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아, 더 이상 아이들을 죽이지 마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이슬람권을 나타내는 상징은 십자가 대신 초승달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에는 적십자 대신 적신월사가 있다. 적신월사의 ‘신월(新月)’은 ‘초승달’의 한자어이다. 영어로는 PRCS (Palestine Red Crescent Society)이다.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응급처치·구조·의료 지원을 수행하는 인도주의 단체로, 적신월사 콜센터는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119 내의 응급 구조요청 콜센터와 같다. 여기 요원들은 응급구조 요청을 듣고 사건을 파악해 현장으로 구급차를 보낸다.
내 옆 탱크가 총을 쏘고 있어요” 다급한 아이의 전화
영화 는 어느 날 이 PRCS에 힌드 라자브 하마다(가족 애칭으로는 하누드)라는 아이가 전화를 걸어오는 (정확히는 사촌 언니가 연결한 전화를 이어받은)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이는 6살이라고 한다. 아이가 말한다. 내 옆에 탱크가 있어요. 탱크에서 총을 쏴요.” 적신월사 요원들은 긴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현장은 해당 지역 구조대와 8분 거리에 있다.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거리이긴 하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어 이 8분은 곧 5시간이 넘는 시간이 된다. 아이는 차 안에 갇혀 있고 같이 있던 이모와 삼촌 가족들 6명은 힌드의 통화 직전 총격으로 모두 사망한다. 이 차를 과녁 삼아 이스라엘군은 350발이 넘는 총알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힌드와 힌드 친지들에게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가자 북부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소개작전 때문이다. 시간은 2024년 1월 29일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 직후의 일이다. 표면상으로는 2023년 10월 7일 가자 지구를 실질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벌인 기습공격이 원인이 됐다. 그러나 이미 그 이전부터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무시하면서 가자 지구 내에 이스라엘 정착촌을 늘리며 장벽을 세우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강제로 몰아내는 일들을 자행한 것이 더 큰 원인으로 지적돼왔다. (민들레 3월 14일자 영화 리뷰 ‘이 땅에서 견디거나, 아니면 떠나거나 - ’의 내용) 하마스 부대는 로켓포 5000발을 쏘고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해 장벽을 넘어 이스라엘에 침투하는 전과를 올렸지만, 이 과정에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이 이어져 공격의 명분이 퇴색하는 동시에 이스라엘군의 전면적 보복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꼴이 됐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소탕하겠다는 명분으로 가자 지구에 대한 총공격을 시작했고 민간인 소개(疏開)를 강행한다.
디지털 포렌식으로 슬픔과 분노, 울분 재현해낸 다큐드라마
문제는 그 과정에서 무차별 살상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때 사망한 어린이 수만 1만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힌드 라자브 하마다는 이모 가족과 떠난 피난길에서 참변을 당했다. 힌드가 살해되는 과정은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콜센터에 고스란히 그 목소리가 남았다. 이 영화 는 콜센터에 담긴 힌드의 구조요청을 시간대별로 기록한, 일종의 다큐멘터리이다. 재연 드라마가 주조를 이루고 있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극화한 부분보다 목소리 녹취의 사실성이 더욱 뚜렷하게 부각돼 있는 작품이다. 다큐드라마 기법으로 만들어졌지만, 방점은 드라마가 아닌 다큐에 찍혀 있다는 얘기이다.
드라마 부분도 다큐 부분처럼, 디지털 포렌식을 이용해 통화 내용의 모든 부분을 점검하고 재조립해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 슬픔과 분노, 울분의 감정을 그대로 재연하고 전달하려 한다. 나오는 배우들의 외모, 히잡 의상, 여성 상담 요원의 화장술(상담 요원 라나는 심리치료 요원 니스린에게 자신이 누군가를 구하면 풀메이크업까지 하게 된다고 말한다)과 헤어스타일까지 거의 실제에 가깝게 맞춰냈다. 이 영화가 다루는 사건의 중차대함과 그것이 지니는 사실성을 극대화하려는 감독 카우테르 벤 하니야의 노력이 엿보인다.
서두르자는 요원들, 신중해야 한다는 조정관, 누가 옳은가
이 콜센터의 주요 인물로는 총 네 명이 나오는데 라나(사자 킬라니)와 니스린(클라라 코우리)이 있고 또 다른 상담요원 오마르(모타즈 말히스)와 구조대를 조직하는 구조 조정관 마흐디(아메르 레헬)가 있다. 이들은 힌드와 통화하고 아이를 구해내려는 과정에서 충돌하고 갈등한다. 특히 오마르와 라나 같은 상담요원 둘은 조정관 마흐디의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에 분개한다. 이들이 벌이는 갈등의 에피소드들 역시 통신과 개인 간의 통화, PC 대화 등에 대한 철저한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콜센터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다. 100%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그래서 다큐멘터리라 부르지 않고 다큐 드라마라고 하는 것이지만) 카우테르 벤 하니야 감독은 적어도 ‘윤색의 윤리학’의 선을 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힌드를 구해내는 것이 오마르 등 상담요원의 안타까운 심정과 달리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조정관 마흐디의 입으로 설명된다. 마흐디는 독일에 있는 힌드의 친척 남자와 통화를 한다. 왜 구조대나 구급차를 보내지 않느냐고 힐난하는 전화 건너 남자에게 마흐디는 이렇게 말한다. 구급차를 보내려면 먼저 적십자 예루살렘 지사에 전화해야 해요. 적십자가 코개트(COGAT, 이스라엘 국방부 산하 팔레스타인 민간협조관으로, 점령지에서의 활동을 조정하는 중재부서)에 연락해서 허가를 구해요. 현장 군인들이 보내는 안전 경로로 구급차가 공격을 피해 움직이는데 이것 또한 COGAT을 거쳐 적십자에 전달돼요. 바로 움직일 수가 없어요. 허가가 안 나오고 있어요!” 8분 거리가 수 시간까지 걸리는 이유이다.
심리요원 니스린은 마흐디에게 허비되는 시간에 대해 꼬집는다. 오마르는 오마르대로 허가 따위 무시하고 무조건 구급차를 보내자고 하지만 마흐디는 그 과정에서 총격과 포격으로 사망한 구조요원들을 얘기하면서 또 다른 희생을 막을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힌드를 살릴 방법, 모두의 희생을 줄일 방법으로 과연 어느 것이 옳은가를 생각하게 된다. 응급구조 콜센터 안은 열기와 긴장으로 바짝 좁혀 들어가기 시작한다. 후반부의 장면들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힌드의 목소리가 퍼지는 콜센터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실제 인물인 듯 배우인 듯, 영화 속 무너진 사실과 허구의 경계
영화가 추구하는 주제와는 별개로 영화의 기술적인 완성도는 이 후반부에 드러난다. 누군가가 이들 네 명을 핸드폰으로 촬영 중이다. 그 개연성은 힌드의 상황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야 한다는 취지로 홍보 담당 여성이 그걸 찍거나 녹취를 ‘따 가도록’ 하는 설정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카우테르 벤 하니야는 핸드폰으로 등장인물들을 찍고 있는 한 여성의 손과 핸드폰 액정 화면을 보여 준다. 이 액정 화면에는 배우가 아닌 실제 인물들의 이미지와 음성이 담겨 있다. 영화는 포커스 이동을 통해 한 번은 배우를 뚜렷하게 잡고 핸드폰은 흐리게 보여주고, 다른 한 번은 핸드폰 액정 안 실제 인물을 보여주되 배우들은 흐릿하게 배경으로 뭉갠다. 배우는 실제 인물과 똑같은 포즈로 똑같은 표정을 짓는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오히려 6살 힌드에게 벌어진 사건이 얼마나 가혹하고 끔찍한 일이었나를 역설적으로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이 영화 최고의 장면이다. 아마도 영화 가 지난해 8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은 바로 이 후반부의 절묘한 연출력이, 인권과 반전을 추구하는 주제 의식과 동급으로 평가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가 세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때론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교호(交互)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 된 작품이다. 전쟁이라는 외부의 야만적인 물리력은 다큐가 갖춰야 할 사실의 근거와 온갖 자료를 절멸시키기 쉽다. 그 사실성을 허구의 드라마가 메울 수 있을까. 다큐 속 드라마의 서사는 얼마만큼 사실과 ‘싱크로율’을 맞춰내야 하는 것일까. 디지털 포렌식 같은 첨단 기술이야말로 다큐가 지녀야 할 사실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가 입증해 낸 업적이다.
결국 여섯 살 아이는 죽고 말았다
힌드는 결국 죽임을 당했다. 구해내지 못했다. 영화의 엔드 크레딧에는 아무런 사운드를 입히지 않았다. 묵음과 무음이 이어진다. 하긴 그 누가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중동 지역에는 여전히 포성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빨리 전쟁을 멈춰야 한다. 이 영화가 던지는 묵직하면서도 간결한 메시지이다. 아이들을 죽이지 마라. 는 4월 15일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