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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이란 혁명의 씨앗 세상에 심은 리처드 그레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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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에는 늘 시끄러운 사람들이 나온다. 총을 쏜 사람, 연단에서 주먹을 흔든 사람, 궁전을 불태운 사람. 그런데 가끔, 아주 가끔, 조용히 씨앗을 뿌리고 사라진 사람이 있다. 씨앗이 거목으로 자란 뒤에야 사람들은 묻는다. 이거 누가 심었지? 리처드 바틀렛 그레그(Richard Bartlett Gregg, 1885~1974)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를 역사상 가장 조용한 급진주의자 라 불렸고, 실제로 그랬다. 평생 연설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이 남자가 뿌린 씨앗은,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뿌리가 되었고, 자발적 단순함(voluntary simplicity) 이라는 개념으로 오늘날 탈성장·생태문명 담론의 시조가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얼마나 그레그 답지 않은가. 아니, 이 얼마나 그레그 다운가.   리처드 그레그(The Walden Woods Project) 하버드 변호사, 인도 농촌에 엎드리다 1885년 미국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레그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길을 걸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1907년 학사, 1911년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보스턴의 번듯한 법률회사에 취직했다. 이쯤 되면 멋진 정장에 크고 넓은 책상, 그리고 조용한 노후를 꿈꿔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사람, 이상한 데가 있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 뒤 그레그는 변호사 대신 노동운동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을 중재하고,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분쟁을 조율하는 일을 7년 가까이 했다. 그런데 할수록 허탈해졌다. 정부도 결국 자본의 편이었고, 노동조합도 폭력과 굴복 사이를 오갔다. 1924년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정부도, 산업도, 노동조합도 모두 폭력이라는 토대 위에 서 있다. 다른 길이 있어야 한다. 그 다른 길 을 찾아 그는 1925년 1월 1일, 인도행 배에 올랐다. 마하트마 간디(1869~1948)의 사바르마티 수도원(아슈람)을 찾아서. 하버드 출신 변호사가 인도 농촌에서 물레를 돌리고, 염소젖을 짜고, 인도어(힌디어)를 배우는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거기서 4년을 살았다. 출장도 아니고 관광도 아니고, 아예 눌러 살았다.   리처드 그레그(왼쪽)와 마하트마 간디가 1927년경 사바르마티 아슈람에서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The Power of Integral Nonviolence: On the Significance of Gandhi Today | Politika) 도덕적 유술(柔術) 이라는 무기 간디 곁에서 비폭력 저항의 철학과 전략을 몸으로 익힌 그레그는, 1934년 『비폭력의 힘(The Power of Non-Violence)』을 펴냈다. 이 책이 간디 사상의 이론적 틀을 서구에서는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책의 핵심 개념은 도덕적 유술(moral jiu-jitsu) 이었다. 유술, 즉 오늘날 유도나 유술 같은 무술에서는 상대의 힘을 역이용한다. 그레그는 비폭력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폭력적인 상대가 맨손의 저항자를 두들겨 팰 때, 구경하는 세상사람들은 무엇을 보는가? 잔인하고 볼품 없는 지배자와 당당하게 버티는 피지배자를 본다. 가해자는 도덕적으로 무너지고, 저항하는 이는 오히려 더 강해진다. 공격의 에너지가 스스로 공격자를 집어삼킨다. 이것은 단순한 낭만적 평화주의가 아니었다. 그레그는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겁쟁이처럼 부당함을 묵인하는 것보다는, 용기 있는 저항이 비폭력보다 낫다. 비폭력은 나약함이 아니라 훈련된 용기라는 것이다. 1930년 간디가 소금 행진(Salt March)을 이끌 때, 그레그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영국 식민지 당국이 6만여 명을 체포하고, 맨손의 시위대를 곤봉으로 내리쳤다. 시위대는 맞으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세계가 지켜봤고, 영국은 도덕적으로 패배했다.   그레그의 저서 『비폭력의 힘(The Power of Non-Violence)』, 김성수 시민기자 소장 마틴 루터킹이 읽은 다섯 권 중 하나 세월이 흘러 1957년,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이 된 마틴 루터 킹 주니어(1929~1968)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 다섯 권을 꼽았다. 간디 자서전,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의 「시민 불복종」… 그리고 리처드 그레그의 『비폭력의 힘』. 킹은 나중에 그레그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다. 이 책만큼 비폭력 사상에 현실적이고 깊은 해석을 준 것은 없었습니다. 1959년 출판된 이 책의 개정판 서문을 킹 목사가 직접 썼다. 이 책은 6개 언어, 108쇄를 찍었다. 그런데도 그레그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역사는 참 불공평하다. 킹의 이름이 들어간 기념일이 생겼고, 간디의 이름은 영화가 됐는데, 이 두 사람을 연결한 사상가는 잊혔다. 씨앗을 뿌린 사람보다 열매를 딴 사람이 유명해지는 것이 세상 이치이긴 하지만.   그레그(The Power of Integral Nonviolence: On the Significance of Gandhi Today | Politika) 자발적 단순함 , 소비문명을 향한 조용한 반란 1936년, 그레그는 또 하나의 폭탄을 투척했다. 소논문 『자발적 단순함의 가치(The Value of Voluntary Simplicity)』가 그것이다. 자발적 단순함 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어낸 글이다. 그 내용은 간단했다. 산업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과잉소비는 오염, 소외, 착취를 낳는다. 인간은 더 많이 가질수록 더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얽매인다. 물질을 줄이고, 내면의 목적에 집중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1936년에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기후위기라는 말도 없던 시절에. 오늘날 탈성장 , 소박한 삶 , 제로웨이스트 , 슬로라이프 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담론의 뿌리가, 그레그가 미국 퀘이커교도 수련원(펜들 힐)에서 쓴 이 작은 논문에 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선 사람들이 정작 거인의 이름을 모르는 격이다.   그레그(왼쪽)가 앉아 있는데 조화로운 삶 의 저자 스콧과 헬렌 니어링 부부가 웃음짓고 있다.(Gallery — Richard Bartlett Gregg) 한국에서 그레그를 다시 읽는다면 자, 이제 한국으로 돌아오자. 현재 한국사회에서 그레그의 사상은 단순한 교양상식이 아니라, 아프도록 현실적인 이야기다. 첫째, 비폭력 저항의 전략성. 한국은 1987년 6월 항쟁, 2016~2017년 촛불혁명 등 비폭력 시민 저항의 빛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레그가 도덕적 유술 이라 부른 것이 실제로 작동한 사례들이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비폭력적 당당함이 권력의 폭력성을 더 선명하게 드러냈고, 세계가 지켜봤다. 비폭력은 구호가 아니라 훈련이라는 그의 말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둘째, 자발적 단순함 과 청년문제. 지금 한국의 많은 청년들은 아파트 한 채를 위해 수십 년을 저당 잡히거나, 아예 포기해버린다. 그레그는 묻는다. 정말로 더 많이 가지는 게 자유인가, 아니면 덜 욕망하는 것이 자유인가? 물론 이 말이 가난을 즐기라 는 말이 돼선 안 된다. 구조적 불평등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소비문명이 만들어낸 욕망의 덫을 개인 차원에서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셋째, 노동운동과 비폭력. 그레그가 노동분쟁 현장에서 좌절하고 간디에게 간 이유가 있었다. 폭력과 굴복 사이에 갇혀버린 운동은 결국 소진된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운동도 비슷한 딜레마 앞에 있다. 그레그가 발견한 것은 제3의 길 , 비폭력 저항은 약한 것도 아니고 어리석은 것도 아닌, 가장 전략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레그의 저서 간디주의 대 사회주의 , 김성수 시민기자 소장 노인의 마지막 메모 그레그는 1964년부터 건강이 나빠져 미국 오리건주의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비폭력의 한계와 가능성을 노트에 계속 썼다. 1969년 인도 구자라트에서 열린 간디 탄생 100주년 학술회의에 논문을 보냈다. 세상이 그를 잊어도 그는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1974년 1월 27일 별세. 향년 88세. 부고 기사는 거의 없었다. 조용한 급진주의자는 조용히 갔다. 그러나 그가 남긴 개념 하나가 오늘도 살아 있다. 누군가 자발적으로 단순하게 살겠다 고 말할 때, 누군가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대신 당당히 버티겠다 고 결심할 때, 리처드 그레그는 그 결심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역사는 시끄러운 사람들의 것이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는 것은, 이렇게 조용한 사람들이다.   그레그(가운데)와 그 뒤의 스콧 니어링(Gallery — Richard Bartlett Gre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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