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한 35% 민의 살릴 선거 개혁, 이렇게 하면 된다 [뉴스] 소선거구제가 만드는 민심 왜곡을 어떻게 풀 것인가. 광역의원 선거를 원칙적으로 4~5명을 뽑는 중선거구로 바꾸고, 투표 방식도 단기이양식 순위투표제(STV)로 전환하면 풍경이 근본부터 달라진다.
어떻게 작동하나
STV의 핵심은 당선 쿼터 다. Droop 쿼터는 유효표 ÷ (뽑을 정수 + 1) 보다 한 표라도 많이 얻으면 당선되는 기준이다. 쉽게 말해 5명을 뽑는 선거구에서는 16.7%, 4명을 뽑으면 20%만 넘기면 누구든 당선된다.
진짜 핵심은 표가 버려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유권자는 후보들에게 1순위, 2순위, 3순위로 순위를 매긴다. 개표는 이렇게 흐른다. ① 1순위 표가 쿼터를 넘긴 후보는 곧바로 당선된다. ② 그가 쿼터를 초과해 받은 잉여표 는 버리지 않고, 그 표의 2순위 후보에게 넘긴다(초과한 만큼만 가중치를 낮춰서). ③ 그래도 정원이 차지 않으면, 꼴찌 후보를 탈락시키고 그를 찍은 표를 다음 순위 후보에게 넘긴다. ④ 정원이 찰 때까지 이를 반복한다. 결선투표를 단 한 번의 개표 안에서 자동으로 구현하는 셈이다.
그래서 유권자는 사표 걱정 없이 소신대로 투표할 수 있다. 같은 정당 안에서 후보 순서를 바꿔 매길 수도, 여러 정당을 넘나들며 교차로 순위를 매길 수도 있어 투표 효능감이 극대화된다. 쿼터와 이양 방식 덕분에 결과는 득표율에 가깝게 비례한다. 다만 4~5인 규모에서는 완전한 비례대표제라기보다 준 비례 에 가깝다. 무엇보다 모든 후보가 상대 진영 지지자의 2·3순위 표까지 구해야 하므로, 인신공격과 네거티브가 줄고 정책 경쟁이 자리 잡는다.
이런 장점 때문에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추첨으로 뽑힌 160명의 시민의회는 약 1년, 200시간의 학습과 숙의 끝에 중선거구 STV를 대안으로 택했다. 이들은 독일식 혼합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끝까지 저울질한 끝에, 사표를 없애고 비례성을 확보하면서도 유권자 효능감을 가장 크게 살리는 길로 STV를 골랐다. 권고 표결은 찬성 146 대 반대 7, 사실상 만장일치였다.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 동작구 이수역 출입구에 선거 벽보가 붙어 있다. 2026.5.22 연합뉴스
영호남에서 무엇이 바뀌나
5인 선거구의 쿼터 16.7%를 영호남 데이터에 대입하면 놀라운 변화가 보인다. 먼저 호남이다. 광주·전남·전북에서 20% 안팎을 얻은 제3지대 정당은 선거 연대를 통해 5인 선거구마다 쿼터를 넘겨 최소 1석을 확보한다. 조국혁신당이 이미 담양군수 재선거에서 이기며 민주당 독점을 흔든 흐름을 떠올리면, 이는 수학적 귀결이다. 11~12%를 얻는 국민의힘도 탈락 후보의 2·3순위 표를 이양받아 호남에 의미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다. 60년 넘게 이어진 민주당의 호남 광역의회 100% 독점이 해체되는 역사적 분기점이다.
영남에서도 같은 일이, 어쩌면 더 무르익은 형태로 일어난다. 부산·경남에서는 이미 40%를 넘나드는 민주당 지지가 의석으로 전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STV가 도입되면 민주당은 모든 5인 선거구에서 안정적으로 복수 의석을 확보한다. 대구·경북에서도 16~18%의 민주당과 14% 안팎의 제3지대가 각각 쿼터를 넘겨 1~2석씩 탈환한다. 국민의힘이 전석을 독식하던 TK의 일당 지배가 무너지고, 부산·경남에서는 제3지대가 캐스팅보트를 쥔다. 영호남을 지배하던 양당 독점이 실은 견고한 민심의 벽이 아니라 1인 소선거구제가 만든 거대한 착시였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수도권은 결이 조금 다르다. 제3지대의 정당득표 합계가 호남만큼 두텁지 않아, 모든 선거구에서 자력으로 의석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그래도 STV는 양당이 6 대 4로 사이좋게 나눠 갖던 분점 구도를 깨고, 사표로 흩어지던 진보표·중도표가 의석으로 전환될 통로를 연다.
의석수를 넘어 사람 이 바뀐다
표의 이양은 의석수만 바꾸지 않는다. 의회에 들어오는 사람을 바꾼다. 소수 정당과 무소속 후보는 거대 양당 지지자 가운데 온건한 이들의 2·3순위 표를 모아 당선되므로, 극단적 진영 논리에 갇힌 인물보다 다른 진영까지 끌어안는 합리적 후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커진다.
STV를 광역의원에만 한정할 이유도 없다. 기초의원 선거의 고질병인 의석 쪼개기 도 정리된다. 지금의 2~3인 중선거구제는 유권자가 한 명에게만 기표하는 방식이라, 양당이 1-가·1-나 식으로 후보를 복수 공천해 의석을 양분해 왔다(양당 독점률 95% 이상). 4~5인 중선거구 STV로 바꿔 유권자에게 온전한 순위 기재권을 주면, 한 당이 4~5석을 모두 쓸어 담는 일은 산술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양당 독점률은 95%에서 70% 선으로 내려가고, 그 빈자리는 청년·여성·환경 등 다원적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에게 돌아간다.
정치 발전의 관점에서
STV가 바람직한 이유는 소수 정당에 의석 몇 개를 더 주기 때문이 아니다. 첫째, 표의 가치를 되살린다. 35%의 민의가 0석이 되는 사표의 비극이 사라지고,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이 정직하게 일치한다. 둘째, 지역주의를 해체한다. 영남과 호남을 각각 한 정당의 맹주 체제로 묶던 빗장이 풀리고, 한 지역 안에서도 복수의 세력이 경쟁하는 정치 생태계가 자란다. 셋째, 책임 정치와 연합 정치를 강제한다. 어느 당도 단독 과반의 폭주를 누리지 못하므로, 법안과 예산은 협상과 합의를 거쳐야 통과된다. 발목잡기와 독주가 동시에 어려워지는 것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개표와 표 이양 과정이 복잡해 유권자가 이해하기 어렵고, 군소 정당이 난립해 의회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거대 양당은 이를 명분으로 개혁에 미온적이다. 그러나 순위를 매기는 행위 자체는 아일랜드 등 여러 나라에서 안정적으로 운용돼 왔고, 당선 쿼터라는 문턱이 무분별한 난립을 걸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무엇보다, 30%가 넘는 민의를 통째로 폐기하는 것이 안정 이라면 그것은 지킬 가치가 없는 안정이다.
6·3 지방선거가 남긴 한계, 즉 빛바랜 승리, 견고한 지역주의, 증발한 35%의 민의는 바로 이 전환이 왜 다음 선거를 향한 가장 시급한 과제여야 하는지를 또렷이 증언하고 있다.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kwaknh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