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세제개편안에 기본지대 정책을 얹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국경제의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답은 하나로 모인다. 사람이다. 자원도 자본도 없던 나라가 오직 사람 하나로 일어섰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가. 조봉암의 농지개혁에서 왔다.
1949년 농지개혁법이 제정되고 6·25 직전에 시행되면서, 남의 땅을 부치던 소작농이 자기 땅의 주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땅에서 나온 것으로 자식을 학교에 보냈다. 전강수 교수의 표현대로 농지개혁은 한국경제의 놀라운 고도성장을 가능케 한 아래로부터의 동력 을 만들어냈다. 온 국민이 배울 기회를 갖게 된 그 한 번의 전환이 반세기의 성장을 낳은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농지개혁은 시혜가 아니었다. ‘공유부’(共有富, Common Wealth)의 배분이 곧 성장의 동력이 된다는 것을 실증한 사건이었다. 한국은 이미 한 번 그것을 증명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잊었다.
땅값은 누가 올리는가
땅의 가치는 장소적 가치다. 장소적 가치는 소유자의 노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구가 모이고 길이 나고 학교와 지하철이 들어서면서 오른다. 모두 공동의 세금과 공동의 노력이 투입된 결과다. 그렇게 오른 값은 누구의 몫인가.
동아시아는 이 물음에 답을 갖고 있었다. 수조권(收租權)이다. 토지에서 나온 수확 가운데 일정량을 국가가 걷었는데, 이는 세금이라기보다 토지사용료의 개념이었다. 경작하지 않은 빈 땅에는 발동되지 않았다. 오늘날 용어로 하면 공공지대(公共地代)를 걷은 것이다. 왕토사상은 왕의 사유지라는 뜻이 아니라 백성이 위임한 국가의 땅, 곧 모두의 땅이라는 생각이었다.
이 수조의 개념이 실종된 것이 일제강점기다. 국토의 일부에 국한되던 소유권 개념이 전국토로 확장되면서, 땅은 쓰든 안 쓰든 사유재산이 되었다. 그러니 보유세 강화는 서구 제도의 수입이 아니다. 잃어버린 우리 것을 되찾는 일이다.
되찾지 못한 대가는 통계에 그대로 있다. 상위 1% 세대가 개인 토지 가액의 27%를, 상위 30%가 91%를 차지한다. 법인은 더하다. 상위 10% 법인이 전체 법인 소유 토지 면적의 92.3%를 갖고 있다. 국민의 땀과 국가의 혜택으로 번 돈을 기업이 땅에 묻어둔 것이다. 재투자에 쓰일 돈이 지대로 흘러가니 경제의 선순환이 끊긴다.
세금을 혐오한 밀턴 프리드먼조차 부동산보유세를 가장 덜 나쁜 세금 이라고 했다. 한국의 부담은 미국의 1/6, 이스라엘의 1/8 수준이다. 서울의 비싼 아파트도 뉴욕의 1/4~1/9이다. 공짜나 다름없으니 투자가 아닌 투기가 몰린다.
우리는 그동안 국가가 강제수용한 땅을 사기업에 팔아넘겼고, 그 자리에서 판교로또 강남로또 가 터졌다. 반면 뉴욕은 배터리파크시티에서, 싱가포르는 HDB에서, 암스테르담은 도시 전역에서 토지를 팔지 않고 빌려주는 방식으로 주거를 공급했다. 이런 방향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최근 아파트값 상승과 전월세 품귀로 빌라의 매매, 전월세 가격이 오르고 거래량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12일 서울 시내 빌라 단지의 모습.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의 연립주택 가격은 작년 9월부터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해 올해 들어 1∼5월까지 3.37% 상승했다. 전셋값은 아파트 전월세 물건이 감소한 이후 상승폭이 커지기 시작해 지난 5월 한 달 동안 0.59% 상승했다. 2012년 10월(0.61%) 이후 13년7개월 만에 최고 상승폭이다. 연립·다세대를 포함한 비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작년 1∼5월 62만9천107건에서 올해는 70만1천756건으로 11.5% 증가했다. 2026.7.12 연합뉴스
8·3 세제개편안, 절반의 진전
지난 3일 정부가 2026년 세제개편안을 내놓았다. 세 갈래로 읽힌다.
첫째, 진전이 있다. 종부세 세율 체계가 주택 수 기준에서 주택가액 기준으로 일원화된다. 용도별·주택수별 차등과세를 폐지하고 인별로 합산한다 는 국토보유세의 핵심 원칙 하나가 관철된 셈이다. 정부는 자신도 모르게 국토보유세 쪽으로 반걸음을 뗐다.
둘째, 납부이연도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에게는 고령·장기보유 1주택자가 담보를 제공하면 양도·상속 시점까지 종부세 납부를 미룰 수 있는 제도가 이미 있고, 이번 개편안은 그 소득요건을 완화하면서 10년 이상 거주한 65세 이상 1주택자로서 보유세 부담이 소득의 10%를 넘으면 소득 수준을 아예 따지지 않기로 했다. 덴마크와 매사추세츠의 제도를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우리도 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소수를 위한 예외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셋째, 그런데 결정적인 것이 빠졌다. 배분이 없다. 정부는 이번 개편의 세수효과를 연 3조 4천억 원, 그중 2조 1천억 원을 보유세 및 자본이득 과세 개편분으로 잡았다. 걷기는 걷는데 누가 혜택을 보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시장주의자는 전가된다고 비판하고 증세론자는 너무 약하다고 비판하는, 누구도 만족시키기 어려운 애매한 세제 (강원대 정준호 교수)라는 평이 나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종부세로 겪은 실패가 그대로 반복될 조짐이다. 그때도 세금은 걷었지만 수혜자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조세저항 앞에 서줄 사회세력이 없었다. 이젠 기본소득에 가까운 토지배당 이 따라야 한다.
언론인이라는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경기장
여기서 짚고 갈 것이 하나 있다. 이 개편안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자들의 자리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 부동산 정책의 논의부터 결재까지 전 과정에서 다주택 보유자를 배제하라고 지시했다.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정책을 평가하고 여론을 만드는 손에는 아무런 잣대가 없다.
땅값은 미래지대에 대한 예측에 좌우되고, 예측은 정보와 판단에 좌우된다. 언론은 의제를 설정하고 정보에 견해를 얹는다. 예측은 팩트가 아니므로 근거를 대지 않고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이 경기의 심판이 아니라 선수로 뛰고 있다. 2018년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서울 거주 언론사 임원의 43.6%가 강남 3구에 살았다. 8년 전 조사이지만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종부세와 보유세를 다루는 그들의 붓끝이 공정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다주택 공직자를 정책에서 배제하는 것이 옳다면, 보유세 보도에도 최소한의 이해충돌 공개는 있어야 한다. OECD 최하위의 언론신뢰도는 다른 데서 온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 보유세 는 빼앗는다는 어감이 있고 국토보유세 는 행정용어다. 이 세금의 정체는 공동체가 만든 지대를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것이니, 기본지대 라 부르는 것이 옳다. 걷는 쪽이 기본지대라면 나누는 쪽은 토지배당이다. 기존 논의가 나누는 쪽에 이름을 붙여 토지배당 이라 했다면, 걷는 쪽에도 이름이 필요하다. 그것이 기본지대 다.
이하의 설계는 모두 그 이름에 걸맞은 설계다.
첫째, 기본지대는 기본소득형으로 간다.
건물이 아닌 토지에만, 소수가 아닌 전체 토지소유자에게, 용도별 차등 없이 인별 합산으로 과세하고, 세수 순증분은 전액 1/n로 배당한다. 전강수 교수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실효세율을 0.37~0.76%로 올리고 순증분을 전액 배당할 경우 전체 세대의 83~86%가 순수혜자가 되며, 누진 구조를 쓰면 90%를 넘는다. 90%가 수혜자인 세금은 저항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종부세에 없던 방파제가 기본지대에는 있다.
둘째, 징수방식을 세 갈래로 나눈다.
법인은 현금징수한다. 감당 못 하는 법인은 처분하면 되고, 그 대부분은 비업무용 부동산이다. 다주택자도 현금징수한다. 그러나 실거주 1주택자는 과세이연, 곧 사후납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 똘똘한 한 채 도 지가상승에 따라 금융담보능력이 커져서 실제 혜택을 보는 경우가 많지만, 소유변동이 없으면 미실현 상태의 가치다. 권리변동 시점에 청산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미리 현금으로 내면 깎아주면 된다. 이렇게 하면 똘똘한 한 채 에도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과세할 수 있다.
셋째, 과세기준을 공시지가에서 공시지대로 옮겨간다.
공시지가는 미실현 예측치라서 산정에 허점이 많다. 반면 지대는 실제 사용의 대가다. 주거는 확정일자로 이미 집계되고 있고, 농지는 생산량으로 산정하면 된다. 상가만 조사가 필요할 뿐이다. 공시지대가 완비될 때까지는 공시지가로 부과하되, 방향은 지대여야 한다. 이름이 기본 지대 인 이유이자, 수조권의 원리 그대로다.
넷째,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올리되, 실효세율 목표를 법에 명시한다.
2024년 기준 지방세 가운데 보유세는 18조 6천억 원으로 16.3%인 반면, 취득세는 23%를 넘고 그 대부분이 부동산 취득분이다. 사고팔 때 무겁고 갖고 있을 때 가벼우니 땅이 잠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가벼운 보유세마저 손쉽게 흔들린다는 사실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주택분 보유세수는 2023년 한 해에만 3조 3천억 원, 무려 32.5%가 줄었다. 세율을 내려서가 아니다. 세부담 완화 조치와 공시가격 현실화 중단, 곧 과표를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보유세의 실세는 세율이 아니라 공시가격이다. 세율만 놓고 벌이는 논쟁이 헛도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므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폐지하고 공시가격 산정을 정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어야 하며, 실효세율 목표와 10년 로드맵을 법에 못 박아야 한다.
양도세 중과가 유예와 재개와 한시완화를 오가며 정책 신뢰를 깎아먹은 것과 정반대로 가야 한다. 매년 평가해 매기는 보유세의 최대 장점은 예측가능성이고, 예측가능성이야말로 저항을 줄이는 가장 값싼 수단이다.
전가론도 여기서 답이 나온다. 토지는 공급이 늘지 않으므로 전가가 어렵고, 건물을 빼고 토지에만 매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설령 일시적으로 공급이 달리는 지역에서 임대료가 오르더라도 임차인의 손에 쥐어진 토지배당이 그 전가를 상쇄한다. 배당이 있는 보유세와 없는 보유세는 이 지점에서 갈린다.
명예를 돌려주는 일
이재명 대통령은 기본소득, 기본금융이라는 커다란 개념을 후보 시절부터 제시한 바 있다. 이런 혜택의 개념을 이제는 명예로운 징수의 개념으로 확장하자. 보유세라기보다 기본지대 로 말이다.
벌이 만드는 경제적 가치는 꿀이 아니라 수분(受粉)에 있다. 꿀은 눈에 보이고 수분은 보이지 않을 뿐, 크기로는 수분 쪽이 압도적이다. 땅값도 똑같다. 소유자의 노력은 꿀이고, 공동체의 왕래와 축적은 수분이다. 지금 지구촌 경제의 새로운 시야로 떠오르는 꽃가루받이 경제 (얀 물리에 부탕)가 말하는 바가 이것이다. 경제는 직접노동이 아닌 보통사람들의 일상생활이 토대가 되어 굴러가는 법이다. 그 수고로움에 대해 토지배당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일상이 쌓아 올린 공유부인데, 그 열매는 지금 소수의 플랫폼에 독식되고 있다. 땅에서 배운 원리를 데이터에도 적용해야 한다. 데이터라는 공유부를 기초로 하는 AI시대는 이런 인지자본주의 철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로마의 귀족과 부자들은 아피아가도와 콜로세움과 공중목욕탕을 지어 국가에 바쳤다. 자신의 부가 로마 시민 공동의 노력 위에서 만들어졌다는 암묵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는 그 감각을 잃었다. 잃게 만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제도다. 걷는 방법이 서툴렀고, 나누는 설계가 없었다.
거두어서 나누면 낸 사람도 명예를 얻는다.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사는 이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조봉암이 땅을 나눴을 때 그 땅에서 자란 것은 쌀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이제 지대를 나눌 차례다. AI시대 다음 세대가 거기서 자랄 것이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시민기자 leewy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