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에 공개한 지귀연 판결문 내란사범 익명 처리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19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공판 TV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윤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026. 2. 19 ⓒ연합뉴스
지귀연 재판부가 기괴한 판결문으로 불법 계엄을 막아선 시민들을 우롱한 것이 엊그제인데, 서울중앙지방법원이 22일 오후에야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우두머리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문을 법조기자단에게 공개하면서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만 실명으로 처리해 논란을 낳고 있다. 모든 국민들이 재판 과정 생중계를 통해 노상원·조지호·김봉식·목현태·윤승영·김용군 등 내란 주요 임무 종사자 6명의 유무죄 여부 및 선고 형량 내용을 보고 들었는데 이들의 이름을 굳이 익명으로 처리해 공개한 것이다.
이에 따라12·3 내란과 이를 막아선 국민들의 저항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고려해 제대로 실명 기재되고 국가안보에 관련된 몇몇 군인들의 이름만 익명으로 기재된 판결문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윤석열 등 내란우두머리 혐의 사건 선고를 하며 여덟 차례나 자세한 내용은 판결문에 기술했으니 참고할 것 을 강조하고 당부했다. 그런데 정작 판결문은 실명을 익명으로 바꾸는 작업을 거쳐 22일 오후가 되어서야 법조출입기자단에게만 파일 형태로 제공됐다. 중앙지법은 기자단 소속이 아닌 언론사가 판결문을 요청할 경우 평일 중에 파일이 아닌 종이 출력본으로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23일 간접 경로로 입수한 (언론제공용)2025고합129.pdf 파일은 1204쪽 짜리다. 판결문 제공 관련 출입기자단 안내사항 도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 없지 않다.
1. 출입기자단 외 제3자에게 유출하여서는 안됩니다.
2. 비실명화 작업과정에서 비실명화가 불충분하게 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판결문 중 개인정보 등이 있을 경우 언론사의 판단과 책임하에 추가 비실명화 여부를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3. 정식의 절차가 아닌 출입기자단에 대한 판결문 제공은 원활한 취재를 위해 예외적으로 제공해드리는 것으로, 법원으로부터 판결문을 제공받았다는 등의 표현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판결서를 사진(캡쳐 등)으로 찍어 올리시면 안 됩니다.
법원이 어떤 이유에선지 공식 배포를 미루는 사이 일부 언론사는 지난 20일부터 판결문을 입수했다며 경쟁적으로 단독 보도를 했다. 기사마다 판결문 분량도 1130쪽, 1234쪽, 1252쪽 등 제각각이었다. 비공식 경로로 입수된 판결문이 법조계와 언론계에 알음알음 공유돼 보도된 셈이다.
법원의 내란 판결문 비공개와 비실명화 처리를 두고 비판이 나온다.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파괴한 중대 사건 판결문을 국민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하지 않고, 언론 공개본마저 암호화 에 가깝게 익명 처리한 것은 어이없다는 지적이다. 내란 사건이자 국헌 문란 사건을 역사적으로 기록하는 일은 절대 법원이 외면하거나 회피해선 안되는 일이다. 이런 중차대한 사건을 다룬 판결문을 공개하면서 핵심 피의자들과 주요 증인, 사건 관계자들의 실명을 감추고 JK LL 등으로 표기한 일은 어처구니없는 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3일 페이스북에 12.3내란재판 판결문...실명으로 공개하라 제목의 글을 통해 공개된 판결문은 무려 1200쪽 이상의 분량 이라며 아마 1심 판결문 중에서 가장 긴 분량이 아닌가 싶다. 다수 재판연구관의 조력을 받는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와는 달리, 1심 판결은 오직 3인의 판사만 관여하는데 3인 판사들이 얼마나 노고가 많았는지 (판결 자체의 논란과 별개로) 짐작할 수 있다 고 적었다. 한 교수는 거의 마지막까지 여러 재판이 동시에 진행되었던 만큼, 지난 7-8개월동안은 거의 매일 재판하고 정리하고...어마어마한 고생을 했음을 느끼게 된다 며 판결문 내용을 보니, 생생한 증언과 카톡들의 교환이 그대로 실려 있어, 언론은 물론 역사연구와 다큐 영상 제작에도 꼭 필요한 자료이자 사료라고 생각한다 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한 교수는 12.3내란은 모두 최고위 공직자들의 공적 활동이 문제된다. 한 명 한 명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는 주권자 국민의 알 권리가 절대적 이라며 통상 비실명 처리할 때는 사생활 보호, 증인 보호, 국가안보 등의 필요가 있을 때인데 이 판결문에는 사생활이 들어 있지 않고, 증인의 증언도 위증죄 운운할 만큼 단어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판결문을 작성해놓고, 거기에 J. K. 등이나 000 등으로 처리할 별다른 필요가 없다 고 강조했다.
이어 공판 과정이 방송 중계됐다. 중계보다 판결문은 훨씬 제한적이다. 그러니 더 익명화할 이유가 없다 며 판결문에서 J.K. OOO 식으로 처리하면 가독성이 훨씬 제한된다. 편안하게 읽어갈 수가 없다 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나아가 이 판결문은 당사자(피고인, 증인, 검사, 변호인) 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전 국민이 그 판결문을 숙독하고, 토론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해, 논평할 필요가 있다 면서 법정에 등장한 관련자 뿐 아니라, 전체 국민에게 정확하고 편리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고 강조했다.
그렇잖아도 지귀연 재판부의 판결 논조는 국민의 알 권리, 침해당한 국민의 권리라는 차원이 아니라, 피고인들과 피해자(사건에 말려들어 고초를,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고 있는 군.경 고위층)에 대한 배려가 넘친다는 비판을 받았다. 한 교수는 이런 상황에도 판결문 공개방식에서도, 피고인. 피해자에 대한 배려만 우선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소홀히 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내란죄는 피고인들이 전국민에게 지은 죄입니다. 따라서 그 판결문의 수령자는 전체 국민임을 명심해야 한다 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율사 출신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에 출연해 이렇게 판결문을 익명 처리해 법조기자단 소속 언론사에만 제공한 것에 대해 법원이 자신들의 판단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 이라고 꼬집었다. 박 의원은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문도 실명으로 공개돼 있다 면서 많은 혐의자가 당시 어떤 행위를 했는지가 다 드러났고 전 국민들도 이 사안을 알고 있기에 1심 판결문 역시 다 공개하는 것이 맞다 고 지적했다.
이어 1100페이지가 넘는 판결문을 공개하면서 실명 처리해 일반 시민들이 보기(해석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건 법원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자체에 매우 자신 없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것 아닐까 싶다 고 꼬집었다. 따라서 법원은 본인들의 판단이 제대로 된 것인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다면 공개하는 것이 맞다 면서 일반사건의 경우에는 개인 권리 보호 차원에서 비실명 처리가 맞지만, 이 사건은 굉장히 역사적 의미가 있는 판결이고 국민들이 평가와 논의를 해야 하는 사건이기에 공개하는 것이 맞다 고 강조했다.
앞서 차성안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국민들은 윤석열 내란죄 판결문 파일을 실명으로 읽고 토론하고 논할 자유가 있다”며 윤석열 내란죄 사건 판결문과 같이 국민의 알 권리, 언론의 자유, 학문의 자유 측면에서 역사적 책임을 질 이들의 실명이 담겨야 하는 사건에는 실명을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교수는 이어 지귀연 재판부이든,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원장이든, 법원행정처장이든, 그 공개의 책임을 지는 자에 의한 윤석열 내란죄 사건 판결문에 대한 기계적 비실명화는 위헌적 행위”라며 수천, 수만의 국민들이 지귀연 재판부에 윤석열 내란죄 전체 실명본 판결문 즉시 교부 신청을 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탄핵심판 사건 국회대리인단으로 실무를 이끌었던 김진한 변호사도 지난 21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를 통해 (내란 사건은) 역사에 기록돼야 할 사건이다. 판결문은 그 자체로 중요한 역사적 사료가 되며, 관련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남아 역사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하는 사건이기도 하다”며 국민 알권리 측면에서도 공개해야 할 뿐더러, 내란사건은 (피고인 등 관련자)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조금도 개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할 판결을 법원이 비실명화한다는 조치는 자신들이 한 재판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라며 내란사태에 연루된 자를 모두 비실명화하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 사실상 암호화하고 비공개하는 것과 같다. 재판부가 이 같은 방식으로 심판받는 사람들을 감춰주는 것은 이 재판의 역사적 의미를 없애버림으로써 또 한 번의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익명 공개와 대조적으로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결정문을 공개했다. 누구든 헌법재판소 웹사이트에서 피청구인 윤석열과 증인을 비롯한 모든 관계자 이름을 실명으로 밝힌 결정문을 열람할 수 있다.
차 교수는 22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를 통해 미국은 판결문은 물론 소송기록까지 폭넓게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미확정 사건의 형사 판결문에 대해 일반 국민이 열람·등사할 수 없는 구조”라고 전했다. 최근 미확정 형사 사건의 (비실명) 판결문도 열람 또는 등사할 수 있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2년의 유예기간이 설정돼 있어 당장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차 교수는 법원이 헌법상 알 권리 차원에서 법률과 관련 규정에 반해 미확정 형사 판결문도 기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제공해 왔지만, 국민 전체에 대한 공개나 사생활의 비밀보다 국민의 알권리가 중요한 사건의 실명본 판결 제공은 나몰라라 했다”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내란사건 판결문 실명본을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한 입장을 주중에 답변하겠다고 밝혔다고 미디어오늘은 전했다. 그러고 보니 지귀연 부장판사는 23일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