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경쟁력 소프트 파워 스스로 허무는 트럼프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22일 미국 트럼프 정부 국토안보부는 하버드대의 유학생 등록 중단 결정을 대학 측에 통보했다. 뉴욕타임스 5월 22일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무력공격에 대한 대학생들의 항의시위 등을 둘러싸고 대학들과 갈등을 빚어 온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22일 하버드대학에 외국 유학생 및 교환방문자 프로그램 인가를 즉각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유학생을 받을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크리스티 노엄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이날 X(예전의 트위터)에 하버드대학에 대한 유학생 등록 인가를 취소했으며, 하버드대에 지금 재학 중인 유학생이나 외국 연구자들이 다른 대학 등으로 옮겨가지 않을 경우 법적 체류자격을 잃게 된다는 조치 내용을 올렸다.
노엄 장관은 여러차례에 걸쳐 유학생들의 부적절한 행동 기록 등에 대한 정보 제공을 하버드대에 요구했으나 합당한 회답을 받지 못했다며 “하버드대가 캠퍼스에서 폭력과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고, 중국공산당과 협력하고 있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지게 하겠다”고 주장했다. 노엄 장관은 이날 <폭스 뉴스>에 출연해 하버드대에 대해 취한 조치가 다른 대학들에 대해서도 취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라고 말했다.
국토안보부는 산하의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운영하는 학생·방문자 프로그램(SEVP)을 통해 미국 대학들의 유학생 등록 인가 여부를 통제할 수 있다. 이번의 인가 취소 조치로 하버드대는 유학생이 학생비자를 취득하는데 필요한 서류뿐만 아니라 연구자나 교직자용 비자 취득에 필요한 서류도 발행할 수 없게 된다.
적지 않은 하버드대 재학 한국 유학생과 유학 지망생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22일 하버드대에 유학생 등록 인가 취소를 통보한 트럼프 정부 국토안보부 크리스티 노엄 장관과 하버드대. 가디언 5월 22일.
국토안전부 사흘 내 유학생관련 모든 기록 제출 요구
국토안보부는 이번 조치 철회 조건으로, 유학생들이 참여한 (가자지구 무차별 공격 반대)시위나 규칙 위반 행동과 관련한 동화상이나 음성 등 지난 5년간의 모든 관련기록들을 72시간(사흘) 안에 제출할 것을 요구했으나, 하버드대가 거기에 응할 가능성은 없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트럼프 정부 조치가 미국 명문대학 중 하나인 하버드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학생들을 유치하려는 능력을 직접적으로 훼손함으로써, 오랫동안 미국의 학문과 경제, 과학 분야의 가장 큰 힘의 원천 중의 하나였던 고등교육 문화를 뒤엎으려는 정부의 시도를 더욱 강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버드대 트럼프 정부 조치 “불법”이라며 반발
하버드대는 국토안보부의 조치가 “불법”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제이슨 뉴턴 하버드대 홍보담당 이사는 14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과 학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하버드가 대학뿐만 아니라 미국을 풍요롭게 해 온 자체 역량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국토안보부의 조치가 “하버드 공동체와 국가에 심각한 해를 끼칠 위험이 있고, 하버드의 학문 및 연구 사명을 훼손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하버드대는 지난달 30일, 모든 유학생들의 교과과정과 불법행위에 연루된 학생비자 소지자들에 대한 정보 등 8가지 조사 보고 기준을 제시한 정부 조치에 대해 법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정보 범위를 넘어섰다는 우려를 정부에 전달했다. 같은 날 메러디스 위닉 부총장은 합법적으로 요구되는 정보만 정부에 제공하겠다면서, 학생들에게 “학업에 최대한 집중하라”고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지난 4월 중순 트럼프 정부가 같은 사안에 대해 취한 조치가 하버드대의 고육과정과 입학정책 및 채용 관행에 대한 행정부의 권한을 넘어서는 위법 위헌적 조치였다며 소송을 제기한 하버드대는 이번 조치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할 갸능성이 높다.
국토안보부 “보고요건 준수하지 않았다”며 제재
노엄 장관은 22일 하버드대가 “간단한 보고 요건을 준수하지 않았다”면서 학생비자 프로그램 대상에서 이 대학을 제외했다. 그러면서 4개로 줄였던 학생 기록 기준 목록을 6개로 다시 늘리면서 하버드대에 72시간 안에 기록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뉴욕타임스>는 정부 조치에 비판적인 다른 다수의 관계자들 말을 인용했으나, 모두 익명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며, 정치적 입장에 따라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극도의 분열, 분단상태를 보이고 있는 미국의 정치사회적 분위기를 전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영화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 관람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영돈 PD, 윤 전 대통령, 전한길 전 한국사 강사. 2025.5.21. 연합뉴스
‘친중’ 리버럴 ‘좌파’를 극혐하는 한미 우파 동조현상
이번 사태에 대해 리버럴(자유주의적, 진보적)계 언론매체들은 정부 조치가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 규정하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는데 반해, 보수계 매체들은 대학의 ‘좌경화’에 대한 시정 조치라면서, 하버드대가 반유대주의와 친하마스적 활동을 용인하고 있다며 정부 조치에 찬동했다. 이번 사태가 리버럴한 학술계와 보수적인 정계, 유학생과 이민을 중시하는 글로벌주의파(국제파)와 배외적인 극우 내셔널리즘파(국수주의파) 간의 깊어가는 가치관 분단의 상징이라는 지적이 있는 한편으로, 학생 시위나 항의활동이 국가에 의해 ‘질서 위반’으로 감시당하면서 미국의 장기였던 표현 및 학문의 자유와 공공질서의 경계선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트럼프 1기 정권 때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미국사회의 이런 분단과 대립 현상들은 트럼프 2기 정권 들어 더욱 격심해지고 있다. ‘친북 친중 좌파’ ‘반국가세력’ 척결을 부르짖은 윤석열 정부 3년간의 한국사회가 그런 미국사회와 일종의 동조현상을 보인 것은 기묘한 일이다.
트럼프 정부의 이번 조치가 러버럴한 대학들에 적대감을 지닌 골수 지지층으로부터는 갈채를 받겠지만, 미국 국력을 약화시키는 자해행위로, 트럼프가 미국을 쇠퇴로 몰아간 결정적 역할을 한 대통령으로 후세에 기억될 것이라는 저주에 가까운 논평들도 나왔다.
얼마전 타계한 조지프 나이가 패권국 미국의 경쟁력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소프트 파워’를 얘기하면서, 그것이 중국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라고 했는데, 트럼프가 그것을 스스로 허물어뜨리고 있다는 지적과도 상통한다.
중국 유학생 많은 하버드에 “중국공산당과의 협력” 언급
트럼프 정부의 조치는 외국 유학생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하버드대의 재정 운용에 타격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하버드대 등록정보에 따르면 2024~25학년도에 약 6800명의 유학생들이 이 대학에 재학 중이며, 이는 전체 재학생의 약 27%에 해당한다. 2010~11학년도에 비해 19.7%가 증가한 수치다.
2025~26학년도의 수업료는 5만 9320달러(약 8100만 원)이며, 여기에 기숙사비와 식비를 포함하면 최대 8만 7000달러(약 1억 2000만 원)까지 올라간다. 하버드는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들이 장학금 수혜자가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으나, 유학생들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수업료를 내고 있다고 <뉴욕타임스> 등은 전했다.
트럼프 정부 국토안보부의 이번 조치는 명백히 하버드대의 그런 특성 내지 취약점을 의도적으로 노린 것이라는 지적들이 많다. 외국 유학생을 받지 못하게 될 경우 하버드대 등 미국의 주요 대학들이 운영상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또 국토안보부 조치가 시행되면 대학들뿐만 아니라 미국에 유학 중이거나 유학하려는 외국인 학생들이나 연구자들도 행동을 극도로 조심하며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 여러 지역에서 유학생 비자가 돌연 취소되거나 강제퇴거당하는 사례들이 알려지면서 재미 유학생들이 언행을 조심하면서 출입국을 꺼리고 있다는 보도들이 나돌고 있다. “미국에 유학하는 것 자체가 리스크(위험)가 된 상황”이라는 지적도 있다.
‘좌파’ 리버럴을 극혐하는 트럼프 정부는 ‘반유대주의’를 이유로 유학생(대학원생 포함)들의 부적절한 행동에 관한 기록 제공 등을 하버드대에 요구하면서 DEI(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등 리버럴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시책들의 폐지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한 하버드대에 지금까지 26.5억 달러(약 3조 6천억 원)의 정부 지원을 동결했다. 하버드는 이같은 조치가 위법 위헌이라며 취소 요구 소송을 제기했다.
“중국공산당과의 협력”에 관한 노엄 장관의 언급은 미국에 만연한 반중정서를 이용해 유난히 중국인 유학생들이 많은 하버드대를 더욱 난처하게 압박하며 자신들의 조치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과학에 대한 공격은 심각한 자해 행위다. 미국이 가장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코끼리(공화당)에 올라탄 트럼프, 과학적 기반 등 미국의 경쟁력을 마구 짓밟으며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이미지 그림. 이코노미스트 5월 22일
“인재 유치 능력 없는 하버드는 하버드가 아니다”
530억 달러가 넘는 기금을 보유한 하버드대는 미국 대학들 중에서도 가장 부유한 대학에 속한다. 법률가들은 정부가 삭감해 버린 연방 연구 지원금도 돌려받을 수 있는 강력한 근거들을 하버드대가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이번 조치는 그런 하버드대조차도 과중한 조사와 광범위한 예산 삭감 등을 통한 집요한 공격으로 내부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트럼프 정부가 결국 하버드대에 삭감한 지원금을 반환해야 할 상황이 되더라도, 대학들은 최근 법무부가 하버드대 입학정책에 대해 복잡한 기록 제출 요청을 시작한 것과 같은 추가적인 정부 요구들에 직면하면서 더 큰 부담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 국토안보부 관리를 지냈고 지금 이민옹호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안드레이 플로레스는 이번 조치에 대해 “국토안보부가 대학의 심사 시스템 접근 권한을 취소해 학생 구성을 개편하려는 시도를 (전에는) 한 적이 없다”며, 특히 수백 개 대학 중에 한 곳만을 표적으로 삼은 것도 “전례없는 일”이라고 했다.
하버드대 4년생인 스웨덴 국적의 레오 거든은 “유학생이 없고 전 세계 최고의 인재를 유치할 능력이 없다면 하버드는 이미 하버드가 아니다”고 했다. 그는 “트럽프 정부는 지금 우리를 포커칩처럼 이용하고 있다”면서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