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목 방울달기’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유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박태주 60+기후행동 운영위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는 이솝 우화가 있다. 쥐들이 고양이로부터 집단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머리 맞대고 논의하다 건진 기막힌 아이디어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난다. 왜 실패했을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아이디어는 브레인스토밍의 성과였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답을 얻은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었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건데?”라고 물은 것이다. 자원하는 쥐는 없었다.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까?”라고 묻지 않은 탓이었다. 국내 갈등해결학 1호 박사인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의 진단이다(강영진, 2009). ‘누가?’ 대신에 ‘어떻게?’라고 물었다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었을 거라는 게 강 원장의 예상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는 기막힌 아이디어까지 끄집어낸 쥐들이 아닌가.
‘어떻게’가 없는 개혁은 “허공에 붙들어 맨 아이디어”일 뿐
윤석열의 탄핵과 조기 대선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개헌이나 사회개혁 논의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무엇을’에 대해서는 그간 논의도 무성했고 개혁진영 내에서는 상당 부분 합의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 버티고 있는 현실에서 관건은 개혁의 과정과 절차를 관리하는 일이다. 강을 건널 배도, 다리도 없이 강 건너 사과밭의 사과를 꿈꾼다면 이는 그야말로 김칫국이다. 개혁은 개혁안을 작성하는 것 이상으로 개혁안을 어떻게 현실정치에 투여하고 권력을 견인할 것인가의 문제다. 개혁과정을 생략한 개혁과제는 “허공에 단단히 붙들어 맨 아이디어”에 지나지 않는다.
2017년 3월 12일,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헌재에서 인용된 다음날, '박근혜퇴진비상국민행동'은 「2017 촛불권리선언과 100대 촛불개혁과제」를 발표한다. ‘이재용 등 재벌총수 구속’으로 시작해 ‘양심수 전원 석방’으로 끝나는 10대 분야 100대 과제였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실제로 대부분 실현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실패를 탓하지만 그건 개혁 의지나 의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개혁의 경로나 과정 설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개혁의 실패는 ‘무엇’을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할지를 생략한 결과였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기후위기 대응 촉구 대규모 집회 참가자들이 삼성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24.9.7. 연합뉴스
기후위기가 가져오는 일자리의 상실과 불안정성의 심화
지난 글(“윤석열을 말끔히 지워야 하는 또다른 이유” 시민언론 민들레 2024. 12. 27.)에서 기후대응의 실패가 산업전환의 실패를 가져오고 그것은 노동시장에 재앙적인 충격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더욱이 기후대응은 저성장체제를 배경으로 디지털 전환과 짝을 이뤄 진행되면서 노동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키운다. 이는 일자리의 축소와 노동시장의 불안정화로 나타날 것이다.
전환의 시대에 발생하는 실업을 전환적 실업(transitional unemployment)이라고 이름 붙인다면 이는 그 발생 원인에 따라 기술적 실업과 환경적 실업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전환적 실업은 그 양태에 따라 일자리의 부족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실업과 숙련이나 지역, 노동조건의 불일치(mismatch)로 발생하는 마찰적 실업으로 나뉜다(<그림> 참조). 전환적 실업이 노동시장의 약자인 하청 노동자나 비정규 노동자, 미조직노동자부터 희생양으로 삼으리라는 건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림> 이중전환에 따른 실업의 양상
지금 노동시장의 핵심적인 문제는 넘쳐나는 실업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불안하게 높아지는 불안정성이다. 정규 노동보다는 비정규 노동이 정상(normal)이 되고 있는가 하면 노동과 자영업 사이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자영업자이지만 실질은 노동자와 다름없는 특수고용노동자(특고, 노무제공자)나 프리랜서가 대표적이다. 배달노동자와 모빌리티 노동자(카카오T나 우버 등), 클라우드 노동자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는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최근에는 위탁・용역・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해 멀쩡한 노동자를 사업소득자로 위장 신고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4대 보험과 야근수당 등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회피하려는 꼼수다. 이른바 ‘가짜 3.3% 노동자’들로 이들은 근로소득세 대신 3.3%의 사업소득세를 낸다. 플랫폼 노동자나 ‘3.3% 노동자’는 프랜차이즈 거래사업자와 같은 종속적 자영업자와 함께 노동과 자영업의 경계에 위치함으로써 불안정노동자의 새로운 집적지(pool)가 되고 있다.
기후대응이 디지털 전환과 결합하면서 노동시장의 불안정화는 가속된다. 화석연료 기반산업의 축소는 관련 노동자의 실직 위험을 증가시키고 로봇화나 인공지능(AI)의 적용은 노동수요를 줄인다. 산업전환이 지체되어 산업이 경쟁력을 잃는다면 노동에 대한 수요는 급감할 것이다. 또한 기후변화는 사업환경의 불확실성을 높여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는 등 고용의 유연화를 진전시킨다. 기존 산업의 녹색전환과 구조조정의 과정에서도 기간제나 일용직과 같은 비정규 노동이 늘어날 것이다. 기후의존도가 높은 계절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노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새 정부에 기대만 말고 노동도 신발끈 다시 맬 준비해야
기후위기를 맞아 노동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그린뉴딜을 통한 녹색 일자리의 창출은 물론 필수공공서비스(주택, 의료, 교육 등)의 확충, 돌봄노동의 강화가 일자리의 수요를 늘리는 일이라면 노동시간 단축은 일자리의 공급을 줄이는 방안이다. 불안정노동자에 대해서는 법・제도적 보호의 강화(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일하는 사람을 위한 기본법 등)와 함께 사회안전망의 확충, 직업능력 개발, 차별 해소(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확립 등) 등 하나같이 뺄 수 없는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목표와 지향은 뚜렷하지만 어떻게 도달할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따라가지 못한다.
조만간 내란의 밤이 끝나고 새벽처럼 새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아, 출발한 적도 없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했구나.” 극작가이자 시인인 브레히트(B.Brecht)는 누구의 계획에도 없던,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면서 장미가 피었다고 말한다. “장미가 그곳에 피어있기 전에는, 아무도 장미를 기대하지 않았다”. 새 정부가 오면 기후정치에도, 그래서 노동시장에도 장미가 피어날까.
새 정부가 기후 악당 국가를 종식하고 산업전환과 노동시장의 충격을 정의롭게 해결해 나갈지는 불확실하다. 그것이 민주정부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외려 침체된 경기를 살리고 성장세를 회복하느라 기후대응을 늦추고 자본친화적인 노동정책을 시행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권력의 호의에 기댈 수만은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노동도 신발끈을 새로 묶어야 할지도 모른다.
사회적 대화에서 노동의 필수 의제는 기후와 산업정책
일차적인 것은 기후위기에 대한 조속한, 그리고 적극적인 대응이다. 한국은행(2024)도 이야기하듯이 1.5℃를 목표로 삼아 조속하게 대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경제와 노동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에너지 전환은 물론 산업의 녹색화를 앞당김으로써 기후경쟁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확보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런 일을 기업 차원의 단체교섭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기후정책과 산업정책은 물론 노동정책과 사회안전망 정책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책결정과정에서 이해당사자로서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정책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러한 거버넌스의 중심에 사회적 대화가 있다.
사회적 대화는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의제로 삼는가의 문제다. 그중에서도 기후정책과 산업정책에 대한 노동조합의 개입은 필수에 속한다. 그밖에도 전환과정에서 하청,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보장과 디지털 기술의 활용에 따른 유연화의 규제, 교육훈련기회의 확대, 그리고 노동시간의 단축 등도 노동조합의 관심 사항이다. 단체교섭구조의 개편은 물론 단체협약의 적용 범위의 확장도 마찬가지다. 조직노동이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배제한다면 그것은 정의롭지도 못할뿐더러 노동시장에서의 불안정과 불평등을 해결하지도 못한다.
사회적 대화는 ‘무엇을’ 속에 ‘어떻게’를 담을 수 있는 노조의 무기
노동조합은 사회적 대화에서 주체로 서기보다는 대상으로 자리매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참가의 설득 대상이 되는가 하면 때로는 합의를 강요당하는 들러리에 머물기도 한다. 사회적 대화에서 정부의 주도성을 말한다. 노조는 초대받은 손님이었을지언정 주인장이 되지는 못했다. 노조는 그렇게 사회적 대화로부터 대상화됐다.
‘갈등의 사회화’라는 말이 있다. 미국정치학회 회장을 지낸 샤츠슈나이더(E.E. Schattschneider)가 『절반의 인민주권』이란 책에서 말한 것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이 갈등에 관여할 수 있게끔 사회갈등을 폭넓게 조직하는 것, 즉 갈등의 범위를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전달해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도록 만든다. 갈등을 사회화함으로써 공적 권위의 도움을 요청하고자 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강자가 아니라 약자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고자질하는 학생은 골목대장이 아니라 힘없는 작은 소년이다. 샤츠슈나이더가 갈등의 사회화를 사회적 약자의 무기라고 말하는 이유다. 단체교섭이 파업을 무기로 삼는다면 사회적 대화는 갈등의 사회화를 통해 사회연대투쟁을 조직하는 촉매가 된다.
사회적 대화에서 노동중심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사회적 대화를 사회적 약자, 즉 노조의 무기로 만든다는 걸 의미한다. 사회적 대화가 노조의 관심 의제를 사회화하고 갈등을 키워 정치화하는 엔진이라면 그것이 노조의 무기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비판을 넘어 형성의 시대로 나아가는 가교이며 ‘무엇을’이라는 질문 안에 ‘어떻게’라는 질문을 담는 방법이다.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특위 관계자들이 19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22대 국회 정책과제 제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기후부총리제 신설 등 기후정책 제안를 담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3.19. 연합뉴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조정을 통한 민주주의의 실천
기후대응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책과정에서 노조는 배제와 주변화의 아이콘이었다. 사회적 대화는 노조의 참여를 바탕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뒷받침하고 현장의 전문성을 제공함으로써 정책의 실효성을 높인다. 사회적 대화가 촉진하는 갈등의 사회화는 노동조합과 시민사회 간 기후연대의 구축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는 전환비용의 분담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의 형성에 기여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조정을 통해 전환과정을 투명하고 책임 있게 관리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대화는 민주주의의 실천이기도 하다. “구속력 있는 집단적 결정은 그 결정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내려져야 한다”. 평생을 민주주의 연구에 바친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Robert Dahl, 2011)이 경제민주주의의 금과옥조로 밝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