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개정 통한 양원제 고려해볼 만하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518 광주항쟁, 유월시민혁명, 촛불혁명, 응원봉혁명 등 유혈 무혈 혁명을 거치면서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국가 반열에 들어섰다. 우리 국민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1년이 지나서야 이제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남아 있다. 만일 앞으로 윤석열 같은 대통령이 다시 나와 계엄을 선포한다면? 만일 반사회적 대중선동으로 극우정당이 득세하여 국회를 장악한다면? 만일 법원이 지난 대선 전 그랬던 것처럼 대선에 개입한다면?
현재 대한민국 정치제제를 진단하자면 사법귀족 우위의 귀족공화국이다. 대법관들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것이 명백한데도 아무런 책임도 물을수 없으며, 국회가 불법행위를 한 검사와 판사에 대한 탄핵안을 통과시켜도, 심지어 불법이 명백한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에 대해서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반대 세력은 이를 일언지하에 무력화시킬 수 있다. 지지난 겨울 응원봉혁명이 없이 윤석열 탄핵이 가능했을까? 지금도 엄동설한 혹은 한증막 같은 폭염 속에서 외치는 시민들의 구호소리 없이는 만족할 만한 정치적 해결과 개혁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이는 헌팅턴이 말한 일종의 정치적 부패(political decay)로서, 만일 정치적 상황이 변해 또 다른 윤석열이 나온다면 시민들은 또 촛불과 응원봉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아직도 ‘정치적 안정’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사실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그 어느 나라도 이런 정치적 불안정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민중, 귀족, 그리고 군주가 정치체계를 통하여 각각 자신의 어젠다를 실현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아리스토텔레스와 폴리비오스는 혼합정체를 현실적으로 최선의 정부형태로 제시한다. 그들은 민중, 귀족, 그리고 군주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을 서로 대치시켜 경쟁하게 함으로써 균형과 안정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민주정이 평범한 다수의 이익을, 귀족정이 부유한 소수의 이익을, 그리고 군주정이 군주의 통찰과 지혜를 활용하여 조화와 균형을 통해 정치체제는 효율성과 힘을 발휘하게 된다.
4월 임시국회 제6차 본회의 모습. 2026.4.18 연합뉴스
이러한 혼합정체론은 정체의 순환이라는 역사적 경험에 따른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며 영원한 진리는 없다, 그리고 해와 달이 돌 듯이, 역사 또한 돌고 도는 것이라는 주장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일리 있는 말이라 보인다. 이러한 주장의 바탕에는 완벽한 존재 혹은 상태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서로 반대되는 성질(모순)을 내부에 품고 있으며, 이로 인해 갈등은 불가피하며 그 사물은 결국 소멸하거나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인간도, 어떤 사회도, 어떤 정치체제도 모순/결점투성이다. 입법자는 이를 인식하여 한 가지 정체를 선택하지 말고 민주정 귀족정 군주정의 장점을 취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이다.
이같은 견해에는 현대 실증주의 사회과학자들도 동의한다. 허버트 사이먼은 인간이 신처럼 전지전능한 합리성을 발휘할 수 없다고 보았다. 우리는 시간, 정보, 인지 능력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며, 결과적으로 최적화(Optimization) 가 아닌 스스로 설정한 기준을 넘기는 만족(Satisficing) 수준에서 결정을 내린다. 이를 정치적 의사결정에 대입하면, 단일한 권력 주체가 내리는 결정은 반드시 그 주체의 인지적 편향이나 정보의 한계에 매몰될 위험이 크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인간세계에서 최선의 선택이란 없는 것이며 언제나 차선의 선택이 현실적으로 가장 합리적이란 것과 비슷하다.
현 시점에서 우리의 정치적 안정을 위협하는 요인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민주정치의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되는 중우정치의 위험성이며 다른 하나는 ‘사법적 귀족정’이라는 통치체제의 부패 현상이다. 지난 대선에서 보았듯이 이 두 가지 종류의 위험은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으면 이는 반드시 헌법개정을 통해서 제거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현재 사법부가 대변하고 있는 ‘귀족정치적 요소’를 어떻게 민주적 질서 안으로 포섭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사법부는 국민의 직접 선출을 받지 않는 집단으로서, 종종 ‘엘리트주의’ 혹은 ‘귀족정치’의 잔재로 비판받기도 한다. 법조인이라는 특정 전문가 집단이 국가의 중차대한 정책과 사회적 가치를 최종 심판하는 구조는, 민의의 역동성을 반영하기보다 기득권의 이익 보호에 부역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이는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려는 과감한 개혁 입법과 정책들이 사법적 판단이라는 문턱에서 좌절되거나 지연되는 불안정성을 초래하는 근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현재 정부여당에서 추진중인 헌법개정은 정치적 불안요인을 해결하고 집권 세력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그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양원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양원제는 기존의 단원제 국회 위에 상원을 도입함으로써 안정성 을 분담하는 구조다. 현재의 단원제 국회와 사법부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고, 사법부가 대표하고 있는 전문성과 신중함이라는 ‘귀족정적 장점’을 입법부 내부의 상원(上院)으로 정착시키자는 제도이다.
일반적으로 양원제는 몇 가지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첫째, 양원제는 속도 보다 숙의 에 유용하다. 단원제는 입법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쟁에 휘말릴 경우 졸속 입법이나 당론에 따른 밀어붙이기식 처리에 취약하다. 상원이 존재하면 하원이 통과시킨 법안을 한 번 더 거르는 냉각기 역할을 한다. 단기적인 지지율이나 정략적 이익에 매몰된 입법을 장기적 국익의 관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는 국정운영의 예측 가능성과 정치적 안정을 높인다.
둘째, 양원제는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를 제도권으로 포섭하는 데 유리하다. 인구 비례로 선출되는 하원이 다수결의 원칙 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상원은 지역 대표성이나 직능별 전문성, 혹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구조로 설계될 수 있다. 특히 심화되는 수도권 집중 현상과 지방 소멸 위기 속에서, 상원을 지역 대표 중심으로 구성한다면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입법적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갈등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전, 의회라는 제도권 안에서 먼저 조정되는 시스템이 갖춰지는 셈이다.
셋째, 권력 독점과 독주를 막는 상호 견제 장치가 된다. 양원제는 국회 내부의 권력을 상·하원으로 분산시킨다. 어느 한 정당이 하원을 장악하더라도 상원에서의 합의 없이는 독단적인 입법이 불가능하게 함으로써, 여야 간의 타협과 협치를 강제하는 구조를 만든다. 이는 극한의 대립 정국을 완화하고, 정권 교체 시마다 발생하는 급격한 정책 뒤집기(Policy Flip-flop)를 방지하여 국가 경영의 연속성을 보장한다.
상원의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문성 과 심의 민주주의 의 결합이다. 사법부가 가진 귀족정적 요소(전문성, 신중함) 를 계승하되,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광역 단위의 간접 선거나 직능별 배분을 혼합한다. 법조계, 학계, 경제계, 노동계 등 각 분야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원로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도록 하여 지혜의 전당 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한다. 상원의 임기는 하원(국회)의 임기보다 긴 6년 이상의 임기를 보장하고, 2~3년마다 일부를 교체하여 정치적 풍향에 휘둘리지 않는 정책적 연속성을 확보한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양원제 왜 주목받나 를 주제로 열린 여야4당 개헌 공개토론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병석 의원(왼쪽부터)과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이 자리에 앉아 발표를 듣고 있다. 2017.9.6 연합뉴스
특히, 대한민국이라는 맥락에서 상원의 도입은 두세 가지의 정치적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는 정치의 사법화 방지 장치이다. 이는 사법부의 과도한 정치 개입을 차단하고,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행정부의 정책 추진력을 높이기 위한 권한을 조정하기 위한 방책이다. 이를 위해서 사법 심사권의 일부를 이관할 필요가 있다. 현재 헌법재판소가 가진 대통령, 국무위원, 판검사 탄핵심판권과 법률 위헌 심사권 중 정치적 성격이 강한 사법 판단 을 상원으로 이관하거나, 상원의 동의를 필수 요건으로 지정한다. 이를 통해 정책의 최종 결정권이 임명된 권력(법관) 이 아닌 선출된 권력(상원) 내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이는 사법부를 입법부의 통제 아래 두어 사법 독주를 막는 강력한 기제가 된다.
둘째, 양원제는 연방제가 아닌 국가에서의 지역의 이해를 효과적으로 중앙에 전달하는 장치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양원제를 채택하면 상원 의석을 배분할 때 인구수와 상관없이 행정 구역(광역 지자체 등)별로 의석을 일정하게 배분하거나, 지역 대표성을 띤 인물들이 참여하게 할 수 있다. 중앙 정부가 전국적인 효율성만 따져 특정 지역에 불리한 정책(예: 혐오시설 설치, 지역 예산 삭감 등)을 밀어붙이려 할 때, 상원이 해당 지역의 권익을 옹호하는 방어막 역할을 한다. 지역적 특색이 강한 법안에 대해 상원이 수정권을 행사하거나 발언권을 가짐으로써, 중앙 정치에 지역의 특수한 사정과 요구가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단순히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기는 다수결의 원리 만 작동하면 소외 지역은 영원히 소외될 수 있다. 상원은 이러한 지리적 소수의 목소리를 공식적인 헌법 기구 안으로 끌어들여 국가 전체의 통합을 도모하는 장치가 된다. 결국, 하원은 전체 국민의 뜻을, 상원은 각 지역의 특수성을 대변한다 는 이원적 구조를 통해 국가 권력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미이다. 이는 나날이 수도권집중과 불균형발전으로 신음하는 대한민국이 균형발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것이다.
셋째, 상원의 도입은 국회의원 세비나 선거구획정 등과 같이 자기 논에 물대기식의 셀프입법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국회에 대해 다른 입법기관인 상원이 우선 심의권을 갖게 하여, 국회가 사법적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개혁을 수행하는 데 유용하다. 일각에서는 시민의회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현 국회가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 현실에서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러한 시각에서 양원제로 헌법개정은 앞으로 대통령과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심판은 물론 정부의 주요 정책이 사법부의 판결로 한 번에 무력화되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상원이라는 제도적 여과 장치를 통해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상원의 도입은 헌재에 의한 대통령 탄핵심판이나 아니면 사법귀족들의 노골적 대선개입 시도를 상원이라는 정치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여,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갈등 관리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즉 사법 권력을 입법 질서 속으로 귀속시켜 정부의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국정동력을 극대화 할 수 있게 된다.
상원의 도입으로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도 않은 사법부가 정치에 개입할 명분은 사라진다. 상원은 장기적 국가적 안목과 전문성을 가진 집단이므로, 이들의 검토를 거친 결정은 정치적 정당성 과 법적 완결성 을 동시에 확보하게 되어 집권 세력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가능케 한다.
물론, 양원제가 비용을 증가시키고 의사결정을 늦춘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갈등 해소에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과 잘못된 입법이 초래하는 국가적 손실을 고려한다면, 양원제는 훨씬 경제적인 선택일 수 있다. 이제 우리 정치는 단순히 빠른 결정 이 아니라 옳은 결정 을 내릴 수 있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 양원제 도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확실한 양당 사이의 극한 대립의 정치를 끝내고, 대화와 타협이 숨 쉬는 정치적 안정 으로 나아가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양원제로의 개헌은 하원우위의 원칙이 도입되어야 한다. 하원과 상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양측 의원이 동수로 참여하는 위원회를 즉각 구성 안건을 조장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만일 끝까지 상하원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는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이 우리도 하원의 재의결 우위 (Lower House Primacy) 원칙이 필요하다. 상원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하원이 재적 의원 과반수(또는 3/5) 이상으로 다시 의결하면 상원의 동의 없이도 법안이 확정되도록 한다. 이는 민의를 직접 반영하는 집권 정부의 개혁 동력을 최종적으로 보장하는 장치이다. 이에 더하여 예산안 우선권 원칙을 채택하여 예산안과 민생 관련 긴급 법안은 하원의 결정권을 우선시해서 상원이 사법적 잣대로 정부의 예산 집행을 발목 잡지 못하도록 설계한다.
정치적 안정은 단순히 의석수의 우위나 물리적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낡은 통치 체제의 모순을 직시하고, 이를 현대적 민주주의에 걸맞게 재구조화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재명 정부의 출범은 단순히 정권의 교체를 넘어,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들을 정면으로 돌파하라는 거센 시대적 요구의 발현이다. 하지만 개혁 동력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국정 운영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가 안정되지 않으면 경제가 성장할 수 없고, 설령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도 사회는 혼란해질 수밖에 없다. 사법부로 대표되는 비민주적 귀족주의적 권위를 양원제라는 민주적 시스템 안으로 녹여낼 때, 이재명 정부와 앞으로 등장하는 모든 대한민국 정부는 소모적인 갈등에서 벗어나 정치안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사법의 정치화 를 넘어 정치의 제도화 를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안정을 설계해야 할 때다.
우리는 종종 단일 대오 나 강력한 추진력 을 갈구한다. 그러나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인간이 내리는 강력한 결정은 때로 거대한 재앙이 된다. 혼합정부 체제가 다소 느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서로 다른 시각이 부딪치며 오류를 수정해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인간의 불완전함을 구제할 유일한 길이다. 정치는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오류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그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오늘날 삼권분립, 양원제,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분권은 허버트 사이먼이 말한 인지적 한계를 인정하는 제도적 장치다.
양원제로의 개헌은 각기 다른 제한된 합리성 을 가진 주체들이 서로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시스템이다. 군주의 결단력은 신속함을 주지만 독단에 빠지기 쉽고, 소수 엘리트의 전문성은 깊이가 있으나 선민의식에 갇힐 수 있으며, 다수 민중의 의지는 정당성을 부여하나 중우정치로 흐를 위험이 있다. 혼합정부는 이 세 가지 불완전한 합리성을 충돌시키고 여과함으로써, 단일 주체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시스템적 합리성 을 구축한다.
사이먼은 인간의 이성이 가위의 한쪽 날 과 같다고 했다. 다른 한쪽 날은 그가 처한 환경 이다. 복잡해진 현대 사회라는 환경 속에서, 인간의 이성이 제 기능을 하려면 겸손해야 한다. 예측하기 힘든 정치 앞날을 무사히 헤쳐 나가려면 우리는 이쯤에서 혼합정부라는 견고한 가위틀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양원제 속에 담겨 있는 혼합정부적 가치를 수호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민주적 혹은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제한된 존재 임을 인정하는 과학적 태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