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늘어도 전기료는 가스가 결정…EU 전력시장 설계 논쟁 재점화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EU 전력시장의 ‘한계가격제(marginal pricing)’ 구조를 둘러싸고 회원국 간 정책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 이미지 = 챗GPT 생성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전력시장 구조 개편을 둘러싸고 충돌하고 있다.
5일(현지시각) 네덜란드·스웨덴·덴마크·핀란드·라트비아·룩셈부르크·포르투갈 등 7개국 에너지 장관들은 EU 집행위원회에 서한을 보내 전력 가격 결정 구조를 바꾸지 말라고 경고했다.
7개국 전력 가격 결정 방식 건드리지 말라”
로이터에 따르면 7개국은 가격 형성 메커니즘을 변경하면 시장 효율성이 떨어지고 규제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와 유럽 산업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최근 유럽에서 에너지 가격 문제가 정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상황과 맞물려 있다. 산업계가 미국과 중국보다 높은 전력 비용 때문에 제조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에너지 가격 논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란 분쟁 여파로 국제 유가와 가스 가격이 상승하면서 에너지 비용 부담도 다시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EU 집행위원회에 전력 가격을 낮출 정책 대안을 요구하는 압력도 커지는 상황이다.
다만 정책 전문가들은 전력시장 구조와 에너지 믹스 문제를 고려할 때 단기간에 전기요금을 낮출 수 있는 뚜렷한 해법은 없다고 보고 있다.
재생에너지 늘어도 가스 가격이 전기요금 좌우
논쟁의 핵심은 EU 전력시장의 ‘한계가격제(marginal pricing)’ 구조다.
유럽 전력시장은 ‘하루 전 시장(day-ahead market)’에서 발전사업자들이 다음 날 공급 가능한 전력량과 가격을 입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때 발전 비용이 낮은 발전원부터 순서대로 전력이 시장에 투입되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필요한 발전소의 입찰가가 해당 시간대 전력 가격을 결정한다.
이 구조에서는 풍력과 태양광처럼 생산 비용이 낮은 전원이 먼저 공급되고, 그 다음으로 원전이나 석탄 발전이 뒤따른다. 마지막 단계에서 수요를 맞추기 위해 투입되는 발전원은 대부분 가스 발전이다.
문제는 이 마지막 발전소의 가격이 전체 전력 가격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이 전력의 상당 부분을 공급하더라도 수요가 높은 시간대에 가스 발전소가 필요하면 전력 가격은 가스 발전 비용을 기준으로 형성된다.
가스 발전은 출력 조절이 비교적 빠르고 수요 변화에 대응하기 쉬운 발전원이다. 실제로 전력을 공급하지 않더라도 수요 급증에 대비해 대기하는 발전 설비에 일정 보상을 지급하는 제도도 존재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늘었음에도 전력 가격이 여전히 가스 가격에 크게 영향을 받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7개국은 서한에서 전기요금 상승의 원인이 전력시장 설계가 아니라 EU의 비싼 수입 가스 의존 구조 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결책으로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 소비 시간 조정 등 수요 관리 정책을 제시했다.
에너지 구조 차이…전력시장 개편 논쟁 확산
전력시장 개편을 둘러싼 논쟁은 국가별 에너지 구조 차이와도 맞물려 있다.
서한에 서명한 국가들 가운데 스웨덴과 핀란드는 전력의 90% 이상을 수력과 원전 등 저탄소 전원으로 생산한다. 이들 국가는 EU 내에서도 전력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반면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는 가스 발전 의존도가 높아 전력 가격 상승 압력이 크다. 가스 가격이 전력 도매가격에 직접 반영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연료 가격 변동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가스 발전 전력 가격에서 탄소 비용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전력 가격을 낮추기 위한 시장 개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별 에너지 믹스 차이는 전력시장 개편을 둘러싼 정책 입장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저탄소 전원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현재 시장 구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가스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전력 가격 안정화를 위한 정책 개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높은 전력 가격은 유럽 산업 경쟁력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다. 산업계는 전력 비용 부담 때문에 미국과 중국 기업들과 경쟁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력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일부 에너지 집약 산업에서는 생산 축소나 해외 이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장기구매계약(PPA)을 통해 녹색 전력을 확보하더라도 도매 전력 가격 변동의 영향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유럽 전력시장 가격이 여전히 가스 발전 비용에 크게 연동돼 있기 때문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전기요금을 낮출 수 있는 정책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확대되는 상황에서 기존 전력시장 설계를 유지할 것인지, 가격 결정 구조 자체를 수정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