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투자은행(EIB), EU 녹색 보고 규정에 따른 평판 재앙 우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미지=유럽투자은행
유럽투자은행(EIB)이 EU의 새로운 보고 규정 도입으로 인해 기후 은행으로서의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7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EIB 내부 이메일을 입수해, 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따른 친환경 투자 비율 보고가 EIB에 미칠 잠재적 영향을 둘러싼 위기감을 보도했다.
세계 최대 다자개발은행으로 꼽히는 EIB는 2021년부터 5000억유로(약 755조원) 규모의 대출 포트폴리오에서 화석연료 관련 투자를 전면 중단하며 기후 행동 선도 기관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EIB의 운영책임자인 장-크리스토프 랄루(Jean-Christophe Laloux)는 동료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EU 택소노미에 따른 투자 보고가 평판 리스크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EIB 자체 '기후 행동 비율'은 50% 넘는 반면, '녹색 자산 비율'은 1%
올해 EIB는 EU 택소노미 규정에 따라 자산 중 기후 친화적인 투자의 비율을 나타내는 '녹색 자산 비율'(Green Asset Ratio, GAR)을 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EIB가 자체 기준으로 정의한 기존 '기후 행동 비율'(Climate Action ratio)이 50%를 넘는 반면, GAR은 약 1% 수준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EIB가 환경 금융 선도 기관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하는 데 치명적일 수 있다.
랄루는 이메일에서 "현재 방식으로 EU 규정을 준수하면 우리에게 평판 재앙이 닥칠 것"이라며 규정 준수를 연기하고, EU 집행위원회와의 협의를 통해 "적용 가능한 규정"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IB의 우려는 EU 회원국 정부와 산업계의 목소리와 맥을 같이한다. EU의 지속가능 금융 규정은 기후 행동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되었지만, 일부에서는 데이터 수집과 보고 의무가 지나치게 복잡하고 부담스럽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SME)에 대한 보고 의무는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다.
EIB의 나디아 칼비뇨 총재를 포함한 6개 개발은행 총재가 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현재 방식의 녹색 자산 비율 산정은 녹색 투자로 인정될 수 있는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며, 정책 주도형 금융기관의 기후 행동 촉진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IB, 투명성 부족 문제로 비판받고 있어
한편, EIB는 투명성 부족과 내부 관리 문제로 비판받고 있다. 비영리 단체 CEE 뱅크워치의 정책 담당관 안나 로겐벅(Anna Roggenbuck)은 "EIB가 프로젝트의 탄소 배출량 계산 방식과 배출 범위를 공개하지 않아 외부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비영리 단체 파이낸스 워치(Finance Watch)의 연구 책임자 줄리아 사이몬(Julia Symon)도 EIB의 ‘기후 행동 비율’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산정되었는지 알기 어려워 평가가 어렵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 EIB 직원 중 한 명은 "일부 대출의 경우 '친환경' 라벨이 붙어 있지만 실제 환경적 효과가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고 FT에 말했다.
지난해에는 스페인 바이오매스 공장 건설을 위해 6000만유로(약 905억원)를 대출한 EIB의 결정이 자체 기준을 위반했다는 환경단체 클라이언트어스(ClientEarth)의 소송이 유럽사법재판소에서 인정되기도 했다.
EIB는 2023년 자체 대출의 60%에 해당하는 443억유로(약 67조원)를 기후 친화적 프로젝트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EIB 대변인은 "명확한 녹색 투자 평가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EU와의 협력을 통해 녹색 보고 규정이 모든 녹색 투자를 포괄하고 장려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