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일병 구하기 미군 작전에 열광한 한국 언론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36시간 사투 영화를 방불케 하는 구출 작전 권총 하나로 버텨 하나님은 선하시다 .
한 편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나리오가 떠오르게 하는 제목들로 도배된 한국 언론의 보도들이다.
미국이 격추된 F-15 조종사 1명을 구조하기 위해 벌인 작전의 성공을 미국 신문과 방송들은 헤드라인으로 장식했다. 그리고 한국의 언론들도 이를 실시간으로 중계방송하며 마치 한국군의 성공처럼 보도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6일자 1면 머릿기사에 이를 로 실었다. 고립된 전우를 구하려 특수부대원 수백 명이 이란에 투입됐다면서 역사상 가장 대담한 구조 작전 이라는 트럼프의 말을 인용하며 이에 찬사를 보내는 듯했다. 우리는 결코 어떤 미국 전투원도 적지에 남겨두지 않을 것 이라는 트럼프의 말도 감동적으로 전한다.
이번 작전을 수행한 네이비실 팀6의 탄생 배경까지 친절하게 곁들인 이 보도들은 독자를 전쟁의 냉철한 관찰자가 아닌 미국의 응원단으로 초대한다. 네이비실 팀6의 역사, 양성 비용(대원 1인당 30억 원), 62주 훈련 과정, JSOC 창설 배경까지 상세히 소개하는 기사를 읽다 보면 한국의 독자들은 어느새 이 정예부대의 능력, 나아가 미군의 막강 전력에 경탄하게 될 듯하다. 그들이 수행하는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 묻는 것은 뒤로 밀려난다. 기사들은 ‘전투 탐색·구조(CSAR) 작전의 위험성을 설명하면서 적의 방공망과 지상군이 득실거리는 한복판으로 스스로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자국의 방어를 위해 당연히 배치된 이란군에 대해 ’적‘이며 ’득실거린다‘는 표현으로 비하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6일자 1면 머릿기사.
기사 제목부터가 한국 언론이 어디에 서 있는가를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1998년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제목을 빌려와서는 그 영화에서 묘사하는 전우애, 희생, 구원과 단순 선악 구도까지 그대로 가져와 이란 전쟁에 씌우고 있다. 한국 독자들을 미국의 시점에 서게 함으로써 이란은 적진 이 되고, 이란군은 트럼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료를 구출하려 자기 목숨을 거는 전우들에게 마구 총질을 해대는 비인도적인 야만인 이 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류의 기사들의 주요 정보 출처는 트럼프의 트루스소셜, 백악관 관계자, 미 국방부, 악시오스 인터뷰다. 사실상 미국 정부의 공식·반공식 발표가 기사의 뼈대를 이룬다. 미국 측의 얘기는 ‘밝혔다’ ‘설명했다’로 서술되는 반면 이란 측의 발표는 이란군은 주장했다 는 단서를 달아 신뢰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한 명의 미군 장교를 구하기 위한 이번 구출 작전의 이란 측 사망자는 단 다섯 글자로 처리되고 만다. 이란 측에서는 5명이 사망했다고 이란 타스님통신이 전했다 는 식이다.
이 같은 이중적인 태도는 이란측 희생자에 대한 보도들에서 이미 뚜렷이 보여온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군의 폭격 피해가 발생한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 주 미나브 마을의 초등학교 인근 공동묘지에서 인부들이 수십개의 무덤 구덩이를 파고 있다. 2026.3.4. 로이터 연합뉴스
이란인 수천 명이 이미 목숨을 잃었다는 것은 단지 하나의 숫자로 처리된다. 특히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170명이 폭격으로 사망한 것에 대한 언론의 보도와 극명히 대비된다. 미군 대령 한 명의 생존을 위해 투입된 특수부대원 200명, 수십 대의 전투기, MQ-9 드론, CIA 기만 작전, C-130 폭파 장면은 상세하게 재구성되지만 이란 아이들 170명의 죽음은 미군의 민간인 피해에 대한 공식 용어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쯤으로 취급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미군 조종사는 극한의 상황에서 신앙을 붙들었다고 언론은 전한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의 기도는 마침 부활절 주간인 것과 겹쳐 감동적인 일화처럼 소개됐다. 그러나 부활절에 기적처럼 귀환한 미군 장교의 이야기가 언론에 의해 묘사되는 바로 그 시간,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이를 기다리는 이란 부모들의 신, 그 부모들의 기도는 보이지 않았다.
한국 언론이 이란 전쟁을 미국의 시점으로 보도하는 것은 의도적 왜곡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무의식이며 구조적인 습관에 가까워 보인다. 정보의 원천이 AP, 로이터, NBC, 폭스뉴스 등 미국과 서방의 주류 언론이고, 취재 인프라가 미국 측에 집중돼 있는 탓이다. 여기에 한미 동맹이라는 배경이 보도의 토대를 형성한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이 미군 대령 한 명의 생환에 쏟은 관심과 에너지의 10분의 1만큼이라도 이란 아이들의 희생에 썼다면, 한국의 독자들은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 전쟁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 언론이 이번 조종사 구출 작전에 대해 던져야 할 질문은 수천 명의 이란인을 죽이고도 조종사 한 명의 구조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나라가 과연 정상적이며 보편적인 규범을 가진 나라인가, 라는 것이다. 또 바로 그 점에서 드러내는 미국의 일방주의, 군사주의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다. 이란 사회는 수천 명의 전사자가 나와도 내부적으로 버텨내는 상황이지만 미국은 단 한 명의 포로조차도 정치적 위기가 된다. 이는 단순한 심리적 차이를 넘어서서 이번 전쟁의 명분과 국민적 동의의 취약성에서 비롯된다. 이번 라이언 일병 구하기 작전에 대해 한국 언론이 찬탄하기 전에 먼저 짚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