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핵잠수함 건조…우려되는 핵의 그림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10월 30일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다음 날 아침, 정부는 미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계획에 대한 참여 수락 을 공식 발표했다. 외교부는 한·미 간 전략적 신뢰의 상징 이라고 자찬했고, 대통령실은 대한민국의 억지력 강화의 전환점 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그 전환 이란 말은 언제나 위험하다.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길을 바꾼다는 뜻이고,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가가 문제다. 지금 우리가 선 자리에서, 그 길은 평화를 향해 열려 있는가? 아니면 또다시 냉전의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는가?
미국 해군 로스앤젤레스급 핵 추진 잠수함 알렉산드리아 함 (SSN-757·6900t급)이 10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1991년에 취역, 국내에 처음 입항하는 이 잠수함은 길이 110m, 폭 10m, 승조원 140여 명 규모다. 2025.2.10. 연합뉴스
성배처럼 떠받든 핵의 그림자
핵잠수함을 둘러싼 이번 결정은 단순한 무기 체계 도입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 질서 속에서 한국이 스스로를 어디에 위치시키는가의 문제다. 정부는 이를 안보의 성배 처럼 떠받들며, 마치 그것을 손에 쥐면 모든 불안이 사라질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성배는 언제나 신화 속의 대상이지, 현실의 안전을 보장해 준 적이 없다.
핵잠수함이 의미하는 것은 자주국방이 아니라 의존의 심화 다. 미국은 자국의 기술과 핵연료 공급망을 독점하면서, 한국의 군사 체계를 자국의 전략에 편입시킨다. 우리는 핵잠수함을 얻는 대신, 스스로의 전략적 자율성을 잃는다. 이 불평등한 거래 속에서 동맹 강화 라는 수사는 얼마나 공허한가. 핵잠수함은 우리에게 방패가 아니라 사슬이다. 그것은 단순한 철갑이 아니라 미국의 핵 전략이라는 커다란 톱니바퀴 속으로의 편입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사슬은 보이지 않지만, 점점 더 조여온다.
핵 억지 의 언어가 숨긴 진실
정부는 핵 억지력 을 강조한다. 북한의 핵 위협이 상수인 한, 핵을 통한 대칭적 억지 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억지란 말은 언제나 모순의 언어다. 억지를 위해 무장을 강화하는 순간, 상대도 똑같이 강화한다. 억지의 균형은 늘 불안정하며, 그 끝에는 상호 파멸이 있다.
핵의 논리는 결국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우리의 핵은 정의로운 핵이고, 너희의 핵은 불법적인 핵 이라는 식의 이중논리가 정당화된다. 한국이 미국의 핵잠수함 체계에 참여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비핵화의 당사자 가 아니라 핵동맹의 파트너 가 된다. 남북관계는 새로운 군비경쟁의 늪으로 들어가고, 동북아의 불안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진정한 안보는 무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안보란 사회적 신뢰의 총합이며, 외교적 균형 위에서 유지된다. 군사적 종속 위에 세워진 안보는 모래성에 불과하다.
재처리의 환상, 핵잠수함과 사용후핵연료
일부에서 핵추진 체계와 함께 제기되는 재처리 허용 주장은 기술적·환경적 현실을 외면한 환상에 가깝다. 재처리를 통해 사용후 핵연료의 양을 줄이고 우라늄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논리는 감성적으로 매력적일지 몰라도, 그간의 재처리 시도들이 보여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첫째, 재처리로 얻는 재생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원전 연료로 그대로 쓰기 어렵다. 재처리된 우라늄에는 불순물이 남아 경제성과 안전성 측면에서 원전 연료로 사용하기 부적합한 경우가 많고, 재처리된 플루토늄도 상업용 원전 연료로 바로 사용하기 어렵다.
둘째, 재처리 공정은 고도의 방사성 물질을 다루는 과정에서 기기·설비·용액 자체를 오염시켜 결국 더 많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만든다. 재처리로 폐기물량 감소 대신 오히려 복잡한 형태의 방사성 잔류물을 늘리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셋째, 재처리는 군사적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재처리 능력은 핵무기 확보 가능성과 연결되어 국제적 제약과 검증의 대상이 된다. 재처리 허용 요구는 단순한 기술·환경 문제를 넘어 국제적·정치적 파장을 수반한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하면, 핵추진 잠수함 도입 논의에서 재처리 문제를 단순한 기술적 옵션 으로 취급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재처리를 통해 얻는 장점은 과장돼 왔고, 그 대가인 환경 오염, 폐기물 증가, 국제적 의혹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1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스마트에너지플러스 2025 에서 관람객들이 소형모듈원전(SMR)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2025.10.15. 연합뉴스
작은 원자로인가, SMR인가, 설계와 현실
또한 핵추진 잠수함에 탑재되는 원자로를 한국형 스마트 원자로 나 상업적 소형모듈원자로(SMR)로 포장하는 주장도 사실 관계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잠수함에 쓰이는 원자로는 군사 목적의 소형 원자로로, 특수한 설계·운용·안전 요구를 가진다. 이 경우 러시아나 미국 등 외국 설계 도면을 기반으로 들여오거나 라이선스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상업적 SMR과 군용 소형 원자로는 설계 목표와 규제 범주가 다르다. 핵추진 잠수함의 원자로가 ‘SMR’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국내 산업 이득이나 기술 자립의 명분으로 쉽게 연결되어선 안 된다.
특히 이번 합의에서 핵잠수함이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한화 필리 조선소)에서 건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미국산 원자로와 운용 체계가 탑재될 경우, 한국형 원자로 운용의 독립적·자주적 발전 가능성은 제한된다. 즉 우리 기술의 도입 이 아닌 미국 기술의 배치 가 현실일 가능성이 높다.
바다와 미래 세대에 남기는 문제들
핵추진 잠수함이 한국의 바다에 상시 운행되면 그 운용·정비 과정에서 나오는 방사성물질과 폐기물 문제가 장기적 환경 리스크로 남는다. 잠수함 운용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폐수와 오염물질은 해양 생태계에 장기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수십 년에 걸쳐 바다에 미치는 영향은 단일 원전 하나를 수입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이는 우리 연안과 어업, 인접국과의 갈등까지 불러올 수 있다. 국민과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 할 환경·건강 리스크를 사전에 평가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하지 않는 무책임한 채택은 정당화될 수 없다.
미국의 이익, 한국의 착각
이번 결정은 사실상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위한 정치적 선물 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축으로 한국을 지정했고, 그 전략의 실질적 목적은 중국 견제 다. 핵잠수함 기술 이전이나 공동 건조는 한국의 국익보다는 미국의 안보 아젠다에 봉사하는 일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첨단 기술 확보의 기회 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통제하는 라이선스 생산에 그칠 개연성이 크다. 설계, 핵연료, 운영 매뉴얼 모두 미국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제약이 따른다. 기술적 자립이 아니라 기술적 속박이다.
신뢰 란 평등한 관계에서 피어난다. 일방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관계는 신뢰가 아니라 복종이다. 한국이 미국의 핵 전략에 깊이 발을 들이는 순간, 우리의 외교는 선택지가 줄어든다. 중국과 러시아, 나아가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펼칠 여지가 사라진다. 한국은 미국의 이익을 우리의 국익 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착각은 언제나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 추진 잠수함 건조 실태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8일 보도했다. 2025.3.8.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냉전의 유령이 부활하다
핵잠수함은 단지 바다 밑의 무기가 아니다. 그것은 냉전의 부활을 상징하는 유령이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는 신냉전 질서 로 빠르게 회귀하고 있다. 미·중 갈등, 미·러 대립, 일본의 군사대국화, 그리고 한국의 핵잠수함 참여는 모두 그 거대한 흐름의 일부다.
이제 한반도는 다시 대리전의 무대 가 될 위험에 처했다. 전쟁의 중심은 늘 이 땅이었다. 1950년에도 그랬고, 1970년대에도 그랬다. 그리고 지금, 21세기의 한가운데서 또다시 그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한국은, 스스로의 역사를 망각한 나라다. 역사는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왔다. 강대국의 군사 전략에 휩쓸릴 때마다, 한국은 전쟁의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냉전의 재현은 곧 비극의 재현이다.
새로운 길을 묻는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안보 를 말하는가? 국민의 세금으로 건조될 핵잠수함은 누구를 보호하는가?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가, 아니면 미국의 태평양 전략을 완성하는가? 재처리와 핵연료 문제, 잠수함 원자로의 실제 소유·운영권, 해양과 지역 환경에 대한 장기적 영향까지 고려하면 이 결정은 단지 군사·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환경적·국제적 결단이다.
한국의 평화는 무기의 개수가 아니라, 외교의 방향에서 결정된다. 핵잠수함 한 척보다 남북 대화의 한 문장이 더 강력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 총성 없는 전쟁을 끝내는 길은 핵무장의 심화가 아니라, 상호 신뢰의 회복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핵의 성배 가 아니라 평화의 언어 다. 우리가 손에 들어야 할 것은 잠수함의 조타핸들이 아니라, 대화의 지도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싶다. 평화는 무기를 가진 자의 입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질문하는 시민, 그리고 권력에 맞서는 양심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