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원의 ESG투자트렌드】마이애미의 변심, 공화당 텃밭을 삼킨 기후젠트리피케이션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안티ESG의 전진기지였던 플로리다주, 그중에서도 1997년 이후 단 한 번도 민주당에게 시장직을 허락하지 않았던 마이애미시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28년 만에 민주당이 시장직을 탈환한 것이다. 마이애미시는 과거 공산 정권을 피해 이주한 쿠바계 인구 밀집 지역으로, 좌파 성향에 강한 거부감을 지닌 공화당의 핵심 지지 기반이다
이 도시는 불과 3년 전에 있던 주지사 선거에서 안티ESG의 선봉장이었던 론 드샌티스에게 55%의 표를 주었다. 그런데 지난 12월 9일에는 민주당의 에일린 히긴스가 결선투표에서 무려 59%를 득표하며 압승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부분의 정권 교체와 마찬가지로 문제는 경제였다. 특히 주거비 부담이 문제였다. 주거비가 높아지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매우 높아졌고, 전 시장이 이에 대해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었다. 여기까지는 뻔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숨겨진 흑막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기후변화’다.
기후 젠트리피케이션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됐던 지역이 개발되고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저렴한 임대료를 지불하고 있던 기존 주민이나 상인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말한다. 마이애미에서는 기후변화가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주요 동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마이애미의 내륙 지역은 흑인이나 이민자가 밀집한 지역이 많다. 반면, 해안가는 전통적인 부촌이다. 당연히 해안가의 부동산 가치가 훨씬 높다. 그러나 최근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내륙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미국해양대기청(NOAA) 데이터에 따르면 마이애미 인근 해수면은 1931년부터 2024년까지 연간 약 3.19mm 상승했다. 30년이 지나도 겨우 10cm 상승하는 정도인데, 이게 무슨 대수인가 싶을 수 있다. 그러나 해수면 상승은 단순히 바닷물 수위가 오르는 것이 아니다. 해수면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만조, 폭풍 등 특정 기상 이벤트가 있을 때 침수가 발생하는 빈도와 침수 범위가 훨씬 넓어질 수 있다. 미국해양대기청은 과거와 비교할 때 미국 해안 지역에서 홍수가 이미 2배 더 자주 발생하고 있고, 2050년경에는 지금보다 10배 이상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플로리다주 부동산 시장은 이러한 위험에 반응하고 있다. 미국 부동산 중개회사 질로우 및 마이애미 중개사 협회 데이터에 따르면 대표적인 고지대 지역인 리틀 아이티의 주택 가격은 2012년부터 2023년 기간 동안 7배 넘게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마이애미 전체는 약 3배 상승에 그쳤다. 이러한 현상은 학술 연구로도 입증되었다. 2018년에 이루어진 Keenan의 연구는 1971년부터 2017년까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에 위치한 부동산의 고도별 가치 상승률을 추적하였는데, 2000년쯤부터 가장 고도가 낮은 지역의 가치 상승이 고도가 높은 지역 대비 뒤처지며 격차가 커지는 모습이 확인됐다.
플로리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모건스탠리가 올해 전 세계 기관투자자 9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동산 및 인프라 등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투자자 중 53%가 물리적 리스크를 ‘리스크-리턴 모델’의 핵심 요인으로 고려한다고 응답하였고, 42%는 사안에 따라 고려한다고 응답하여, 전체 응답자 중 95%가 물리적 리스크를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기후 리스크 관리가 핵심이라고 응답한 북미 지역 투자자의 비중은 65%로 글로벌 평균인 53%를 크게 상회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 기조와 관계없이 기후변화로 인한 물리적 리스크가 중요 요소로 대두된 것이다.
장기적인, 그러나 비선형적인 물리적 리스크
그러나 아직 시장은 물리적 리스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이와 같은 홍수 위험을 고려할 때 마이애미시가 포함된 플로리다 주의 부동산 가치가 상당히 고평가되어 있으며, 홍수리스크가 반영될 경우 해안가 주택 가치가 2030년까지 최대 15%, 2050년까지 최대 35% 감소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투자자의 시간 지평이 구조적으로 단기 성과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분기·연간 단위의 성과평가와 환매·자금유출에 대한 압력은 10~20년 단위로 누적되는 침수 빈도, 보험료의 구조적 상승, 인프라 유지비 증가 같은 변화를 ‘먼 훗날의 변수’로 밀어내기 쉽다.
문제는 물리적 리스크가 비선형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해수면의 수위가 일정 수준 이하일 때는 큰 문제가 없다가 일정 수준이 넘어가는 순간 침수 빈도가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그 순간이 되면 보험 인수 가능성이 낮아지고, 거래유동성이 악화되어 재해가 반복되는 지역부터 할인율이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
단기 성과에 매몰되어 비선형적인 물리적 리스크를 먼 미래의 비용 으로 치부하는 관성은 이제 위험하다. 정치적 소음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포트폴리오의 회복탄력성을 재점검해야 한다. 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리스크의 임계점은 매일 높아지고 있다.
☞ 박세원 팀장은
박세원 팀장은 국내 ESG리서치 기관에서 ESG리서치 및 의결권행사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5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종합자산운용사인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ESG전담부서를 맡아 ESG 투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체적인 ESG평가 모형을 비롯한 ESG리서치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운용부서와 협력하여 ESG요소를 투자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