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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제인 제이콥스, 도시를 살린 보행자의 시선

제인 제이콥스, 도시를 살린 보행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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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시사상가 제인 제이콥스 (Jane Jacobs, 1916~2006) 도시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질서정연해 보인다. 직선의 도로, 구획된 용도, 숫자로 환산 가능한 밀도와 효율. 지도 위의 도시는 언제나 단정하다. 그러나 도시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지도 위의 선이 아니라 길 위의 발걸음이다. 제인 제이콥스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집요하게 붙들었던 사상가였다. 그는 도시를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를 걷는 사람이었고, 창문 너머로 내려다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길모퉁이에 서서 사람의 흐름을 읽는 목격자였다. 제인 제이콥스의 이름은 흔히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라는 고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한 도시계획 비판서로 읽는다면 그의 사상의 절반만 읽은 셈이다. 그의 사유의 핵심에는 언제나 ‘보행자의 시선’이 있었다. 걷는다는 행위, 걷는 몸이 느끼는 리듬과 마찰, 예측 불가능한 만남과 미묘한 긴장. 그는 도시를 걷지 않고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이론이 아니라 생활에서 길어 올린 것이었다. 1. 위에서 설계된 도시와 아래에서 살아가는 도시 20세기 중반 미국의 도시계획은 ‘정비’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급진적인 실험을 감행했다. 낡고 혼잡한 도시는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해체되었고, 기능별로 분리된 구역과 대규모 도로망이 합리성의 상징처럼 도입되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 아래 고층 주거단지와 광활한 녹지, 자동차 중심의 동선이 이상적인 미래 도시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제인 제이콥스가 보기에 그런 도시는 인간의 삶을 고려하지 않은 추상물이었다. 계획가들은 도시를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위에서 내려다본’ 것에 불과했다. 그 시선에서는 아이가 어디서 놀고, 노인이 어느 벤치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지, 가게 주인과 단골 손님 사이에 오가는 눈빛이 어떤 신뢰를 만들어내는지 보이지 않는다.   제인 제이콥스 & 패밀리 앳 프로테스트 제이콥스는 이 추상적 시선에 맞서 구체적 경험을 들이밀었다. 그는 자신의 동네를, 자신의 발로 매일같이 걸었다. 길 위에서 관찰한 것은 통계가 아니라 이야기였다. 오전과 오후, 평일과 주말에 따라 변하는 거리의 표정, 같은 길이라도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안전감, 활기, 소음의 결. 그에게 도시는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태계였다. 제이콥스의 사유에서 ‘걷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도시를 이해하는 인식 방식이다. 걷는 사람은 도시의 속도를 몸으로 측정한다. 너무 넓은 도로는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들고, 너무 긴 블록은 리듬을 끊는다. 반대로 적당한 간격의 교차로, 다양한 상점과 출입구가 있는 짧은 블록은 보행자의 발을 붙잡는다. 그는 짧은 블록과 복합적 용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거, 상업, 업무가 뒤섞인 거리는 하루 종일 사람의 눈길이 머문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 장을 보러 나온 이웃,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히는 가게. 이런 중첩된 활동은 자연스러운 감시를 낳는다. 제이콥스가 말한 ‘거리의 눈’이다. 이 ‘거리의 눈’은 경찰이나 CCTV가 아니다. 그것은 걷는 사람들의 무심한 시선, 가게 주인의 익숙한 눈초리, 창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주민의 관심이다. 이 눈들이 서로 얽혀 거리를 지킨다. 도시는 이렇게, 걷는 몸들의 관계망 속에서 스스로를 유지한다. 당시 도시계획가들은 범죄를 막기 위해 사람을 분산시키고, 동선을 통제하려 했다. 그러나 제이콥스는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 사람 없는 공간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고 그는 보았다. 넓고 비어 있는 광장, 밤이 되면 적막해지는 단일 용도의 주거단지, 자동차만 질주하는 도로 옆 보도. 이런 공간에서는 누구도 서로를 보지 않는다. 그가 옹호한 것은 혼잡함 그 자체가 아니라 ‘유의미한 혼잡함’이었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할 때 생기는 긴장과 활기. 걷는 사람은 그 긴장을 느끼며 스스로의 행동을 조정한다. 도시의 안전은 규칙 이전에 이런 미묘한 감각 위에 세워진다.   빌 톰킨스 제인 제이콥스 아카이브 제이콥스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범죄 통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실제로 사람들이 느끼는 안전감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것은 밤에 혼자 걸을 때 느끼는 거리의 온기, 누군가의 불이 켜진 창문,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가게의 존재에서 비롯된다. 제인 제이콥스가 도시를 걷는다는 것은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걷는 사람은 도시의 주인이다. 자동차 속도에 맞춰 설계된 도시는 시민을 통과하는 존재로 만들지만, 보행자 중심의 도시는 머무르게 한다. 머무름은 관계를 만들고, 관계는 목소리를 낳는다. 그는 거창한 이념보다 일상의 경험을 신뢰했다. 전문가의 권위보다는 주민의 감각을 존중했다. 이는 도시를 소수의 계획가가 아니라 다수의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보는 관점이다. 걷는다는 것은 도시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방식이다. 제이콥스가 로버트 모지스의 대규모 재개발 계획에 맞서 싸웠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계획은 지도 위에서는 완벽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관계를 단절시킬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길 위에서 본 것을 근거로 반대했다. 그리고 그 싸움은 도시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사회에 던졌다. 오늘 우리는 다시 걷기에 주목하고 있다. 보행 친화 도시, 15분 도시, 생활권 개념. 그러나 제인 제이콥스의 사유를 단순히 정책 슬로건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그의 핵심은 여전히 ‘시선’에 있다. 도시를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걷는 사람의 눈은 낮고 느리다. 그 시선에서는 작은 균열과 사소한 징후들이 보인다. 골목의 빈 점포 하나, 벤치에서 사라진 노인들,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놀이터. 이런 신호들은 위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다. 제인 제이콥스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도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자동차 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으로, 혹은 숫자와 도표로 환원된 대상으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발로 걸으며 관계와 리듬을 느끼고 있는가. 도시는 여전히 위에서 설계되려는 유혹에 놓여 있다. 그러나 도시를 살리는 힘은 언제나 아래에서 온다. 길 위를 걷는 사람들, 그들의 눈과 발걸음이 만들어내는 질서. 제인 제이콥스가 평생 지키려 했던 것은 바로 그 보행자의 시선이었다. 이 연재는 그 시선을 따라, 다시 도시를 걷는 시도다. 2. 거리의 눈과 골목의 정치학 도시는 말이 없다. 대신 수많은 몸짓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제인 제이콥스는 그 몸짓을 읽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도시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유지하는 방식을 ‘제도’나 ‘권력’에서 찾지 않았다. 대신 골목에서, 가게 앞에서, 창문과 보도 사이의 미묘한 거리에서 그 답을 찾았다. 그리고 그 핵심에 ‘거리의 눈’이 있었다.   제이콥스가 말한 ‘거리의 눈(Eyes on the Street)’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가 작동하는 가장 원초적인 메커니즘이다. 아이를 지켜보는 이웃의 시선, 가게 주인의 무심한 관찰, 창가에 선 주민의 일상적인 관심. 이 모든 것이 겹쳐질 때 거리는 안전해진다. 중요한 것은 이 눈들이 강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도 감시를 명령하지 않는다. 걷는 사람들은 자기 삶을 살면서 동시에 거리를 지킨다. 제이콥스는 바로 이 지점에서 근대적 통제 모델과 도시의 실제 삶이 충돌한다고 보았다. 근대 도시계획은 안전을 ‘설계’로 확보하려 했다. 조명, 동선, 분리, 통제. 그러나 그는 물었다. 사람들이 없는 공간에서 그 모든 장치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비어 있는 광장은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되고, 기능이 단일한 주거단지는 밤이 되면 스스로를 지킬 힘을 잃는다. 안전은 시설이 아니라 관계에서 나온다. 제이콥스의 이 단순한 명제는 당시 도시계획의 상식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제이콥스가 사랑한 공간은 대로가 아니라 골목이었다. 골목은 느리고, 비효율적이며, 예측 불가능하다. 그러나 바로 그 특성 때문에 골목은 살아 있다. 짧은 블록, 잦은 교차로, 다양한 출입구. 골목은 사람을 걷게 만들고, 멈추게 하고, 마주치게 한다. 골목에서는 우연이 일어난다. 매일 같은 시간에 마주치는 얼굴, 이름은 몰라도 안부를 나누는 관계. 이런 느슨한 연결이 도시의 사회적 자본을 만든다. 제이콥스는 도시를 유지하는 힘이 거대한 공동체 의식이 아니라, 이런 미세한 친숙함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반대로 골목이 사라진 도시는 어떤 모습인가. 넓은 도로, 긴 블록, 담으로 둘러싸인 단지. 사람들은 이동하지만 걷지 않는다. 스쳐 지나갈 뿐, 머무르지 않는다. 관계가 생길 틈이 없다. 도시의 표면은 정돈되었을지 몰라도, 내부는 텅 비어 있다. 제이콥스는 도시 공간의 ‘혼합용도’를 강하게 옹호했다. 주거는 주거대로, 상업은 상업대로, 업무는 업무대로 분리하는 방식은 도시를 단순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취약하게 만든다. 하루 중 특정 시간에만 사람들로 채워지는 공간은 나머지 시간 동안 공백이 된다. 그는 도시가 하루 종일 다른 리듬으로 숨 쉬어야 한다고 보았다. 아침의 출근길, 낮의 상점, 오후의 아이들, 밤의 불빛. 이 리듬이 겹칠 때 거리는 살아 움직인다. 걷는 사람은 이 리듬을 몸으로 느낀다. 언제 이 거리가 활기찬지, 언제 조심해야 하는지, 설명 없이도 알게 된다. 혼합용도는 단순한 기능 배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를 시간 속에 놓는 방식이다. 제이콥스는 도시를 공간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시간을 함께 보았다. 제인 제이콥스의 사유는 여기서 정치로 확장된다. 골목은 단순한 생활공간이 아니라 시민성이 형성되는 장소다. 사람들이 걷고, 보고, 말하고, 불편을 공유하는 곳에서 공적 감각이 자란다. 그는 대규모 재개발이 단지 건물을 허무는 일이 아니라, 이런 정치적 공간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공동체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매일 반복되는 작은 접촉 속에서 서서히 형성된다. 골목을 없애는 것은 바로 이 접촉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일이다. 로버트 모지스의 개발 계획에 맞선 제이콥스의 투쟁은 도시 정치의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전문가와 관료의 언어에 맞서, 그는 보행자의 경험을 무기로 삼았다. ‘여기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 어떤 기술적 보고서보다 강력했다. 걷는 사람은 수동적이지 않다. 그는 관찰자이자 참여자다. 제이콥스는 시민이 도시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격이 ‘걷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보았다. 걷는다는 것은 그 공간에 시간을 쓰고 있다는 의미이며, 시간은 곧 권리로 전환된다.   도시를 자동차로만 통과하는 사람은 도시의 결정에 대해 말할 근거를 갖기 어렵다. 반면 매일 같은 길을 걷는 사람은 그 길의 변화에 민감하다. 작은 불편, 사라진 가게, 위험해진 구간을 즉각 알아챈다. 이런 감각이 모일 때, 도시는 아래로부터 수정된다. 오늘의 도시에서도 골목은 위기에 놓여 있다.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플랫폼 경제는 골목의 속도를 견디지 못한다. 느린 관계, 낮은 임대료, 불완전한 질서. 그러나 제이콥스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불완전함이 도시의 생명력이다. 골목은 계획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축적이다. 제이콥스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도시를 원하는가. 효율적이지만 텅 빈 도시인가, 조금 불편하지만 서로의 얼굴이 남아 있는 도시인가. 거리의 눈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다만 우리가 걷지 않을 뿐이다. 도시가 위험해졌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묻어야 한다. 이 거리에 아직 사람이 있는가. 서로를 알아보는 눈이 남아 있는가. 제인 제이콥스가 말한 도시는 거창하지 않다. 그러나 그 도시는 강하다. 골목과 골목, 보행자와 보행자가 이어져 만들어낸 조용한 힘. 그것이 도시를 지켜온 가장 오래된 정치학이다. 3. 오늘의 도시에서, 다시 걷다 도시는 다시 한 번 갈림길에 서 있다. 스마트시티, 초고밀 개발, 플랫폼 기반 이동, 효율과 속도를 앞세운 도시 담론은 이전보다 더 세련된 언어로 우리를 설득한다. 그러나 그 언어 속에서도 제인 제이콥스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도시는 누구의 발걸음을 중심에 두고 있는가. 제이콥스는 이미 오래전에 경고했다. 도시가 걷는 사람의 속도를 버리는 순간, 그것은 인간의 공간이기를 멈춘다고. 오늘의 도시는 과연 그 경고를 얼마나 받아들였는가. 21세기의 도시는 다시 ‘좋은 도시’를 약속한다. 친환경, 첨단 기술, 데이터 기반 관리. 도시를 더 똑똑하게 만들겠다는 이 약속은 분명 매력적이다. 그러나 제이콥스의 눈으로 보면, 이 약속에는 익숙한 위험이 숨어 있다. 다시 한 번 도시가 위에서 정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센서와 알고리즘은 도시의 움직임을 기록할 수는 있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어떤 길이 안전한지, 어디에서 사람들이 머무는지, 왜 어떤 골목은 사라지면 안 되는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걷는 사람의 경험 속에 있다. 제이콥스가 비판했던 근대 도시계획과 오늘의 스마트시티 담론은 닮아 있다. 둘 다 ‘전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도시의 생명은 언제나 그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자란다.   제인 제이콥스가 1964년 2월 3일 뉴욕주 공립학교 PS 41에서 양심은 궁극의 무기 라고 적힌 팻말을 목에 걸고 보이콧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Fred W. McDarrah/The New York Historical via Getty Images) 최근 도시정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가 ‘15분 도시’다.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도보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도시. 표면적으로는 제이콥스의 사상과 닮아 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그 15분 안의 거리는 과연 살아 있는가. 단순히 기능이 배치되어 있다고 해서 좋은 보행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거리의 밀도, 출입구의 다양성, 임대료의 층위, 작은 상점이 버틸 수 있는 조건. 제이콥스가 강조한 것은 ‘구조’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걷는 도시는 계획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이 쌓여야만 가능해진다. 하루아침에 조성된 보행 특구는 화려할 수는 있어도, 쉽게 비어 버린다. 제이콥스라면 말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걷게 만드는 도시가 아니라, 걷고 싶어지는 도시라고. 오늘날 골목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보행자가 만들어낸 매력은 자본을 끌어들이고, 그 자본은 다시 보행자를 밀어낸다. 제이콥스가 사랑했던 혼합용도의 거리, 낮은 임대료, 소규모 상점은 이 순환 속에서 가장 먼저 희생된다. 제이콥스는 개발 그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다. 그가 경계한 것은 단일한 논리로 도시를 재단하는 태도였다. 임대료와 수익률만으로 도시의 가치를 평가하는 순간, 걷는 사람의 시간과 관계는 비용 항목에서 삭제된다. 보행이 붕괴된 도시는 다시 자동차와 자본의 도시가 된다. 걷지 않는 거리에서는 ‘거리의 눈’도 사라진다. 안전은 다시 경찰과 장치의 몫이 되고, 도시는 점점 더 많은 통제를 필요로 한다. 이것은 제이콥스가 가장 두려워했던 미래였다. 한국의 도시는 제이콥스를 읽기에 특히 극적인 사례다. 재개발과 재건축은 속도와 규모에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골목은 기억을 남길 틈도 없이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는 효율과 안전을 이유로 스스로를 담장 안에 가둔다. 문제는 단순한 향수에 있지 않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는 걷는 시민이 아니라 관리되는 거주자가 만들어진다. 동선은 정해져 있고, 머무를 공간은 제한된다. 아이들의 놀이는 통제되고, 어른들의 만남은 사적 영역으로 밀려난다. 제이콥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도시는 정치적 공간을 잃어가고 있다. 걷고 마주치고 불편을 공유하는 장소가 줄어들수록, 시민은 점점 고립된다. 도시는 커지지만 공공성은 얇아진다.   오늘날 걷기는 다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걷는다는 것은 속도를 거부하는 행위이고, 통과가 아니라 체류를 선택하는 태도다. 제이콥스는 거창한 시위를 조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동네를 지키기 위해 매일같이 그 거리를 걸었다. 걷는 시민은 도시를 소비하지 않는다. 그는 도시를 돌보고, 기억하고, 필요할 때는 목소리를 낸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보고서가 아니라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 살아왔는가’라는 서사다. 제이콥스는 그 서사의 힘을 믿었다. 글을 마치며, 제인 제이콥스의 질문을 다시 꺼내 본다. 도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속도와 효율의 언어로 말하는 도시인가, 아니면 느리고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를 품은 도시인가. 도시는 여전히 위에서 설계되려 한다. 그러나 도시를 살리는 힘은 언제나 아래에서 온다. 걷는 사람의 발, 멈추는 시선, 반복되는 일상. 이 사소한 요소들이 모여 도시를 지탱한다.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를 구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우리에게 다시 걷게 했을 뿐이다. 도시를 살린 것은 그 걷기였다. 오늘의 도시에서도, 그 발걸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음 연재에서는 베트남 출신 선승 틱낫한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며, 한 걸음에 평화를 딛다 에 담긴 메시지를 깊이 있게 소개하려 한다. 전쟁과 분단의 상처 속에서도 그는 분노 대신 자비를, 절망 대신 깨어있음을 선택했다. 걷기와 호흡, 일상의 작은 실천을 통해 평화를 체화한 그의 가르침이 오늘의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차분히 짚어보고자 한다. 걷기에 도움이 되는 책 틱낫한의 타인이라는 여행  :  이 책은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깊은 영적 수행인지 보여주는 책이다. 우리는 흔히 관계의 갈등을 상대의 문제로 돌리지만, 그는 그 갈등의 씨앗이 내 안에도 함께 존재한다고 말한다. 타인을 향한 분노와 실망, 두려움은 사실 상처 입은 나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이다. 틱낫한은 멈추어 서서 호흡하고, 판단을 내려놓고, 깊이 듣는 연습을 권한다. 누군가의 말을 온전히 듣는 행위는 곧 그 사람의 고통을 인정하는 일이며, 그 순간 우리는 적이 아니라 같은 고통을 지닌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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