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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영화제의 이스라엘 영화 예스! 상영 왜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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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전북 전주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2026.4.29. 연합뉴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앞두고 집단학살에 대한 인류의 양심과 예술의 윤리를 묻는 무거운 질문이 던져졌다. 34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이하 긴급행동) 은 현재 전주국제영화제 측에 이스라엘 영화 의 상영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단순히 특정 국가의 영화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는 이스라엘 정부 기금을 지원받아 제작되었고, 이스라엘 제작사에 의해 국제적으로 유통되고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시민사회가 전 세계에 호소하는 국제연대 운동인 BDS(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투자 철회·제재) 의 가이드라인을 명백히 위반하고 있다.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국가의 자금과 지원 아래 만들어진 예술은 결코 그 국가가 저지르는 범죄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긴급행동이 발표한 성명서는 우리가 처한 비극적 현실을 서늘하고도 통렬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문장들은 단순한 주장을 넘어, 오늘날 예술이 직면한 중요한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2년 반이 넘도록 우리는 인류 역사상 겪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한 민족이 절멸당하는 광경을 실시간 목격하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 식민 당국은 점령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하고 230만 주민을 인간 동물 이라 부르며 집단학살을 시작했습니다. ··· 그러나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이스라엘 영화는 있는 반면 팔레스타인 영화는 한 편도 없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우리 시대 홀로코스트가 2년 반 넘게 우리 눈앞에서 실시간 생중계되는 지금, 전주국제영화제가 생각하는 영화와 예술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이 절박한 호소에 대해 전주영화제 측이 내놓은 답변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영화제 측은 해당 작품이 국제적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거나 이스라엘뿐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 자본도 투자된 영화다 , 그리고 결국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정당한 반박이 될 수 없다. BDS 운동은 개별 영화의 미학적 성취나 예술적 완성도를 검열하려는 심판관이 아니다. 이 운동의 본질은 예술을 앞세워 진행되는 국가 차원의 이미지 세탁 에 반대하는 정치적·윤리적 저항이다.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국가의 자금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작품성 이라는 방패 뒤에 숨을 수 없다. 또한, 오랜 친이스라엘 동맹국인 프랑스나 독일의 자본이 일부 섞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서방 강대국들의 문화 자본이 이스라엘의 점령 체제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온 것은 새로운 사실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기만적인 변명은 관객의 판단에 맡기자 는 말이다. 전주영화제는 수없이 많은 출품작 중에서 200편이 조금 넘는 작품을 엄선하여 대중에게 선보이는 공간이다. 그 선정 과정 자체가 이미 영화제 측의 강력한 가치 판단이 개입된 결과다. 세상에는 수많은 영화가 있지만 전주영화제 측은 분명히 나름의 기준과 판단으로 작품을 선정하고 추천한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실제로 우리는 전주영화제에서 윤어게인 극우 진영이 제작한 와 같은 영화를 볼 수 없다. 대신 반윤석열 투쟁의 현장을 다룬 과 같은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있다. 이는 영화제가 대안 과 독립 이라는 가치 아래 무엇이 상영될 가치가 있는지를 이미 스스로 판단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유독 이스라엘의 가자 집단학살에 대해서만 판단은 관객의 몫 이라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는가? 왜 우리는 피해자인 팔레스타인에서 고발의 목소리가 아니라, 가해자 쪽에서 나온 풍자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어야 하냐고 묻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적 중립은 결국 약자의 존재와 피해자의 서사를 지우는 데 기여할 뿐이다. 물론 나다브 라피드 감독의 가 이스라엘과 집단학살을 옹호하는 영화는 아니다. 라피드 감독도 끔찍한 사건들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관점이 필수적 이라고 말한다. 사실 역사적 범죄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폭로와 고발뿐 아니라 가해자 쪽의 내부 고발 이나 성찰적 증언도 필요하다. 홀로코스트의 진상 규명 과정에서도 인종청소를 직접 목격하거나 수행했던 가해자들의 증언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그러한 가해자 쪽의 목소리와 서사가 충분한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1) 먼저 피해자들의 고발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2)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더 중요하게, 그리고 우선적으로 귀 기울여져야 한다. 3) 나아가 가해자 쪽의 내부 고발이 자기연민이나 지적 유희를 넘어 충분한 정당성과 진정성을 갖추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 의 경우는 여기에서 어느 하나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먼저, 앞서 봤듯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200여 편이 넘는 상영작 중에서 단 1편의 팔레스타인 영화도 찾을 수가 없다. 만약 피해자들이 너무 공포에 질리고 용기가 부족해 침묵하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3년간의 가자 집단학살을 거치면서 팔레스타인 시민사회 스스로 진실을 알리는 목소리들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많아졌다. 영화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주영화제는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기로 선택한 셈이다. 이는 집단학살에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듣지는 않겠다는 뜻이 된다. 만약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알리는 영화들이 충분히 더 앞서서 상영되면서, 같은 영화가 일부 포함됐다면 우리가 이토록 실망하고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라피드 감독과 그의 영화 는 가해자 쪽에서 나온 내부 고발과 성찰 이라고 하기에는 진정성과 정당성이 충분하지가 않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국가를 작곡하게 된 예술가 부부의 좌충우돌을 냉소와 풍자적 블랙코미디로 그렸다는 이 영화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영화 속에도, 담론 속에도, 미디어 출연에서도 자신의 사회가 낳은 희생자들에게 어떤 공간도 내주지 않는다 (BDS 프랑스) 이 비판은 뼈아쁘다. 가해자 사회의 내부를 다루면서도 그 가해의 대상이 된 피해자를 소거하는 방식은, 가해자들의 도덕적 고뇌에만 주목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집단학살의 참상과 피해자의 고통을 예술적 소재 로 전락시키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라피드 감독 자신도 예술가는 어느 편도 만족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며 자신을 가해-피해에서 초월적 자리에 위치 짓고 있다.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이 BDS 운동에 반대한다는 뜻도 숨기지 않는다. 이것은 집단학살을 자행하는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스스로 깊이 성찰하고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자신의 비판적 입장이 이스라엘 사회가 가진 민주적 포용성 을 홍보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척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그렇기에 그의 영화는 이스라엘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고, 이스라엘 국내 영화제의 후보로 오르며,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이스라엘 사회의 다양성 을 보여주는 선전에 이용되고 있다. 물론 네타냐후 정부나 극우 시온주의자들은 이 영화를 싫어하겠지만, 라피드 감독이 실질적인 정치적 탄압과 박해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독립자본과 민간제작사들이 만들어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를 전하는 힌드의 목소리 한 장면  예컨대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 같은 이들이 겪는 구금, 투옥, 추방, 상영 금지 등을 라피드 감독은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다. 따라서 전주국제영화제도 집단학살을 비판해서 가해자인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입틀막당하던 내부 고발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 며 이 영화를 선택했다고 설명하거나 변명하기는 어렵다. 결국 남는 것은 국제적인 논란 속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 라는 듣기에는 그럴듯한 평가밖에 없다. 일부 국제영화제와 영화 비평가들은 폭격과 학살 속에서 누가 죽고 누가 죽이고 있는가보다는, 그것을 얼마나 예술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잘 표현해 냈는가에 더 신경 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폭탄이 떨어지는 하늘과 가해자의 심리적 분열을 얼마나 잘 연출하고 촬영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카메라 뒤에 누가 있고 누가 돈을 대고 있는지다 라는 지적은 잘 들리지 않게 된다. 이처럼 전주영화제가 집단학살 피해자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독립영화 , 대안영화 를 위한 공간이라는 전주영화제의 근본적인 취지와도 어긋난다.   2024년 5월 1일 전북 전주시 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행사에서 민성욱·정준호 집행위원장, 우범기 전주시장 겸 조직위원장(가운데)이 관객들과 인사하고 있다. 2024.5.1.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 시절에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의 우범기 전주시장이 대표적인 친우파 연예인이자 사업가인 정준호 씨를 공동집행위원장으로 낙하산 임명할 때부터 전주영화제의 방향에 대한 우려는 많았다. 당시에 진보적인 독립영화계 인사들은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훼손되는 것에 반발하면서 이사회에서 집단 사퇴했었다. 그 후 전주영화제가 대중성을 이유로 정체성을 잃어간다 는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지금의 사태 역시 논란 속에서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을 즐기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한가하게 지켜보기에 지금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이 낳는 고통은 너무나 처참하다. 매일같이 아이들의 시신이 쌓여가고, 한 민족의 역사가 지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위치와 선택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실시간으로 죽어가면서도 자신들의 존재를 잊지 말아 달라고 절규하는 피해자의 곁에 설 것인가? 아니면 고통받는 이들의 외침으로부터도 독립 할 것인가? 전주영화제는 팔레스타인 시민사회와 연대 운동의 요구에 더 늦지 않게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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