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교통 공약? 호치민의 버스 혁명 에서 배울 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필자는 베트남 호치민 시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출근할 때는 버스를 탄다. 요금은 6000동, 한국 돈으로 약 300원 정도다. 편도 300원이면 서울 지하철 기본요금의 4분의 1도 안 된다. 이 정도면 거의 공짜에 가깝다. 그런데 거의 공짜인 이 버스를, 필자는 한동안 타지 않았다.
예전에 호치민 시의 시내버스 대부분을 운영하던 회사는 사이공교통공사가 약 49%의 지분을 보유한 사이공버스(SaigonBus)였다. 차는 낡고 지저분했다. 벨이 고장나거나 에어컨이 제대로 안 나오는 건 약과였고, 기사들이 버스 안에서 담배를 피워 냄새가 지독했다. 운전기사들의 불친절은 일상이었다. 승객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퍼붓는 기사가 적지 않았다. 기사와 승객이 다투는 장면을 목격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필자의 경험을 하나 말해야겠다. 어느 날 퇴근길에 버스를 탔다. 당시에는 운전기사가 직접 버튼을 눌러 표를 발급하는 방식이었는데, 기사가 필자에게 학생용 표(3000동)를 건넸다. 하지만 표를 확인하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은 게 실수였다. 잠시 후 기사가 소리를 질렀다. 아마 야, 너 학생 아니잖아!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뒤늦게 어떤 상황인지 깨달은 나는 기사에게 다가가 표를 바꾸려고 했다. 그런데 기사는 내 말이 안 들려? 라며 필자를 때리려고 했다.
주먹을 들어 올리는 기사 때문에 나는 매우 놀랐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자기가 잘못 발급한 표 때문에, 주먹을 휘두르려 한 것이다.
나중에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이 대신 버스회사에 항의해 사과를 받긴 했다. 하지만 그 뒤로 버스에 오를 때마다 몸이 먼저 긴장했다.
우리 학생들 사정도 비슷했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버스기사들은 무섭다 고 했다. 소리를 지르고, 불친절하고, 승객에게 욕설까지 하니까. 학생들은 차라리 그랩(Grab) 오토바이 택시를 타거나 자기 오토바이를 몰고 학교에 왔다. 요금이 아무리 싸도, 타기 싫은 버스는 타지 않는 법이다.
달라진 버스
그런데 지금, 같은 도시에서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자동차 판매업과 여객운수업을 모두 하는 푸타 그룹(Futa Group) 산하 풍짱(Phương Trang) 버스가 시내버스 운영을 맡으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단 버스 자체가 다르다. 푸타 그룹 산하의 낌롱모터(Kim Long Motors)는 KG모빌리티의 현지 반조립생산(KD) 파트너사이기도 한데, 이곳에서 제조한 새 전기버스가 투입됐다.
조용하고, 깨끗하며, 무료 와이파이, 자동 안내방송은 물론, 티머니 카드 같은 비접촉 결제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사람이다. 이제 운전기사가 표를 발급하지 않는다. 버스 안내원이 차내를 돌며 현금을 받고 표를 끊어준다. 안내원들은 대체로 젊고, 친절하며 몸이 불편한 노약자가 타고 내릴 때 돕기도 한다. 최소한 승객을 때리려 들지는 않는다. 제1의 대기업인 빈 그룹의 빈 버스(Vin Bus)도 버스운행에 뛰어들어 새 전기버스로 운행 중이다.
학생들도 다시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물론 기름값이 올라 오토바이 유지비가 부담스러워진 것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직접 들어보면, 이유가 기름값 뿐만은 아니다. 버스가 깨끗해졌어요. 안내원이 친절해요. 이런 말을 한다. 3000동짜리 학생 요금이 변한 게 아니다. 버스가 변한 것이다.
이 차이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곧 이 도시에서 벌어질 일 때문이다.
빈 버스(Vin Bus)가 도입한 새 전기버스
호치민 시의 도박
2026년 4월 1일, 호치민 시 당서기 쩐르우꽝(Trần Lưu Quang)이 전격적인 발표를 했다. 시내버스 전 노선의 요금을 면제하겠다는 것이다. 135개 노선, 전 시민 대상, 5월부터 시행. 연간 예산 약 7조 동, 한국 돈으로 대략 3600억 원이다.
인구 1500만 명의 메가시티가 시내버스 전면 무료화를 단행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실험이다. 2020년에 대중교통을 전면 무료화한 룩셈부르크의 인구가 64만 명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규모의 차이가 실감난다.
왜 지금일까? 몇 가지 배경이 겹쳐 있다.
첫째, 유가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오토바이 기름 값이 올랐고, 호치민 시의 버스 이용객은 이미 35%나 늘어난 상태다. 수요가 먼저 움직인 것이다.
둘째, 차량이다. 앞서 말했듯이 호치민 시는 운영사 교체와 전기버스 도입을 통해 버스의 체질을 바꿔 놓았다. 현재 시내버스 2432대 중 전기버스와 압축천연가스(CNG) 버스가 55%를 넘는다. 타고 싶은 버스 를 먼저 만들어 놓은 것이다.
셋째, 지하철이다. 2024년 12월 개통한 메트로 1호선(벤탄~수오이띠엔, 19.7km)이 시내 대중교통의 뼈대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풍짱이 지하철역과 연결되는 피더(feeder) 버스 노선 17개를 운영하고 있다.
즉, 호치민 시가 무료화를 첫 번째 수로 둔 게 아니다. 운영사 교체, 차량 전환, 결제 시스템 현대화, 지하철 1호선 개통 등 모든 것을 깔아 놓은 뒤에, 마지막 단계로 무료화를 얹은 것이다.
사다리의 교훈
호치민 시의 경험에서 필자는 하나의 원리가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선택하게 만드는 데는 사다리처럼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칸은 존재다. 탈 것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버스가 없는 곳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두 번째 칸은 품질이다. 있되, 타고 싶어야 한다. 필자는 이것을 내 몸으로 배웠다. 300원짜리 사이공버스가 있었지만 기사가 주먹을 들었다. 학생들은 150원을 내고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그랩 오토바이를 탔다. 풍짱이 전기버스를 들여오고 안내원을 배치하자, 그제야 학생들이 돌아왔다.
세 번째 칸이 비로소 가격이다. 호찌민시는 첫 번째 칸(지하철 개통, 노선 확충)과 두 번째 칸(운영사 교체, 전기버스, 친절한 안내원)을 차례로 밟은 뒤에야 세 번째 칸에 올라섰다. 사다리를 건너 뛰지 않은 것이다. 이 원리가 보편적인지 알아보려면 룩셈부르크의 사례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필자가 타고 출근하는 새 전기버스
룩셈부르크의 체리
2020년, 룩셈부르크는 세계 최초로 모든 대중교통을 전면 무료로 만든 나라다. 외국인 관광객까지 포함해 기차, 버스, 트램이 1등석만 빼고 전부 공짜가 되었다. 이 배경에는 절박함이 있었다. 인구 1000명당 자동차 696대. 유럽 대륙에서 차량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 성인 한 명이 매년 33시간을 교통 정체 속에서 낭비하고 있었다.
무료화 뒤, 대중교통 이용은 확실히 늘었다. 젊은이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카페투어를 즐기게 됐고,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도로 수송 분야 온실가스 배출량이 평균 약 8% 줄었다.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는 무료화가 거주지 등록을 유도해서 오히려 지방세 세수가 늘어나는 예상 밖의 효과도 있었다.
그런데 기묘한 현상이 일어났다. 룩셈부르크의 도로 정체가 무료화 2년 뒤에도 이전 수준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았던 것이다. 자동차를 포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료 대중교통은 이미 대중교통을 타던 사람이나, 원래 외출하지 않던 사람의 이동을 늘렸을 뿐이다.
이 실험의 설계자인 프랑수아 바우슈 (François Bausch) 전 룩셈부르크 교통부 장관은 이렇게 정리했다. 무상 대중교통은 케이크 위의 체리 같은 것이다. 케이크는 대중교통 인프라 투자 계획이다.
무료화 자체는 마지막 장식이지,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호치민 시 관계자들이 룩셈부르크 사례를 연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교훈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케이크를 먼저 구운 것이다. 손님에게 욕설을 퍼붓는 기사를 친절한 안내원으로 바꿨다. 낡은 디젤 버스를 전기버스로 교체했다. 지하철을 깔고 피더 버스로 연결망을 짰다. 그리고 나서야 체리를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국이라는 거울
이 대목에서 한국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한국은 지금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교통 공약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경기도 어린이·청소년 무상교통, 부산 무상대중교통 단계적 도입, 김포 18세 이하 전면 무료화, 전주 100원 버스. 유가가 치솟는 상황에 교통비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호소력은 분명 있다. 경남 의령군은 농어촌버스 완전공영제를 도입해 이용객이 30% 늘었다.
하지만 호치민 시의 사례를 보고 고국에서의 논의를 보면, 뭔가 순서가 뒤집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앞에서 말한 사다리로 돌아가 보자.
한국의 문제는, 전국이 사다리의 같은 칸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 지하철은 이미 두 번째 칸(품질)을 넘어서 있다. 깨끗하고, 정시에 오고, 환승도 편리하다. 세 번째 칸(가격)을 논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전남의 543개 마을을 보자. 첫 번째 칸(존재)에도 올라서지 못했다. 걸어서 15분 안에 탈 수 있는 교통수단 자체가 없다. 전국 159개 시·군 중 85%가 지역 간 대중교통 사각지대이거나 취약지역이다.
그런데 선거 공약은 전부 세 번째 칸, 무료 만 외치고 있다. 서울에서도, 전남에서도, 경기도에서도 마치 사다리의 첫 번째 칸과 두 번째 칸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다리의 빈칸을 채우는 법
오지 않는 버스를 공짜로 만들겠다고 공약을 하는 건 마술이 아니라 사기다. 그렇다면 사다리의 빈칸은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첫 번째 칸, 존재의 문제부터 보자. 시골에서 하루 서너 번 오는 버스를 무료로 만드는 건 의미가 없다. 그 버스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게 답이다. 청주시는 앱으로 부르면 AI가 경로를 짜서 미니버스를 보내주는 콜버스를 13개 읍·면에서 운영하고 있다. 도입 지역 어르신들의 외출 횟수가 주 4.2회에서 6.9회로 늘었다. 교통이 생기니까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온 것이다. 어르신이 집에서 고립되지 않게 하는 방지장치이자 지역 경제 활성화도 될 것이다. 경남 하동에서는 운전기사 없는 자율주행 순환버스가 이미 달리고 있고, 이용자 만족도가 90%를 넘었다. 버스 기사를 구할 수조차 없는 농촌에서, 자율주행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해법이다.
두 번째 칸, 품질은 어떨까? 서울 지하철은 이미 깨끗하고 잘 달리는데, 뭘 더 개선하라는 거냐 고 물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품질에는 청결만 있는 게 아니다. 버스마다 깔린 티머니 데이터라는 보물이 있는데, 빈 버스가 달리는 노선은 그대로다. AI 기반 배차 최적화로 빈 버스를 줄이고, 버스정류장에서 목적지까지 도보로 가는 거리를 줄이고, 환승 요금 체계를 합리적으로 재설계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진짜 품질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AI가 대중교통의 판을 바꾸고 있다.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는 AI 배차 시스템 도입 후 시간당 13% 늘어난 운행을 처리하면서도 장시간 탑승을 86%나 줄였다. 교통 체증이 발생하면 AI가 후속 버스 경로를 자동으로 변경하고, 일부 정류장을 건너뛰라는 지시를 내려 배차 간격이 뭉치는 현상을 방지한다. 한국의 교통카드 인프라와 결합하면, 이런 기술은 바로 적용 가능하다.
사다리의 각 칸에는 각 칸의 해법이 있다. 0단계에는 콜버스와 자율주행 셔틀을, 1단계에는 운영 혁신을, 2단계에는 데이터 기반 노선 재설계와 환승 인센티브를. 그리고 이 모든 칸이 채워진 뒤에야, 비로소 3단계로 무료화라는 체리를 올릴 수 있다.
세종교통공사는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최근 경유 가격이 치솟으면서 경유를 연료로 하는 디젤엔진 버스 운행률을 40∼50%로 감축했다고 26일 밝혔다. 사진은 세종시 대평동 세종교통공사 차고지에 대기 중인 디젤 버스. 2026.3.26. 연합뉴스
당선되면 한 달만 대중교통으로 출근을
다시 호치민 시의 새 전기버스 안으로 돌아오자. 이 도시는 완벽하지 않다. 연간 7조 동이라는 막대한 예산의 지속 가능성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대형 버스가 좁은 골목에 들어가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도 있고, 미니버스와 피더 서비스의 부족으로 정류장까지 한참을 걸어야 하는 주민도 많다. 본인도 버스 정류장에서 무더운 햇살을 뚫고 1km 정도 걸어 출근한다. 그래도 필자는 이 도시의 방향이 맞다고 본다. 사다리를 건너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6·3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 묻고 싶다. 여러분이 약속하는 무상교통은 사다리의 몇 번째 칸인가. 당신의 지역구는 지금 몇 번째 칸에 서 있는가.
543개 마을에는 존재 를 약속해 달라. 콜버스를, 자율주행 셔틀을, 100원 택시를. 도시에는 품질 의 빈칸을 채워 달라. 티머니 데이터를 열어 빈 버스 노선을 재설계하고, 친환경 교통을 선택한 시민이 손해 보지 않는 요금 체계를 만들어 달라. 그리고 이 모든 칸이 채워진 뒤에, 비로소 무료 라는 체리를 올려 달라.
진정성을 검증하는 방법도 제안한다. 할머니 테스트 라고 부르자. 당신 지역구의 가장 외진 마을에 사는 80세 할머니가, 대중교통만으로 30분에서 1시간 안에 군이나 읍내 병원에 갈 수 있는가? 이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무상교통을 외치는 건, 빈 접시나 맛없는 음식만 내놓고 무료 뷔페라고 광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하나 더. 당선되시거든 첫 한 달만, 관용차 키를 반납하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해 보시라. 대도시의 시장이라면 지하철과 버스로, 군수라면 콜버스와 농어촌 버스로. 아마 타는 순간 느낄 것이다. 배차가 너무 길다, 환승이 불편하다, 정류장까지 너무 멀다고 하는 불만사항 말이다. 바로 그게 주민들이 매일 느끼는 것이다. 그 한 달이 수백 장의 정책보고서보다 당선자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것이다. 한 달 뒤에도 무상 만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시면, 그때 말씀하시라.
콜롬비아 보고타의 전 시장 엔리케 페냘로사(Enrique Peñalosa)는 이렇게 말했다. 선진 도시란 가난한 사람도 자동차를 타는 도시가 아니라, 부자도 대중교통을 타는 도시다. 한국식으로 고쳐 보자. 선진 지자체란 대중교통을 지금 당장 공짜로 만드는 곳이 아니라, 부자도, 서민도, 단체장도 매일 타고 싶은 대중교통을 만드는 곳이다. 그 다음 모두에게 무상으로 해도 늦지 않다.
사다리를 건너뛴 약속은 공약이 아니라 공수표다. 300원짜리 버스가 곧 0원이 되는 호치민 시에서, 사다리의 빈칸을 외면한 채 공짜만 외치는 후보자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체리를 올리기 전, 케이크는 다 구웠습니까. 사다리의 빈칸은 채웠습니까. 그리고 후보자 여러분은, 출마하는 지역의 버스를 마지막으로 타본 게 언제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