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사라지고 목사·신부만 가득한 종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선거가 다가오면 경쟁하는 정당과 후보들은 평소보다 더 치열하게 서로 싸운다. 경쟁 상대에 대한 발언은 진실보다는 흠집내기에 좀더 가까울 위험도 있다. 어떻게든 상대를 깎아내리고, 어떻게든 우리 편을 추켜세우는 홍보 전략에서 정직과 진실이 숨 쉴 틈은 많지 않을 수 있다.
신약성서에 자주 나오는 예수와 반대자들의 논쟁도 선거때 홍보용 발언들과 비슷하다. 예수운동 대변인의 역할을 자청한 신약성서 여러 저자들은 예수운동 외부 사람들에게 경쟁 종교인 유다교를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예수운동을 어떻게든 실제보다도 더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알려야 했다. 또한 예수운동 내부 사람들에게 예수운동이 유다교에 비해 무엇이 더 새롭고 더 뛰어난지 설득하고 인정받아야 했다.
의로운 예언자들을 박해했던 어용 사제들
신약성서가 쓰여진 배경과 의도를 정확히 알지 않으면, 예수와 신약성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예수운동의 경쟁 상대들을 왜곡할 수 있다. 신약성서는 있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쓴 역사 다큐라기보다 예수운동을 정당화하려는 분명한 의도와 목적에서 쓴 주관적인 신학 다큐에 가깝다. 그래서 신약성서가 쓰여진 의도, 시대적 배경, 문학 양식을 외면한 채 글자 그대로 성서를 해석하는 것은 성서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예언자가 사라진 종교 현실을 잘 알려면, 예언자가 누구인지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예언자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려면, 유다교에서 예언자가 누구였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 2천 년 전 유다교에는 사제, 스승, 예언자라는 세 가지 직분이 있었다. 사제는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와 제사를 주관한다. 또한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드리고, 인간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백성을 대신하여 하느님께 간청한다.
스승 또는 율법학자는 하느님이 누구신지, 하느님이 어떤 약속과 계명을 주셨는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려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율법학자라는 단어는 구약성서학자라고 바꾸어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고 적절하다.
사제, 스승 외에 예언자가 있었다. 유다인이 왜 하느님을 배신하였는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리고 비판하는 사람들이다. 예언자는 날씨 예보처럼 미래의 일을 예측하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 현실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말하는 사람이다. 목숨 걸고 진실을 말했던 예언자는 유다교 내부에서 가장 미움 받았다. 정치권력과 밀착했던 어용 사제 계급은 의로운 예언자들을 끊임없이 비방하고 박해하고 살해했다.
9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안데르센공원묘원에서 열린 ‘K-바이블’제막식에서 길이 83m, 높이 7.7m 규모의 스테인리스 강판 6770개로 돼 있고 표면에 1753쪽, 150만자 분량(개역 개정판 기준)의 성경이 훈민정음체로 새겨진 ‘한 페이지 성경의 벽’이 공개되고 있다. 2023.4.9. 연합뉴스
세 직분 독차지하고 스승과 예언자 역할은 포기한 목사 신부들
현대 민주주의에서 삼권 분립이 있는 것처럼 유다교에는 사제, 스승, 예언자들의 삼권 분립이 있었다. 그런데, 유다교 개혁운동에서 시작된 예수운동과 연결되는 개신교와 가톨릭에 삼권 분립이 있는가. 사제, 스승, 예언자 세 직분을 목사 신부가 독차지하지 않았는가. 사제가 아니었지만 회당 예배에서 설교한 예수나, 율법학자가 아니었지만 가르치던 바울 같은 사례가 오늘 개신교와 가톨릭에서 다시 나타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목사 신부가 사제, 스승, 예언자 세 직분을 독점했다는 현실만이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내 염려는 또 있다. 목사 신부는 스승과 예언자 직분을 거의 포기하고 사제 직분에만 집착하는 듯하다. 대부분 종교인은 예언자 역할에서 거리가 한참 멀다. 종교 의식 집행에만 신경쓰고, 스승과 예언자 직분을 외면하고 있다.
종교인이 예언자 직분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하면 종교와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런 종교가 세상을 밝혀주는 빛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치인이 경제 권력에게 자금을 받아 정치 활동을 한다면, 정치는 어떻게 될까. 그런 정치인이 경제 정의를 제대로 외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종교인이 부자 신도의 돈으로 종교 조직을 유지하고 종교인의 생계를 의지한다면, 종교는 어떻게 될까. 그런 종교인이 민주주의를 외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설교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예언자 직분을 포기한 종교인은 선거때 어떻게 처신할까. 선거는 사악한 종교인이 생존하는 계기로 악용될 수 있다. 예언자 직분을 포기한 종교인은, 특히 선거 때, 종교 사기꾼을 넘어 종교 브로커에 가깝게 날뛸 수 있다.
종교 사기꾼에 가까운 일부 종교인, 아니 많은 종교인들은 사회와 종교에 얼마나 많은 민폐를 끼치겠는가. 정치 사기꾼은 종교 사기꾼을 이용하려 하고, 종교 사기꾼은 정치 사기꾼을 이용하려 한다. 종교 사기꾼과 정치 사기꾼의 패악을 시민들과 신도들은 철저하게 감시하고 고발해야 한다.
사랑을 말하면서 정의를 두려워하는 종교
성서의 예언자들은 시대의 아픔이 어디에서 오는지 정확히 알았다. 예언자들은 목숨 걸고 종교 안팎에서 진실과 정의를 외쳤다. 하느님께 돌아가려면 먼저 이웃에게 돌아가야 하고, 특히 고통받는 희생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선포했다.
사랑 없는 정의는 잔인하고, 정의 없는 사랑은 위선이다.”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세상은 정의를 외치지만 사랑을 잃었고, 종교는 사랑을 말하지만 정의를 두려워한다. 종교가 정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예언자가 없다.
사제, 스승, 예언자 세 직분을 목사 신부가 독차지해버린 현실이 슬프다. 목사 신부가 스승과 예언자 모습에서 한참 멀어진 현실이 아프다. 종교에 예언자가 잘 보이지 않는 현실이 아프다.
오늘 한국 종교에 예언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예언자가 없는 종교는 백성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예언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종교가 일어서느냐 넘어지느냐 좌우될 것이다. 예언자 없는 종교 현실은 한국 사회의 커다란 아픔 중 하나다.김근수 갈릴래야 편지 mainzdo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