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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아이를 가르치기 전에 사랑하라 페스탈로치의 편지

아이를 가르치기 전에 사랑하라 페스탈로치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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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겨울, 스위스 슈탄츠(Stans).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의 군대가 휩쓸고 간 마을에는 전쟁고아 80여 명이 버려져 있었다. 굶주리고, 이가 들끓고, 눈빛마저 흐릿한 아이들. 이 아이들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선생님도 없고, 돈도 없고, 건물도 반쯤 무너진 채였다. 그런데 이 남자, 도망가기는커녕 직접 아이들 이를 잡아주고, 밥을 퍼주고, 글을 가르쳤다.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 스위스가 낳은, 아니 스위스가 좀처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교육의 혁명가다.   페스탈로치 초상화 1806년 경(위키피디아) 귀족도 아니고, 혁명가도 아니고, 그냥 선생님 페스탈로치는 174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손에 자랐으니, 가난이 뭔지는 몸으로 알았다.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에밀 을 읽고 교육에 눈을 떴다는 점에서는 여느 계몽주의자들과 비슷했다. 그런데 루소는 책상 앞에 앉아 자연으로 돌아가라 고 썼고, 정작 자기 자식 다섯을 고아원에 갖다 버렸다. 페스탈로치는 달랐다. 그는 직접 농장을 일구고, 가난한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살았다. 이론보다 몸이 먼저였다. 1774년 노이호프(Neuhof) 농장에서 빈민아동들과 함께한 실험은 결국 재정 파탄으로 끝났다. 농사도 망하고, 아이들 먹이려다 자기 가족까지 굶길 뻔했다. 보통사람이라면 이쯤에서 이건 내 길이 아니야 하고 접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양반, 오기가 있었는지 글을 쓰기 시작했다. 1781년 발표한 소설 린하르트와 게르트루트 (Lienhard und Gertrud)』는 대히트를 쳤다. 교육적인 가난 극복기인데, 문체는 소박하고 주인공은 평범한 아낙네다. 당시 독자들은 열광했다. 드디어 우리 이야기를 써주는 작가가 나왔다 고.   그로브, 콘라트 (1879), 슈탄츠 지방의 고아들과 함께 있는 페스탈로치 (캔버스에 유화, 위키피디아) 머리·가슴·손, 삼위일체 교육론 페스탈로치 교육철학의 핵심은 간단하다. 사람은 머리(지식), 가슴(감성·도덕), 손(노작·실천)이 함께 자라야 온전한 인간이 된다는 것. 그는 이것을 조화로운 전인교육 이라 불렀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18세기 유럽 교육현장은 달랐다. 선생이 앞에서 라틴어 성경구절을 외치면 아이들은 무조건 따라 외우는 방식이 전부였다. 체벌은 기본이었고, 이해는 사치였다. 페스탈로치는 이것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아이들이 먼저 사물을 보고, 만지고, 느끼게 하라. 숫자를 외우기 전에 돌멩이를 세어보게 하라. 글자를 쓰기 전에 선을 긋고 도형을 그려보게 하라. 직관교육 이라 불리는 이 방법은, 요즘 말로 하면 체험 중심 수업이다. 이포르텐(Yverdon)에 1805년 세워 1825년까지 운영한 학교는 유럽 전역에서 교육자들이 견학을 올 만큼 유명해졌다. 독일 철학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는 독일 국민에게 고함 에서 페스탈로치의 교육을 독일 재건의 모델로 삼자고 외쳤다. 프로이센 왕국은 아예 교사들을 이포르텐으로 연수 보냈다. 페스탈로치가 죽고 난 뒤에도 그의 방법은 독일·미국·일본으로 퍼져 나갔고, 20세기 공교육의 뼈대가 됐다.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위키피디아) 역사가 그에게 한 짓, 그리고 그가 역사에 한 일 페스탈로치의 삶은 실패와 재기의 연속이었다. 농장실험 실패, 슈탄츠 고아원 강제폐쇄, 부르크도르프(Burgdorf) 학교 이전, 이포르텐 학교 내홍과 폐교. 그는 죽기 직전까지 자기 실험이 완성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827년 2월 17일, 여든한 살의 나이로 눈을 감으면서 그가 남긴 말은 이랬다. 나는 인류를 위해 무언가를 하려 했지만, 늘 부족했다. 겸손한 척 하는 말이 아니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평생 가르친 아이들 중 상당수는 가난한 집 자식들이었다. 귀족이나 부잣집 자녀를 가르쳐 돈을 번 동시대 교육자들과 달리, 페스탈로치는 쓸모없는 아이들 에게 집중했다. 사회가 버린 아이들. 국가가 관심 없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그에게는 혁명이었다. 그 혁명의 결과는 묵직하다. 오늘날 전 세계 초등교육 교사 양성과정에 페스탈로치의 그림자가 없는 곳이 없다. 아동권리 개념의 씨앗, 공교육의 보편화, 빈민교육에 대한 국가책임 인식, 이 모든 흐름의 어딘가에 이 스위스 할아버지가 서 있다.   페스탈로치가 1800년부터 1804년까지 연구소를 운영했던 부르크도르프 성.(위키피디아) 한국에 보내는 페스탈로치의 (가상) 편지 친애하는 대한민국 학부모 여러분께 만약 페스탈로치가 오늘 서울 강남 학원가를 걸어 다닌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처음 5분은 감탄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늦은 밤까지 공부를 하다니! 그런데 10분쯤 지나면 얼굴이 굳을 것이다. 아이들 눈빛에 반짝임이 없다. 손은 문제지 위를 기계처럼 움직이고, 가슴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사교육비 총액은 약 29조 원.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치를 계속 경신 중이다. 반면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을 맴돈다. 머리는 채우고 있는데, 가슴과 손은 비어간다. 페스탈로치가 가장 경계했던 바로 그 상태다. 한국교육의 문제는 사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수십 년째 입시위주 교육을 바꾸자 는 말이 나왔고, 교육과정도 수없이 바뀌었다. 그런데 왜 안 바뀌는가. 페스탈로치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교육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교육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이 문제다. 아이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경쟁의 단위로 보는 한, 어떤 교육개혁도 껍데기에 그친다. 페스탈로치는 어머니의 역할을 매우 강조했다. 가정이 최초의 학교이고, 어머니가 최초의 교사라고 했다. 이것이 오늘날 맥락에서는 여성에게 교육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오해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핵심은 다르다. 그가 말한 것은, 아이가 사랑받는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 성적표가 아니라 아이 자체를 사랑하는 환경. 지금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사랑하기에 학원을 보낸다고 믿는다. 그 믿음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방향이 틀렸을 뿐이다.   스위스 취리히의 페스탈로치 동상(위키피디아)  배울 점은 거창하지 않다 페스탈로치에게 한국이 배울 점은 거창한 교육철학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작은 것들이다. 첫째, 실패해도 다시 하는 것. 페스탈로치는 평생 망했다. 농장 망하고, 학교 망하고, 책도 처음엔 무시당했다. 그런데 멈추지 않았다. 지금 한국교육은 아이들에게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한 번의 시험 실패가 인생 전체를 규정하는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도전하는 법을 잃어간다. 둘째, 가난한 아이에게 더 많은 관심을. 페스탈로치의 학교는 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한국의 교육 격차는 해마다 벌어진다. 부모의 소득이 자녀의 학력을 결정하는 나라에서 공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셋째, 교사를 존중하는 것. 페스탈로치는 교사가 아이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 한국에서 교사들은 악성 민원과 행정 업무에 치여 정작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없다. 2023년 서울 서이초등학교 사건은 그 민낯을 드러냈다. 교사가 무너지면 교육도 무너진다.   페스탈로치 초상화(브리태니카) 이 할아버지가 그립다 페스탈로치는 평생 가난했다. 상을 받기도 했지만 늘 빚이 있었다. 죽을 때도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거의 20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름은 스위스 지폐(옛 100프랑권)에 새겨졌고, 전 세계 수많은 학교와 교육단체 이름이 됐다. 권력자가 아니어도 역사를 바꿀 수 있다. 군대 없이도, 자본 없이도, 아이들 곁에 앉아 함께 밥을 먹고 글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페스탈로치의 삶은 그 증거다. 오늘 밤도 학원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채점표를 들여다보는 부모들에게, 그리고 민원 문자에 지쳐가는 선생님들에게, 이 스위스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닿기를 바란다. 아이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아이를 사랑하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페스탈로치 그림.(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 by Print Coll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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