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언어 만들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 [뉴스] 지성용 신부(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
지방선거가 끝났다. 여기저기서 선거 평가가 들려온다. 누구는 민주당의 압승”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절반의 승리”라고 말한다. 국민의힘은 지방 권력의 상당 부분을 잃었지만 서울을 지켰고,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다수를 차지했지만 서울을 잃었다. 몇몇 상징적 지역에서는 도저히 져서는 안 될 선거를 졌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단순히 의석수와 당선자 숫자로만 평가하면 본질을 놓친다. 이번 선거는 계엄과 내란의 위기를 지나온 뒤 치러진 선거였다. 시민은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을 심판했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당 지도부에게도 분명한 경고장을 보냈다. 시민은 민주당에게 권력을 선물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라는 책임을 맡긴 것이다. 이것이 이번 지방선거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민주당은 숫자로는 이겼지만, 민주주의의 미래정치에는 충분히 답하지 못했다. 시민의 안전과 연대, 청년정치와 녹색정치, 소수정당과 시민사회를 끌어안는 더 큰 정치의 언어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이 승리는 불안하다. 이긴 선거 같지만 다음 패배의 씨앗을 안고 있는 듯하다.
서울, 정원오는 왜 ‘정원오’답지 못했는가
가장 먼저 서울을 보자. 정원오는 왜 정원오답지 못했는가. 성동구청장으로서 정원오는 생활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이었다. 행정의 언어, 현장의 언어를 쓰고 시민 삶의 구체성을 아는 정치인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서울시장 선거에서 그는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으로 서지 못했다. 그의 곁에는 이인영, 고민정, 임종석이라는 이름들이 어른거렸다. 그 이름들의 정치적 이력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이름들이 정원오의 강점을 살렸는가 하는 점이다. 정원오는 생활 정치의 얼굴이어야 했다. 서울의 골목, 교통, 주거, 안전, 돌봄, 청년의 삶을 말하는 행정가여야 했다. 그러나 선거는 어느 순간 과거 민주당 주류 정치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정원오는 정원오로 보이지 않았다.
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 선거상황실에 설치된 모니터에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역전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2026.6.4 연합뉴스
선거 기간에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건은 현직 오세훈 시장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정쟁의 문제가 아니었다. 시민의 안전, 도시의 책임, 행정 지도력의 문제였다. 서울시장 후보라면 그 순간 시민 앞에 서서 물었어야 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서울의 노후 인프라는 안전한가.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은 공격이 아니라 책무였다. 네거티브가 아니라 시장 후보의 자격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쟁으로 삼지 않겠다”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점잖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생명 앞에서 점잖음은 때때로 무책임이 된다. 안타까운 죽음으로 정쟁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안전 문제를 정치의 중심에 세우지 않는 것은 틀렸다. 정치는 시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시민의 안전을 두고도 분명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후보를 누가 서울시장으로 인정하겠는가.
미완의 모순 재소환한 조국의 선택
평택의 패배는 더 아프다. 그것은 단순히 한 지역구에서 진 패배가 아니었다. 계엄과 내란의 밤을 함께 건너온 시민들의 뜻보다 당내 정치공학과 계파의 계산이 앞섰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조국의 평택 출마는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함께 싸워온 소수정당, 진보정당, 시민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들은 거리에서, 광장에서, 아스팔트 위에서 함께 싸워왔다. 그러나 선거가 시작되자 그들의 헌신은 충분히 존중받지 못했다. 이미 지역에서 정치적 공간을 만들고 있던 이들과의 협의도, 시민사회와의 소통도 부족했다.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민주적 절차와 연대를 가볍게 여긴 것이다.
더구나 선거는 정책 경쟁이 아니라 네거티브와 진영 대결로 흘렀다. 조국, 김용남, 유의동의 TV토론을 지켜보며 많은 시민들은 물었을 것이다. 저런 방식으로 과연 새로운 정치를 말할 수 있는가. 저런 정치가 과연 대통령을 꿈꿀 수 있는 정치인가. 그 장면 위로 문재인 정부 시절의 그림자가 겹쳐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선한 이미지와 도덕적 언어는 있었지만, 결정적 순간에 구조를 바꾸지 못했던 정치. 검찰개혁을 말했지만 검찰공화국의 등장을 막지 못했던 정치. 조국의 정치는 그 미완의 모순을 다시 소환했다. 평택은 유권자의 무지가 만든 패배가 아니다. 시민은 정치공학을 거부했다. 내란을 함께 막아낸 시민들이 원한 것은 진영 내부의 오만한 나눠먹기가 아니었다. 시민은 묻고 있었다. 당신들은 우리와 함께 싸운 동지들을 존중했는가?”
낡은 선거기술로 패한 건 부산 북갑과 인천도 마찬가지
부산 북갑의 하정우도 같은 맥락에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그를 차출했다. 그러나 왜 그였는가. 무엇을 위한 차출이었는가. 대통령은 원하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도, 정청래 당대표는 ‘십고초려’를 했다고 말했다. 그 말의 정치적 무게를 그는 알았을까. 이번 선거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로 만들어진 대결 구도 속에서 치러졌다. 그것은 누군가의 차기 당대표 명분을 쌓으라고 주어진 기회가 아니었다. 부산 북갑의 패배는 한 후보의 부족함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중앙당의 오만한 판단, 지역정치의 맥락을 가볍게 여긴 정치공학, 그리고 시민을 설득하기보다 판을 짜면 된다고 믿는 낡은 선거기술의 패배였다. 흐르는 물 같은 민심의 구도 위에 자기 이름을 새기려 하면, 물은 금세 방향을 바꾼다.
인천도 다르지 않았다. 시장에 당선된 박찬대가 강력하게 지원했던 구청장 후보들, 연수구의 정지열, 제물포구의 남궁형이 오히려 낙선했다. 지역위원장의 힘, 청년 가점, 당내 경선의 기술이 총동원되었지만, 시민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민심의 풍향, 시민사회의 의견을 무시하고 당내 권력의 힘으로 후보를 세우려 했던 정치가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계엄의 밤을 함께 지새웠던 시민사회의 헌신을 선거가 끝나자 헌신짝처럼 취급해서는 안 된다. 시민은 보고 있었다. 누가 지역을 오래 살펴왔는지, 누가 시민사회와 호흡했는지, 누가 중앙권력의 힘을 빌려 자리를 지키려 했는지를 보고 있었다.
평택, 부산 북갑, 인천은 서로 다른 지역의 사건이지만 하나의 메시지를 남긴다. 아스팔트 위 시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당내 정치공학과 편 가르기, 계파 갈등으로 선거를 치르면 시민은 돌아선다는 것이다. 정치는 민심을 조직하는 일이지, 민심을 대체하는 일이 아니다. 중앙당의 힘, 지역위원장의 힘, 당내 경선의 기술로 후보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시민의 신뢰를 만들 수는 없다. 당내 권력은 후보를 세울 수 있지만, 시민의 마음까지 공천할 수는 없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총괄상임선대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6.6.4. 연합뉴스
중앙당 오만과 시당 권력이 자초한 민심의 회초리
이번 선거에서 더 뼈아픈 것은 민주당이 미래의 언어를 거의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소수정당과의 연대는 없었다. 시민사회와의 협치는 빈약했다. 청년 정치는 구호로만 소비되었다. 녹색정치와 기후정치는 주변부로 밀려났다. 돌봄, 지역소멸, 불평등, 플랫폼 노동, 청년 주거, 기후재난 같은 미래 의제는 선거판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대구에서는 추경호가, 부산에서는 한동훈이, 방송통신 영역에서 2인 체제로 언론을 비틀었던 이진숙과 김태규 같은 인물들이 여전히 야당의 얼굴로 국민 앞에 섰다. 내란을 내란이라 인정하지 않는 불법과 불의의 언어가 버젓이 정치의 한복판에서 선택지를 얻었다.
계엄의 밤을 지나왔는데도, 반민주 세력은 완전히 퇴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얼굴을 바꾸고 돌아왔다.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가. 물론 국민의힘과 극우 정치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러나 민주당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내란 척결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한 지도부, 시민의 안전과 미래보다 권력의 자리를 먼저 탐한 정치인들, 지역과 시민사회를 존중하지 않은 시당의 권력과 중앙당의 오만함이 결국 민주당 지도부를 향한 강한 회초리로 돌아온 것이다.지성용 신부(가톨릭관동대 교수) mindle@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