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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성냥개비 사람들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의 다섯 색깔

성냥개비 사람들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의 다섯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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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집세 받으러 다니고 밤에 그림 작업 1887년 11월 1일 영국 랭커셔주 스트랫퍼드에서 태어난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Laurence Stephen Lowry, 1887~1976)는 60년 넘게 그림을 그렸는데 성공한 예술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버지는 부동산 회사의 말단 사무원, 어머니는 건강 악화로 피아노 연주자의 꿈을 접어야 했다. 어머니가 딸을 원해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한 아이였다. 1905년부터 그림을 배웠는데 본업은 집세 징수원이었다. 40년을 낮에는 집세 받으러 다니고,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 화가 아돌프 발레트(Adolphe Valette, 1876~1942)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일요일 화가 라는 조롱이 들려왔다. 라우리는 받아쳤다. 나는 매일 그림 그리는 일요일 화가다. 1932년 부친 사망 후 빚더미를 떠안았고, 1938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인정받기 시작한 건 1939년 런던 첫 개인전 이후였다. 어머니는 아들의 성공을 보지 못했다.   라우리가 1961년 10월 샐퍼드에서 열린 자신의 전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 Brief History of L.S. Lowry | Modern British & Irish Art | Sotheby’s) 성냥개비 인간 의 진짜 의미 라우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성냥개비처럼 가느다란 사람들이 공장 앞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풍경. 영국에서는 성냥개비 사람들 (matchstick men)이라 불렀다. 정작 라우리는 이 표현을 싫어했다. 내 그림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 아닌가? 하지만 전혀 단순하지 않다. 다섯 가지 색으로 20세기 영국 산업도시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회색 공장, 검은 연기, 하얀 하늘, 그리고 사람들. 그림자도 없고 날씨 변화도 없다. 반복되는 일상. 고단한 삶. 라우리는 말했다. 내가 외롭지 않았다면, 이런 걸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미술자문위원회의 의뢰로 제작된 라우리의 작품, 출근하는 사람들 (1943) (위키피디아) 영국 산업혁명의 어두운 뒷면 라우리가 그린 세상은 산업혁명의 결과물이었다. 1760년부터 영국은 농업사회에서 공업사회로 바뀌기 시작했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가 증기기관을 개량하고, 제임스 하그리브스(James Hargreaves, 1720~1778)가 방적기를 발명하며 대량생산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부는 소수 자본가에게만 갔다. 농촌에서 쫓겨난 농민들은 공장 노동자가 됐다. 하루 15시간 노동, 쥐꼬리만 한 임금. 1페니를 내면 서서 자야 했고, 2페니를 내면 줄에 몸을 건 채 잠들 수 있었다. 1810년대 러다이트 운동으로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쉈지만 탄압 당했다. 1833년이 되어서야 아동노동 금지법이 통과됐다.   라우리의 1936년 작품 가족 (A Brief History of L.S. Lowry | Modern British & Irish Art | Sotheby’s) 그가 그린 고통의 기록 대표작 출근하는 사람들 (1943년)을 보라. 눈 내리는 겨울날, 공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수백 명. 얼굴은 안 보여도 무거운 발걸음이 느껴진다. 방앗간에서 나오며 (1930년)는 더 상징적이다. 1915년 기차를 놓친 라우리는 우연히 방직공장을 보게 됐다. 거대한 검은 틀에 노란 불빛.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 내가 평생 무엇을 그려야 할지 알았다. 하지만 라우리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억압은 사후 발견된, 기괴하기 짝이 없는 마리오네트 연작 에 드러났다.   라우리의 1942년 작품 눈 덮인 공장 마을 (A Brief History of L.S. Lowry | Modern British & Irish Art | Sotheby’s) 다섯 번의 명예를 거부한 남자 라우리는 영국 역사상 가장 많은 명예를 거부했다. 1955년부터 1976년까지 대영제국 훈장과 기사작위를 다섯 번이나 거절했다. 왜?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엔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1976년 2월 23일, 88세로 폐렴으로 사망했다. 몇 달 후 왕립미술원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지만, 라우리는 그걸 보지 못했다.   라우리의 1961년 작품 교회 첨탑이 있는 거리 풍경 (A Brief History of L.S. Lowry | Modern British & Irish Art | Sotheby’s) 우리도 성냥개비 인간, 더 외로운 새벽 6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스마트폰을 보는 출근 길의 사람들. 라우리의 성냥개비 인간처럼 그림자 없이 걷는다. 구로디지털단지, 판교테크노밸리, 여의도. 현대판 공장들이다. 굴뚝 대신 형광등 불빛. 똑같다. 1960년대 산업화. 박정희(1917~1979) 정권의 잘 살아보세  구호. 전태일(1948~1970)은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외치며 분신했다. 하루 15시간, 주 7일 근무. 영국 산업혁명기와 뭐가 다른가? 현재,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비정규직은 늘어난다. 배달 라이더들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달린다. 라우리 그림 속 노동자들처럼. 더 아이러니한 건, 우리가 더 외롭다는 사실이다. 500명의 소셜미디어 친구가 있어도 진짜 친구는 없다.   라우리의 1959년 작품 미들즈버러 구 시청 (A Brief History of L.S. Lowry | Modern British & Irish Art | Sotheby’s) 라우리에게 배울 세 가지 첫째, 일상을 외면하지 말라. 라우리는 40년을 집세 징수원으로 일하며 사람들의 삶을 봤다. 가난, 고통, 희망, 절망. 그걸 외면하지 않고 그렸다. 한국 예술가들도 배달 라이더, 콜센터 상담원, 편의점 알바생의 삶을 외면하지 말라. 둘째, 단순함 속에 진실이 있다. 다섯 가지 색, 성냥개비 사람들. 하지만 그 속에 20세기 영국이 모두 담겨 있다.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 없다. 진실은 단순하다. 셋째, 계급을 잊지 말라. 라우리 그림은 철저히 계급적이다. 자본가는 없고 노동자만 있다. 오늘날 한국도 마찬가지다. 재벌과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서울과 지방. 우리는 여전히 계급사회에 산다.   영국 롱덴데일의 모트람에 있는 L. S. 라우리 동상 (위키피디아) 우리는 모두 성냥개비 인간이다 2000년 영국 샐퍼드에 라우리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2011년 그의 작품이 100억 원에 낙찰됐다. 일요일 화가라고 비웃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나? 하지만 라우리가 묻고 싶은 건 이게 아니다. 내 그림이 비싸게 팔린다고, 당신들 삶이 나아졌는가? 1915년 영국 노동자와 지금의 한국 노동자. 백 년이 지났지만 뭐가 변했는가? 라우리는 죽기 전 말했다. 나는 그저 내가 본 것을 그렸을 뿐이다. 우리는 볼 용기가 있는가? 성냥개비 같은 사람들. 그게 우리다. 라우리의 그림은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니 더 절실하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라우리(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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