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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저기 구급차가 보여요” 5살 소녀 목소리 폭발음에 묻혀

저기 구급차가 보여요” 5살 소녀 목소리 폭발음에 묻혀
[사람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사격에 숨진 5살 소녀 힌드 라잡. 적신월사에 구조를 요청하는 힌드 소녀의 애절한 목소리는 녹음으로 남아, 듣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전쟁 초기 특히 가자지구 북부의 주민들이 날벼락을 맞았다. 가자지구 서남부 이집트 접경 마을인 라파 쪽으로 난민들을 몰아내려고 대형 폭탄들을 북부 지역에 퍼부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인종청소 차원에서 마구잡이로 떨어트린 백린탄과 벙커버스터 등은 주거지 건물들을 무너뜨리고 많은 사망자를 냈다. 대피하라”는 짧은 경고 뒤 그야말로 우박처럼 쏟아지는 폭탄을 피하려면 주민들은 서둘러 어디론가 떠날 수밖에 없었다. ‘2차 타격(double tap)’으로 희생 키워 피란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헛된 죽음을 맞이했다. 피란길의 도로 사정은 최악이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가 도로를 장애물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자동차를 몰고 떠난 사람들은 차를 버리고 걸어가야 했다. 그런 혼란 속에 간신히 마을을 벗어난다 해도 안전하지 못했다. 교차로 같은 곳에 포진한 이스라엘군은 마치 야생동물 사냥하듯이 마구잡이로 총을 쏴댔다. 사상자가 생기면 누군가 덜 다친 가족이나 현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 서방의 적십자사) 응급 콜센터로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적신월사 또는 일반 병원의 응급 대응팀 요원들이 구급차를 몰고 달려가 그들을 구조하기가 쉽지 않았다. 길목을 지키는 이스라엘군의 탱크 포격이나 저격수의 총격을 받는 일들이 자주 벌어졌다. 중동 현지에서는 이를 가리켜 ‘2차 타격(double tap)’이라 부른다. 누군가를 폭격으로 죽인 뒤 그를 구하러 오는 사람을 추가로 죽인다는 뜻에서다. 하마스 간부는 물론 언론인들도 그렇게 해서 많이 죽었다. 워낙 그런 일이 잦다 보니, 국제구호단체 요원들은 2차 타격이 이스라엘의 의도된 전술이라고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비무장 민간인들이 탄 차량에 마구 사격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을 구하는 임무를 띠고 출동한 구급대원들까지 표적 삼아 살해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2024년 1월 29일 가자지구 북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 전형이다. 이스라엘군의 대피 명령에 따라 기아 자동차(기아 모닝의 중동 수출용 브랜드인 피칸토Picanto)를 타고 가던 비무장 민간인들, 그리고 그들을 구하러 떠났던 응급대원들이 반나절 사이로 숨졌다. 앞에서 다가오는 차량을 뚜렷이 식별할 수 있는 대낮에, 그것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쏜 기관총과 탱크 포격에 직격당했다. 마지막까지 혼자 살아남아 차 안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5살 소녀 힌드 라잡의 애절한 목소리는 생생한 녹음으로 남았다. 힌드 소녀가 숨지기 전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상담원과 주고 받은 대화 기록은 이스라엘군의 전쟁범죄를 증언하는 매우 드문 사례로 남았다. 유엔(UN) 인권이사회를 비롯한 국제기구들도 힌드 일행 살해를 전쟁범죄 로 못박았다. 살려줘요 다섯 살 소녀의 애절한 목소리 너무 무서워요. 빨리 와서 데려가 주세요.”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상담원과의 통화에서 힌드 라잡(5)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다급하게 도움을 청했다. 적신월사와 힌드 소녀가 주고받은 통화기록은 2023년 10월 이래 2년 반 동안 이어져 온 민간인 학살의 전쟁범죄를 증언하는 물증으로 남았다. 가자지구 북쪽 탈 알 하와 지역의 교차로에서 벌어진 참극은 영화 ‘힌드의 목소리’(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 2025)로도 제작됐고, 한국에선 지난 4월 독립영화관에서 상영됐다. 90분 가량 이어지는 이 영화는 힌드 소녀를 구하려고 애쓰는 적신월사 직원들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힌드 소녀의 가녀리면서도 생생하고 절박한 녹음 테이프 목소리가 자막과 함께 그대로 흘러나와 관객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구조를 요청하는 어린 소녀들의 목소리가 워낙 애절했기에,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관객들은 묻는다. 인간이라면 어찌 이런 짓 할 수 있나?” 전쟁 초기 10개월(2023년 10월~2024년 8월) 동안 이스라엘군이 벌인 의료시설 및 의료진에 대한 공격을 조사한 UN 팔레스타인 독립국제 조사위원회의 보고서(A/79/232)는 힌드 살해사건의 줄거리를 이렇게 요약 정리하고 있다. [본 위원회는 2024년 1월29일 탈 알 하와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했다. 해당 가족은 레얀 하마다(15살)와 힌드 라잡(5살)을 포함해 성인 2명과 어린이 5명이었다. 이들은 차를 타고 대피하던 중 공격을 받았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는 이스라엘 보안군과 안전 경로를 조율한 뒤 구급차를 출동시켰다. 구급대원 2명이 타고 있던 구급차는 힌드 가족의 차량에서 50m 떨어진 곳에서 탱크 포탄을 맞았다. 그때껏 힌드 소녀는 살아 있었다. 해당 지역은 접근 금지됐고, 12일이 지나서야 총탄이 난무한 차량에서 가족들의 시신을 거두었다. 구급차는 인근에서 망가진 채 발견되었으며, 안에는 유해가 남아 있었다.](https://docs.un.org/en/A/79/232)   그날의 이스라엘군 전쟁범죄의 희생자들. 사진 왼쪽부터 힌드 라잡(5세), 바샤르 하마다(44세), 라얀 하마다(15세), 구급대원 유세프 제이노와 아흐메드 알-마둔.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탱크가 바로 옆에 있어요” 참극은 해가 훤히 비추는 대낮에, 가자시티 남서쪽 탈 알-하와 외곽지역의 주유소 근처에서 벌어졌다. 길목을 지키던 이스라엘 군인들은 그곳으로 다가오는 승용차를 향해 다짜고짜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힌드 일행이 한꺼번에 모두 죽은 것은 아니었다. 5살 소녀 힌드 라잡과 15살 사촌 언니 라얀 하마다가 살아 있었다. 라얀은 떨리는 목소리로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다, 탱크가 바로 옆에 있어요... 우리에게 총을 쏘고 있어요...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죽었어요... 그러나 라얀의 비명 소리를 끝으로 통화는 끊어졌다. 적신월사 상담원은 기관총 소리와 라얀의 비명을 생생하게 들었다. 자동차 안에는 피를 흘리는 친척들의 시신 사이에 다섯 살 힌드 소녀 혼자만 남겨졌다. 그런 상황을 잘 모르는 적신월사 상담원이 혹시나 하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라얀이 아니고 5살난 소녀 힌드 라잡이었다. 힌드는 차 바닥에 웅크린 채 상담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금 날 데려오실 수 있나요? 너무 무서워요. 제발 와서 날 데려가 주세요. 적월신사 콜센터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바로 떠나질 못했다. 그동안 여러 직원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구조 요청을 받아 떠났다가 도중에 이스라엘군의 마구잡이 총격을 받아 처참하게 죽었다. 콜센터 간부는 더 이상의 인명 손실을 막으려고 이른바 ‘조정 절차’를 밟았다. 먼저 가자지구 보건부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스라엘군에게 구급차의 이동 경로를 미리 알리면서 허가를 받아야 그나마 안전통행이 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저기 구급차가 보여요 시간은 자꾸 흘렀다. 허가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거의 해질 무렵에야 그곳으로 떠나도 좋다는 연락이 왔다. 이스라엘군으부터 통행 허가를 받고 안전 통행 동선을 확보하면서 떠나기까지 무려 3시간 30분 넘게 걸렸다. 그동안 적신월사의 여자 상담원은 힌드 소녀와 통화를 이어가며 다독였다. 쿠란의 기도문을 함께 읽으며 소녀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상담원은 죽음의 공포에 떠는 소녀를 안정시키려고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 오후 6시쯤 이스라엘 쪽으로부터 통행 허가가 내려지자, 구급대원 유수프 자이노와 아흐메드 알-마둔이 탑승한 구급차가 떠났다. 현장까지는 8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힌드 소녀를 구해내지 못했다. 적신월사에 남겨진 통화기록에 따르면, 구급차가 현장에 거의 다가갔을 때 힌드가 저기 구급차가 보여요 라고 상담원에게 말한 뒤 곧바로 굉음이 들렸다. 격렬한 폭발음과 함께 힌드와의 통화는 끝났다. 가자지구의 1월 말 오후 6시는 해가 지고 어둑해지는 시점이지만 경광등을 켠 차가 구급차인지 아닌지는 금새 알 수 있다. 그런데도 구급차는 탱크 포탄을 맞았고 2명의 구급대원은 즉사했다. 힌드의 가족이 탄 차량이 멈춰 있는 지점에서 50m 떨어진 지점에서였다. 구조를 요청할 때만 해도 살아있던 힌드는 끝내 숨을 거두었다.   힌드 소녀를 구하려고 떠났던 구급차는 이스라엘 탱크가 쏜 미국산 포탄 M830A1에 맞아 완파됐다. 포탄이 구급차 정면을 치고 뒤로 큰 구멍을 낸 모습. Ⓒ포렌식 아키텍처 이스라엘 그때 그곳에 우리 군인들 없었다” 사건 뒤 이스라엘군은 사람들이 현장에 다가서지 못하도록 그 지역을 봉쇄했다. 힌드의 남은 가족과 적신월사는 생사라도 확인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안 된다’였다. 이스라엘군이 해당 지역에서 철수한 뒤에야 현장에 가볼 수 있었다(2024년 2월 10일), 사건 발생 12일 뒤의 일이었다. 총탄 자국으로 가득한 차량 안에서 숨진 사람들의 시신은 보기에도 처참했다. 기아차는 335발의 총격을 받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힌드를 구하러 떠났던 구급차 주변에서는 미국산 탱크 포탄(M830A1)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이스라엘군 탱크의 직접적인 조준 사격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완전히 불에 타 검게 그을린 차량 안에는 2명의 구조대원 유해가 처참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시신을 거두어 묻어줄 최소한의 예의도 보이지 않았다. 힌드 라잡과 그녀의 사촌 네 명, 이모와 삼촌, 그리고 그녀를 구조하러 온 두 명의 구급대원이 살해된 사건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길고 긴 전쟁범죄 목록에서 한 페이지를 차지한다. 그 비극적 사건은 민간인·구조대원 보호라는 국제법적 원칙이 무너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 사건이 문제가 되자, 이스라엘 쪽은 판에 박힌 듯이 대응했다. 처음엔 그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지역 일대의 위성 사진, 나중에 발견된 포탄 파편, 더구나 결정적인 증거로 힌드 라잡 소녀와 콜센터 사이의 녹음된 통화기록 등이 잇달아 공개됐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구급차가 하마스 무장 대원이나 무기를 운반하는 수단으로 쓰였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다. 13~23미터 근거리에서 기관총 난사 시간이 걸려도 진실은 드러나는 법이다. 포렌식 아키텍처(FA)와 이어샷(Earshot) 등 공신력 있는 국제 조사기관들이 진실 규명에 나섰다. 현장의 위성 데이터, 적신월사 녹음 파일, 구급차의 무전 기록 등을 바탕으로, 이스라엘군과 피격 차량과의 거리는 얼마나 떨어졌고, 이스라엘군은 무슨 무기를 얼마만큼 사용했는가를 밝혀냈다. FA는 건축가, 학자, 언론인 및 기타 전문직 종사자들로 이뤄진 런던대 소속의 연구기관이다. 국제연합(UN)과 손을 잡고 국제법을 어긴 여러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기소 증거를 내놓은 역할을 맡아 왔다. 이어샷은 크고 작은 소리를 분석해 인권과 환경권을 지키려는 목적을 지닌 세계 최초의 비영리 단체다. 분쟁지역에서 탱크나 소총이 내는 소음을 바탕으로 어떤 무기가 얼마 만큼 사용됐나를 정밀하게 따져 전쟁범죄의 증거로 되살려내는 일을 해 왔다. 날카롭게 ‘탕’ 하는 소총 소리부터 드론의 억압적인 윙윙거림에 이르기까지, 이어샷의 조사활동은 소리를 폭력적 흔적으로 잡아낸다. ‘힌드 라잡 살해 사건’이 문제가 되자, FA와 이어샷은 알자지라 TV의 다큐 폴트 라인즈(Fault Lines) 제작을 겸해 비극적인 그날의 정황을 꼼꼼하게 조사했다. 이어샷은 조사 과정에서 먼저 힌드 라잡의 사촌 언니인 15세 라얀 하마다가 숨지기 직전인 6초 분량의 전화통화 음성 파일을 바탕으로 음향 탄도를 분석했다(라얀 소녀는 숨지기 직전, 적들이 우리에게 총을 쏘고 있어요, 탱크가 제 옆에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 결과 라얀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마지막 순간에 모두 64발의 총성이 울렸고, 아주 근거리(13~23미터)에서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어샷의 보고서를 보자. [메르카바 탱크의 FN MAG 기관총은 7.62mm 구경의 탄환을 발사한다. 이 탄환은 초속 840m의 속도로 날아간다. 이 총격의 포구 폭발력은 초속 340.2m에 달했는데, 이는 사망 당시 섭씨 15도의 온도에서 음속에 해당한다. 청음 분석 결과, 최소 발신 간격이 24밀리초일 경우, 해당 탱크는 차량에서 불과 13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야 했다. 최대 발신 간격이 40밀리초일 경우에는 23미터 거리에 있었을 것이다.] (https://www.earshot.ngo/investigations/the-killing-of-layan-hamada-and-hind-rajab ) 이어샷의 분석에 따르면, 라얀의 목소리가 들리는 마지막 순간에 총격을 가한 총기는 분당 750~900발의 발사 속도를 보였다. 이는 하마스가 주로 사용하는 AK 계열 소총(카빈총)의 발사 속도보다 더 빠른 수치다. 이 발사 속도는 이스라엘군이 사용하는 M4 소총이나 메르카바 전차에 장착된 FN MAG 기관총과 유사한 수준이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이어샷 보고서는 라얀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발포 당시 이스라엘군 탱크는 13~23미터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고 못 박았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발포자가 자동차 안에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이 탑승하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다. 차에 탄 소녀들 눈으로 보고도 쐈다” 소리만으로 총격범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기엔 한계가 있다. 포렌식 아키텍처(FA)는 이어샷의 위 분석 결과와 당시 촬영된 위성 이미지 등을 바탕으로 라얀과 힌드, 이 두 소녀가 타고 있던 자동차에서 발견된 총알의 진입 및 출구 구멍을 꼼꼼히 분석했다. 이를 통해 FA는 이스라엘군이 어디에서 쐈는지 알아냈다. 보고서 내용을 보자. [우리는 시각적 증거를 활용하여 차량 외관과 내부 표면에 남은 총탄 자국을 분석했다. 총탄 자국의 근접성을 통해 사격 순서를 파악할 수 있었고, 총탄 자국의 크기와 모양을 통해 진입점과 출구점을 구분할 수 있었다. 기아 피칸토 차량 외관에서 총 335개의 총탄 자국을 확인했으며, 대부분의 진입점은 차량 우측에 집중되어 있어 사격자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https://forensic-architecture.org/investigation/the-killing-of-hind-rajab) FA는 사격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반경(13~23m), 차량 안 힌드와 라얀이 앉아 있던 위치(좌측 뒷좌석), 그리고 기아 차량의 진입 및 출구 구멍의 정렬을 고려하여, 사격 당시 가장 가능성 큰 탱크의 위치를 지도화하는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FA는 총알의 진입 구멍과 출구 구멍이 가장 잘 정렬된 위치를 통해, 이스라엘군 사수는 힌드 소녀가 탄 차량과 탑승자들을 명확하게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다시 말해서, 두 소녀가 기아 피칸토 차량 안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는 게 FA의 결론이다. 사촌 언니 라얀 소녀가 숨진 뒤, 힌드 소녀는 기아차 안에 남은 유일한 생존자였다. 힌드가 있는 곳으로 구급차를 보내도 된다는 이스라엘 쪽 허가는 해가 진 직후인 오후 5시 40분에 나왔다. 구급대원 유수프 알-제이노와 아흐메드 알-마드훈은 알-아흘리 병원 소속 구급차를 타고 현장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오후 6시 무렵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총격을 받고 숨졌다. 관제실과 구급차 사이에 오고 간 대화록을 보자. ▲관제실: 차가 보이십니까?” ▲구급차: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관제실: 사이렌과 경광등은 켜셨습니까?” ▲구급차: 경광등만 켜고 사이렌은 안 켰습니다.” ▲구급차: … 아, 저기 있네!” [폭발음] FA는 구급차 좌측 뒷문에서 약 23x26cm 크기의 관통 구멍을 확인했고, 구멍의 크기는 M830A1 HEAT-MP-T 고폭 대전차 다목적 포탄의 충격 크기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로 파괴된 구급차량 근처에서 120mm M830A1의 일부인 사보트가 발견됐다. FA는 구급차 잔해의 불탄 흔적과 파괴 정도, 총알의 출구 구멍, 그리고 그 무렵에 촬영된 위성 이미지를 통해 이렇게 결론 내렸다. 피격 당시 탱크의 위치와 포탄 방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구급차는 이스라엘 탱크에서 발사된 포탄에 맞았을 가능성이 높다.”   힌드 소녀와 구급대원을 학살한 혐의를 받는 이스라엘 군인들. 왼쪽부터 제401기갑여단 사령관 베니 아하론 대령, 제52기갑대대 대대장 대니얼 엘라 중령, ‘뱀파이어 제국’ 중대장 션 글래스 소령. Ⓒ힌드 라잡 재단 힌드 라잡 재단의 폭로 2025년 10월 21일, 알자지라 방송은 힌드 라잡과 그녀의 가족, 그리고 팔레스타인 적십자사 구급대원 두 명의 살해 사건을 둘러싼 정황을 분석한 다큐멘터리 ‘빙산의 일각(The Tip of the Iceberg)’을 방영했다. 이 다큐는 이들의 살해에 책임이 있는 이스라엘군 부대명과 지휘관들의 이름이 일부 거론됐다. 전쟁범죄자들의 실명이 밝혀지기까지는 ‘힌드 라잡 재단’의 숨은 노력이 그 뒤에 깔려 있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힌드 라잡 재단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 단체다(2024년 9월24일 출범). 재단 스스로 ‘전쟁범죄 기소 전문 법률재단’이라 밝힌다. 지난날 유대인 추적자들이 나치 전범 도망자들을 붙잡아 법정에 세웠듯이, 재단 관계자들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자들을 추적해 고발하고 있다. 이중국적을 지닌 이스라엘 군인들이 유럽이나 남미 등으로 이동할 때 해당 국가의 법원에 ‘전쟁범죄 및 집단학살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활동을 벌이는 중이다(홈페이지 https://www.hindrajabfoundation.org). 알자지라 방송의 ‘빙산의 일각’ 다큐 방영 바로 뒤 힌드 라잡 재단은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에 120쪽 분량의 진정서를 냈다. 재단의 법률팀은 이스라엘 군인들의 그날 행위가 로마규약 제6조, 제7조, 제8조에 따라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그리고 집단학살에 해당한다고 못 박았다. 진정서는 2024년 1월 29일 가자지구에서 힌드 라잡 소녀를 비롯한 7명의 민간인들과 2명의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구급대원들을 고의적인 표적으로 삼아 살해한 책임이 있는 이스라엘 지휘관과 관련자 24명의 이름을 낱낱이 꼽았다. 살해 현장에 있던 문제의 부대는 이스라엘군의 최정예부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제401기갑여단 52기갑대대 소속인 ‘뱀파이어 제국’ 중대원들이다, 고소장에 오른 군인들의 이름은 ▲베니 아하론 대령(제401기갑여단장) ▲다니엘 엘라 중령(제52기갑대대장) ▲숀 글래스 소령(‘뱀파이어 제국’ 중대장)을 비롯해 힌드 소녀 일행과 구급차 공격에 나서서 손에 피를 묻혔거나 이를 지원한 전차 승무원 등 24명이다. 대낮에 근거리에서 힌드 소녀와 구급대원들을 무참하게 죽인 이스라엘군의 행동은 고의적인 민간인 살해 의도를 지니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재단의 법률소송 책임자인 나타샤 브라크는 이스라엘군의 살해가 조직적으로 이뤄졌고 고의적인 살해 의도를 지녔기에 국제형사법상 전쟁범죄로 기소될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판정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힌드 라잡 사건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시급히 다뤄야 할 광범위한 인권 침해 양상을 보여준다. 집단학살과 같은 범죄에 대해서는 법치가 선택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 힌드 라잡의 죽음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 정신을 꺾으려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전 세계적인 정의 실현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제출하는 모든 파일, 우리가 밝히는 모든 이름, 우리가 발을 들여놓는 모든 법정에는 권력의 오만함에 맞선 그녀(힌드)의 기억이 담겨 있다. 면책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으며, 힌드의 이름은 그 시대가 몰락하기 시작한 지점을 기록할 것이다.” (https://www.hindrajabfoundation.org/posts/her-name-was-hind-her-foundation-takes-24-israeli-soldiers-and-commanders-to-the-icc-for-her-murder) 베트남 미라이 학살 떠올리는 참극 이 비극적 살해사건을 일으킨 전쟁범죄 현장의 군인들은 제401기갑여단에 속한 ‘뱀파이어 제국’ 중대원들이었다. 중대장인 숀 글래스 소령이 현장에 있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현장에 없었다 해도 책임을 비껴가긴 어렵다. 나는 몰랐으니 책임이 없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더구나 힌드 일행의 살해와 구급대원 살해가 반나절 이상 시차를 두고 벌어졌기에 중대장은 어떻게든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글래스 소령이 전쟁범죄 또는 생명존중에 대한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래서 부하들에게 그에 맞는 지침을 내렸더라면, 글 첫머리에서 살펴본 ‘2차 타격’에 해당하는 학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글래스 소령은 베트남전쟁 때 일어났던 미라이 학살사건(1968년 3월16일)의 현장 지휘관 윌리엄 켈리 소위(제20보병사단 11보병여단 20보병연대 1대대 C중대 1소대장)를 떠올린다. 미국은 사건 뒤 조직적으로 그것을 은폐하려 했다. 그러다 참전군인의 폭로와 탐사전문기자 시무어 허시의 특종 언론 보도로 사건의 추악한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마지못해 켈리를 법정에 세웠다. 일종의 꼬리 자르기였다. 지금 이스라엘도 힌드 살해사건을 덮으려 한다. 처음엔 그 현장에 이스라엘군이 없었다고 발뺌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드는 뻔뻔한 거짓말임이 드러나자, 하마스 대원이 타고 있었다는 등 다른 거짓말로 덮으려는 모습이다. 미라이 학살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켈리 소위가 재판을 받기까지 1년 6개월이 걸렸다. 아마도 숀 글래스 소령과 ‘뱀파이어 제국’ 중대원들은 속으로 떨고 있을 것이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미라이 학살처럼 누군가 중대원 가운데 내부 고발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중동의 깡패국가 이스라엘의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자국 병사의 전쟁범죄에 대해선 매우 관대하다는 점이다. 지금껏 많은 사건들이 논란이 됐고 비판을 받아왔지만 제대로 된 처벌은 없었다. 지도자들 자신이 전쟁범죄자이기에, 일종의 공범의식에서 그럴 것이다. (계속)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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