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이 전체주의라는 비판, 그 자체가 야만이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비극으로 점철된 대한민국 현대사에도 4월과 5월은 유독 잔인한 달이다. 독립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이데올로기의 폭력 앞에 피 흘린 제주 민중의 기억, 그리고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300여 명의 통절한 아픔이 4월에 서려 있다. 이어지는 5월에는 광주의 옛 전남도청과 금남로 거리에 스며든 피와 눈물이 있다. 비극이 이어진 우리 역사 속에서도, 이 두 달은 유독 짙은 슬픔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목도한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는 자신의 저서 『프리즘』(문화비평과 사회)에서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 이라고 갈파했다. 억압과 폭력이 실재하는 사회에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은 그 폭력을 은폐하고 기만하는 것이란 선언은 당시 거대한 논쟁을 불렀다. 그러나 역사적 비극과 아직 온전한 화해를 이루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아도르노의 이 명제가 여전히 뼈아픈 자명함을 지닌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최근 광주는 또 한 번 참담한 기만을 마주해야 했다. 발단은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의 이벤트였다. 스타벅스는 버디워크 행사의 일환으로 5월 18일에 특정 이벤트를 진행하며, 이 날을 이른바 탱크 데이 라 명명했다. 심지어 포스터에는 책상을 탁 이라는 문구마저 버젓이 달았다.
5·18 민주화운동을 무참히 짓밟은 신군부 수장 전두환을 지칭하는 은어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치안본부의 기만적 변명을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민주화운동을 비하하고 혐오를 조장하는 극우 사이트의 밈(meme)을 하필 5월 18일에 차용한 것이다.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결국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손정현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를 전격 경질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사태는 쉽게 진화되지 않았다. 정 회장의 과거 행보와 국민의힘 일부 관계자를 비롯해 극우주의자들의 몰상식한 언동이 더해지며 논란은 오히려 들불처럼 확산되었다.
탱크데이’ 프로모션 논란으로 스타벅스 불매 운동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22일 점심시간, 서울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에 사과문이 붙어 있다. 2026.5.22 연합뉴스
여론의 분노는 자연스레 불매 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사태는 묘한 국면을 맞이한다. 사측의 과실은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개인의 소비 영역까지 침범할 문제는 아니다 라는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한 발 나아가, 불매 운동 자체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또 다른 전체주의적 행태 로 규정하며 비판하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보수 논객 조갑제 대표의 반응이다. 조 대표는 2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가 이름으로 특정 사기업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벌인 사례는 1933년 나치 독일의 유대인 상점 불매운동이 있다 고 적었다. 그는 이어 나치 독일의 선전상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를 언급하며 스타벅스에 대한 정권 차원의 불매운동은 반미운동으로 비쳐질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조 대표는 또 일부 직원 책임을 회사 전체 잘못으로 몰아가는 건 인종 차별 선동이자 헌법이 보장한 개인 자유와 책임 원칙을 위반하는 전체주의적 발상 이라면서 챗GPT에 괴벨스가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 상점 불매운동을 지휘한 적이 있냐 고 질문한 뒤 받은 답변을 갈무리해 함께 올렸다.
이런 주장들도 언뜻 그럴 듯하게 들릴 수 있다. 회사 측은 이미 대표 경질이라는 조치를 취했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전적으로 개인의 고유한 권한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논리의 장막을 걷어내면, 스타벅스의 이러한 몰상식한 행보가 애초에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근본적 원인을 직시하게 되고 그래야 한다. 바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냉소주의 다.
앞서 언급한 아도르노는 1966년 출간된 역작 『부정변증법』에서 냉소주의의 이중성을 통렬히 꼬집었다. 아우슈비츠 이후의 사회가 붕괴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냉소주의 덕분이지만, 애초에 아우슈비츠라는 끔찍한 야만이 가능했던 이유 역시 타인의 고통에 눈을 감는 냉소주의 때문이었다는 일갈이다.
광주·전남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1일 광주 서구 광천동 이마트 광주점 앞에서 5·18 탱크데이 행사로 물의를 빚은 스타벅스 코리아를 규탄하며 불매 운동을 촉구하고 있다. 2026.5.21 연합뉴스
이를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입해 보자. 냉소주의는 5·18 이후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단순한 생존 방식이 아니라, 광주의 아픔을 가능케 했고 그 비극을 지금까지 연장시키는 범죄 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5·18과 무관한 타자가 아니라 비극을 방관한 공범이 된다.
따라서 몰상식에 맞서 불매 운동으로 연대하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슬픔을 강요하는 전체주의가 아니다. 이는 역사적 공범으로서 행해야 할 최소한의 자기 반성이자, 시민으로서의 마땅한 양심이다. 냉소주의가 진정 의미하는 바는, 광주의 비극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 사회가 여전히 그 억압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참담한 사실이다.
물론 과거의 역사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연속성도 없는 존재에게 맹목적인 슬픔을 세뇌하고 추모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전체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우리 공동체 안에서 어떤 존재에 대한 억압이 자행된 이상 그 누구도 그 억압의 사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소비의 자유를 내세운 불매운동에 대한 회의와 비판, 바로 그 파편화된 냉소주의야말로 한국 사회에서 광주의 비극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 임을 가장 뼈아프게 증명하고 있다.이승규 시민기자 seungkyu010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