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ESG 관점에서 삼성전자 파업을 보는 눈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의 돈 싸움이 가관이다. 삼성 노조가 임금 인상과 성과급 협상이 실패할 경우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하겠다고 발표하자 주주 단체인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가 맞불집회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사람들은 평택사업장 앞을 메운 4만여 명의 함성과 장기 파업의 전운을 보며 ‘성과급 몇 퍼센트’의 산술적 싸움에 주목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단순한 임금 분쟁으로 치부한다면 사태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지금 삼성전자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노동, 자본, 공급망, 지역사회가 합작한 부가가치를 어떤 원칙으로 배분할 것인가를 묻는 ‘ESG 거버넌스’의 근본적 문제다.
삼성전자의 인적자본, 비용인가, 자산인가
표면적 쟁점은 명확하다. 노조는 성과급 상한제 폐지와 투명한 산정 공식, 영업이익에 연동된 공정한 배분을 요구한다. 반면 사측은 경영 불확실성과 비용 부담을 이유로 방어막을 친다. 여기서 ESG의 핵심 질문이 파생된다. 삼성전자는 과연 인적 자본을 기업 가치 창출의 ‘핵심 자산’으로 보는가, 아니면 통제해야 할 ‘비용 항목’으로만 다루는가.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미세 공정의 장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수율 개선,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첨단 기술 경쟁, 복잡한 공급망 관리와 고객 대응은 모두 숙련된 인적 자본의 축적 위에서 가능하다. 회사가 초과 이익을 낼 때 그 기여도가 불투명한 기준으로 보상된다면 조직 내부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ESG에서 S(사회) 는 단순한 복지 캠페인이 아니다. 노동자의 존엄과 공정한 보상, 그리고 조직 내 신뢰라는 사회적 지속가능성을 포괄하는 지표다.
물론 노조의 요구가 적절한지 여부 역시 ESG 관점에서 엄격한 검토가 필요하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정규직 내부 성과급으로만 돌리라는 주장이 공급망 전체의 공정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이는 ‘내부자들의 리그’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삼성전자의 이익은 정규직뿐만 아니라 수많은 협력업체, 소재·부품·장비 기업, 하청 노동자, 지역사회의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만들어낸 결실이다. 이익 배분 논의가 주주와 정규직 사이의 힘겨루기로만 좁혀진다면, 앞으로 가치사슬 하단의 노동자와 중소 협력업체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 지점이 ESG 관점에서 현재 삼성전자 노사 대결이 보여주는 문제이다. 경영진은 노동을 비용으로 치부하고, 노조는 내부 이익에 집중하며, 주주는 배당과 주가만을 걱정한다. 누구도 가치사슬 전체를 아우르는 ‘공정한 배분 규칙’을 체계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글로벌 ESG 기준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타협이 아니다. 인적 자본 관리와 공급망 책임, 이사회 감독과 보상 거버넌스를 하나의 전략적 체계로 연결하는 일이다.
이사회와 경영진, 보상 원칙 투명하게 결단해야
삼성전자 이사회와 경영진의 책임있는 결정이 막중하다. 초일류 기업이라면 갈등이 폭발한 뒤 법적 대응과 공권력의 힘을 빌려 사태를 수습할 것이 아니라, 사전에 예측 가능한 보상 원칙을 수립했어야 한다. 법적 대응은 갈등 관리의 최후 수단일 뿐, 신뢰를 회복하는 ESG 전략이 될 수 없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인재 중심 경영’이나 ‘상생 협력’이라는 문구가 위기 상황에서 무색해진다면 그것은 ESG 경영이 아니라 그린워싱성 ‘홍보’일 뿐이다.
삼성전자는 이제 네 가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첫째, 성과급 산식과 상한의 근거를 명확히 그리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둘째, 임원과 직원, 주주 환원과 협력사 거래 조건 사이의 합리적 균형점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 공급망 노동자와 협력사까지 포함한 배분 원칙을 ESG 전략의 핵심으로 격상해야 한다. 넷째, 이 문제를 단순 노무 이슈가 아닌, 장기 기업 가치를 결정짓는 인적 리스크 로 규정하고 이사회가 직접 감독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이번 파업은 한국형 ESG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ESG 경영에 진심이라면 이익을 낸 뒤 누구에게 얼마를 줄 것인가 라는 사후적 질문에 머물러선 안 된다. 그 이익이 누구의 기여로 만들어졌으며, 어떤 규칙으로 나누어야 공동체가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해야 한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의 종착지는 단순한 임금 인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새로운 분배 질서를 확립하는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는 국내 ESG 전문가로 꼽힌다. 양춘승 상임이사는 서울대 경제학 학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 석박사 출신으로 2007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설립을 주도했고 현재까지 상임이사를 맡고 있으며,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다. 양춘승 이사는 2008년에 국내 최초로 글로벌 금융기관 주도의 기후 관련 정보공개프로젝트인 CDP를 국내에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이후 RE100, EV100(전기차 전환 캠페인), PCAF(탄소회계 금융협의체), SBTi 등 국제적인 이니셔티브를 도입하며 우리나라 금융과 기업의 지속가능성 경쟁력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