찻잔 속의 천일야화, 터키 커피점(占)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네스코는 2013년, 터키 커피 문화와 전통 이라는 이름으로 튀르크 카베시(Türk Kahvesi, 이하 터키 커피) 를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유네스코는 터키 커피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공동체의 결속과 대화를 촉진하는 전통으로 넓게 바라보았다. 흥미로운 점은 커피 찌꺼기로 운세를 점치는 커피점(占) 관습까지도 이 문화의 본질적인 일부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커피점은 전 세계 수많은 커피 문화와 구분짓는 터키 커피만의 개성이기도 하다. 커피점은 어떤 가치가 있기에 인류무형문화유산이라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것일까?
유네스코는 2013년 터키 커피 문화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매년 12월 5일을 터키 커피의 날 로 지정했다. 또한 2025년 11월에는 터키 커피가 유럽연합(EU)의 전통 특산물 보증(TSG, Traditional Speciality Guaranteed) 품목으로 공식 등록되어 터키 커피의 독특한 제조 방식과 문화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 사진출처 : 이혜승
커피점의 탄생 배경은 무엇보다도 조리방식, 특히 원두의 갈림 정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곱게 간 원두 가루야말로 터키 커피의 맛을 좌우할 뿐 아니라 커피점의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 가루를 제즈베라는 도구에 커피잔 분량의 찬물과 반큰술 정도의 커피 가루를 넣고 섞는다. 30초 이내에 끓여내는 에스프레소와 달리 터키 커피는 낮은 온도에서 10-15분 가량, 달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천천히 끓인다. 모래나 재 속에 파묻고 끓이는 게 가능한 이유도 이 ‘느림의 미학’에 있다.
긴 손잡이가 달린 ‘제즈베’는 터키 커피를 끓이는 도구이다. 낮은 온도에서 조리하기 때문에 모래나 재 속에 파묻고 천천히 끓이기도 한다. 출처 : 이혜승
터키 커피의 킥은 거품에 있다. 불과의 거리를 조절하며 커피물이 넘치지 않게 하며 거품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 비법이다. 커피가 제대로 우려났다 싶으면 조심스럽게 찌꺼기와 함께 잔에 따른다. 커피의 대관식은 이제 준비되었다. 잔 위에는 황금빛 거품이 왕관처럼 씌워지고, 바닥에는 부드러운 찌꺼기가 권좌처럼 깔린다. 이와 같은 수미쌍관의 구조가 갖추어졌을 때에야 향긋한 커피를 마신 후 찌꺼기 안에 숨겨진 미래를 엿보는 일이 가능해진다.
커피 찌꺼기를 수질 정화제로 쓰기도 하고, 퇴비와 천연 스크럽, 악취제거제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찌꺼기로 점을 친다는 발상이 기발하다. 시커먼 찌꺼기 따위가 어떻게 우리의 내일을 알려 주는지 의구심이 들긴 하지만, 이 관습은 튀르키예의 일상에 널리 그리고 깊이 퍼져 있다. 하루에도 몇 잔씩을 비워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커피는 점을 치기 위한 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과거에는 터키 커피의 거품의 색깔과 풍미가 며느리감을 고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신부측에서는 신랑감의 인내심을 시험해 보기 위해 커피에 소금을 잔뜩 넣은 커피를 대접했다. 사진 출처 : 이혜승
휘순 하늠(레이디 휘순). 제가 터키 커피 문화에 대한 글을 쓰는데요, 놀러가도 될까요?”
친구의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당장 오라고 하셨지만, 다음날 오후 두 시로 약속을 잡았다. 올해 82세인 휘순 하늠은 고혈압, 고지혈증, 관절염 등 여러 질환을 앓고 계시지만 울퉁불퉁한 자갈길 위에서도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능숙한 운전자고, 집밥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만큼 음식 솜씨가 좋으시다. 휘순 하늠의 재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은 터키 커피를 마실 때이다. 기껏해야 요구르트 반 병도 안 되는 양의 커피를 마시고, 잔을 뒤집어 식힌 후 다시 잔을 집어들고 찌꺼기가 만들어낸 문양을 보면서 휘순 하늠은 몇백 쪽짜리 책 한권 분량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만큼 뛰어난 기억력을 현란한 언변으로 풀어내시는 걸 보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쓴 호메로스가 괜히 이 지역 출신이겠나 싶다.
여기 보이지, 물고기. 물고기는 돈 들어온다는 말이야. 새는 기쁜 소식을 뜻하고 하트가 있으면 새 인연을 만나게 돼….”
찌꺼기 형상을 자세히 짚어가며 점괘 읽는 비법을 전수하는 휘순 하늠. 커피점의 일타 강사들은 튀르키예 가정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진출처 : 이혜승
터키 커피점은 찌꺼기가 그려내는 모양 속에서 동식물, 사건, 장소 등을 유추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게 기본이다. 매번 달라지면서도 특정 유형을 반복하는 커피 찌꺼기의 형상들은 튀르키예 사람들의 무의식과 사고방식을 투영하는 ‘상징백과사전’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으리라. 유네스코는 터키 커피를 등재하며, 커피점 문화가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다시 딸에게 구전으로 이어지는 살아있는 전통 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무속 문화가 등재된 사례는 많지만, 터키 커피점은 신내림받은 전문 무당의 일이 아니라 우리 곁의 이웃들이 대를 이어온 생활 밀착형 문화 라는 점이 독보적인 특징이다.
조리방식에서 시작되어 대중적 구전 문화로 자리잡은 커피점의 또다른 가치는 ‘정서적 위로’에서 찾을 수 있다. 커피점은 터키어로 ‘카베팔’(Kahve Fal)이라고 한다. 11세기 위구르 지역의 언어학자 마흐무드 알 카쉬가리(Mahmud al-Kashgari)는 최초의 튀르크어 사전인 ‘디바니 루가티 튀르크’(Dīwān Lughāt al-Turk )를 집필했다. 그는 아랍어로 튀르크어를 설명하는 이 사전에서 ‘팔’ 항목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팔은 튀르크 고유어인 ‘이르크’어와 상응하는데, 이르크는 점(Divination) 혹은 징조 를 뜻하며, 어떤 사람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고민을 알아내기 위해 치는 점 이다.
커피점은 미래에 대한 예언이라기보다 뒷담화를 하고 대화를 통해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고 고민을 털어 놓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소통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오은영’ 박사가 되어주는 튀르크 문화 특유의 심리상담 시스템이라고도 할 수 있다. 터키 커피점의 원칙 중에서 ‘테페울’이라는 말도 흥미롭다. ‘테페울’은 점괘를 긍정적으로 푼다는 뜻으로 ‘다 잘 될거야’라는 말로 마무리짓는다. 하지만 불길한 징조가 나오면 어떻게 하나?
에게해에 접한 튀르키예 소도시 아이발륵(Ayvalik)에서 골동품상점을 운영하는 필리즈. 출처 : 이혜승.
이번에는 또 다른 지인 조각가 메메트를 찾았다. 골동품 수집이 취미인 메메트는 터키 커피를 끓이는 오스만 시대의 골동품을 보여주고, 커피를 대접했다. 커피점은 주로 여자들의 소일거리지만 점괘를 부탁했다. 메메트는 ‘에이, 남자가 무슨’ 이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이내 고모의 별명이 코렐리 하츠(한국인 하츠. 하츠는 하티제의 애칭. 고모부가 한국전 참전용사인 까닭에 그 가족 구성원 모두에는 코렐리라는 단어가 성처럼 따라 다닌다)였고, 터키점으로 이름이 높아서 먼 도시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면서 커피잔을 집어 들었다.
두 마리의 해마가 보이네요. 그 사이에는 피부가 검은 사람이 있고, 반대편에는 비둘기가 있어요. 그 뒤에는 피부가 하얀 사람이 버티고 있군요. 물과 하늘을 대변하는 이 두 존재가 혜승 씨의 계획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모양입니다. 조만간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이 생길 것 같아 보입니다. 한쪽에서는 수탉 한 마리가 홰를 치네요. 녀석, 울음소리가 우렁차기도 하지. 이건 경고의 메세지가 될 수도 있어요. 가난한 이에게 적선을 베풀고 길고양이와 개들을 챙겨 보세요. 그러면 계획한 일도 잘 풀리고, 마음속 앙금도 눈 녹듯 사라질 겁니다.”
길거리 동물을 환영하는 터키 카페. 출처 : https://t24.com.tr/
폴란드 화가 스타니슬라브 체블로브스키(Stanisław Chlebowski)의 유화. 1877. 카페 바깥에서 커피를 마시며 물담배를 피는 사람. 개들이 눈에 띈다. 사진출처 : commons.wikimedia.org
메메트의 점괘를 듣고 나니 그의 고모, 코렐리 하츠 의 존재가 더욱 궁금해진다. 여기서 터키 커피점의 또 다른 특징인 문제 해결 방식을 엿보게 된다. 대개 불운이 닥치면 쿠란의 구절을 적은 부적을 쓰거나 향(인센스) 치료를 권하며, 때로는 납 붓기(Kurşun Dökmé, 쿠르슌 되크메) 라는 독특한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튀르키예에는 안색이 좋지 않거나 부정탔다고 여겨지거나, 삼재에 들었다고 느껴질 때 너 납 좀 부어야겠다 라는 관용구를 쓴다. 이 말은 실제로 아나톨리아 지방에 널리 퍼진 액막이 전통이다. 점을 보는 이의 머리 위에 천을 씌우고 펄펄 끓는 납을 찬물에 부어 그 소리와 형상으로 액운을 쫓는 충격 요법이다. 커피 찌꺼기가 중금속을 거르는 수질 정화제로 쓰이는 사례는 있지만, 아나톨리아에서는 거꾸로 유해 중금속인 납을 이용해 영혼을 정화한다는 게 특이하다.
하지만 커피점의 가장 보편적인 처방법은 메메트의 점괘가 말해주듯 자선과 방생 이다. 내 마음의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세상에 먼저 선의를 ‘베풀라’는 조언이다. 튀르키예 사람들이 길거리 동물들에게 유독 친절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커피점은 남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공생의 지혜를 건네고 있었다.
터키 하렘의 풍경. 1654년. Franz Hermann, Hans Gemminger, Valentin Mueller, 1654, Oil on canvas, 130 x 193,5 cm. 페라박물관 소장품. 출처 : www.peramuseum.org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하고 낙관적인 대화를 통해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된다는 점에서 터키커피점은 인류무형문화유산의 취지에 들어맞는다고 유네스코는 인정한다. 하지만 이 정도는 웬만한 음식 문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터키점의 진면목은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을 이끌어내는 힘에 있다.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로 ‘허구를 믿는 능력’ 즉 스토리텔링의 역량을 꼽았다. 문자도 아닌 이모티콘을 날리며 대화하는 이 시대에 이야기 꾸며내는 본능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터키 커피점은 효과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 터키 커피를 마시면서 대화가 끊어져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필요는 없다. 말이 없어질 때쯤(흔한 일은 아니지만) 튀르키예 인들은 잔을 들여다 본다. 커피잔 속에 담긴 문양들은 상상력을 자극하고, 사람들은 갑자기 셰흐라자데의 영혼이라도 씌운 듯 천일야화를 읊어낸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문에 난 오늘의 운세를 읽듯이 재미로 커피점을 본다. 하지만 커피잔 속의 어두운 수렁에 빠져 인생을 망친 사례들도 수두룩한데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술탄 이브라힘도 그중 하나였다.
술탄 이브라힘의 초상화. 출처 : https://tr.wikipedia.org
커피점과 국정농단
술탄 이브라힘은 23년 동안 카페스라고 하는 새장에 갇혀 지냈다. 그의 전대 술탄 무라드 4세의 경쟁자 제거 차원에서 형제들을 감금했던 까닭이었다. 그러다 무라드 4세가 후사를 남기지 않은 채 28세의 나이로 급사하자 갑자기 왕위를 물려받게 되었다.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대제국의 술탄으로 등극했으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공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강박증 등이 평생 그를 따라 다녔다. 특이한 취향, 기행 등을 일삼은 결과 광인 술탄이라는 별명도 지어졌다. 술탄의 심리가 불안한 만큼 궁중 권력 투쟁도 치열했는데 국정 공백의 틈을 타 문고리 세력들이 막후 실세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치니 호자’였다. 그의 본명은 카라바슈자데 휘세인 에펜디(Karabaşzade Hüseyin Efendi)이며, 치니 호자 는 진, 즉 귀신을 다루는 도사라는 뜻이다. 이 도사의 기묘한 주술과 기도가 먹혀들자 술탄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그는 종교계, 법조계의 실세로 초고속 승진을 하면서 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튀르크 여인. 사진은 비만한 여인들이 하렘에서 더 총애를 받았다고 설명한다.출처 : https://earthstoriez.com/coffee-houses-constantinople-istanbul-history
이 사이비 교주는 궁중 전반의 비밀과 정보를 손에 쥐기 위해 하렘의 실세였던 셰케르파레와 손을 잡았다. 셰케르파레의 본명은 제흐라 셰흐수바르(Zehra Şehsuvar) 로 대왕대비 쾨셈 술탄의 무수리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몸집이 풍만한 여자들을 좋아했던 술탄의 눈에 들어 후궁의 자리에 올랐다. 일설에 의하면 셰케르파레의 몸무게는 150킬로에 육박했다고 한다. 셰케르파레는 워낙 언변이 뛰어나고 달콤한 말로 술탄의 마음을 사로잡아 술탄이 직접 지어준 별명으로 ‘설탕 덩어리’라는 뜻이다. 이 두 비선실세가 술탄을 배후조종하는 데 써먹었던 수법 중의 하나가 커피점이었다.
하렘에서 커피를 마시는 여인. 작자 미상. 18세기 전반. 유화. 112 x 101,5 cm. 페라박물관 소장품. 출처 : www.peramuseum.org
‘전하, 오늘 커피점을 보니 불길하옵니다. 정적들이 전하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으니 기운이 약해지시는 것입니다.’ ‘대왕대비마마조차 전하를 해치려 합니다. 오직 저만을 믿어주십시오’ 이런 점괘로 심약한 술탄을 가스라이팅해서 의존도를 높였다. 혹은 궁중 곳곳에 스파이를 숨겨놓고 정보를 캐내서 ‘전하, 아무개가 전하에게 해꼬지를 할 듯 하옵니다’ 라고 귀뜸한다. 그들의 경고를 귀담아 들은 술탄은 실제로 위험을 모면한다. 짜고 치는 고스톱은 그들이 가장 애용하는 방식이었다. ‘잔 속에 큰 보물이 보입니다, 전하. 서쪽 방향인 것 같습니다.’ 며칠 후 미리 준비한 보석들이 궁중에 도착한다. 또 관직에 오르려는 사람에게 미리 뇌물을 받고 ‘전하, 커피점에는 아무개의 이름이 씌여 있는 것 같은데 폐하를 잘 모실 인물로 보입니다’ 라든가 반대로 정적 제거를 위해서도 커피점을 이용했다.
하렘에서 커피를 마시는 후궁. 판화. 출처 : Turkiye in Gravures. Istanbul 3. T.C.Kultur Bakanligi yayinlari.2002.
술탄은 사치스럽고 기이한 취향이 있었다. 그는 유독 당대 최고의 명품이었던 담비 모피에 집착했다. 문고리 세력들은 술탄을 부추겨 모든 고위 관료들이 담비 모피를 바치도록 강요했고, 그렇지 않은 경우 해임하거나 처벌했다. 이 부패 권력의 카르텔은 탐욕스럽고 어리석은 군주를 숙주로 삼아 자신들의 배를 불렸다. 예산을 중간에 갈취해 개인의 재산을 불리고, 매관매직과 뇌물수수를 일삼으며 인사권을 장악했다. 술탄은 그러나 눈을 뜨지 못한 채 검은 커피 찌꺼기 안에서 위안을 찾았다. 1648년 이스탄불에는 큰 화재가 일어났다. 거대한 오스만 제국의 뼈대가 휘청거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국가 재정은 파탄나고, 관료들과 군부,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져 봉기가 일어났다. 결국 대왕대비인 쾨셈 술탄도 술탄의 반대 세력들과 손을 잡았다. 커피잔 속의 달콤한 가상 세계에서 로그아웃하자 쓰디쓴 현실이 술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권좌에서 끌려 내려와 처형당했다. 사이비 도사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셰케르파레 역시 모든 재산을 몰수당한 후 변방인 이집트로 쫓겨나면서 이 궁중 막장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무속, 사이비 교주와 사악한 여자, 어리석은 군주, 매관매직, 인사비리, 뇌물수수, 전횡 등 국정농단의 종합선물세트를 먼 나라의 오래된 역사에서 발견한다. 튀르키예는 대한민국의 형제의 나라가 맞는 것 같다.
집시들은 커피뿐 아니라 모래, 콩 등 여러가지 물건으로 점을 쳤다.사진 출처 : https://tekinkayahan.wordpress.com/2020/06/10/osmanlida-fal-ve-falcilar/
커피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16세기 중반부터 커피점은 퍼졌고, 이것을 악용하는 사기꾼들도 늘어났다. 이슬람에서는 원래 점술을 부정한다. 미래의 세계는 알라만이 알기 때문에 성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사기꾼들은 커피점이 계시와 예언이 아니며 찌꺼기도 알라가 창조하신 것이니 그 안에서 섭리를 찾는 것은 우리의 일이라며 사람들의 주머니를 노렸다.
1925년, 세속주의를 지향했던 튀르키예 공화국은 폐해가 심했던 무속신앙을 타파하고자 상업적 점술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점술가들이 돗자리를 접자 커피점은 일반 대중의 삶 속으로 퍼져 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는 커피점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국가가 금지했던 불법 점술이 이제는 앞장서 보호하고 장려할 세계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아이발륵 카페의 메뉴판.에스프레소 : 설렘과 열정, 라떼 : 부드럽고 다정함. 카푸치노 : 거품이 주는 재미.터키 커피 : 진심이 담긴 대화. 사진 출처 : 이혜승
커피점은 이제 ‘전통스토리텔링의 구현’이라는 이름 아래 온라인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수많은 커피점 앱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팔라딘(Faladdin. Fal + Aladdin)이다. 사업가 세르타츠 타슈델렌(Sertaç Taşdelen)이 커피점에 능통했던 어머니에게서 영감을 얻어 모델을 개발했다. 방대한 커피 찌꺼기 문양 자료와 전세계의 점술 데이타를 학습한 인공지능 점쟁이 지니가 점을 쳐준다. 앱은 커피점뿐 아니라 추가 요금을 내면 맞춤형 상담도 해준다. ‘오늘 소개팅이 잘 될까요?’라고 묻는다면 팔라딘의 지니는 대답한다. ‘주인님, 오늘의 행운 색상은 초록입니다. 에머랄드 반지를 끼워 보세요. 주인님의 매력이 돋보일 거에요. ’ 혹은 기분이 언짢아 앱을 열면 ‘주인님, 오늘 같은 날은 박하가 든 허브티를 드셔 보셔요. 금방 지나갈 거에요.’ 라고 대답하거나 디지털 부적을 깔도록 조언하기도 한다. 터키점은 시대에 따라 옷을 갈아입으며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튀르키예 인들이 커피점을 본 후 하는 말이 있다.
점을 믿지는 마. 그렇다고 점을 안보라는 건 아니고.” (Fal inanma, falsız kalma).
커피점은 구실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벗들과 나누는 대화야말로 터키 커피의 제맛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