하고 있다. 2026.6.17, 연합뉴스
이태경 편집위원,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red196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