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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이해할 수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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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영화평론가 할리우드 유명 스타이면서 비주류 영화계를 넘나들며 종종 히피스럽고 힙한 활동을 선보이는 여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첫 장편 연출 데뷔작 는 간단한 작품이 아니다. 수영선수 출신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회고적 에세이로 알려진 만큼 한 운동선수의 인간 승리, 좌절, 극복의 인생 역정을 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온갖 중독으로도 벗어날 수 없었던 야만의 트라우마 그러나 동명 회고록인 『물의 연대기』가 ‘연대기’인 만큼 크게 보면 시간의 흐름을 따르되 파편의 기억이 불현듯 간섭하며 끼어드는 식이라서 독파하기가 만만치는 않다. 미국 비트 제너레이션의 원조 격 작가인 윌리엄 S. 버로스가 즐겨 쓰던 컷 업 기법(선형적 문장을 자르고 재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것)이 연상된다. 영화는 그런 원작이 지닌 난해함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 것이다. 쉬운 작품이 아니다. 인간의 영혼이 갖는 어둠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가, 그 바닥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마치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을 보는 느낌을 준다. 어렵고 지루하다. 그러나 보는 사람들의 영혼에 충격을 준다. 그 타격감이 만만치 않다. 리디아 유크나비치(이모겐 푸츠)는 어린 시절 친아버지 마이크(마이클 엡)의 폭력에 짓눌려 살았다. 영어로 어뷰징(abusing)이다. 성적 학대, 아버지로부터 지속적인 강간을 당했다는 얘기이다. 리디아가 친부의 야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수영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청소년부에서 기량을 보여 아버지의 거듭된 방해(장학금 100%를 주지 않는다며 매번 반대한다)에도 불구하고 텍사스 공과대학에 수영 특기생으로서 입학, ‘집안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지닌 젊은이 중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리디아 역시 각종 중독에 시달린다. 거꾸로 섹스 중독이 되고 알코올에 절어 살며 당연히 약물 중독에도 빠진다. 리디아가 보이는 가장 심한 중독의 경향성은 자기파괴 욕구이다. 그녀는 자신을 학대함으로써 트라우마를 지우려 하거나 없애고 싶어 한다. 그녀가 이후 만나는 한 중년 여성 사진작가(킴 고든)는 그녀와 SM의 관계를 맺기까지 한다. 이 이지적인 외모의 작가는 리디아를 묶고 채찍으로 등과 허벅지를 때리며 ‘고통을 없애 버리라’고 소리 지른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리디아의 고통과 고민은 없어지지 않는다.   16mm 카메라 크로즈업으로 지켜본 한 여성의 파괴된 삶 리디아는 복잡하고 충동적인 남자관계, 그들과의 무절제한 섹스, 이성과 동성애를 오가는 다소 난삽한 성관계로 자신을 해방시키고 싶어 한다. 제임스 테일러( ) 풍의 목소리와 노래를 부르기를 좋아하는 순진한 청년 필립과는 캠퍼스 커플이었지만 남자는 여자의 뜻하지 않은 폭력적 성향을 견디지 못했다. 리디아는 필립과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의 사산을 겪기도 한다. 리디아는 행위예술가인연,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남자 데빈(톰 스터리지)과 결혼해 6년을 살지만, 당연히 끝이 좋았을 리 없다. 영화는 시종일관 극단적 클로즈업(extreme close-up)과 클로즈업으로 일관한다. 감독인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유달리 이번 영화의 촬영에 ‘각을 준’ 느낌이다. 스튜어트와 함께 한 촬영감독 코리 C. 워터스는 영화 전체를 16mm 필름 카메라로 찍었다. 16mm 특유의 정제되지 않는, 거친 느낌이 작품과 맞는다고 봤을 것이다. 35mm 카메라를 쓰기에는 저예산영화로서 제작비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16mm의 경우 피사계 심도가 얕아 배경을 고스란히 드러내게 되기 때문에 큰 스크린의 극장에서 볼 때 풀 쇼트보다는 클로즈업이 더 적당한데다 효과적이라 봤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파편적인 기억에 대한 이미지는 풀 쇼트나 미디엄 쇼트 같은 것이 아니다. 아주 가깝고 큰 이미지의 클로즈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는 촬영의 미학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으로 배우 출신 감독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카메라의 사용에 식견이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된 감독과 촬영, 배우 제목처럼 연대기 곳곳에는 물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욕실 바닥에 흥건한 물 위로 상처의 증거인 핏물이 엉키는 컷이라든가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마다 물속을 유영하며 독백하는 시퀀스가 등장한다든가 사산한 아이의 재를 손에 움켜쥐고 있다가 바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물에 잠겨 놓아준다거나 하는 식이다. 선수 시절의 수영경기 장면이 끼어드는 가운데 여자아이가 목숨 걸고 헤엄치는 걸 볼 때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라고 말하는 리디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리디아는 그렇게 헤엄치듯 살아남았다. 일렁이는 물의 이미지는 편집상 특이점으로도 드러나는데 직후의 컷이 직전의 컷과 교차되며 전진과 후퇴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영화 속에서 이어지는 클로즈업 장면들은 주인공 리디아의 분절된 기억의 파편들을 몽타주 기법으로 상상하고 형상화하기에 최적의 느낌을 부여한다. 탁월한 선택이다. 다만 극단적 클로즈업의 촬영은 배우에게 있어 매우 힘든 촬영이며 캐릭터에 대한 완벽한 몰입이 주어지지 않는 한 그 인물을 표현해내기가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눈가의 떨림 하나, 미세한 손짓과 몸짓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연 배우인 이모겐 푸츠는 실존 인물인 리디아 유크나비치가 겪었던 수많은 일들에 완전히 동화하고 그녀의 트라우마를 고스란히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감독인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촬영을 맡은 코리 C. 워터스와의 호흡이나 작품의 내용과 감성에 대한 공유가 완벽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 아닌 글쓰기 통해 비로소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된 주인공 이런 영화를 위해서는 촬영 이전의 프리 프로덕션에서 연출과 촬영, 배우가 거의 한 가족처럼 생활하며 호흡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이모겐 푸츠는 촬영 기간 내내 ‘연인처럼’ 때로는 ‘(극 중 인물들 처럼) 원수 같은 관계’로 지냈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극 중 주인공에게 빙의되는 지점과 순도가 높아야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영화 전반부 내내 이어지던 클로즈업 씬들은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평범한 풀 쇼트, 미디엄 쇼트가 구사된다. 이때는 리디아가 마침내 자신의 반려자가 되는 남편 앤디(찰리 캐릭)와의 안정적인 삶을 되찾고 아들인 마일스를 키우게 된 때다. 리디아는 마침내 삶의 평온을 찾게 된다. 리디아가 정신적 통증으로부터 해방되는 건 글쓰기를 통해서이다. 리디아는 자신이 아버지에게서 겪었던 불편하고 부당한 경험과 트라우마를 글로 쓰기 시작한다.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또 한 명의 비트 세대 작가 켄 키지(제임스 벨루시)로부터 문학 수업을 듣는다. 켄 키지는 등의 작품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이다. 켄 키지는 리디아에게 자기 아들 제드가 죽었을 때 자신 역시 존재를 없애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말한다. 삶이 던지는 일들을 포용할(수 있는) 큰 사람은 없다.” 그만큼 삶을 영위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켄 키지는 리디아가 뛰어난 작가가 될 것이라 예언한다. 그리고 리디아는 실제로 그렇게 된다.   인간에 대한 이해 구하려는 존재론적 철학서 같은 작품 영화 는 지난하고 폭풍 같았던 한 인간의 삶을 고찰한 기록의 연대기이다. 비슷한 질풍노도의 배우 생활을 겪었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자신의 장편 데뷔작으로 이 문학 작품에 동화된 것이나, 8년이라는 제작 기간에 공을 들여 만든 이유일 것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2016)라는 영화에서 끊임없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여대생 소피 역을 실감 나게 연기하기도 했다. 리디아는 크리스틴 스튜어트 자신이었을 것이다. 는 부조리한 세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사회과학의 각종 논리나 수사와 함께 인간의 어두운 심연에 대한 이해 역시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새삼 강조하는 작품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상대인 인간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러지 못하면 세상을 알아 낼 수도 없다. 변화를 이룰 수는 더더군다나 없다. 세상과 인간은 이음동의어이다. 는 오랜만에 만나는 존재론적 철학서와 같은 영화이다. 이런 영화는 종종 세상사로 혼탁해진 뇌를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 28일 전국 개봉된다. 물론 예술영화전용관 중심으로 상영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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