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재해 비용, 기업에 청구한다…美·유럽 입법 확산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후 재해로 보험이 감당하지 못한 손실이 공공 체계를 거쳐 결국 기업과 소비자 부담으로 이동하고 있다. / 출처 = Unsplash
주요국이 이상 기후로 인한 손실을 화석연료 기업에 청구하는 입법에 나서고 있다.
22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과 유럽 정부들이 기후 재해 보험 비용의 책임 주체를 바꾸는 입법·정책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부 주에서는 이미 법제화가 이뤄졌으며, 다른 주로 확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보험 시스템, 한계선 진입
글로벌 재해 보험 손실은 매년 실질 기준 5~7%씩 증가하고 있다. 재보험사 스위스리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자연재해 보험 손실은 1070억달러(약 157조원)였으며, 이 중 캘리포니아 산불 피해만 400억달러(약 59조원)를 차지했다. 단일 재해가 전체 손실의 37%를 차지한 셈이다.
민간 보험사들이 고위험 지역에서 신규 인수를 줄이거나 철수하면서 주민들의 공공 보험 의존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의 공공 보험 프로그램인 FAIR 플랜의 보장 규모는 2022년 9월 2200억달러(약 323조원)에서 올해 3월 7500억달러(약 1103조원)로 세 배 이상 확대됐다.
지난해 LA 산불로 캘리포니아 FAIR 플랜의 지급 능력이 흔들리자 규제 당국은 주 내 보험사들에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 규모의 추가 분담금을 부과했다.
미국은 고위험 지역에서 민간 보험사가 철수할 경우 공공 보험으로 이를 보완하고, 손실이 발생하면 보험사들이 이를 공동으로 분담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 비용은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며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재해 비용, 화석연료 기업에 청구하라
입법 전선에서 이미 법제화된 대표 사례는 뉴욕이다. 캐시 호컬 주지사는 지난해 12월 ‘기후변화 슈퍼펀드법’에 서명했다. 2000년부터 2024년까지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한 기업들이 연간 30억달러(약 4조4000억원)씩 25년간 기금을 조성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보험 손실을 직접 겨냥한 법은 아니지만, 재난 복구 비용을 기업에 전가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2024년 버몬트에 이어 두 번째 사례다. 다만 두 법 모두 공화당 주 법무장관들과 에너지 업계가 제기한 연방 소송에 직면해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스콧 위너 주 상원의원이 발의한 SB 982가 보험 손실 회수를 직접 겨냥한다. 주 법무장관이 화석연료 기업을 상대로 재해 관련 보험 손실 회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 4월 14일 사법위원회 첫 표결에서 부결됐지만 재심의를 거쳐 21일 찬성 9, 반대 2로 통과돼 보험위원회로 넘어갔다. 아직 본회의와 하원 심사, 주지사 서명 절차가 남아 있다. 하와이에서도 유사 법안 SB 1166이 하원 재정위원회를 통과한 상태다.
위너 의원은 피해자와 납세자, 보험 가입자는 모두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비용을 내지 않는 쪽은 화석연료 산업”이라고 밝혔다.
유럽은 ‘공동 부담’…그러나 시장 왜곡 우려도
유럽은 국가 개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EU 보험·연금 감독기구는 보험료 기반 기금을 조성하고, 대형 재해 발생 시 대출로 보완하는 공동 리스크 분담 체계를 제안했다.
독일 보험업계는 정부 손실 보전 장치를 갖춘 민간 보험 풀 ‘엘레멘타르 리(Elementar Re)’ 설립을 추진 중이며, 300억유로(약 52조원)를 넘는 대규모 재해에 한해 정부가 개입하는 구조다. 이탈리아는 모든 기업에 자연재해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국가 재보험사가 손실의 절반을 보장하기로 했다.
다만 국가 개입이 커질수록 부작용도 지적된다.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홍수 재보험 제도 ‘플러드 리(Flood Re)’의 페리 토마스 최고경영자는 FT에 이 제도는 가격 신호를 제거해버렸다”며 대출기관 등 시장 참여자들이 위험을 외면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고위험 지역 개발을 억제하는 시장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FT는 투자자든 납세자든 화석연료 기업이든 재해 피해자든 결국 누군가는 이 비용을 떠안게 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