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란희의 TalkTalk】에클스의 유니레버 논쟁, ISO 넷제로 표준, 미 대선보다 치열한 선거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벌써 10월말입니다. 10월 달력을 뜯어내면서, 2장밖에 남지 않은 홀쭉해진 달력을 보니 기분이 또 이상해졌습니다. 늘 다가오는 연말이지만, 요즘처럼 아찔하게 세상이 바뀌는 것을 보니 더 그렇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생성형AI 관련 서비스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챗GPT는 출시 몇 달만에, 이미 저같은 지식서비스 종사자에게 맞춤형 인턴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인한테 “챗GPT는 없어서는 안될, 평생 함께 할 동반자”라고 말했더니, 많이 놀라더군요. 최근에는 퍼플렉시티 서비스까지 2개를 세트로 장착하니, 업무 효율이 갈수록 높아집니다. 저의 이메일에는 최근 “생성형AI 기자를 채용하지 않으시겠습니까?”라는 마케팅 메일이 날라왔습니다.
한편, 걱정되는 것은 이러한 생성형AI가 검색을 대신할 경우, 미디어의 방문자 트래픽은 갈수록 줄어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해외 미디어에서 생성형AI 업체들과 목숨 걸고 싸우는 전투적 상황이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번주에도 3가지 픽을 갖고 왔습니다.
에클스 vs. 포리트, 유니레버 논쟁
먼저, 지속가능성 분야의 대가 중 한명인 ‘로버트 에클스(Robert G.Eccles)’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이자 옥스퍼드대 교수가 쓴 칼럼 이야기입니다. 조나단 포리트 경을 대놓고 저격했습니다.
조나단 포리트경은 지속가능성 분야의 리더 중 한명으로, 1970-80년대 잉글랜드와 웨일즈 녹색당에서 리더 역할을 담당했으며, 유니레버에서 28년 동안 고문으로 활동해왔습니다.
이런 그가 지난 8월 링크드인에서 앨런 조프 전 CEO를 대신해 취임한 하인 슈마허 체제에서 유니레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이익은 올리고, 목적은 낮췄다(Profits Up, Purpose Down)’이라며 격렬한 비판을 했습니다. 그는 “플라스틱과 생활임금 등 기존 지속가능성 목표들이 퇴색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기업이 장기적인 공익을 추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에클스 교수는 그의 칼럼에서 “포리트경이 유니레버를 보다 일반적인 불만의 대상으로 삼아,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비판했습니다. 그는 “일련의 우수한 CEO들 아래서, 회사는 책임감있는 비즈니스라는 어렵고 위험한 지형을 헤쳐나가고 있다”며 “ESG는 중요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해 주주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주주와 이해관계간, 혹은 이해관계자 자체 내에서 트레이드오프(trade-off)는 피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포리트경이 “유니레버는 15개의 지속가능성 목표는 있지만, 이제 지속가능성 전략은 없다”고 비판했는데, 이에 대해 에클스 교수는 다르게 봤습니다. 그는 슈마허가 지난 4월 발표한 ‘성장실행계획(Growth Action Plan)’에 대해, 기후, 자연, 플라스틱, 생계(생활임금)에 중점을 두고, ‘더 적은 일을 하면서, 더 낫게 일하고,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자(fewer things, done better, with greater impact)’라는 전략으로 재조정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그 이전에 유니레버는 USLP라는 지속가능경영목표 아래 70개가 넘는 세부목표를 지니고 있었고, 이를 15개로 줄였습니다). 에클스 교수는 유니레버의 시가총액이 현재 5년만에 최고치인 1550억달러(약 214조원)에 달하는데, 시장이 이렇게 호응하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묻습니다.
지속가능성 대가들이 글을 통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은 흥미롭습니다. 이 칼럼에서 모든 내용을 정리할 수 없으니,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다만 에클스 교수는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사악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안에서 활동하는 기업이나 사람들도 사악한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시스템 안에서 문제해결을 할 것인가 아닌가(기존 자본주의 방식을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 문제해결의 우선순위를 무엇으로 둘 것인가(재무인가, 지속가능성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차이가 이런 논쟁을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입장인가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2025년 발표 ISO의 넷제로 표준, 그 진척도는?
두 번째는, ISO(국제표준화기구)의 넷제로 표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25년 ISO는 첫 번째 넷제로 표준을 발표하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이 표준은 지난 2022년에 이집트에서 열린 COP27(제27차 기후변화협약)에서 공개된 'ISO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합니다. 아마존, 페덱스, 구글, 인텔, 마스, 맥도널드, 메타 등 공공과 민간 부문의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했습니다.
표준이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습니다. 가이드라인 초안을 보면, 탄소 감축을 위해 모든 온실가스 배출을 세심히 고려할 것을 권장하며, 오프셋 사용은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고품질 제거 방식에 국한하도록 규정합니다. 또한, 순환 경제를 촉진하고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의사 결정을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발표될 ISO의 넷제로 표준이 어떠한 역할을 하게 될지, 기존 SBTi가 해온 역할을 대체할지 아니면 병행이 될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ISO가 갖는 위상이 크기 때문에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ISO는 170개 국가의 표준 기관을 대표하며, 80년간 2만5000개 이상의 국제 표준을 발표해 왔습니다. 특히 에너지, 순환성, 환경 관리와 관련된 약 600개의 표준을 관리하고 있지요. 넷플릭스의 최고 지속가능성 책임자인 엠마 스튜어트는 지속가능성미디어 트렐리스에 "ISO는 UN과 같은 표준 기관으로 기업들이 신뢰하는 이름"이라며, ISO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ISO의 작업은 SBTi의 순 제로 표준 개편과도 맞물려 진행 중입니다.
기업들의 반응과 기대도 제각각입니다. 넷플릭스, 캡제미니 등 주요 기업들은 ISO의 순 제로 표준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넷플릭스는 SBTi 검증을 받지 않았지만, ISO의 신뢰성을 기대하며 두 표준의 기술 자문 그룹에 참여 중입니다.
현재 ISO의 새로운 표준은 민간, 학계, NGO 등 150명에 달하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무 그룹이 협력하여 개발 중입니다. 이 작업은 영국표준협회(BSI), 콜롬비아의 ICONTEC 등이 주도하고 있으며, SBTi와 온실가스 프로토콜(GHG 프로토콜)도 워킹 그룹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표준에는 생물 다양성 보호와 메탄 감축 등의 목표도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1년 후 열릴 2025년 COP30 이전에 ISO 회원국의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매우 도전적인 작업이 예정대로 잘 진행될까요? 모니터링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 대선보다 더 치열한 투표
세 번째 이야기는 미국 대선보다 더 뜨거운 선거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주요 옥수수 주인 사우스다코다 주에서 탄소 포집 파이프라인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는 블룸버그의 기사입니다. ‘서밋카본솔루션(Summit Carbon Solution)’이 추진중인 89억 달러(약 12조원) 규모의 탄소 포집 파이프라인 프로젝트가 사우스다코타주에서 결정적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옥수수벨트에 속하는 여러 주를 관통하는 약 2500마일(약 4023km) 길이의 파이프라인을 설치, 옥수수 기반 에탄올 공장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포집해 지하에 저장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사우스다코타 유권자들은 다가오는 11월 5일 선거에서 해당 파이프라인 법안의 유지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함께 진행할 예정입니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서밋 카본 솔루션은 주민투표 결과에 관계없이 사우스다코타 주정부에 허가를 다시 신청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서밋 측은 “이 파이프라인이 사우스다코타주의 에탄올 산업과 농업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며, 월트 본즈 전 사우스다코타 농무부 장관은 "이 프로젝트는 큰 기회를 제공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일부 토지 소유주들은 파이프라인이 농업과 환경에 미칠 잠재적 위험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탄소 포집 파이프라인을 통해 에탄올을 지속가능한 항공연료(SAF)로 만들고자 하는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찬반 논란도 거셉니다. 지금 사우스다코타 전역에서는 이 법안을 둘러싼 광고전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지속가능한 연료 또한 환경 영향이 제로일 수 없으며,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와의 갈등이나 환경단체들 간의 갈등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강조 환경단체와 생물다양성 강조 환경단체의 갈등은 예전부터 유명하지요.
사우스다코다의 선거결과가 어떻게 될지 무척 궁금합니다.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어디쯤에 있을까요? 지속가능한 전환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될수록, 점점 복잡하고 불편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갈등이 늘어날 겁니다. 세상은 어쨌든 합의를 해나가겠지요.
로톡과 카카오택시가 소비자 효용성은 높이지만, 생산자들의 공급망 생태계의 질서를 붕괴하는 부작용이 크다는 것을 우리는 조금씩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존 규제로 새로운 흐름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생성형 AI와 정통 미디어들간의 갈등도 비슷하겠지요. 결국 이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건, 또 타협의 지점을 만들어내는 건 정치의 몫이겠지요. 이번 한주도 평안하세요.
박란희 대표 &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