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로그인   회원가입   초대장  
페이지투미   페이지투미 플러스
페이지투미 홈   서비스 소개   아카이브   이야기   이용 안내
페이지투미는 사회혁신 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모아 일주일에 3번, 메일로 발송해드립니다.

link 세부 정보

정보 바로가기 : 조선 시대의 재즈적 인간 연암 박지원과 패츠 월러

조선 시대의 재즈적 인간 연암 박지원과 패츠 월러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임미성 재즈가수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후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연암 박지원(1737~1805)이다. 노론 명문가 자손으로서 최고의 문장을 구사했던 연암, 실학자이자 소설가, 사상가였던 그는 18세에 이미 ‘양반의 가식적인 도덕’을 다룬 소설을 짓기 시작했다. 성리학이 주류였던 조선 시대에 현실 비판적인 의식과 시대를 앞선 통찰력을 지니고 있던 연암은 정치적인 음모로 친구가 처형되자 관직의 부조리함에 환멸을 느끼고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한다. 이후 50이 넘어 맡게 된 면천 군수 시절에는 영농방법의 혁신을 다룬 『과농소초』를 저술하게 되는데 책을 통해 그가 구현하고자 한 것은 농촌의 발전과 삶의 개선이었다. 일상에서의 유머와 풍자, 통찰을 기행문으로 엮은 『열하일기』 연암은 당시 드물게도 우울증을 앓았으나 많은 친구들이 그를 보살펴주었다. 진실한 우정이 연암에게는 최고의 자산이었다. 연암은 때때로 거리로 나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서서히 우울증을 극복해 나갔다. 누구와도 쉽게 친구가 되는 연암에게는 그 어떤 고통도 유머로 치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요즘도 강조되고 있는 타인과의 깊은 공감의 위력을 그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 시대의 관습으로는 과거를 보지 않았더라도 사대부의 자손은 누구나 문장을 써야 하는 것이 의무였다. 연암은 백탑파 라는 모임 아래 계급이나 신분을 가리지 않는 친구들을 밤마다 불러 모아 술과 음식을 즐기며 예술적 토론과 명상, 음악을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그 모임에서는 격의 없이 서로의 글을 비평하며 즉흥적인 담론을 주고 받았다. 로마 사회에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교류했던 포럼처럼 백탑파 는 조선의 ‘혁신적인 포럼’이었다.   연암 박지원 초상 『열하일기』는 청나라로 파견된 사절단이 국제적인 행사(청나라 황제의 만수절)가 열리는 열하에 도착하기까지의 6개월의 여정을 그린 중국 여행기다. 『호질』 『허생전』 등 작품이 실려 있는 『열하일기』의 묘미는 문체에 있는데, 연암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고전체가 아닌 구어체를 썼다. 『열하일기』에는 역사뿐만 아니라 연암의 사상, 일상의 대화, 사고, 실수담, 해프닝이 세세하게 담겨 있다. 말하자면 즉흥적 사유를 모든 형태로 담은 일기이자 문화평론집이었다. 정조도 한 수 접어 준 연암의 천재성 열하에 도착하기까지 폭우와 폭염 속에서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너야 했던 여정은 중년의 연암에게는 벅찰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언제나 위트를 잃지 않았다. 모든 순간의 감정을 그는 문장으로 써 내려갔다. 『열하일기』에 수록된 『온돌 타령』은 조선의 전통 온돌 방식에 대해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시선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단지 중국 온돌의 효율성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통찰적 시각을 통해 조선 사회의 발전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외교 전술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한 열하에서 연암은 처음으로 본 진기한 물건들과 동물원에서 처음 본 코끼리에 대한 놀라움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특히 그는 잘 정비된 작은 마을을 보며 그동안 배척했던 청나라에 대한 선입견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다. 조선 시대에서는 허용되지 않았던 즉흥적이고 파격적인 문장의 『열하일기』가 나돌며 많은 문하생들이 연암의 문체를 모방하기 시작했다.(이것이 일명 연암체 다) 정조가 연암의 언행이 지나치고 문체가 점잖치 않다는 이유를 들어 반성문을 써 오라고 명하자 연암은 엉뚱한 비유와 자조 섞인 말로 대충 반성문을 작성했다. 정조는 그에게 문체를 바꾸었냐며 종용하면서도 다른 소재의 글을 쓰도록 권해주었다. 정조 역시 연암의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게 다가오는 연암의 위대함은 그의 기질이 재즈적이라는 사실이다. 상황을 유머로 재해석하는 즉흥성, 파격적인 문장은 그의 열린 시선과 자유로운 의식세계를 반영하고 있는데 그의 시대가 신분제 사회였음을 떠올리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명문가에 어울리는 문장력으로 존경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했다. 연암의 모든 세계가 집대성된 『열하일기』는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미치면서 금서로 지정되어 조선 시대가 막을 내리고 나서야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즉흥성, 파격, 유머, 어울림… 이야말로 재즈의 세계 아닌가 연암은 고통을 유머로 바꾸는 능력이 있었다. 아파서 누워 있을 때는 사전 장례식을 치르며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유쾌한 천재성이 아니다. 삶에 대한 진정한 긍정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사람들은 그가 하는 얘기를 즐거워했다. 친구들이 그의 얘기를 듣고 입 안에 있던 밥알이 튀어 나올 정도로 크게 웃는 것, 그것이 그가 바라는 즐거움이었다. 유머는 연암처럼 자신을 비울 줄 아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재능이다. 표면적인 상황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읽어내는 예리한 판단력을 가진 연암은 미궁에 빠진 사건을 종종 해결하는 탐정으로도 활약했다. 사람과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그의 감각은 오롯이 자신을 신뢰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디에 있든 늘 사람들과 소통하고, 조선 최고의 문장가임에도 불구하고 양반 사회의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그가 바로 연암이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이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은유와 풍자로서 변화와 혁신을 꺼리는 조선 사회를 향해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지침이었다. 그는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신분과 나이를 가리지 않았다. 신분제가 철저했던 조선 사회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으나 그는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말을 걸고 친구가 되었다. 그가 삶에서 보여주는 즉흥성과 통찰력, 유머, 휴머니즘과 열린 세계관은 재즈와 닮은 키워드다. 그는 고통조차 유머로 변주해 내는 능력이 있었다. 흑인 재즈 연주자들이 인종 차별로 인한 고통과 분노를 비밥의 리듬으로 환원한 것처럼. 특히 연암에게는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수용성이 있었다. 이것은 재즈 뮤지션이 다른 문화와 리듬을 받아 들이며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태도와 같다. 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적극적인 수용성’이기 때문이다.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우정을 나누는 그의 인간다움은 재즈 공연에서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재즈를 함께 연주하는 평등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연암의 세계관 재즈로 구현한 해학과 풍자의 아이콘 패츠 월러 이러한 연암의 비판적이며 풍자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사유, 기존 형식을 해체하고 인간의 기질을 다양하게 재구성한 작품에서 보이는, 시대를 초월하는 감각은 재즈 연주자에게도 필요한 자질들이다. 연주하면서도 농담하기를 즐겼던 해학과 풍자의 아이콘, 패츠 월러(Fats Waller 1904~1943). 스트라이드(stride·왼손이 넓은 폭으로 뛰며 베이스와 코드 반주를 번갈아 치는 스타일)의 대가인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재즈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사가, 작곡가, 가수,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대중적인 성공과 함께 재즈와 대중음악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패츠 월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고 있는 익살스런 표정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연암이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유머는 삶의 일부였다. 이 거구의 피아니스트는 농담을 하는 가운데 빠르면서도 섬세하고 재미있는 연주를 들려 주며 웃음과 감동을 한꺼번에 안겨주었다. 패츠(뚱보)라는 이름도 거대한 체구인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그는 수백 곡이 넘는 곡을 작곡한 천재 작곡가이기도 했다. 연암이 술과 음식을 즐긴 것은 유머와 담론을 통한 사유의 확장으로 즐겼다면 패츠 월러에게 술과 음식은 유머를 지속하기 위한 에너지원이었다. 연주 시간의 브레이크 타임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고, 마셨다. 한번에 맥주 한 상자를 비웠다는 얘기도 있다.   패츠 월러 그가 작곡한 곡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은 으로 원래 뮤지컬 곡으로 작곡되었는데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린 것처럼 여전히 수많은 뮤지션들에게 연주되고 있다. 어려운 화성 진행과 복잡한 리듬 패턴을 가지고 있으나 단순한 멜로디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어 재즈 화성을 다룬 교재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곡이다. 느슨하면서도 개구쟁이 같은 패츠의 노래가 곁들어진 은 대중적으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음악으로 인종 차별을 뛰어 넘은 패츠 월러의 천재적 재능은 역사적으로도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다. 『열하일기』 읽으며 듣는 어느 아련한 가을 오후 연암이 『열하일기』나 『허생전』에서 사회 비판을 냉소가 아닌 웃음으로 풍자한 것처럼 패츠 월러는 익살과 위트를 연주 속에 녹여내었다. 공연 중에 청중에게 장난을 치고, 웃으며 피아노 연주를 하던 그는 진지함을 웃음으로 대치한 철학자였다. 연암의 풍자가 남을 조롱하는 데 있지 않고 공감 속에서 모순을 발견하려고 했던 것처럼, 패츠의 풍자는 흑인 연주자로서 겪는 사회적 제약 속에서 발현된 생존의 예술이었다. 그들이 추구한 웃음은 단순한 농담이 아닌 가장 세련된 방식의 저항이었던 것이다. 연암은 실학자 이전에 사는 방식을 예술로 만든 사람이었다면, 흥겨운 연주로 관객을 즐겁게 한 패츠 월러는 삶의 고통을 유쾌한 리듬으로 살아낸 사람이었다. 왼손의 규칙과 오른손의 즉흥. 이것은 전통 질서 속에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패츠의 삶 자체였다. 이들은 모두 내면으로 경직된 질서를 가장 자유롭게 해석한 천재들이기에 ‘재미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연암에게는 즉흥적으로 사유를 풀어내고,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재해석하는 힘이 있었다. 비판을 풍자로 치환할 수 있는 위트와 사람들과의 공감을 삶의 원천으로 여겼다. 연암의 문장 리듬은 재즈 연주에서 왼손의 건너뛰기(stride)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연암이 내게는 ‘실학자’나 ‘계몽 사상가’보다는 ‘재즈적 인간’으로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가을의 햇살이 아련해지는 어느 오후, 연암의 『열하일기』를 읽으며 패츠 월러의 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최근 3주간 링크를 확인한 사용자 수

검색 키워드


주소 : (12096) 경기도 남양주시 순화궁로 418 현대그리너리캠퍼스 B-02-19호
전화: +82-70-8692-0392
Email: help@treeple.net

© 2016~2025. TreepleN Co.,Ltd. All Right Reserved. / System Updated

회사소개 / 서비스소개 / 문의하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