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올해 투어 주제 아리랑 은 한류의 뿌리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류의 역사
BTS가 오는 3월 21일 광화문 공연을 시작으로, 아리랑을 글로벌 콘서트의 주제로 삼아 초유의 거대 프로젝트를 펼친다. 인류사적 사건이 될 것이다. 세상만사를 문화예술 부문으로 좁혀 놓고 바라본다면, 21세기는 ‘2026 BTS 글로벌 투어: 아리랑’의 전과 후로 나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997년, 중국 국영 cctv에서 mbc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처음으로 방영하였다. 국내에서 6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던 이 작품은 중국에서도 단박에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주말에 보통 1억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시청했다고 한다. 이후, 1999년에 ‘별은 내 가슴에’, 2000년대 초반에는, ‘가을 동화’와 ‘겨울연가’가 연달아 중국인민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한국문화는 한중수교 10년 만에 중국대륙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했다. 일본을 비롯,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2005년 9월부터 6개월 동안 방영된 ‘대장금’은 13억 인구의 중국대륙이 대장금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고 할 정도로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주제가였던 ‘오나라’는 중국의 골목마다 울려 퍼졌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열기는 곧바로 한국음식, 한방, 관광산업으로 이어져 서울은 중국 관광객이 넘쳐나는 도시가 되었다. 이는 물 흐르듯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드라마 주인공 이영애는 중국에서 ‘평민황후’로 불리며 외교행사에 초청될 정도로 명사가 되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을 비롯하여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조공-책봉 체제로 만들어 놓고 지배했다. 중국황제가 천자(天子)로서 그 중심에 있었다. 주변국들은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다. 이러한 상하관계의 역사는 한나라 때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2천년 동안 이어졌다. 이는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전제조건이었다. 중국은 그것을 화이질서(華夷秩序: 華는 황제의 나라 중국, 夷는 오랑캐 나라)라고 말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저항과 충돌의 역사이기도 했다.
한국과 중국은 위와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 관계다. 중국인들은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을 작은 나라, 그리고 속국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어느 관광 가이드는 임진왜란은 일본이 중국을 치려고 일으킨 전쟁이었는데, 조선이 아버지의 나라 중국을 지키려고 저항했다”고 설명했다. 공공기관의 교육자료나 홈페이지에도 ‘변속국’(邊屬國)이라는 표현은 여러 곳에 등장한다.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조선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중국 사람들은 21세기에도 지도층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에 대해서 이처럼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문화는 품격이다
우리 TV 드라마들이 위처럼 불편한 역사적 관계를 넘어서 중국인들의 안방에 들어가서 이룬 성취는 그래서 더욱더 감동적이다. 실은 그 이상이다. 깊이 생각해 보면, 이는 일종의 치유이다. 치유? 우월감은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다. 압도적 힘, 즉 무력이 그 근거다. 지배하고 모욕하면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우리의 드라마들이 그 거대한 인구집단의 ‘교만한 세계관’을 성찰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중국언론은 당시 한국 드라마가 신선하다”고 평가하며 호의적으로 보도했다. 그때, 한국언론은 13억 중국인의 안방을 점령했다”는 선정적인 제목들을 쏟아냈다. 연일 ‘점령’의 사촌어휘들—장악, 석권 등—이 굵은 활자로 박혀서 유통되었다. 마치 아군의 승전보를 전하는 종군기자의 필치였다.
‘국뽕 저널리즘’은 선린우호(善隣友好)와 상부상조(相扶相助)의 가치를 훼손한다. 우리 쪽에서는 당연히, 유서 깊은 중국의 문화예술에 대하여, 예를 들어, 깊고 찬란하며 웅대하다”고 추켜세워 주며 반겨야 옳다. 그것이 격조다. 특히 국가간 교류는 그러한 품격을 바탕에 깔고 이루어져야 한다. 그 특별한 힘은 불편한 과거사에 대한 감정을 풀어줄 뿐 아니라, 싸워서 빼앗은 땅에 금 그어놓고 병사들을 배치한 국경, 그 안에서 정치가 조작한 이념, 양측의 각종 규제 등 온갖 장애물들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문화력의 효능이다. 그 강력한 매력 앞에서, 왜소한 인간이 쳐놓은 방어선은 곧 큰 파도를 맞게 될 모래성에 불과하다.
소프트 파워, Hallyu
그같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개선을 거듭한 끝에, 오늘의 지구촌 사회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문화현상인 한류(韓流), 즉 K-Culture가 태동했다. 2025년 기준, 경제적 파급효과는 최대 대략 200조 원에 달한다. 물론 연관분야의 실적을 다 합한 것이다. 2030년에는, 대한민국이 인공지능 3강의 일원이 된다고 가정할 때, 한류산업은 300조 원을 넘어 40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물론 이 전망 역시 연관분야의 성취를 포함한 것이다. 인공지능 대세의 기술에 문화(한류)가 섞이고, 문화가 기술을 선용하여 비상하는 현상이 전면적이고 종합적으로 작동하는 거대생태계를 이룬다면, 그 이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K-Culture는 위와 같은 영리적 타산 이외의 가치, 즉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을 1등국가로 여기는 국제적 추세와 경향을 현실로 만들었다. 국익증진은 상대적으로 오히려 작은 열매다. 한류가 가져온 국가신인도 제고효과는 수치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꿈은 이루어진다’(Dreams come true!)고 외쳤던 2002년, 그 ‘붉은 악마 집단무’(集團巫)를 기억할 것이다. 만인이 샤먼이 되어 하늘에 올렸던 주문(呪文)이 20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다. K-Culture의 세상은 그날의 기도와 승승장구의 자신감으로 달려온 시간이 이룩한 위대한 역사다.
한편, 앞으로 한류 또는 K-Culture를 다루는 논자나 필자들은 그 씨앗이 광대무변의 대지, 중국에 최초로 뿌려졌다는 점을 한시도 잊지 않아야 한다. 30년 전에 중국언론이 우리 문화를 한류(韓流)라고 쓰고 부르기 시작했다. 중국의 지도층과 인민들이 아무런 저항감 없이 따라서 쓰고 불렀다. 중국은 우리가 그 의리를 지키는가, 를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개인간에도 그 점을 중시한다. 중국사회에서 인간관계의 독특하고 특별한 덕목인 ‘꽌시’(關係)의 바탕이 바로 의리(義理)와 보은(報恩)이다.
중국은 국가간에도 그 가치관을 적용한다. 중국사람들은 ‘삼국지연의’의 도원결의 3형제 가운데 관우(關羽)를 가장 높이 친다. 그는 뛰어난 전사이기도 했지만, 주군에게는 충성을, 형제에게는 의리를 다한 인격이었다. 서울 동묘에 관우사당이 있는 것은 그가 80근짜리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로 찬란한 전공을 세운 것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의리의 상징으로서 숭모하는 것이다. 한류는 관우와 무관치 않다.
이제 김치가 Kimchi인 것처럼, 한류(韓流)는 우리말의 발음 그대로 Hallyu가 되었다. 김치도 처음에는 ‘spicy fermented cabbage’라고 불리고 표기되었다. 그래서 Hallyu는 Korean Wave보다 더 값지다. 우리 문화는 이제 중국과 아시아를 넘어 지구촌 전역에 당도한 거대한 물결, 즉 메가트렌드(Megatrend)가 되었다.
한류의 성장과정
한류의 발전단계는 보통 1.0, 2.0, 3.0으로 구분한다. 이 기준은 정부와 학계가 이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해외연구자나 언론인들도 이를 따른다. 표현을 조금 달리할 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뉴욕 타임즈, 영국의 더 타임즈, 프랑스의 르 몽드 같은 권위지들은 ‘K-pop boom’이나 ‘Korean Wave’라고 쓴다. Hallyu는 이제 ‘K-’에다가 그 무엇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한류 1.0
시기적으로 1997년부터 2000년 사이, 중국인민들이 우리 드라마를 접하고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임으로써, 우리 쪽에서는 지속가능성을 낙관할 수 있었다. 파종기였다. 밭과 씨앗은 음양의 조화를 일으켜 풍요를 짓는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특히 문화대혁명(1966~1976) 시기는 말할 것 없고, 그 이후에도 오랜 세월, 중국은 대중문화를 국가가 강력하게 통제했다. 서방의 오락물에 대해서는 아예 ‘사악한 자본주의 문화’라고 못박았다. 지도층은 ‘자본주의적 타락’이라는 말을 마치 공식용어처럼 썼다. 그들은 그 긴 세월을 ‘죽의 장막’을 쳐놓고 혁명가극 등 정치선전물로 문화를 대신했다.
국영 요르단 TV가 드라마 ‘대장금’을 아랍어로 더빙해 방송하고 있다. 2011.10.12. 연합뉴스
1980년대 이후, 등소평 시대에 개혁개방 정책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경제분야로 제한했기 때문에 정치와 문화 쪽은 발전이 없었다. 그는 천안문사태(1989년)를 강경진압했으며, 외국의 문화콘텐츠를 전임자 못지않게 검열했다. 그는 중국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융합하여 새로운 정치를 펼친 전형적인 실용주의자였다. ‘흑묘백묘’(黑猫白描: 흰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論이 대표적이다. 가난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인민들에게는 나는 절대로 처자식을 굶기지 않겠다”는 책임감이 강한 가장의 다짐으로 들렸다. 그래서 높이 존경받았다.
한류 1.0 시기는 중국의 위와 같은 정치사회적 여건 덕을 크게 봤다. 우리 드라마들이 중국인민들의 마음을 얻은 것이다. 지난 세기말은 이렇게 한류가 아시아 대륙에 튼튼하게 뿌리 내린 시간이었다.
▪한류 2.0
한류 1.0의 성취를 바탕으로, 2005년 무렵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약 10년 동안 한류는 드라마보다 K-pop 중심으로 성장과 진화를 거듭해 나갔다. 미국, 유럽으로 진출한 동방신기, 소녀시대, 빅뱅 등의 아이돌 그룹이 대표적이었다. 그들에게는 각각 글로벌 팬덤이 형성되었다.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한류 1.0~2.0 시기를 거치면서 민간이 정부보다 앞장서서 세계화를 주도했다. 기업이 언제나 맨 앞에 있었고, 그들이 세계시장에서 획득한 신뢰의 바탕 위에서 고급화를 이룬 문화가 치고 나갔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문화예술 수준을 구가하던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의 선진국들을 따라잡았다.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한국 사람들의 성실성과 교육열, 창조적 유전자 덕분이라고 말한다.
▪한류 3.0
2010년 중반 이후, 한류 1.0~2.0 시기에 이룬 드라마와 음악의 놀라운 성취로 다져진 문화영토 위에 다양성을 더하면서, 이제는 사실상 경쟁자가 없는 시대를 맞았다. 전통문화와 라이프-스타일까지 한류의 영향권, 즉 시장이 되었다. 세상은 이제 우리 음식을 K-food, 우리의 화장품과 각종 미용제품들을 K-beauty, 실용주의와 멋을 높여주는 다양한 옷가지를 K-fashion으로 부른다. 고유명사가 보통명사가 된 것이다. 이 추세는 날로 강화되고 있다. 확장일로다.
소설가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정명훈 이후, 최근의 임윤찬까지 다수의 음악가들이 그에 못지않은 위치에 올랐다. 영화감독 봉준호, 박찬욱 등은 세계적 거장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오징어 게임’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세상을 사로잡았다. 저 아프리카 남수단의 성자 고 이태석 신부를 다룬 영화 ‘울지마 톤즈’와 ‘부활’이 로마 교황청에서 상영되었다. 교황을 비롯하여 모든 신부와 수녀들, 행정요원들이 함께 울었다.
한국고등과학원의 수학자 백진언 박사는 갓 서른 살이다. 그는 전 세계의 천재들이 60년 동안 풀지 못하는 문제를 풀었다. 그의 스승 허준이 교수도 수학의 노벨상 필즈상을 받았다. 이는 마치 K-Culture가 특정분야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라, a부터 z까지 전 분야에 걸쳐서 벌어지는 ‘별들의 잔치’에는 늘 한국사람들이 주인공이라고 선언하는 것 같다.
K-Culture는 마침내 이 모든 성취들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세계인의 아고라가 되었다.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컴백을 알리는 홍보물을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6.1.22 연합뉴스
세계 최고들이 말하는 세계 최고
최근 세계 정치학회 회장단(파블로 오나테 스페인 발렌시아 대학 교수/전 세계 정치학회 회장. 데이비드 파렐 아일랜드 더블린 대학 교수/전 유럽정치학회 회장. 아줄 아구이알 멕시코 과달라하라 대학 교수/현 남미 정치학회 회장. 김의영 서울대 교수/2026 세계정치학회 조직위원장)이 우리 대한민국의 시민들 전체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빛의 혁명’(Revolution of Lights)의 주인공들은 실은 노벨상보다 더 위대한 상도 받을 자격이 넘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에 대하여 특별메시지를 남겼다. 인류사의 모범이 될 위대한 대한국민의 나라, 대한민국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대한민국은 합니다.”
조지프 나이(Joseph Nye, 하버드 대학 석좌교수) 박사는 자신의 저서 ‘South Korean Popular Culture and North Korea’의 서문에 한류는 한국이 세계에 보여주는 가장 성공적인 소프트파워 사례”라고 썼다. 그는 이어서 군사력이나 경제력보다 문화적 매력이 국가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한류는 한국에게 최상의 외교자산”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CNN은 2007년 한국 특집에서 Hallyu를 Hollywood에 필적하는 새로운 글로벌 문화현상”이라고 말했다. 20년 전 평가다. 이제는 Hallyu는 Hollywood의 스승이 되었다”고 말해야 옳다. 세계 3대 성악가의 하나인 이탈리아의 플라시도 도밍고는 한국음악과 관객의 수준은 세계적 예술이다. 전통과 현대가 결합된 모습”이라며 극찬했다.
위의 세 자이언트들에 비하여 그 명성과 전문성이 조금도 뒤지지 않는 명사들의 목록은 기나길다. 그들의 어록은 두꺼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 특별한 학생이 마침내 모두의 선생이 된 것이다. 그것이 바로 K-Culture, 즉 한류다.
BTS 시대, 100년 간다
BTS는 한류의 견인차다. 한류 1.0~3.0의 결실이 바로 ‘2026 BTS World Tour: Arirang’ 프로젝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신념이다. 이 젊은 친구들의 활동과 그 기여도가 너무나 크고 소중하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순전히 노파심이다.
멤버들 간의 갈등 또는 불화로 인한 팀워크의 약화, 안전사고 및 건강문제, 성추문, 세금문제 등을 포함하여, 상식적으로 예측가능한 여러 가지 이슈들에 대해서 기획사 하이브는 고강도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실행할 것이다. 문제는 어지간한 내공이 아니면 예순, 일흔 살 넘은 인격자들조차 욕망 앞에서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포유류다.
BTS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세계 최고의 대중예술가로서 그 자리를 유지할 것이다.
특별제안: 반전반핵 공연을 하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브레이크가 고장난 폭주기관차 같은 저급한 정치로 세상을 살벌한 정글로 추락시겼다. 노골적인 만행은 반드시 반작용을 부르는 법이다. 아울러 중국과 러시아를 불편하게 한다. 여기에 일본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달려가고 있다. 유럽연합과, 미국에게는 형제의 나라였던 영국, 캐나다가 反트럼프노선을 천명하고 21세기 국제정치에서 합종연횡을 추진하고 있다.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나는 이러한 정치현상을 ‘新제국주의’라고 부른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폭격했다. 한 초등학교가 오폭의 피해로 165명의 어린 아이들이 폭사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학살은 일상이다. 9.11 사태 같은 보복이 있을 것이다. 그 외에 4년을 넘긴 러-우 전쟁 등 5대양 6대주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국지전과 크고 작은 갈등은 흡사 누가 먼저 3차대전 개전의 신호탄을 쏘느냐를 재며 시계를 보는 형국이다.
나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이 세상이 지옥으로 추락할 가능성을 낮추는 역할을 BTS에게 기대한다. 세상은 평화를 원하는 99.9%의 사람들과 그 반대편에 있는 소수의 나쁜 정치인들과 그 참모들, 부자들과 그들의 협력자들로 나뉜다. BTS는 선한 영향력이 가장 강력한 청년들이다. 심지어, 그 소수의 악인들에게도 거의 유일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의 총아들이다.
BTS는 2026 글로벌 투어 기간 동안, 34개 도시에서 총 82회의 공연을 한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BTS가 멕시코에서의 공연 횟수를 늘리도록 도움을 달라는 협조요청 서한을 보냈다. 참으로 이례적이고 특별한 일이다. 자국의 청년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지도자의 모습으로서,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이 대통령은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완곡한 답신을 보냈다. 두 나라에 아름다운 외교문서로 남을 것이다.
나는 평화의 사절 BTS가 이번 글로벌 투어에 왜 아우슈비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공연을 포함시키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꼭 묻고 싶다. 이미 확정된 일정을 수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움이 크다. 내년에 별도의 스케줄을 잡을 수 있다면, 그 역사의 현장에서 꼭 공연을 하기 바란다. 그 공연의 상징성은, BTS를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평생, 반드시 이르고 싶은, 그리고 가장 오르고 싶은 정점에 데려다 줄 것이다.
트럼프와 그 경쟁자들이 오늘의 세상을 지금 보다 좋은 곳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은 없다.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다. 나쁜 정치와 사악한 정치인들이 세상을 3차대전의 중심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다. 이같은 특급위기에 대하여, 소프트파워의 최강자 BTS와 아미는 인류역사상 이제껏 없었던 위대한 경종을 울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1945년 8월6일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파괴된 ‘원폭돔’. 2025.7.13. 연합뉴스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나가사키 공연
K-Culture의 역사는 겨우 30년 안쪽이다.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처럼 초현실적인 현상이 마치 온 세상에 폭설을 내리듯 벌어질 수 있는 일인가. 역사의 시계로 보면, 100년도 한나절이다. 북극에서도 1년 내내 눈만 내리는 것은 아니다. 한류를 눈에 비유한다면, 이 눈은 수십 년, 아니 백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내리게 될 ‘문화적 폭설’이다.
BTS는 모두 30대 청년들이다. 군복무를 마친 이 건장한 젊은이들은 오늘 70대 후반의 조용필, 나훈아, 85살의 이미자, 모두 80살 넘은 폴 매카트니, 돌리 파튼, 닐 영처럼 앞으로 50년 또는 그 이상의 긴 시간 동안 활동하게 된다. BTS는 동서양의 이 전설적인 선배들의 영향력을 다 합한 것 이상의 소프트파워다.
BTS에게 내년 초 글로벌 투어를 마치고, 반전평화를 주제로 하는 레퍼토리를 창작하여, 매년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정기공연을 할 것을 거듭 제안한다. 인류역사를 바꾸는, 종말론적 현상을 멈추게 하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해동포들이 한목소리로 사랑과 평화를 주제로 노래를 부르고, 손에 손잡고 아리랑 떼창으로 피날레를 함께 하는 것이다. 세상을 위태롭게 만드는 나쁜 정치인들도 위선을 떨며 그 대열에 합류할 것이다. 이 위대한 사랑과 평화, 아리랑의 힘을 그들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얼마나 아름다운 사건인가.
BTS여! 오늘의 세상에 그보다 더 강력한 평화운동과 평화철학은 없다. 이는 내가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의 예술가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 세계시민으로서, 세계에서 선한 영향력이 가장 큰 젊은 거인들에게 하는 말이다.
뜻으로 본 BTS 현상, 그 역사적 가치
나는 최근 세계의 지성들이 내놓은 ‘BTS 현상’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정독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나의 견해를 정리했다. 나는 사해동포주의자다. 나는 세계시민이 모두 국적을 초월하여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믿는 사람들의 친구다. BTS에게 그 구심점 역할을 기대하는 사람이다.
• BTS는 국적과 언어를 넘어선 초국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이다. 특히 아미들에게 전통적인 소속 개념(국적)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 BTS의 음악은 인류보편의, 상처와 희망을 하나로 연결하는 정서적 언어다. 그 말 안에 새로운 세상의 씨앗들이 들어있다.
• 아미는 on/off 세계에서 두루 세계시민적 결속과 연대를 실현했다. 사해동포주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 BTS 현상은 단순히 탁월한 공연집단으로서 이룩한 서사가 아니다. 그 이상이다. 분열과 전쟁으로 위태로운 시대에, 이는 사랑과 평화의 연대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 BTS는 눈부신 빙산의 꼭짓점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발언한다. 수면 아래 서 있는 산은 우리 민족이 기나긴 세월 동안 쌓은 집단지성의 거대한 퇴적층이다. 그들은 아리랑의 자랑스런 후손이다.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처럼 크고 인구도 많은 나라도 아니고, 유럽처럼 건학한 지 1,000년 넘는 명문대학들이 즐비한 철학과 문화의 대륙, 그 일원도 아니고, 동북아의 저 끝에 매달린 반도, 그것도 반토막 분단국가,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문화의 힘으로 지구촌 전체를 경계 없는 영토로 만들어버렸다. 이 얼마나 위대한 ‘문화혁명’인가. BTS가 그 맨 앞에 서 있다.
다시 한번 더 제안한다.
BTS가 매년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서 사해동포들과 함께 사랑과 평화의 공연을 축제로 열기 바란다. 그 공연은 여성참정권 운동(20세기 초반), 미국 민권운동(1950~1960년대), 남아공화국 인종차별 반대운동(1948~1990년대), 세계적인 반전반핵 운동(1950~1980년대), 베트남전쟁 반대운동(1960~1970년대), 이라크전쟁 반대운동(2003년)과 홍콩민주화운동(2019~2020)과 한국의 촛불시위와 빛의 혁명을 잇는 문화적 사건이 된다. BTS의 소프트파워가 작동하여, 마침내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앞당길 것이다.
아리랑 & Arirangs
삼천리 금수강산 방방곡곡에 수천 수만 가지의 아리랑들이 절간의 풍경소리처럼, 계곡물이 자갈 흔드는 소리처럼, ‘젊은 첩년’과 온갖 쌍소리를 주고받은 본처의 분노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고개를 오르는 머슴의 거친 호흡처럼, 아들 먼저 보낸 노파의 한숨처럼 살아 있다. 가난한 농부는 흙냄새 나는 아리랑을, 이민자는 바다 건너 그리움 아리랑을, 배신당한 처녀는 눈물의 아리랑을, 혁명가는 불꽃의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은 노래형식으로 남아 있는 민족문화유산이다. 어떤 것은 슬프고, 어떤 것은 흥겹다. 고난과 시련을 당하면서도 더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려는 의지의 노래도 있고, 정인(情人)을 저주하면서도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낙관하는 예언의 노래도 있다. 돈 벌려고 어린 나이에 고향 떠나 울면서 부른 망향가도 있다. 초경도 시작하지 않은 소녀가 머나먼 객지의 부자집에 팔려간 날부터 밥하고 빨래하고 밤마다 짐승의 노리개로 지내다가, 바닷가 바위에 올라서 불렀던 유서도 있다.
니 아버지 빚도 갚아주고, 학교도 보내주마”고 속인 놈을 따라나섰다가 몸이 욕망의 전쟁터가 된 소녀의 위안소 아리랑도 있다. 이름도 모르는 점 같은 섬마다 그 슬픈 처자들이 울부짖으며 불렀던 핏빛 아리랑이 지금도 구천을 떠돌고 있다. 어디서든 곡조는 비슷하게, 가사는 다르게 만들어져 불렸다.
사진만 보고서 남편을 정하고 배를 탔던 하와이 동포들은 당연히 하와이 아리랑을 만들어 불렀다. 멕시코, 쿠바에까지 흘러갔던 동포들도 부두 노동자, 사탕수수 농장 머슴의 처지에서 그에 맞추어 아리랑을 불렀다. 일이 고될수록 부모형제 생각이 더욱 짙어지는 법이다. 날이면 날마다 석양을 바라보며 불렀던 아리랑은 사실은 그들의 목숨을 지켜준 버팀목이었다. 만리타향, 그 이역만리(異域萬里)의 동포들이 부른 아리랑은 그래서 더욱 짠하고 눈물겹다.
빨치산 아리랑도 있고, 광복군 아리랑도 있다. 북간도, 연해주, 하얼빈, 중앙아시아 벌판에에서도 동포들은 예외 없이 그들의 아리랑을 만들어 불렀다. 통일아리랑, 홀로아리랑 같은 노래가 끝없이 만들어져 불리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길 때마다 마치 본능처럼, 닭이 알 낳듯이 하나씩 끝도 없이 아리랑을 생산할 것이다.
아리랑, 민족의 집단지성이 응축된 집적체
개인들은 누구나 남모르는 사연들을 지닌 채 100년도 안되는 시간을 살다 간다.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의 시간은 그에게 자신의 삶, 즉 자서전류의 아리랑을 부르게 했다. 그래서 백 사람의 인생에는 백 가지의 아리랑이 있는 나라가 조선이다. 벙어리도 자신의 아리랑을 흥얼거렸다. 아리랑은 하나의 노래를 모두가 똑같이 부르던 단순한 민요가 아니었다.
뭣에 비유할까. 마치 주물로 만든 틀에 활자를 끼워 넣어 책을 찍어내는 인쇄술과 같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우리 모두가 아는 아리랑의 기본틀에 부으면 또 하나의 노래가 태어나는 것이었다. 곡조는 같지만, 가사, 즉 스토리는 달랐다. 아리랑은 그렇게 수만 가지의 인생이 녹아 새겨진 하나의 집적체다. 빙산에 비유하면,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환상적인 공연은 표층, 즉 꼭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심층은 무수한 서사가 높고 깊고 넓게 켜켜이 쌓여 있는 거대한 산맥이다.
아리랑은 이렇게 개인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집단의 기록이었다. 인쇄술은 책을, 아리랑은 민족의 기억을 남겼다. 그 기억들은 집단지성을 이룩했다. 예외 없이 신산고초(辛酸苦楚)의 몸과 마음으로 험산준령(險山峻嶺)을 넘은 역사였다. 고난과 시련은 절망하여 꺾이지 않게 하고, 죽음 앞에서 쉽사리 굴복하지 않도록 지혜를 준다. 그 힘은 이 민족집단의 저 깊은 곳에 응축되어 있다가, 공동체가 필요로 할 때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에너지로 분출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민족의 DNA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국의 90살 노인이 아리랑을 부르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곡조와 가사가 우리 한국인들처럼 완벽했다. 이방인이, 70년도 넘은 옛날 옛적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강원도 어느 험한 계곡에서, 삭풍을 맞으며 배운 노래다. 전투 중에, 외국인이 한국인 병사의 노래를 열 번이나 스무 번쯤 듣고 그렇게 기억할 수는 없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어머니와 고향을 그리워하며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장면을 상기해 보라. 예외도 있지만, 크게 보면, 아리랑은 사모곡(思母曲)이고, 사향곡(思鄕曲)이다. 둘을 합치면 흡사 가난한 아비와 찌든 어미와 같은 조국이었다. 부모형제를 생각하는 마음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하나다. 이 공동체 의식의 바탕이 아리랑이다
일본 아리랑, 그 역사
우리 민족은 일본과 이웃한 지정학적 연관성으로 인하여, 역사적으로 너무나 크고 깊고 짙고 참을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집단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이라고 부르는 조일 7년전쟁(1592~1598)부터 1876년 강화도조약,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경술국치, 그리고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일본은 말과 글로 형용할 수 없는 잔혹함으로 우리 민족을 유린하고 말살했다. 말과 글은 물론, 이름도 빼앗았다. 몸과 마음도 모두 일제의 것이었다.
일본은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도공 수천 명을 포함, 수만 명(10만명 정도라는 주장도 있음)의 조선인들을 끌고 갔다. 당시 도공들은 고온(1300도)에서의 ‘연소기술’과 ‘유약기술’을 보유했던 최고의 엔지니어들이었다. 요즈음 말로 지자체장과 유사--소국의 왕과 같은 신분이었기 때문에 권력은 비교가 안됨--했던 각 번주(藩主. 다이묘)들은 경쟁적으로 도공들을 사냥하여, 끌고 갔다.
그들은 도자기 수출로 엄청난 부를 이룩했다. 그 덕분에 도공들은 도자기의 조상, 즉 도조(陶祖)라고 불리며 최고대우를 받았다. 대표적으로 심수관(沈壽官. 1926~2019. 일본이름 오사코 게이키치. 大迫恵吉)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정유재란 때 끌려간 남원 출신 심당길(沈堂吉)의 14대손이다.
그때 끌려간 사람들은 백정들의 주거지인 특수지역(부라쿠, 部落)에서 살았다. 그들은 축성, 농업, 채탄 등 여러 종류의 강제노동을 하거나, 당시 일본에 상주하며 노예무역을 하던 포르투갈의 상인들에게 팔려가서, 이탈리아 등 유럽, 동남아, 남미 등 전세계로 매매되었다.
일본군에 저항하여 농기구를 들고 전쟁을 벌였던 조선인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왜군들은 그들의 귀와 코를 일일이 베어 가지고 가서 공로를 입증하고, 보고를 받은 사무라이 왕초는 그들에게 상을 내리고 기념하는 무덤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이총(耳塚), 비총(鼻塚)이 바로 그것들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밤마다 그 귀없고 코 없는 조선인들의 원귀에 쫒기는 악몽을 꾸다가 심신이 쇠약해져서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강화도조약과 한일합방조약 사이(1876~1910)에도 수만 명이 끌려갔다. 1910년 병탄 이후 1945년 해방될 때까지 징용, 징병, 위안부 등으로 끌려간 인구는 200만 명에서 700만 명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인구가 2천만이던 시절이다. 최소로 잡더라도 우리 인구의 10%~20%는 끌려가서 위험지수가 가장 높은 일터와 전쟁터에 배치되었으며, 거기서 죽거나 다치거나 치명적인 병을 얻었다.
최근 한일 정상회담에서 희생자 유해발굴에 합의한 야마구치현 조세이 해저탄광 수몰사고(1942년)는 상징적이다, 희생자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조세이’의 한자표기는 ‘長生’이다.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말(불로장생. 不老長生)은 동양에서 진시황 같은 절대권력자의 꿈이었다.
바다 밑 그 어둡고 위험한 일터, 그 현장의 문패가 ‘長生’이었다. 그 특별한 이름은 마치 일제가 강제동원한 조선인들에게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일하면 굶기지 않겠다, 노임도 잘 챙겨주겠다, 고향에 빨리 돌아가도록 해주겠다, 그 돈 가지고 고향에 가서 오래오래 잘살아라(長生)” 하며 속여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바닷속 채탄장으로 몰아넣으려는 미끼였다.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만악(萬惡)의 밑바탕에는 ‘長生’이라는 속임수와 악의가 깔려 있었다.
작가 김경원(金京媛, 1957년~ )은 일본 유학 시절, 1926년 10월 1일, 종로2가 단성사에서 개봉했던 ‘아리랑’(최초의 민족영화. 감독 및 주연배우 나운규)의 필름찾기 운동을 펼치다가 아리랑 연구자가 되었다. 그는 일본 열도를 10년 넘게 탐사했다. 그 성과물로, 지난 1995년 한국민요학회에, 1998년 일본의 통일일보에 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일본의 대표민요 ‘이츠키 자장가’는 아리랑이다.” 이 한 문장이 논문의 결론이다.
그는 어느 날, 규슈지방의 한 외진 마을 이츠키(五木村)에서 이 자장가를 들었다. 영락없이 아리랑이었다. 그 발견의 놀라움과 기쁨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라고 한다. 일본의 민속학자들은 그 민요가 아리랑이라는 주장에 거부감을 표했다. 작가는 이츠키 마을의 어느 부자집에 애 보는 일로 팔려간 일본 극빈가정의 어린 소녀들과 당시 끌려갔던 조선의 소녀들이 엄마와 고향을 생각하며 부른 합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역설했다. 이츠키는 한반도와 가깝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했을 때, 이 지방에는 조선인 포로들의 집단 거주지역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민요들은 거의 대부분 2박자인데 비하여, 이츠키 자장가는 특이하게도 우리 민요들처럼 3박자다. 가사에 나오는 오로롱은 아리랑이 변한 것이며, ‘간진 간진’은 ‘조센진’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발음이다.”
가사는 일본말이지만, 곡조는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부르는 바로 그 노래였다. 일본 최고 민요 이츠키 자장가의 작가는 400여 년 전, 그 조선 소녀였다.
일본 문학사에서 최고시인 중 하나로 존경받는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1881~1941) 선생은 생전에 일본민요는 전국에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이츠키 자장가가 최고”라고 말했다.
이츠키 자장가
(*작가는 이 민요를 ‘일본 아리랑’이라고 부른다.)
오로롱 오로롱 오로롱바이
오로롱 오로롱 바바노마고
내가 죽거든 길가에 묻어주오
지나는 비가 꽃을 던져줄 거야
꽃은 무슨 꽃 동동 동백꽃
물은 하늘에서 절로 뿌려주지
내가 죽으면 누가 울어줄까
뒷산 소나무 매미가 울어줄 거야
매미가 아니고 여동생이요
귀여운 여동생 매미소리
애기 업고 자장가 부르기 싫어
그러나 부모에게 야단맞기도 무서워
왜 이 애는 이리 보채기만 하나
젖을 줄래도 내게는 젖이 없어
나는야 추석을 기다린다
나는야 추석이 와야 집으로 간다
나는야 간진 간진
저들은 신분이 있는 사람들
좋은 허리띠에 좋은 옷을 입었네
나는야 간진 간진
한편, 시각장애인으로서 일본의 국보로 불리는 유명한 연주자 다카하시 치쿠쟌(高橋竹山)는 어릴 때 걸인이었다. 그는 그 불우했던 시절, 자신에게 먹거리를 내어준 조선인 노동자들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츠가루 샤미센(津輕三味線) 아리랑’이 바로 그가 만든 작품이다. 또 다른 일본 전통 창(唱)의 국보급 예술가로 오카모토 분야(岡本文彌)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100살이 되던 해, ‘분야 아리랑’을 만들어 선을 보였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종군위안부의 한을 다루었다. 위의 두 가지 아리랑은 마치 가해자 일본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부끄러운 조국을 대신하여 조선에게 보은하고 사죄하는 마음으로 만든 작품들처럼 특별하다.
한편, 일본 재일동포 가운데는 문화예술가들이 참 많다. 그 역시 우리 민족의 대표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1세부터 4세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들이 만든 아리랑들만 해도 몇 가지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4세 동포예술가들이 자신의 아리랑을 만들어 부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아리랑을 자신의 ‘신세타령’의 노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아리랑’이라는 말이 ‘조센징’이라는 멸칭과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갖게 된 울분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부터 끌려간 조선인들이 일본 전역에 일제의 필요에 따라 할당 배치된 지역마다 그 특색을 담은 아리랑을 만들어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넘어가던 고개마다, 생사의 고비마다 자신의 아리랑을 지어 불렀다. 갑남을녀, 장삼이사들 모두가 아리랑의 작가였다. 한민족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현상을 이 특별한 족속의 가슴에 예외 없이 새겨져 있는 태극문양 같은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김경원은 10년 넘는 아리랑 탐사기행을 마치고 일본열도에 조선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마다 각각의 아리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도에 붉은 펜으로 표시를 했다. 당연히 전국적이었으며, 그 수를 일일이 세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현재 한반도를 떠나서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우리 민족은 대략 800만 명이다. 그들 역시 일본에 끌려가서 열도 방방곡곡에 살면서 아리랑을 불렀던 것처럼, 이 세상 어딘가에서 각각의 아리랑을 만들고 부르며, 정착하여 대를 잇고 있다.
그는 아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한민족 특유의 날숨법 ‘아이고’와 같은 이 노래 ‘아리랑’은 이제 지구촌의 코리안 디아스포라 모두가 염원하는 사랑과 평화의 굿이다. 신과 교신하는 방언, 즉 랩이다. 동양의 신비 ‘만다라’다.”
이제 긴 글을 마친다.
아리랑은 세계시민이 다정하게 손에 손을 잡고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재건하는 역사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에너지들의 플랫폼이다. 새 시대로 건너가는 시간의 다리다. 갈등을 줄이고 장애물을 치우는 해결사다. 적폐란 적폐들을 모조리 유익한 연료로 쓰는 재생산업이다. 반대파 또는 적의 공격성을 낮추는 소통능력이다. 노래다. 아니 그 이상이다. 고난과 시련, 인내와 도전의 철학이다. 아니 그 생명철학을 실현하는 길이다.
아리랑은 사랑과 평화세상의 전제조건이다. BTS가 ‘2026 글로벌 투어’의 주제를 아리랑(Arirang)으로 정한 것은 민족주의적이면서 아울러 사해동포주의적이다. 아리랑은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부르게 될 노래다. 감히 예언컨대, 그 기록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 모두가 가슴 저 깊은 곳에 아리랑의 기본 가락을 넣어두게 될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그들도 넘어야 할 고개마다, 비장한 고비마다 자신의 아리랑을 부르게 될 것이다.
이 위태로운 시대에, 아리랑의 세상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