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입 아닌 우리 손으로 더러운 전쟁 끝내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일으킨 이란 침략 전쟁이 한 달을 넘어섰다. 21세기 전쟁의 비극은 그것이 전 지구적 실시간 중계를 통해 소비된다는 점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전쟁을 마치 재미있는 비디오게임 처럼 전시해 왔다. 실제로 미 국방부가 배포하는 영상 속에서 정밀 유도 폭탄이 목표물을 타격하는 장면은 게임 영상과 교차 편집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화면 뒤에서는 생명들이 으스러지고 있다. 이란 미나브 초등학교에서 폭격으로 살해당한 170여 명의 어린이들의 비명은 미국의 주류 미디어에서 이미 지워진 지 오래다. 전쟁이 게임처럼 보일 때,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요 일간지와 방송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은 이란 인민들의 피와 눈물이 아니라 유가 150달러 돌파 , 코스피 6000선 붕괴 , 수출 비상 같은 차가운 경제 지표들이다. 전쟁은 인도주의적 재앙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하방 리스크를 결정하는 변수나 강대국들의 지정학적 게임으로 취급된다. 인간의 생존보다 주식 계좌의 숫자가 우선시되는 거꾸로 된 세상이다.
하지만 이 무감각의 단단한 껍데기는 이미 안쪽부터 갈라지고 있다. 폭격당한 학교 잔해 속에서 발굴되는 이란 소녀의 사진 한 장은 수만 명의 가슴에 균열을 냈다. 여기에 유가 급등으로 인한 실질적인 생활비 압박이 더해지자, 시민들은 묻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도심에서 열린 왕은 없다 (No Kings) 시위에 참가한 이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3.28 LA EPA 연합뉴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한국에서도 수많은 시민사회단체가 결집하여 침략전쟁규탄 파병반대 평화행동 이 만들어졌다. 지난 3월 28일, 미국 전역 3000여 곳에서 열린 반트럼프 노 킹스 시위에서는 900만 명이 모여 전쟁 반대 도 같이 외쳤다. 이는 전 세계적인 반전평화 운동의 거대한 서막이다. 그러나 반전평화 운동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이번 전쟁이 워낙 기습적이었던 탓도 있지만, 우리 내면에 도사린 몇 가지 장벽이 발목을 잡고 있다. 먼저 학습된 무기력 이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벌어진 참혹한 전쟁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거대한 반전 시위가 전쟁을 멈춘 기억은 희미하다. 우리가 외친다고 저 광기 어린 권력자들이 멈추겠는가 라는 체념이 퍼져 있다.
여기에 더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가 적당히 승리 를 선언하고 곧 전쟁을 끝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수동성을 부추긴다. 트럼프 행정부가 자행한 관세 전쟁, 이민자 추방, 베네수엘라 침공, 심지어 그린란드 강탈 시도까지, 끝없는 악행의 속도가 대중의 피로감을 일으키고 관심을 분산시킨 점도 있다. 하나의 비극에 집중하기도 전에 또 다른 비극이 덮쳐오니, 무엇에 먼저 분노할지 혼란에 빠질 정도이다.
더불어 한국적 맥락에서 가장 강력한 억압 기제는 한미동맹의 신화 이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곧 한미동맹에 대한 도전이자 국익에 반하는 행위로 매도되기 일쑤다. 주류 언론과 보수 세력은 반전 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미 라는 딱지를 붙여 이데올로기적 사냥을 시작한다. 이 뿌리 깊은 검열 기제는 시민들의 전쟁 반대 목소리를 가로막는다.
기억의 단절도 뼈아픈 대목이다. 우리에게는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당시의 거대한 촛불,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운동, 2017년 사드(THAAD) 배치 반대 투쟁,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등 반전평화 운동의 소중한 유산이 있다. 하지만 이 경험들이 조직적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세대 간, 부문 간에 흩어져 있다. 이 공백을 메우고 끊어진 다리를 이어가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미 해군과 해병대 병력 약 3500명으로 구성된 트리폴리 상륙준비단과 제31 해병원정대를 태운 강습상륙함인 트리폴리함이 이란과의 지상전을 위해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 2026. 03. 28 [미 중부사령부 X계정 캡처] 시민언론 민들레
정치적 대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진보개혁 4당이 파병 및 전쟁 반대 결의안 을 국회에 제출하며 분투하고 있지만, 집권한 다수당인 민주당의 지도부는 여전히 전략적 모호성 뒤에 숨어 있다. 미국의 침략을 규탄하고 파병에 반대하는 명확한 당론을 정하기보다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틈 속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은 노골적으로 전쟁 지지와 파병 찬성을 선동한다. 그들은 혈맹의 도리 와 국익 을 운운하며 청년들을 사지로 내몰 준비가 되어 있다. 결국 국회와 정치권이 알아서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고, 우리가 광장에서 강력한 힘을 보여주어 그들이 우리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희망과 무기가 있다. 바로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이어졌던 윤석열 탄핵 투쟁의 경험이다. 수백만 명이 광장에서 권력을 흔들고 실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이 광장의 민주주의 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라는 체념을 돌파할 수 있는 가장 튼튼한 토대다.
게다가 지금의 침략 전쟁은 단순한 도덕적 문제를 넘어 우리의 생존 문제로 치닫고 있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의 70% 이상을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 이 통로가 봉쇄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유가 폭등과 물가 상승은 우리의 장바구니를 직격하는 중이다.
깡패 같은 트럼프의 전쟁이 우리의 주머니를 털고 있다 는 고발은 가장 비정치적인 시민의 발걸음도 광장으로 돌릴 수 있는 강력한 고리가 된다. 이는 전쟁의 직접적인 경제적 피해를 받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노동자들이 이 운동의 전면에 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징병제 국가에서 파병 가능성에 불안해하는 청년들의 정서는 조직화의 씨앗이 되어야 한다.
3월 28일 광화문에서 진행된 침략전쟁규탄 파병반대 2차 평화행동 – 출처: 침략전쟁규탄 파병반대 평화행동
이를 위해서 전쟁 반대, 파병 반대 라는 단일하고 명확한 과제 아래 가장 광범위한 연합을 건설해야 한다. 이 운동의 입구는 가능한 한 매우 넓어야 한다. 이란 정권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는 당연히 연대의 조건이 될 수 없는 문제이다. 나아가 함께 싸우기 위해 제국주의나 자본주의, 한미동맹 등에 대한 확고한 비판 의식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한미동맹, 주한미군과 미군기지 등이 왜 문제이고 반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자각은 반전평화 운동 속에 함께 행동하고 토론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출구일 수 있지만, 반전평화 운동에 함께하기 위한 입구일 수는 없다. 거리, 작업장, 대학 캠퍼스, 종교 공동체 등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곳에서 반전평화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어떤 정당성과 명분도 없고, 어디서든 압도 다수의 시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전쟁이다. 이런 거대한 반전평화의 정서를 가시적인 운동으로 결집시키려면 우리가 그것을 담아낼 더욱 커다란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이란에서 시민과 아이들이 죽어가고, 유가 폭등이 우리의 장바구니를 직격하면서 이 더러운 전쟁의 가면은 벗겨지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수백만 명의 미국 보통 시민들이 내건 구호는 복잡한 내용이 아니라 지금 당장 철군하라(Out Now) 였다. 이 단순하고도 강력한 요구가 전쟁 기계의 톱니바퀴에 모래를 뿌렸다. 오늘날 우리의 요구도 명확하다. 이 더러운 전쟁에 단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마라. 이것을 요구하는 가장 폭넓고 강력한 광장의 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이겼다 , 일주일 주겠다 , 지옥을 볼 것이다 , 열흘 주겠다 ... 트럼프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말을 바꾸고 있고, 또 이란의 유전과 발전소를 초토화시키겠다 며 공개적으로 전쟁범죄를 협박하고 있다. 이런 트럼프의 입만 보면서 설마, 혹시나 하는 동안에 이란에서만 벌써 2000여 명이 죽었다. 설마 파병 안 하겠지 , 곧 끝나겠지 할 게 아니라 우리 손으로 끝내야 한다. 트럼프의 입이 아니라 우리 옆의 이웃들의 눈을 보고 함께 외쳐야 하는 순간이다.
☞ 파병 반대를 위한 5만 국민동의청원 https://bit.ly/nowar_i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