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은 공개돼야 하고 조희대는 물러나야 한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송요훈 편집위원(전 MBC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금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 덕분에 주문자가 원하는 대로 이기는 여론조사를 해주는 ‘고객 만족’ 여론조작 서비스로 유명해진 명태균 씨에게 여론조사를 부탁하고 후원자에게 비용을 대납하게 한 혐의입니다. 물론 오 시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오세훈 재판에서 새삼 떠올린 ‘희대의 파기환송’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유죄가 선고되면, 공직선거법과 마찬가지로 시장직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됩니다. 선거에 출마할 수 없는 거죠. 지난 1일에 열린 재판에서 오 시장은 6월 3일에 지방선거에 있으니 5월 초에는 선고를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재판부는 선거 이후에 선고를 하겠다며 오 시장의 요청을 거부했습니다. 판결로 선거에 개입하는 인상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희대의 파기환송’이 또 떠올랐습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세훈 서울시장이 법원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시저의 아내는 의심받아서도 안 된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공인은 도덕적으로 결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의심받을 만한 상황을 피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고 합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매지 말라는 우리 속담의 서양 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습니다. AI에게 물어보니 ‘나쁜 일처럼 보이는 착한 일을 하지 마라’는 격언도 있답니다.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라도 남들이 보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의미라는 건 굳이 설명이 없어도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오세훈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법 이전에 인간 세상의 이치에 따른 판단을 한 겁니다. 그런 걸 우리는 ‘상식적인 판단’이라고 합니다. 재판은 내용도 공정해야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외관’도 공정해 보여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재판은 특히 그러해야 합니다. 판결이 사람의 목숨은 물론이고 나라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임명장 받은 대법관들의 초고속 졸속 판결
조희대 대법원장과 9명의 대법관은 그러한 이치를 부정했습니다. 이재명 선거법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유죄라고 했지만, 2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선거에서의 정치적 발언은 표현의 자유와 선거운동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2020년과 2024년에 나온 대법원의 최신 판례를 충실하게 따른 판결이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법으로 규정한 절차를 무시하며 초고속에 졸속으로 재판을 진행하여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 결정을 내렸습니다. 대법원의 판례를 대법원이 부정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 결정을 내린 10명의 대법관은 모두 공교롭게도 대통령 윤석열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대법관들이었습니다.
선거 전에 선고를 내려달라는 오세훈 시장의 요청에 1심 재판부는 난감했을 겁니다. 조희대 대법원장과 9명의 대법관은 ‘유권자들의 올바른 선택을 위하여’ 선거 전에 이재명 사건의 선고를 한다며 ‘초고속 결정’을 옹호했습니다. 그런데 오세훈 사건의 1심 재판부는 ‘유권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선고를 선거 뒤로 미뤘습니다. 1심 재판부가 몇 달 전에 나온 대법원의 결정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지요.
판사 감별 가능하게 해 준 내란 재판 직관
TV로 중계되는 내란 재판을 보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언론이라는 중간 매개체가 없이 직접 재판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피고인석에 앉은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어쩌다가 저런 인성의 소유자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에 빠지곤 했습니다. TV로 중계하지 않고 언론의 보도로만 접했어도 그랬을까요? 아닐 겁니다. 대선후보 윤석열을 영웅으로 미화하며 불량품을 우량품으로 호도한 재래식 언론은 법정에서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사실 보도’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여론은 사분오열되어 하루도 맑은 날이 없었을 겁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 공판 TV 생중계 장면.. 연합뉴스
백 마디의 말이 한 번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재판을 끌어가는 재판장의 태도를 보면서 판결을 예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재판을 이상하게 끌고 가더니 역시나 수상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도 있었습니다. 재판의 독립은 누가 뭐라든 판사 맘대로 하라는 의미가 아닐 텐데, 재판의 독립을 국민으로부터의 독립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판사도 있었습니다.
재판에서 외관은 중요합니다. 여동생을 어릴 적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해온 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가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의아한 판결이었습니다. 2심 판사는 그 의사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습니다. 이쯤 되면, 1심 판결에선 전관예우든 재판 거래든 부정한 일이 있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판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후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 재판을 맡았고, 역시나 존중할 수 없는 판결로 법원의 신뢰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국민 시선 따위 안중에 없었던 판사들의 출세길, 그 정권의 말로
김태규 판사가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한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항소심은 반대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비판과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김학의 출국 금지는 미친 짓이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잘못된 판결이다 등등의 튀는 언행으로 법원의 신뢰에 먹칠을 하다 법원을 떠났는데, 윤석열 정권은 방통위 부위원장에 발탁했습니다. 외관은 나쁜 일을 나쁘게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윤석열도 김태규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외관 따위는 개의치 않고 국민의 눈치를 살피지 않던 윤석열 정권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버스요금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에게 노사 간의 신뢰를 깨뜨렸다면 유죄를 선고한 판사가 있었습니다. 그 판사는 변호인에게서 85만 원 상당의 접대를 받은 검사에 대한 면직 처분은 수위가 가혹하다며 징계 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판사는 윤석열 정부에서 대법관이 되었습니다. 국민의 시선은 따가웠지만, 외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외관을 중시한다는 것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겁니다. 이럴 때의 남이란 국민이고, 외관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은 국민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12.3 계엄의 밤에 대법원에서는 긴급 간부회의가 열렸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지시로 소집된 회의였고, 그 자신도 참석했습니다. 다음 날 출근길에 조 대법원장은 계엄의 불법성을 묻는 기자들에게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12.3 계엄은 명백한 불법인데 대법원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엉뚱했고, 탄핵을 피할 수 없게 된 대통령 윤석열을 감싸는 발언으로 해석됐습니다. 외관은 그랬습니다. 심야의 간부회의도 계엄에 협조하려는 회의가 아니었냐는 의심이 뒤따랐습니다. 대법원에선 아니라고 했지만, 외관이 준 의심은 해소되진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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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엄 다음날 출근길에 조희대 대법원장은 12.3 계엄의 불법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출처: KBS 뉴스
다수의견이 되어야 마땅했던 소수의견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대법원은 2심에서 무죄로 판결한 이재명 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의 최신 판례에 따른 2심 판결이고, 그 판례를 남긴 대법관이 현직에 있는데도, 대법원은 대법원의 판례를 부정했습니다. 후보자에게 출마의 자격이 있는지 명확히 하여 당선 후에 생기는 헌법적 논란과 국가적 손실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외관부터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례 없는 초고속이고 법과 규정을 무시한 졸속이었습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가장 잘 헤쳐나갈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감으로 인하여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자의 대선 출마를 판결로 봉쇄하려는 결정이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라가 큰 혼란에 휩싸이게 될 것이 명약관화한데도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부를 기꺼이 정치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습니다. 그런데도 조희대 대법원장은 법과 양심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대법원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기능했다면, 희대의 파기환송 에서 열두 명의 대법관 중에 두 명의 대법관(오경미·이홍구)이 낸 소수의견이 대법관 모두가 만장일치로 찬성한 다수의견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역동적인 선거운동의 과정에서 펼쳐지는 각 정치집단의 다양한 정치적 공방 중에서 검사가 기소편의주의를 내세워 일부 표현만 임의로 선정하여 기소하는 상황을 가정하게 되면, 법원은 두루 이루어진 정치적 공방 중 기소된 당사자의 발언만을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고 재판할 수밖에 없다. 법원이 아무리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로 법에 충실하게 재판한들 국민으로부터 검사의 자의적 법집행에 동조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말만 번지르르한 콩가루 집안의 가장, 물러나야 마땅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올해 1월 2일에 있었던 대법원 시무식에서 내란 재판은 TV로 중계된다는 점을 언급하며 작은 언행 하나에도 유의해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라”고 판사들에게 당부했습니다. 몇 달 전에 있었던 ‘희대의 파기환송’을 기억한다면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당부인데, 조희대 대법원장은 ‘외관’을 중시하라는 말을 태연하게 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례에 따른 판결을 대법원이 부정하고, 대법원의 결정을 1심 재판부가 부정합니다. 외관으로 보면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습니다. 이게 다 사법부의 수장인 조희대 대법원장이 자초한 비극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외관’을 중시하는 사법부가 되면 좋겠습니다. 국민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사법부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투명해야 합니다. 국민이 법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투명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판결문 공개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성범죄나 이혼 등 가정사가 아닌 모든 판결문을 즉시 공개하면 좋겠습니다. 사법개혁에 반대하기 전에 사법부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외관을 무시하고 국민의 시선을 무시하는 오만과 독선으로 사법부 신뢰를 무너뜨린 조희대 대법원장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도 사법부가 신뢰 회복을 위해 애쓴다는 것을 보여주는 첫걸음이 될 겁니다. 판결문은 공개되어야 하고 법원은 투명해져야 하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물러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