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은 겸손하고 더 겸손하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성용 신부(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
정치인에게 슬로건은 단순한 선거용 문구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이자 철학이며, 권력을 쥐었을 때 구현하고자 하는 미래의 이정표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치인의 구호에서 그들의 영혼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 소위 민주 혹은 진보, ‘더불어’와 ‘국민’을 당명과 기치로 내걸고 있는 정당들의 언어들은 과연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현수막 대전(大戰)과 더불어, 선거 캠페인에 등장하는 언어들과 문장들을 듣고 바라보며, 잠깐 멈추어 그 말들의 의미를 곱씹어보아야 할 때이다. 필자는 우리들의 것을 먼저 성찰하고자 한다. 아프지만 그래도 지금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공화국에 ‘압도’는 없다
필자는 인천 사람이다. 그래서 인천이 늘 눈에 들어온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이 있다. 인천의 중심가에서 마주한 민주당 시장 후보의 구호는 눈을 의심케 한다. 또 그가 출사표를 던지던 날 바라보았던 그의 일성(一聲), ‘압도하라, 인천!’ 단언컨대, ‘압도(壓倒)’는 민주공화국의 언어가 아니다. 이 단어를 글자 그대로 풀이해 보면 그 안에 담긴 권력의 속성이 얼마나 수직적이고 폭력적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누를 압(壓)에 넘어질 도(倒)를 쓴다.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힘을 가해 내리누르고(壓), 상대를 거꾸러뜨려 완전히 쓰러뜨리겠다(倒)는 뜻이다. 즉, 상대를 동등한 대화의 파트너가 아니라 완전히 짓밟아 굴복시켜야 할 적으로 규정하는 선전포고다.
민주주의의 본질이 다양성의 공존과 대화, 타협에 있다면, ‘압도’라는 단어 안에는 오직 승리주의와 오만한 지배욕만 꿈틀댈 뿐이다. 대체 누구를 내리누르고, 누구를 거꾸러뜨리겠다는 말인가. 정책적 반대자들인가, 아니면 자신들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 주권자 시민들인가. 아니면 정치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시민사회 단체들이나 연대체들인가! 정치가 시민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순간, 민주주의를 지켜온 시민사회의 역사와 노력을 폄훼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의 그림자를 품은 변종일 뿐이다.
‘학생 성공’ 신기루 세우고 무한 경쟁으로 내모는 건가
그러나 더 참담한 것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교육 권력의 민낯이다. 지금 서울과 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무너지는 공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진보 교육감 후보 단일화 논의가 치열하게 진행되었고 후보자들의 진용이 갖추어졌다. 하지만 인천의 흐름은 기이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진보 교육계의 연대와 대의를 위해 추진된 단일화 논의에, 정작 현직인 도성훈 교육감은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일화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인천 시민사회의 도를 넘은 네거티브와 흑색선전과 함께, 단일화 기구를 구성하지 못한 시민사회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결과 인천의 온전한 진보 교육 후보로 임병구 선생이 추대되는 상황이 되었다.
연대와 상생이라는 진보의 기본 가치마저 팽개친 채, 오직 ‘기필코 3선을 하겠다’라며 독자 노선을 걷는 도성훈 교육감의 집착은 권력 연장을 향한 추한 탐욕과 다름없다. 그가 임기 내내 내건 강령이 바로 ‘학생 성공시대’다. 참된 진보 교육의 철학은 무한 경쟁과 서열화를 타파하고, 모든 아이가 저마다의 결대로 존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전면에 내세운 ‘성공’이란 결국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 체제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승리자만을 비추는 차가운 거울일 뿐이다.
성적과 성공이라는 잣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학생은 교육감의 비전 안에서 지워지고 배제된다. 진보 교육계에서조차 그를 ‘외면당한 어설픈 진보’라 부르며 임병구 후보를 대안으로 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철학이 실종된 채, 오직 표를 구걸하기 위해 아이들을 경쟁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자극적인 구호만 남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권력을 욕망하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그 욕망이 시대정신을 잃고 비전마저 상실할 때 그것은 탐욕이자 ‘노욕(老慾)’이 된다.
권력의 단맛 취해 성난 민심의 경고등 보지 못하는 오만
지금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코스피 8천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누리는 집권당의 프리미엄에 취해 있는지도 모른다. 권력의 단맛에 취해 눈앞의 경고등을 보지 못하는 오만이 여기저기 흐드러진다. 쓴소리가 필요하다. 이러다 또 한 정권이 끝난 뒤, 그 책임을 누구 한 사람에게만 몰아가서는 안 될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살아서든 죽어서든 그 모든 십자포화를 홀로 감당해야만 했다. 정작 그들이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대세에 편승해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이들은, 슬그머니 태도를 바꾸어 의로움(義)을 버리고 이로움(利)을 좇아 떠나갔다.
보라. 민주당의 텃밭이라 자부하던 인천 제물포구(이전 원도심 미추홀구와 중구 일부 지역) 구청장 선거 여론조사가 줄줄이 나오는데, 국민의 힘 김찬진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앞서거나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결과들이 속속 엄습하고 있다. 민심은 바다와 같아서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언제든 오만한 권력의 배를 뒤집어 엎을 수도 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다. 이 정권과 집권당의 프리미엄이 영원할 것 같은가. 누군가를 거꾸러뜨리겠다는 ‘압도’의 오만과 독선은 반드시 성난 민심에 의해 자신들이 먼저 얻어터지고 주저앉게 되어 있다. 이번에는 이길지 몰라도 이런 철학과 사유의 수준으로 다음은 어렵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행복’과 ‘공존’이다
부탁이다. 더 머리를 숙여야 한다. 지금 민주당이 누리고 있는 권력의 자리는 당신들이 잘나서 얻은 것이 아니다. 지난 겨울, 그 엄동설한의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당신들만큼이나, 아니 당신들보다 더 간절하게 마음을 졸이며 길바닥을 지켰던 촛불 시민들의 피땀 위에 세워진 자리다.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던 손들, 밤새 국회를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눈빛들, 그리고 남태령을 지켰던 수많은 청년과 시민의 절박함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은 누군가를 위에서 찍어 누르는 ‘압도(壓倒)’를 원한 것이 아니라, 상식과 정의가 나란히 걷는 ‘공존’을 원했다. 아이들을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아 줄 세우는 ‘성공’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원했다. 권력의 정점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상대를 쓰러뜨릴 궁리만 하는 오만을 멈추고, 다시 그 차가운 길바닥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발바닥을 내려다보라. 겸손하지 않은 진보는 진보가 아니며, 시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민주는 허구일 뿐이다. 지금 당장 머리를 숙이고 민심의 경고를 뼈아프게 새겨야 할 때다. 지성용 신부, 가톨릭관동대 교수 mindle@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