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의 공급망 전환 전략】LCA는 정밀함보다 설명 가능성이 먼저다 [칼럼] DB와 할당에서 실무자가 가장 많이 멈추는 지점
에코인벤트(Ecoinvent)만 쓰면 안 되나요?
전체 사업장 전력 사용량을 제품 생산량으로 나눠도 되나요?
LCA 프로젝트를 시작한 기업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고민이 처음 LCA를 접하는 기업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미 여러 차례 평가를 수행한 기업도 결국 같은 지점으로 돌아온다.
어떤 데이터베이스(DB)를 사용해야 하는가. 어디까지 상세하게 할당해야 하는가. 질문은 다양하지만 본질은 하나다. 어디까지 정밀하게 해야 외부 활용에 문제가 없는가 라는 것이다.
최근 공급망에서는 제품탄소발자국(PCF)이 단순한 보고 지표를 넘어 조달과 거래의 기준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바이어들은 제품별 배출량 수치뿐 아니라 산정 방식과 데이터의 신뢰성까지 함께 확인하려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숫자를 한 번 계산하는 것보다 동일한 기준으로 반복 제출하고 설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많은 기업이 이 과정에서 정답 찾기 에 몰두한다.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에코인벤트 DB를 써야 하는가. 국가 DB를 써야 하는가. 제품별 공정 데이터를 모두 추적해야 하는가. 보다 정밀한 방법을 찾으려 할수록 오히려 프로젝트가 멈추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해 조금 다른 답을 하고 싶다. LCA의 품질은 정밀함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선택 기준의 설명 가능성이다. 실제 현장에서 문제가 되는 LCA는 대부분 데이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왜 그렇게 계산했는지 설명할 수 없어서 발생한다.
LCA 실무에는 생각보다 절대적인 정답이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목적에 맞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이유를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가에 있다.
중요한 것은 DB가 아니라 선택의 근거다
대부분의 실무자가 처음 접하는 DB는 에코인벤트다. 데이터 범위가 넓고 대부분의 LCA 소프트웨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그냥 전부 에코인벤트로 하면 안 되나요? 라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항상 최선의 선택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 사업장의 전력 사용을 평가한다고 가정해보자. 한국과 유럽은 전력 믹스가 다르고 폐기물 처리 구조도 다르다. 물류 체계 역시 차이가 있다. 이러한 항목까지 글로벌 평균 데이터로 처리하면 실제 사업장의 특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철강, 플라스틱, 알루미늄과 같은 범용 원재료나 글로벌 공급망을 기반으로 하는 소재는 에코인벤트와 같은 글로벌 DB를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명한 DB를 사용했는가가 아니다. 해당 제품과 공정의 실제 조건을 가장 덜 왜곡하는 데이터를 선택했는가다.
필자는 대부분의 기업에 다음과 같은 원칙을 권한다. 글로벌 원재료와 범용 공정에는 글로벌 DB를 활용하고, 전력·연료·폐기물·물류처럼 지역 특성이 강한 항목은 국가 DB를 우선 검토하는 방식이다. 공급사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결국 DB 선택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왜곡을 줄이는 과정에 가깝다.
할당은 계산 기술이 아니라 관리 전략이다
DB보다 더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영역은 할당(allocation)이다. 실무에서는 사업장 전체의 전력 사용량과 스팀 사용량, 폐기물 발생량을 집계한 뒤 이를 총 생산량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빠르고 단순하며 초기 대응에는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최종 형태로 고착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공장에서 두 제품을 생산한다고 가정해보자. 하나는 고온 공정을 사용하는 에너지 집약적 제품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 조립 중심의 제품이다.
그런데 두 제품에 동일한 기준으로 배출량을 배분한다면 실제 배출 구조와 계산 결과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제품별 개선 포인트를 찾기 어려워지고, 고객에게 제출하는 PCF의 설득력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할당 체계를 세 단계로 구분해 접근할 것을 권한다.
첫 번째는 사업장 기준 할당이다. 빠른 스크리닝과 초기 대응에 적합하다.
두 번째는 제품군 또는 생산라인 기준 할당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활용도가 높으며 고객 제출용 PCF의 기본 형태가 된다.
세 번째는 제품·공정·설비 단위 할당이다. 가장 정밀한 방식이지만 구축 비용과 운영 부담도 가장 크다.
많은 기업이 처음부터 세 번째 단계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첫 번째 단계조차 구축하지 못한 채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경우가 더 많다.
정밀해야 하는 것과 러프해도 되는 것을 구분하자
LCA 실무에서 가장 위험한 접근은 모든 것을 정밀하게 하려는 태도다. 모든 데이터를 실측으로 수집하고, 모든 공정을 제품 단위로 추적하며, 모든 공급사 데이터를 확보하려 하면 프로젝트는 시작도 하기 전에 멈추게 된다. 반대로 모든 항목을 평균값으로 처리하면 결과는 만들 수 있지만 외부 활용을 위한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모든 항목을 동일한 수준으로 정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배출량 비중이 큰 원재료, 제품별 차이가 큰 에너지 사용, 바이어가 직접 질문하는 항목, 감축 성과를 주장하려는 항목은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반면 영향도가 낮은 보조재나 초기 스크리닝 목적의 분석은 보다 단순한 접근도 가능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정밀함 자체가 아니라 일관된 기준과 설명 가능성이다.
설명 가능한 LCA가 경쟁력이 된다
LCA를 처음 시작하는 기업이라면 세 가지부터 정해보길 권한다.
첫째, 우리 회사의 DB 선택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다. 전력은 어떤 데이터를 사용할 것인지, 원재료는 어떤 DB를 적용할 것인지, 공급사 데이터는 어떤 조건에서 반영할 것인지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둘째, 할당 수준을 단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사업장 기준에서 시작하되 핵심 제품과 주요 고객 대상 제품은 제품군 또는 생산라인 수준까지 고도화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다.
셋째, 숫자보다 선택 이유를 기록하는 것이다. 실제로 바이어와 검증기관이 궁금해하는 것은 숫자 자체보다 왜 해당 DB를 사용했는지, 왜 특정 할당 기준을 선택했는지, 어떤 데이터가 실측값이고 어떤 데이터가 추정값인지를 설명하는 근거다.
많은 기업이 LCA를 데이터의 문제로 이해한다. 그러나 공급망에서 실제로 요구받는 것은 숫자 자체보다 숫자를 설명하는 능력이다. 어떤 DB를 선택했는지, 어떤 기준으로 할당했는지, 어떤 데이터는 실측이고 어떤 데이터는 추정인지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결과는 신뢰를 얻는다.
결국 LCA의 경쟁력은 계산의 정밀함이 아니라 설명의 정합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설명이 가능할 때 PCF는 단순한 보고서가 아니라 공급망 협상의 언어가 된다.
☞이민 대표는
이민 대표는 (주)탄소중립연구원의 대표이사로, 기업의 전 과정 평가(LCA)와 Scope 3 산정 체계 구축을 중심으로 공급망 탄소관리 전략을 자문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물리학을 부전공했으며, Boston Consulting Group(BCG)과 에어스메디컬에서 근무했다. 2021년부터 탄소중립연구원을 이끌며 기업의 제품 탄소발자국(PCF) 산정, 공급망 데이터 관리 체계 설계, 글로벌 규제 대응 전략 수립 등을 수행해 왔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 글로벌 자동차 전과정평가 표준안 한국협의체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제 표준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숙명여자대학교 특수대학원에서 환경·경제 전공 비전임강사로 강의하고 있으며, 『실무자를 위한 Scope 3 측정 가이드북』(사회적가치연구원 공동집필)과 『실무자를 위한 LCA 산정 가이드북』을 집필했다. 기업 실무자 대상 교육과 자문을 통해 공급망 기반 탄소관리 체계의 현장 적용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