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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이 다 보이는 그대로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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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영화평론가 정치 고관여층도 종종 미스터리 영화를 봐야 한다. 정치적 인사들일수록 미스터리 드라마로 두뇌를 쉬게 하거나, 머리를 한 바퀴 돌리며 세척시켜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더 잘 보일 거다. 넷플릭스 드라마 가 적당한 작품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이름을 붙였지만 이게 그녀의 작품이 맞을까? 살짝 의심이 들게 한다. 그만큼 뭔가를 많이 바꿨는데 처음에는 그게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다르다. 이런 작품은 크리스티의 것 중에서는 없거나 아주 드문 경우라는 생각이 내내 떠나지를 않는다. 는 크리스티의 미스터리 장편소설 66편 가운데 9번째 작품으로 1929년에 발표됐다. 에르퀼 푸아로가 활약하는 등을 쓰던 중에 나온 작품이다. 비교적 초창기 작품이지만 그 때문에 다르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여기엔 뭔가가 있다. 어쩌면 그것 자체가 미스터리이다.   귀족 가문이 사는 성에서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잇단 죽음 영화 속 런던경시청의 배틀 총경(마틴 프리먼. 영국의 시즌 드라마 에서 왓슨 역의 배우로 유명하다)은 주인공이자 ‘번들’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레이디 아일린 브렌트(미아 멕케나 브루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떤 것들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고 또 어떤 것들은 보이는 그대로다.” 모든 일은 레이디 아일린 브렌트와 그녀의 어머니 레이디 캐터햄(헬레나 본햄 카터)이 사는 가상의 공간인 저택 ‘침니스’에서 발생한다. 빅토리아 양식의 귀족용 주거 공간으로 성을 방불케 할 만큼 대규모이다. 이 두 모녀의 이름 앞에 ‘레이디’가 붙는 것은 이들이 귀족(Lord, 남작 이상의 귀족에 대한 존칭)의 부인이자 딸이기 때문이다. 아일린의 아버지는 (가문이 갖고 있던 영지의 이름을 따) 캐터햄 경으로 불리던 인물(이언 글렌. 시즌 드라마 의 기사 조라 모르몬트, 영화 시리즈의 악당 샘 아이작스 역으로 유명)이다. 모든 사건은 이 캐터햄 가문 소유인 저택에서 시작되지만, 그에 앞서 오프닝 시퀀스에 따르면 한 남자의 죽음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그 남자가 바로 아일린의 아버지로 보인다. 아일린은 아빠도 죽었지만 추측건대 사랑했던 오빠 토마스 에드워드 브렌트도 전쟁 중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이 3부작 드라마의 배경은 1925년이다.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던 때이고 모든 대규모 전쟁의 전후 상황이 늘 그렇듯 이 영화의 배경 역시 기이한 흥분과 활황에 들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보인다. 영화 초반부는 침니스 저택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파티 장면이다. 이 영화는 도입부에 죽는 남자를 제외하고는 이후엔 죄다 젊은 친구들이 희생당한다. 주요 인물들은 모두 아일린의 친구이자 사실은 오빠 토마스의 친구들인데 침니스 아일린의 방 침대에서 의문의 시체로 발견되는 제리 웨이드(코리 밀크리스트)가 살인극의 시작을 알린다. 제리는 오빠 토마스의 절친이었고 현재 주인공 아일린과 ‘썸을 타려는’ 남자이다. 제리는 파티에서 아일린에게 미래를 약속하는 말을 남긴 채 주검으로 발견된다. 아일린은 충격을 받는다. 더 중요한 설정은 제리와 아일린을 둘러싼 오빠의 친구들 모두 외무부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세븐 다이얼스’는 무엇일까?” 달아오르는 궁금증 제리도 외무부 직원이었으며 그가 늦잠 자는 걸 놀려 먹을 요량으로 7개의 자명종 시계로 장난을 치는 친구들인 로니 데버러(나브한 리즈완)와 빌 에버슬레이(휴이 오도넬)도 외무부 소속이다. 로니 데버러는 제리의 뒤를 이어 총에 맞아 죽는데, 죽기 전 아일린과의 통화에서 사실 자신들이 갖다 놓은 자명종 시계는 7개가 아니라 8개였다고 말한다. 아일린은 이 모든 얘기를 자신과 친한 지미 테시저(에드워드 블루멜)에게 말한다. 아일린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혼란스러워 하며 주변을 믿기 힘들어 한다. 더군다나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아일린의 뒤를 캐는 남자는 바로 배틀 총경이다. 그런 와중이어서인지 그녀는 지미에게 말한다. 너는 믿을 수 있을까?” 지미 테시저도 나중에 범인에게 총상을 입고 오른팔을 다친다. 지미는 처음에 죽은 제리 웨이드의 동생 로레인(엘라 래 스미스)을 좋아한다. 등장인물들이 상당히 많고 인물마다 들고 낢이 들쭉날쭉해서 전체 이야기를 따라가려면 집중해야 한다. 게다가 ‘세븐 다이얼스’라는 최대의 퍼즐을 풀어야 한다. 도대체 세븐 다이얼스는 무엇인가. 시계인가? 시계를 가장한 폭탄인가? 아니면 어느 장소 이름인가. 그것도 아니면 극비 암호인가.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가짜 소동극을 감추기 위한 눈속임에 불과한 것일까. 의 총 3부 중 2부는 내내 그 궁금증으로 몸이 달게 만든다.   크리스티의 푸아로 경감 대신 등장한 MZ 세대 여탐정 짐작건대 (꼭 소설을 따로 읽어 보지 않더라도) 이 드라마 는 원작을 상당 부분 아니 대폭 바꾼 작품처럼 느껴진다. 두 가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을 텐데, 하나는 극중 인물의 중심과 비중을 여성 주도로 완전히 바꾸었을 것이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원작과 달리 드라마를 주도하는 연령층의 세대교체를 시도했을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원래의 크리스티라면 배틀 총경의 비중이 높았을 것이다. 에르퀼 푸아로의 또 다른 캐릭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드라마에서 배틀 총경은 한마디로 아일린의 병풍처럼 느껴진다. 노련하고 날카로운 수사 감각을 지니고 있음에도 행동주의란 측면에서는 아일린에 약간 뒤지게끔 그려진다. 이 둘이 처음 만날 때 자동차 추격전을 벌이는데 자신을 끝까지 쫓아오는 아일린을 보며 배틀은 감탄의 웃음을 흘린다. 이 3부작 드라마는 크리스티의 원작에서 뼈대는 가져오되 푸아로 경감(탐정)과 미스 마플의 세대를 교체하는 새로운 캐릭터의 시대를 보여주려 한 작품이다. 마플과 푸아로의 시대는 지나갔다. 미스터리 영화나 드라마 역시 세대교체의 시대정신을 실현해야 한다는 듯 MZ세대의 생기 넘치는 탐정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다소 우당탕하는 서사의 구조, 앞뒤 연결의 이상함도 어쩌면 그런 건 잘 따지지 않는 MZ세대 식 화법과 닮아있다. 따라서 이 드라마의 제목은 가 아니라 라고 바꿔야 할 판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발랄하며 좋다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어설프다고 혹평할 수도 있겠다. 평가는 그 지점에서 엇갈린다. 사건의 실체와 진범을 찾아 고군분투하던 중 모든 일의 배후인 사람과 마주한 아일린은 이 모든 것이 대단한 사명이나 역사적 무엇 때문이 아니라는 점에 놀란다. 아일린은 실망한 듯, 다소 경멸스럽다는 듯 묻는다. 이때 그녀의 손에는 계속해서 총이 들려 있다. 푸아로나 미스 마플과 달리 신세대(1925년에는 영국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제한적으로 주어졌고 아일린은 투표권이 없는 나이였고 그런 시대를 반영함에도)는 총을 겨누는 데 주저함이 없다. 아일린은 말한다. 이 모든 게 다 그것 때문이었어요?”   당신 눈에는 이 미스터리 드라마에 담긴 시대정신이 보일까? 눈이 밝은 사람들이라면 에피소드 2부의 15분 4초쯤 아일린이 뒷골목 클럽 ‘세븐 다이얼스’에 들어갈 때 벽 위로 보이는 7개의 시계, 세계 여러 나라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는 시계의 모습으로 소위 세븐 다이얼스가 무엇인지 살짝 깨달을 수도 있다. 혹시 글로벌 조직 같은 것? 이 세븐 다이얼스의 정체를 놓고 드라마는 반전에 반전, 반전의 중복을 꾀한다. 모든 미스터리는 처음의 악한이 결국엔 악한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처음에 내 편이라는 사람이 나중에 보면 내 편이 아니라는 것으로 흘러가기가 십상이다. 어떤 것들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고 또 어떤 것들은 보이는 그대로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놀라운 것, 가장 발칙한 것은 절대 배반할 수 없는 관계를 여지없이 배반하고 등을 돌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아일린의 손에는 총이 들려 있다. 그 결말 때문에 살짝 드라마 전체가 황당하게 느껴지지만, 어찌 보면 그것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얼마나 강한 세대교체를 원하고 있는가를 느끼게 해준다. 푸아로와 미스 마플의 시대는 갔다. 애거사 크리스티 소설도 이제 시대에 맞게, 교체된 세대에 맞게 바꿔내야 한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중심 의제이다. 그 뜻을 잘 헤아리고 보면 드라마의 정체, 드라마 속 진짜 배후의 실체를 알아낼 수 있다. 모든 미스터리 드라마에는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 보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보인다. 세상사가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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