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때문에 부자들 해외 탈출한다는 왜곡 뉴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송요훈 편집위원(전 MBC 기자)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분식집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 했다. 개도 그러한데 사람이야 오죽하겠나. 기자로 몇 년을 밥 먹고 살면 제목만 봐도 무슨 기사인지 안다. 활자로 의도를 드러내지 않아도 행간에 숨긴 의도가 훤히 보인다.
2026년 2월 3일 낮 12시,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와 민간통신사인 뉴시스가 약속이나 한 듯이 대한상공회의소가 제공한 기사를 송출했다. 연합뉴스와 뉴시스는 언론사에 뉴스를 공급하는 뉴스 도매상이다. 대한상의에 출입하는 두 통신사의 기자가 깃발을 들자 다른 대한상의 출입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 기사를 거의 그대로 또는 약간의 각색을 하여 인터넷판에 게재했다.
연합뉴스와 뉴시스가 신호탄 쏘아올린 ‘부자 탈출’ 기사
기사의 얼개는 이렇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상속세 관련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상속세 과세 대상이 2002년에는 1661명이었으나 2024년에는 2만 1193명으로 약 13배 급증했고, 이에 따라 상속세는 과거에는 초부유층에게만 부과되던 세금이었으나 점차 중산층까지 체감하는 세금이 되고 있다고 일반화한다. 이어서 영국의 이민 컨설팅 업체인 헨리앤파트너스의 자료를 들이밀며 한국은 상속세 때문에 해외로 탈출하는 부자들이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국가라고 겁을 주고는 상속세 부담으로 인하여 기업투자가 위축되고 주가 상승에도 부담이 되니 상속세 납부방식의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의 주문으로 기사를 마무리한다.
상속세 때문에 자산가들이 한국을 떠난다는 연합뉴스와 뉴시스의 보도. 대한상의 제공 자료를 바탕으로 쓴 기사이고 공교롭게. 기사 출고 시간이 시간까지 일치한다.
요약하자면, 상속세 때문에 부자들의 한국 탈출이 급증하여 국부가 유출되고 있으니 상속세를 낮춰달라는 거다. 그럴듯한 논리로 몽매한 백성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여 민심을 흔들고 그걸 무기로 표에 약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을 압박하여 그들이 원하는 걸 받아내는 상투적인 여론전이다. 언론은 선전전의 주연을 맡은 것이고.
그런데, 기사에 등장하는 ‘논거’는 모두 사실일까? 기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머리가 갸우뚱해지는 게 많이 보인다. 세상은 다양하고 매체마다 색깔이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기사는 천편일률적이다. 마치 어느 기자가 대표로 기사를 쓰면 다른 기자들이 약간의 각색을 하여 일제히 ‘돌격 앞으로 하듯이’ 기사를 쏟아낸다. 대한상의 출입기자들이 대한상의가 제공한 자료에 2026년 2월 3일 낮 12시로 엠바고를 걸어놓고 작전 개시 시간이 되자 통신사들을 필두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 보도가 된 거라면, 세상에는 공짜 점심은 없다.
집값 폭등으로 한국 강남에 넘쳐나는 백만장자
상속세 과세 대상이 급증했단다. 경제가 발전하고 소득이 늘어서 초부유층의 전유물이던 상속세가 중산층에게까지 내려온 걸까? 아닐 것이다. 집값 폭등 때문일 것이다. 집값이 2002년이나 2024년이나 별 차이가 없다면 상속세 과세 대상에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소득과 집값이 비례하여 올랐다면, 상속세가 그리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이민 컨설팅업체인 헨리앤파트너스의 조사 대상에 포함되는 백만장자의 기준은 1백만 달러다. 요즘 환율로 치면 14억 원이 조금 넘는 건데, 그렇게 치면 강남에 똘똘한 아파트 한 채만 있어도 백만장자의 기준을 훌쩍 넘어선다.
AI에게 물어보니 헨리앤파트너스는 공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도 아니고 경제 관련 연구기관도 아니다. 영국에 본사가 있고 전 세계에 영업망이 있는 이민 컨설팅업체다. 여행업체들도 시장조사를 한다. 부자들을 상대로 부자들만이 갈 수 있는 여행지를 소개하며 고급 상품을 파는 여행업체의 시장조사 결과를 보고 여행을 일반화하는 건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다. 같은 부자라도 여행 취향이 다른데, 모든 부자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호화 무인도 여행을 선호한다고 하는 건 일반화의 오류다.
헨리앤파트너스의 자료에 상속세 때문에 부자들이 다른 나라로 탈출한다는 분석은 없는 것 같다. 잠재 고객이 어디에 많고 어떤 걸 원하는지 알아보려고 그들에게 필요한 시장조사를 하고 분석을 했을 뿐인데, 한국의 언론이 그 자료를 인용하면서 상속세 때문이라는 아전인수의 해석을 입힌 것으로 보인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되는 것처럼. 그래야 ‘부자들 한국 탈출 충격 보고서’, ‘부자들이 해외로 떠나는 나라’, ‘상속세 무서워 떠나는 나라’, ‘부자 떠나는 나라엔 기업·일자리도 사라진다’, ‘역대급 세금’, ‘상속세의 경고’, ‘상속세 부담에 자산가 2400명 한국 탈출… 전쟁 중 러시아보다 많아’ 따위의 무시무시한 제목을 단 기사로 순진한 백성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여 여론을 조종할 수 있고, 표 떨어진다며 상속세 낮추라고 정치권을 흔들고 압박할 수 있고, 정부가 상속세 낮추는 그럴듯한 명분을 제공할 수 있으니까.
투자 이민 컨설팅업체 셀레나이민 의 최여경 대표는 조선일보의 유튜브 채널 조선일보 머니 에 출연하여 부자들이 한국을 떠나는 탈조선 의 가장 큰 원인은 과도한 상속세와 증여세라고 주장했다. 2024.8.30, 출처: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 조선일보 머니
외신 보도 아전인수해 부자 대변에 쓰는 한국 언론
국내 언론이 해외의 자료 또는 해외 언론의 보도를 근거로 부자들을 대변하는 보도를 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헨리앤파트너스의 자료가 한국 언론의 입맛에 맞는 자료가 된 건 2024년 이후다. 그전에는 미국의 ‘24/7 월스트리트’라는 매체를 인용한 기사가 있었다. 기업에 대한 무리한 세금과 각종 규제로 자기 나라를 떠나는 백만장자들이 늘고 있으며 한국은 7번째라는 기사였다. 2023년 12월에 나온 그 기사를 국내의 몇몇 언론이 인용하여 보도했는데, 웃기는 건, 한국의 부자들은 생활비가 좀 낮은 곳으로 재산을 옮기고 싶어 한국을 떠난다는 분석이었다.
그 기사를 쓴 미국 기자는 서울에 한 번도 와보지 않은 게 분명하다. 뉴욕보다 독일산 고급 승용차가 더 많은 곳이 서울 강남이라는 걸 몰랐을 것이니. 한국은 ‘부자들이 탈출하는 나라 7위’라는 기사보다 ‘세계에서 백만장자가 가장 많은 서울 강남’이라는 기사를 썼다면 훨씬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AI에게 ‘24/7 월스트리트’라는 매체에 대해 물어보니 뉴욕에 있는 독립적인 매체이고 ‘월스트리트 저널’(WSJ)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알려줄 뿐 신뢰할 만한 정보는 없다. AI는 작은 매체라는 표현 대신 독립적인 매체라고 쓸 때가 종종 있다. AI도 눈치를 본다.
부자들을 위한 이민 컨설팅을 하는 업체나 뉴욕에 있는 작은 매체를 탓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도 안 된다. 문제는 그걸 아전인수로 인용하는 국내 언론이다. ‘종부세 폭탄’ 프레임으로 대중의 뇌를 장악했던 것처럼 ‘상속세 때문에 한국 탈출’이라는 혹세무민 프레임으로 상속세를 무력화하려는 국내 언론이 문제다.
‘부동산 블루’ 개탄하던 조선일보는 딴 나라 조선일보였나
한국에 백만장자가 급증한 건, 경제 발전도 아니고 국민소득이 늘어서도 아니다. 집값 폭등 때문이다. 상속세 부과 대상이 늘어난 것도 집값이 폭등해서다. 집값 폭등이 없었다면, 부동산이 전부인 백만장자가 급증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상속세 때문에 한국 탈출이라는 보도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집값 폭등을 조장하고, 집값이 폭등하니 세금 부담을 줄여주라 하고, 그래서 또 집값이 폭등하고 다시 세금 부담을 줄여주라 하고… 그러다 똘똘한 한 채 가진 모든 국민은 백만장자가 되고 상속세를 더 내려 줄 수 없고 한국을 탈출하는 부자들로 인해 서울 강남이 텅텅 비겠다.
여담인데, 대통령 박근혜는 구직난을 호소하는 청년들에게 중동으로 가라고 했었다. 서울이 텅텅 빌 정도로. 반값 등록금 공약은 심리적 부담을 줄여준다는 의미였다고 측근을 통해 오리발을 내밀던 대통령 이명박은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했었다. 구직난을 호소하는 흙수저 청년들에게는 염장 지르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왜 부자들에겐 나라를 위해 청년들을 위해 기꺼이 세금을 내자는 덕담조차 하지 못하는 걸까? 왜 언론은 그런 걸 비판하지 않는 걸까?
2022년 대선 당시 국힘당 대선후보 윤석열은 집 없는 서민도 집을 갖게 되면 보수화되므로 집 없는 사람들의 표를 잡아두기 위해 민주당 정부가 악의적으로 집값을 폭등시켰다는 악선전을 했었다. 출처: MBC 뉴스데스크
집값이 폭등하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 조선일보에는 ‘부동산 우울증이 가정파괴까지… 사회병리 낳는 미친 집값’이라는 사설(2020. 11. 30)이 실렸다. 그 사설의 일부를 옮기면 이러하다.
어느 지역 아파트를 샀느냐에 따라 자산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지는 ‘부동산 계급 사회 가 됐다. 인터넷 부동산 카페 등에는 ‘부동산 블루(우울증)’에 시달리는 시민들의 절망과 한숨이 넘쳐나고 있다. 성실하게 살면서도 집 하나 장만하지 못한 사람은 바보 취급 당한다”는 등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 블루’는 이미 심각한 사회병리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청년 세대는 부동산 막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망적인 심정으로 빚을 끌어다 ‘패닉 바잉’에 나서고 있다. 이마저 선택하기 힘든 청년들은 주식으로 돈 불려 집 사겠다”면서 증시로 달려가 ‘영끌 빚투’에 올인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청년 직장인들은 회사 업무보다 부동산·주식 공부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정권 따라 논조 달리하는 부동산 불패의 공범
부자로 안전하게 살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이고, 부자들이 떠나는 나라가 아니라 부자들이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며 상속세 감면을 옹호하는 언론도 있었다. 부자들이 세금 내기 싫다는데 무슨 돈으로 부자들이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미래는 불안하고 국가를 신뢰하지 못하여 코인으로,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한탕을 노리는 청년들을 어떻게 돌려세울 수 있을까. 미친 집값이라고 성토하던 조선일보가 미친 집값을 잡겠다는 대통령은 미친 사람 취급한다. 정권에 따라 논조를 달리하는 언론도 부동산 불패의 공범이다.
요즘 AI를 보조 도구로 이용하는 이들이 많다. 매체 비평에 활용하면 팩트 체크는 물론이고 논조의 일관성에서 논리 전개의 오류까지도 핀셋으로 찝어낸다. KB경영연구소가 지난해 말에 발표한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10억 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4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26.8%가 해외 투자이민을 생각해봤다고 답했는데, 그 이유가 ‘낮은 세금’, ‘호의적인 사업환경’, ‘거주환경 요인’이라고 했단다. 부자들에게 낮은 세금을 받으면서 호의적인 사업환경과 거주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그 비결이 궁금하다. 상속세가 낮으면 다른 세금을 많이 받겠지.
전국경제인협회 산하 매체인 에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앞세워 세금 내기 싫은 부자들을 합리화하는 칼럼이 실린 적도 있다. 어리석은 지주는 사치와 과소비를 일삼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그의 까다로운 입맛과 취향을 맞추기 위해 여러 가지 상품과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그런 생산하기 위한 일자리가 생겨났으므로 부자들의 악덕이 시장을 돌아가게 하고 가난뱅이들에게 일자리를 준 것이라고 홀리더니 부자들을 내쫓는다면 소비와 투자, 일자리와 세금도 함께 사라질 거라고 겁을 준다. 중앙일보에도 부자의 ‘사치와 변덕’이 국가 혁신의 촉매가 되기도 하고 부자들이 모이게 하는 제도를 갖춘 나라가 부를 끌어당긴다며 상속세 감면을 옹호하는 칼럼이 실렸었다.
부자들 로비가 공공기관 할 일인가, 공영언론 할 일인가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인, 상공인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지만, 한국경제인연합회나 중소기업중앙회 같은 민간단체가 아닌 공공기관이고, 상공인들과 정부를 연결하는 소통의 창구이지 부자들의 특권을 지켜주는 로비 단체가 아니다. 그런 기관에서 부자 탈출 운운하며 조세 저항을 정당화하는 보도자료를 내고, 기자들은 그 의도를 모르지 않으면서 사실 여부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기사를 써주는 주문형 보도를 한다.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에는 매년 300억 원이 넘는 국민 세금이 투입된다. 이게 정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