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내려놓음의 품격에 대하여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ChatGpt로 만든 이미지. Thomas Kim 시민기자
한동안 김형석 교수와 나태주 시인이 새 책을 낼 때마다 등장하는 기사와 영상을 빠짐없이 찾아보는 버릇이 있었다. 백 세를 넘긴 나이에도 형형한 눈빛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김형석 교수의 모습, 강연장마다 낮은 자세로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팔순 나태주 시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편이 뜨거워졌다. 그건 존경심이었고, 솔직히 말하면 부러움이었다. 나도 저렇게 늙어갈 수 있다면, 저런 결로 평생을 살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몇 번이고 되뇌게 되었다.
두 분의 걸음을 들여다볼수록 그 생각은 더 깊어졌다. 나태주 시인은 자신을 스스로 감정의 서비스맨 이라 부르며, 유명한 시보다 유용한 시, 사람을 살리는 시를 쓰겠다고 말해왔다. 그 말은 수사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평생 뿌리내려온 충남 공주의 청소년들을 위해 장학금 천만 원을 선뜻 내놓았고, 지자체와 도서관과 노인복지관을 마다하지 않고 강연을 다니며, 지금도 분주한 발걸음으로 삶의 지혜를 나누고 있다. 2014년부터는 사재를 들여 풀꽃문학관을 세우고 풀꽃문학상과 해외풀꽃시인상까지 제정해, 자신의 이름 대신 후배 문인들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힘써왔다.
김형석 교수 역시 백 세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강연을 소화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그는 2024년 9월에 세계 최고령 저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놀라운 인물이기도 하다. 2024년에는 『김형석, 백 년의 지혜』로 평생 쌓은 통찰을 다시 세상에 내어주었고, 107세를 맞은 최근에는 『AI 시대에 인문학은 무엇인가』를 발간해서 세상을 다시 한번 더 놀라게 했다. 이만큼 오래, 이만큼 낮은 자세로 스스로 쌓은 지혜를 나누어온 삶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할 정도다.
Gemini로 만든 이미지. Thomas Kim 시민기자
그러던 어느 날, 김형석 교수의 인터뷰 한 대목이 유독 오래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공지능 시대일수록 정작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스스로 묻고 판단하는 힘이라는 말이었다. 멋진 통찰이다. 지금은 인간이 평생을 바쳐 쌓아온 지식을, AI가단 몇 초 만에 전 세계를 향해 무상으로 풀어놓는 시대다. 지식의 양과 속도라는 잣대로만 보면, 인간은 이미 AI를 따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만이 고유하게 지켜낼 수 있는 영역은 무엇일까. 그 물음을 붙들고 한참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찾은 답은 다음과 같았다. AI는 무엇이든 더 줄 수 있지만, 인간처럼 스스로 더는 갖지 않기로 결단하는 능력만큼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다 는 것이다. 축적의 능력에서는 AI가 앞섰을지 몰라도, 내려놓음의 덕성만큼은 오로지 인간만이, 그것도 이미 내공을 충분히 쌓아온 성숙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논리에 가장 먼저 다다른 이 역시 김형석 교수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위해 한 일은 남는 것이 없으나 이웃과 사회를 위해 마음 쓴 일은 죽어서도 남는다고 말했다. 또한 지금 하는 일이 훗날 사회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했다. 또한 청년의 노동이 자신과 가족을 향한다면, 노년의 일은 이웃과 사회를 향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백 년 이상을 살아낸 철학자가 스스로 완성한 지혜였다.
Meta로 만든 이미지. Thomas Kim 시민기자
이 쯤에서 필자는 감히 한 장면을 그려보게 되었다. 두 분이 이미 걸어온 나눔의 걸음에, 한 걸음이 더해지면 어떨까. 어느 날 두 분이 앞으로 펴낼 책이나 강연은 모두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선언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어떨까. 그것은 얼마나 더 많은 저작물을 세상에 드러내느냐의 가치를 넘어서, 평생 쌓아온 지혜를 오롯이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는 결단이 되지 않을까. 이것은 도저히 자본의 논리로, 알고리즘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오직 인간만이 쓸 수 있는 마지막 문장 같은 것이 아닐까.
만약에 그런 장면이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펼쳐진다면, 그 여파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을 것 같다. 세계로 뻗어가는 K-문화 역시 흥행을 넘어서 정신세계의 깊이까지 더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700만 이민자들에게도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더 느끼게 해주지 않을까. AI와 로봇의 거센 물결이 휘몰아치는 세상이다. 지식의 양과 속도 측면에서 점점 더 뒤처지고 있는 인간이 스스로 이 세상의 주인공임을 입증하는 방법은 오로지 가진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품격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저 필자의 부러움이 빚어낸 상상일 뿐이지만, 그 상상이 언젠가 현실이 되는 날을 가만히 그려본다.
Thomas Kim 시민기자 songofwoob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