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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정용진 회장은 사과했는데 우리는 왜 더 화가 날까

정용진 회장은 사과했는데 우리는 왜 더 화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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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탱크데이 관련 사과 내용을 비판하며 전국적인 스타벅스 불매운동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전국민중행동 등 146개 단체 대표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스타벅스 광화문점 앞에서 스타벅스 불매운동 전국화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6.5.27 연합뉴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스타벅스의 이른바 탱크 캠페인 논란과 관련해 직접 사과했다. 기업 총수가 몸소 나섰으니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 사과를 듣고 오히려 더 화가 났다. 사과를 받았는데 왜 분노가 더 커질까. 이유는 단순하다. 사과는 내용과 형식이 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과는 상처를 치유하기는커녕 더 깊게 만든다. 진정한 사과는 가해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를 위해 존재한다. 용서란 가해자에게 베푸는 호의가 아니라, 피해자가 사건의 굴레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진정성 없는 사과는 피해자가 진정 용서할 기회를 빼앗는다. 사과의 형식을 빌려 다시 한 번 상처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잘못된 사과가 침묵보다 더 잔인하다. 진정한 사과의 조건은 분명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책임을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 설득력 있는 후회를 보여야 한다. 진심이 느껴져야 한다.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구체적 약속이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피해에 대한 실질적 보상도 따라야 한다. 이번 사과는 거의 모든 기준에서 모자랐다. 실패했다. 무엇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정 회장은 이번 조사 결과 발표가 늦어진 것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경위를 상세하게 말씀드리기 위해서였음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사과문 어디에도 그 상세한 경위”는 없다. 어떤 판단이 있었고, 누가 어떤 결정을 했으며, 왜 이런 상식 밖의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오히려 이후 실무진 설명에서는 고의가 아니었다거나, 인공지능(AI) 활용 과정에 벌어진 문제였다는 식의 해명이 이어졌다. 무엇이 정확히 잘못되었는지도 설명하지 못하는 사과가 진정한 사과일 수는 없다. 가장 문제적인 대목은 이 부분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국민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드린 것은 그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면 겸손한 표현처럼 보인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이상하다. 이유가 무엇이든”이라니.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과한다는 뜻인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특정하지 못한 채 감정적 결과에 대해서만 사과하는 것은 책임 인정이 아니라 책임 회피에 가깝다. 사람들이 가장 당혹스러워하는 사과가 바로 이런 식으로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는 사과다. 전면적으로 책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엇이 잘못인지 잘 모르겠다는 고백과 다르지 않다. 구체적 사실 인식 없이 이루어지는 사과는 공허하다. 공허한 사과는 사람들을 더 화나게 만든다. 후회의 표현은 더 납득하기 어렵다. 정 회장은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제 잘못입니다”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적어도 형식상 맞다. 그런데 곧이어 저를 포함한 신세계그룹 구성원 모두 우리 사회의 역사와 희생을 기억하고, 늘 국민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면서 왜 갑자기 조직 전체가 등장하는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조직 뒤에 숨는 것인가. 정말 자신의 잘못이라면 자신의 잘못에 대해 후회하고 용서를 구하면 된다. 그런데 책임은 내가 진다고 선언하면서 실제 메시지는 조직 전체로 분산시킨다. 상징적 리더십은 연출하고 싶지만 실제 책임의 무게는 나누고 싶은 속내가 엿보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논란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2026.5.26 연합뉴스 더 당혹스러운 장면은 사과 도중 대중을 훈계하는 듯한 메시지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부디 이분들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현장 직원 보호는 중요하다. 그러나 사과의 자리에서 이 메시지는 전혀 다른 의미를 발신한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 순간에 오히려 대중에게 따뜻함을 요구한다. 사과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과를 받는 사람들이 도덕적 성찰을 요구받는 구조가 된다. 이것은 전형적인 책임 초점 이동이다. 사과의 중심이 피해자의 상처에서 조직 구성원의 어려움으로 옮겨간다. 그 순간 사과는 더 이상 사과가 아니다. 진정성 문제는 더 심각하다. 정 회장은 더 좋은 대한민국”, 더 나은 세상을 미래 세대에게 남겨주고 싶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왜 이런 거대한 담론이 이 대목에 등장하는가. 구체적 잘못에 대한 사과 자리에서 추상적 공동체 가치가 호출되는 순간, 사건의 본질은 흐려진다. 사람들은 철학 강연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무엇을 책임지겠다는 것인지 듣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초월적 가치의 언어를 동원해 사건을 더 큰 맥락으로 희석시키는 모습은 끝까지 자신을 의미 있는 리더로 연출하려는 자기애적 커뮤니케이션 시도처럼 보일 위험이 크다. 이런 초월적 정당화는 정작 구체적인 사과를 기다리던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개선 약속도 공허했다. 내부 시스템과 리스크 관리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하겠습니다.” 위기관리 사과문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클리셰다. 문제는 이런 문장이 너무 익숙해서가 아니라, 아무 의미도 없다는 점이다.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정말 책임을 느꼈다면 훨씬 구체적이어야 했다. 어떤 의사결정 구조가 이 사태를 만들었는지, 책임 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그리고 본인 스스로 어떤 구체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지 분명히 밝혔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들려오는 것은 조직 전체에 대한 추상적 개선 약속뿐이다. 그렇게 해서 누가 이 약속을 믿을 수 있을까. 형식도 문제였다. 사과는 몇 초간 고개를 숙이는 퍼포먼스가 아니다. 질문을 감수하고, 불편한 설명을 견디고,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번 사과는 준비된 문구를 읽고 질문도 받지 않은 채 퇴장했다. 구체적 설명은 아래 사람들이 맡고, 본인은 상징적 장면만 남겼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유다. 우리는 진솔하게 책임지는 한 인간을 보고 싶은 것이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은 설명의 책임에서 비켜서는 특권적 리더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 사과가 분노를 키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한 편의 사과문이 아니다. 이번 사과는 한 조직의 리더십, 의사결정 구조, 조직 문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느끼는 분노는 어쩌면 몇 문장의 부적절한 표현 때문이 아니다. 이런 방식의 비합리성과 책임 회피가 반복되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어쩌면 바뀌지 않을) 구조적 현실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사과는 위기를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다.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인간적인 절차다. 그렇게 가장 인간적인 절차마저 이토록 공허하게 만든 사과도 찾기 힘들 것이다.김영욱 시민기자 yungwook.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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