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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판사 150명 사표 사법파동 배후…박종철 두 번 죽인 검사

판사 150명 사표 사법파동 배후…박종철 두 번 죽인 검사
[뉴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펼쳤다. 김종건(金鍾鍵, 1935~2012) 항목의 부제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한 몸에 육법당을 구현한 육사 중퇴 공안검사로 1971년 사법파동 주도. 육법당(陸法黨). 박정희(1917~1979)부터 전두환(1931~2021)까지 이어지는 군사독재 정권을 떠받친 육군사관학교 출신과 검찰, 그리고 공화당세력의 삼각동맹. 김종건은 육사 13기를 중퇴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된, 그 세 축을 한 몸에 담은 희귀한 인물이었다. 영국에서 이 이력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구조가 선명하게 보인다. 권력의 카르텔은 다양한 경로로 구성원을 충원하고, 그 구성원은 충성의 증거를 계속 생산한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법률신문 1935년 전북 익산 출생, 육사 중퇴 후 사법시험 합격 김종건은 1935년 4월 13일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났다. 1954년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13기로 입학했다. 육사 13기 동기에는 훗날 국방부장관이 되는 최세창, 대통령 경호실장 정동호, 12·12 군사반란 주역인 우경윤, 그리고 국정원장 임동원이 있다. 그 기수에서 김종건은 2년을 마치고 1955년 중퇴했다. 중퇴 후 1958년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검사의 길에 들어섰다. 고시 동기로는 대법원장 윤관, 국무총리 이한동, 국무총리 김석수, 법무부장관 정해창, 서울지검장 이창우 등이 있다. 이 기수에서 무려 여러 명이 나란히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이 화려한 출발에는 작은 결함이 있었다. 군법무관으로 춘천에서 근무할 때 모종의 뇌물사건으로 기소됐다. 당시 춘천지법 판사였던 이범렬이 선처해 검사 임용에 결격사유가 되지 않을 처벌을 받았다. 이범렬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 이범렬이 나중에 사법파동의 불씨가 되는 중심인물로 등장한다. 은인에게 칼을 겨누게 된 것이다.   김종건(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충성 경쟁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나치 독일에서 친위대와 게슈타포를 이끈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Himmler, 1900~1945)의 부하들은 충성의 증거를 생산하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상부의 명령을 넘어서는 과잉충성이 출세의 수단이었다. 김종건의 이력에서도 이 냄새가 난다.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를 두고 보자 라고 위협하고, 자신의 사건을 무죄 선고한 재판장을 사찰하고, 기자에게 평생의 원수 라고 폭언한 것. 이것은 직무의 범위를 넘어선 과잉 충성이었다. 소련의 안드레이 비신스키(Andrey Vyshinsky, 1883~1954)도 비슷하다. 스탈린(1878~1953)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더 가혹한 기소를 추진했다. 체제의 이너서클에 남기 위해 충성 경쟁을 한 것이다.    1942년의 하인리히 히믈러(위키피디아) 피카소를 잡은 검사 1969년 6월 9일,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 김종건이 역사에 남을 기소를 단행했다. 피카소 크레파스 반공법 위반사건이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1944년 프랑스공산당에 입당했고 소련의 레닌평화상을 받았으며 한국전쟁 당시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렸으니, 피카소의 이름을 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반공법 위반이라는 논리였다. 삼중화학 대표 박진원이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됐다. 피카소 크레파스 제품의 이름을 즉시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에서 피카소 그림같이 훌륭하다 고 말한 코미디언 곽규석도 소환조사를 받았다. 드라마에서 피카소란 별명을 쓴 동양TV 제작자도 소환됐다. 나중에 삼중화학은 크레파스 이름을 피카소 에서 피닉스 로 바꿨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 사건을 광기 어린 매카시즘을 보여주는 한 대목 이라고 기록했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보며 나도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1908~1957) 미 상원의원을 떠올렸다. 1950년대 미국에서 공산주의자 색출을 빌미로 수천 명의 삶을 파괴했던 그의 이름이 매카시즘 이 됐다. 김종건의 피카소 크레파스 사건은 한국판 매카시즘의 가장 황당한 사례 중 하나다.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위키피디아) 1971년 사법파동, 판사에게 영장을 청구하다 1971년, 박정희 정권이 심기를 거스르는 판결이 잇따르자 법원을 손보기 위한 작전이 시작됐다. 그 실행자가 김종건이었다. 이범렬 등 판사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사는 공식적으로는 이규명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김종건이 배후에서 기획하고 지시한 것이었다. 이범렬 판사에 대해서는 특히 더 깊은 사감이 있었다. 군법무관 시절 뇌물사건 당시 선처를 받은 은인이었지만, 그 뒤 김종건이 기소한 방송극 〈송아지〉 사건에서 검찰 항소를 기각했고, 대전일보 기자 구속적부심에서 기자를 석방했고, 잡지 『다리』 필화사건에서 피고인들을 보석 석방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거듭거듭 자신의 기소를 무죄로 뒤집은 판사였던 것이다. 결국 전국 판사 455명 중 150여 명이 집단사표를 제출하는 사법파동이 일어났다. 검찰총장과 서울지검장이 기자들에게 사과해야 했다. 김종건은 전주지검으로 좌천됐다. 그러나 8개월 만에 서울로 귀환했다.   김종건(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박종철을 두 번 죽이다, 관계기관대책회의의 핵심 1987년 1월 14일 박종철(1965~1987)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졌다. 청와대 사정수석비서관이었던 김종건은 그날 즉각 관계기관대책회의 에 내무부장관, 검찰총장과 함께 참석해 박종철 고문살해 사건의 진상은폐와 축소조작을 논의했다. 박종철은 고문으로 한 번 죽었다.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 진상이 은폐됨으로써 두 번 죽었다. 그 두 번째 죽음에 청와대 사정수석 김종건이 있었다. 1987년 5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은폐사실을 폭로했다. 전두환 정권은 노신영 국무총리, 장세동 안기부장 등 실세들을 문책 경질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그러나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 은폐조작의 실무를 담당한 김종건은 청와대 사정수석에서 법제처장으로 옆 자리 이동 에 그쳤다. 가장 직접적인 실무책임자가 가장 가벼운 대가를 치른 것이다.   박종철(나무위키) 사회정화 와 기강 확립 , 전두환에 대한 충성의 언어 1985년 10월 제5대 사회정화위원장에 임명된 김종건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회정화위원회는 제5공화국 탄생과 직접 관련된 유일한 조직이자 정의사회 구현을 주도하는 핵심 추진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기강 확립이다. 사회정화위원회. 전두환이 집권과정에서 삼청교육을 입안 시행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사회정화분과의 후신이다. 6만 명 이상을 영장도 없이 군부대로 끌고 가 수십 명을 가혹행위로 죽인 그 기구의 계승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전두환의 신임을 얻어 청와대 사정수석으로 영전했다. 1988년 2월, 전두환 임기만료 직전 청조 근정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노태우(1932~2021) 정권에서 박종철 사건 관련 5공 인물이라는 이유로 공천에서 탈락했다. 충성의 끝이 이런 것이었다.   법정에서 노태우와 전두환.(전두환: 29만원 밖에 없다 ,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그가 남긴 말말말 - BBC News 코리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매카시즘의 실무자였던 로이 콘(Roy Cohn, 1927~1986)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됐는가. 그는 권력을 잃자 변호사로 활동했고, 말년에 각종 비리와 탈세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채 사망했다. 김종건은 2012년 6월 15일 사망했다. 박종철의 두 번째 죽음에 관여한 그의 책임이 법적으로 추궁된 적은 없었다. 1988년 박종철열사추모사업회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피고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올랐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피카소 크레파스를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하던 1969년의 한국을 떠올렸다. 그리고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 박종철의 죽음을 덮던 1987년의 한국을 떠올렸다. 그 반헌법적 문법들이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채 살아 있었기에, 2024년 12월 3일의 밤이 가능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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